"헉...헉...!"


남자는 계속 도망치다 어떤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추가로 더 피할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몸을 숨길 곳 또한.


끼-익


여자가 방에 들어왔다. 우아하지만 튀진 않는 옷과 그보다 더 아름다우면서도 수수한 외모는 남자가 겁에 질린 이유가 다른 데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 같았다.


"아저씨. 이젠 어디로 도망칠 건가요?"


여자는 이미 승자인 양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누차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가씨와 어울릴 급이 안..."


"야, 닥쳐. 내가 좋아하겠다는 데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한데? 가업? 재산? 다 필요 없어. 난 당신만 있으면 된다고!"


"아가씨. 조금만 더 지내고 생각을 더 해보시면 느낄 겁니다. 세상엔 좋은 남자가 참 많다는 걸요. 그리고...."


이번에도 여자는 남자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꺼냈다.


"안 되겠다. 평소에 다른 여직원한테 웃어주고 꼬리치는 꼬라지 보기 싫었는데, 앞으로는 저택에 가둬놔야겠어. 아저씨

찌릿하더라도 잠깐만 참아줘~?"


"푸흣-"


의외로 남자는 회심의 웃음을 터뜨렸다.


"??? 뭐가 웃겨?"


여자는 남자의 반응에 잠시 당황하면서도 전기 충격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회장님. 지금까지 잘 들으셨죠?"


"음, 그래. 우리 예린이가 김 실장에게 연심을 품고 있었구만..."


"아, 아빠! 내가 나중에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남자가 든 수화기에서 무게감 있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짙게 새어 나왔다. 여자는 그 목소리에 더욱 당황하며 볼을 붉혔다.



"회장님, 회장님께서라도 아가씨를 좀 말려주십시오. 아가씨는 지금 현실과 연애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괜찮아. 자네와 예린이 간의 교제를 허락하지."


"자, 아가씨 잘 들으셨....에? 뭐라고요?"


"자네는 내가 인정한다고. 자네는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봐 왔잖나. 성실하지. 인품에 하자 없지. 무엇보다 내 딸이 좋아 죽는 다는 데 내가 반대할 이유가 뭐 있겠나?"


다시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이제 당황한 쪽은 바로 남자다. 


"아, 아니 회장님! 재고해 주십시오. 사레스 기업 장남과의 결혼이 더욱 중요..."


아까의 여유는 소진한 지 오래. 남자는 다급하게 회장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네는 나를 뭘로 보나?"


"네?"


"나는 정략 결혼이니 인수 합병이니 이딴 것보다 내 딸 예린이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이야. 그리고 어차피 삼대가 먹고 살 돈은 이미 차고 넘치게 벌어놨어. 자네는 날 지금 돈에 미친 속물로 보는 겐가? 엉?"


"아니, 저...그게...."


남자는 여자로부터 자신을 피신시켜 줄 유일한 동앗줄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여자의 턴이다.


"아빠~이해해줘서 고마워. 히히. 김 실장님한테 볼 일 다 보고 이따 또 통화할게?"


"그려, 아빤 이따 드라마나 보고 좀 자야겠다. 수고해~"


뚝-


통화가 끊어지자 여자는 전기충격기의 전원을 다시 켰다.


"호호, 아저씨. 나름 재밌는 장난을 치셨네요?


마음 같아선 바로 거칠게 대하고 싶지만 한 번 더 기회를 드릴게요.


제가 갈까요 아니면 아저씨가 오실래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남자는 터벅터벅 여자에게로 향했다. 여자는 남자와 팔짱을 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일 약속 없죠? 오늘밤은 나하고 쭉-보내는 거예요? 아시겠죠?"


남자는 무기력한 끄덕임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제 연인이 된 둘은 문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유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