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 태어났단 이유 하나로 1년 반을 군대에서 보내야하고 시급도 안쳐주는 예비군을 강제로 다닌다.

내 친구들 중에는 몸 아프고 가정형편도 힘든 애들도 있었다.

싹다 3급 떠서 군대로 끌려갔다.

개씨발놈들.

 

“병장 월급이 22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이쯤되면 군캉스란 말이 참 어울리는데요? 호호.”

 

텔레비전에서 뚱뚱한 아나운서가 뭐라 지껄인다.

2033년.

대한민국은 페미니스트에 점거당했다.

갑자기 단체로 세뇌라도 걸린 건지 순식간이었다.

국회와 행정부는 파란 물결로 뒤덮혀졌고 여성의 일관된 진술만로 남자들은 구치소로 끌려가는 비율은 대폭 늘었다.

그런데도 무고죄는 여전히 집행유예다.

출산율은 0.3%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이민이 엄청나게 늘었다.

노가다판 가면 한국인 찾는게 더 힘들 지경이다. 시벌.

 

“X지가 벼슬이지. 에잉!”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벌러덩 눕는다.

군대를 전역하고 공무원을 노렸다.

비록 법이 개정돼 호봉이 인정 안됐지만 여전히 공무원은 남녀노소 인기직업이었으니깐.

아슬아슬하게 시험을 통과했다.

게임만 하던 막내놈 철들었고 고생했다고 가족끼리 소고기를 우걱우걱 시켜먹었다.

그런데.

 

“씨발. 임용 유예 시키더니 여성 할당제 때문에 내가 취소 된다고?”

 

좆같은 법이 사기업을 넘어 공기업까지 뚫렸다.

그래놓고 대부분의 기업 임원진은 남자가 대부분이다.

씨발놈들. 스윗한 높은 놈이나, 여자나 다 뒈져버려라.

벌컥벌컥.

 

“크. 쓰다. 꺼억.”

 

소주 한 병을 원샷하니 기분이 야리꾸리해진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키고 앉아 자주보던 웹소설 페이지를 띄운다.

이 시간이면 분명 올라올 때인데….

 

“오. 올라왔다.”

 

현재 1999화. 장르는 남역물.

글빨도 떨어지고 인기가 없어 유료화는커녕 따라오는 독자를 세기가 더 쉬울 지경이다.

300화에서 100명 결사대가 30명이 됐고 500화에서 다시 반절로 줄었다.

 1000화쯤 되자 이제 읽는 사람은 나밖에 남지 않았다.

독자는 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댓글은 성실히 달아줬다.

 

->아니 작가님. 주인공이 갑자기 각성하는게 개연성에 안맞는데요? 넌지시 복선이라도 주셔야죠.

-->네? 아, 죄송해요. 그대로 쓰긴 했는데 별..로였나요?

--->별로고 자시고 개연성에 안맞는다고요. 이러니깐 독자가 떠나가는거 아니예요?

---->에고 죄송해요 ㅠㅠ 

 

이 성실하기 짝이 없는 작가는 글도 매화 올리고 답글도 성실히 달아줬다.

현실에 치이는 삶 때문인지 솔직히 말해 별 것도 아닌 걸로 댓글 단 적도 많다.

 

->판타지에서 서민이 누가 골드를 저리 들고 다녀요? 그리고 의복은 @#$@#$#@$

->주인공이 무영창 마법 갈기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적이 주저리 떠는게 말이 돼요?

->소꿉친구 죽었잖아요. 나도 지금 보니 생각났네. 작가가 설정을 헷갈리시면 어떡해요?

 

그때마다 달리는 답글은 매번 이랬다.

 

-->죄송해요 ㅠㅠ 수정할게요. ㅠㅠ

 

설정 오류 지적한 것 빼곤 솔직히 존나 미안하다.

현실에서 치이는 스트레스를 댓글 다는 재미로 풀었다.

악플러는 나같은 사람이 다는 모양이다.

매화 1화씩 6년을 연재했으니 얼굴도 모르지만 친구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없는 돈 짜내서 30만 원이란 거금을 충전했다.

내일 2000화가 되는 순간 완결이 되니 나도 양심상 돈은 쏴줘야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1999화를 클릭했다.

 

“?”

 

[??????????????????????????????????????????????????????????????????????????????????????????????????????????????????????????????????????????????????????????????????????????????????????????????????????????????????……]

 

화면을 채우는 건 글자가 아닌 수많은 물음표.

글을 잘못 올렸나 싶어 스크롤을 빠르게 당겼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rmfkrktma2017님. 당황스러우셨죠? 사실 완결을 2화 앞두고 연중을 하게 돼서……]

 

‘뭐? 이게 뭔 씹소리야.’

 

1998화까지 연재했는데 2화를 못 쓰고 연중한다고?

뒤에는 뭐라뭐라 더 적혀있지만 분노에 흑화한 나는 댓글을 사정없이 쓰기 시작했다. 취기가 도니 감정이 더욱 적나라해졌다.

 

->야이 씨빨놈아. 6년을 봐줬는데 연중을 해? 너가 그러고도 작가야? 야이 @#$#@$@#%$@$%

--> rmfkrktma2017님.

 

댓글을 달자마자 작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글을 달았다.

내 손도 더욱 빨라졌다.

 

--->왜? 할 말 있음 해. 나도 참을만큼 참았다.

---->곽재성 2017년생. 위에 누나 세 명이 있고 늘 핍박받고 치이며 삼. 고백은 10번 차였으며 모태쏠로임. 육군 24사단을 전역하고 공무원에 도전했지만 여성할당제에 밀려 떨어지고 2년간 노가다판을 전전함. 현재 조울증,불안장애,공황장애약 복용중이며 차도 없음.

----->뭐야?너?

 

내 신상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읊어졌다….

나는 너무 놀라 키보드에 손이 떠졌다.

그사이 답글이 달렸다.

 

------>늘 여자에게 피해받는 당신에 의해 쓰여진 망상이니깐요. 그럼 이제...

 

새 댓글이 달렸다.

 

-> 빙의될 시간입니다. 마무리는 작가님이 직접 하셔야죠. 설마 2화 남겨두고 죽거나 그러진 않겠죠? 리메이크 하시면서 이번엔 유료화 될만큼 재밌는 소설 기대하겠습니다. 작가님.

 

툭.

무선 마우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을 줍는 사람은 세상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

 

 

 

 

초초장편 판타지소설 <마탑의 현자들>.

불과 2화를 남겨두고 그 세계에 빙의됐다.

나는 백작의 저택에서 일하는 어린 하인이 되어있었다.

 

“흠.”

 

저택 밖의 공터를 쓸다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잠시 벽에 기대앉았다.

지이이이잉.

주문조차 외지 않았는데 단순히 집중한 것만으로 손바닥에 강대한 푸른 마력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남자는 마나와 기를 배울 수 없다.]

 

이 세계에서 절대적인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이다.

주인공 로스를 제외하면 말이다.

나란 이세계인이 추가됐으니 이제 2명이다.

분명 좋아해야 하는데 좋아할 수 없다.

들키면 몸이 원소 단위로 분해된다.

연구에 미친 마법사년들이 달라붙을 것이다.그런 설정의 소설이니깐.

문제는 언제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냐는 거다.

 

“어이, 로웬. 거기 숨어 있냐?”

 

나와 같이 하인으로 일하는 남자가 나를 불렀다.

헬창들이 부러워할만큼 온몸이 근육질이다.

이 세계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다.

우락부락한 근육과 대비되는 약한 남성미가 돋보여 섹시하다고 한다나…. 아무튼 여존남비의 세계다. 남역물답게 설정이 세세하게 많다.

 

“하, 로웬. 너 내가 말했지? 하루에 팔굽혀펴기,스쿼트 100개만 하면 나와 같은 근육을 얻을 수 있다고. 흐흐.”

‘안된다고. 씨발.’

 

약을 한 것 마냥 더럽게 큰 근육질이다. 문제는 천연이라는 거다.

그때는 웃고 넘긴 설정이 실제가 되니 더럽기 그지 없고 남자로서 부럽기도 한다.

 

“쯧쯧. 어리다고 너무 놀면 안 된다.자고로 근육을 키워야 여자분들에게 간택될 수 있다고, 너처럼 기생오라비같이 생겼다간 평생 혼자 산다니깐?”

“알겠으니깐. 왜 불렀어?”

“주인님께서 하인 여러 명을 불렀다. 옷에 먼지 털고 올라와.”

“알았어.”

 

옷매무새를 간단히 다듬고 백작의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는 아르베르크 백작이 앉아있었고 그의 남편이 터질 것 같은 근육질을 뽐내며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힉.’

 

차가운 표정의 백작의 딸 이리아와 눈을 마주치자 나는 황급히 눈을 돌렸다.

 

‘마법에 미친 년.’

 

5년 뒤 최연소의 나이로 청의 마탑주로 올라서게 되는 무시무시한 년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주인공의 엄청난 마력을 시샘해 그 권위로 끝까지 괴롭히던 년이었으니깐.

안에는 9명의 소년부터 청년이 각자의 근육을 뽐내며 서있었다.

아르베르크 백작의 눈에 송곳이 튀어나왔다.

 

“로웬. 왜 이렇게 늦었지?”

“죄, 죄송합니다.”

“흥. 몸관리도 게을리하더니 형편 없는 하인이구나.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쯧.”

 

늦게 온 데는 이유가 있다.

 

“네게 특혜를 줄려했건만 안되겠다. 이리아. 저 9명의 하인들 중 아카데미로 데려갈 하인 1명만 고르거라.”

“응.”

 

대륙에서 온갖 재능러들이 모이는 아카데미에 끌려갔다간 마나를 단박에 간파할 수 있는 현자들과 교수들에게 들킬 것이 뻔하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 목을 내놓고 갈 수 없다.

 

“흠.”

 

이리아가 찬찬히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하인 9명의 근육들에 힘이 들어간다.

이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다 썩 내키지 않는데, 나 혼자 가면 안 돼?”

“안된다. 아카데미의 규칙이다. 그리고 너 속옷도 혼자 못 빨잖아?”

“알았어. 어쩔 수 없지.”

 

이리아는 손짓으로 가장 키가 큰 청년 하인을 골랐다.

키 큰 하인은 희색이 만연하여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머지 8명의 하인은 아깝다는 듯 한숨을 내저었다.

그럴 만하다. 아카데미아로 출장가는 하인은 봉급이 열 배로 느니깐.

몇 년만 일해도 하인따위 은퇴해도 될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저 청년을 알까.

아카데미아가 지옥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 됐다. 계획대로야.’

 

순간 이리아가 고개를 돌려 로웬을 조용히 노려봤다.

 

 

 

 

*******

 

 

 

 

이 세계에 빙의되고 내가 세운 계획은 간단하다.

 

‘최대한 개입하지 말자.’

 

어차피 이곳은 주인공을 위한 세계다.

가만히 놔둬도, 내가 개입하지만 않으면 무난히 해피엔딩으로 흘러간다.

분명 그런 흐름이었다. 1998화동안은.

나머지 2화도 아마 그런 흐름일 거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적당히 일하다가 쫓겨나면 돼.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이 세계의 여자들은 대부분 남자를 괄시하지만 그렇지 않은 등장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캄파스 상회의 여식이다.

중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소녀인데 남녀평등 사상을 갖고 있고 얼굴도 아름답다고 적혀 있었다.

그 여식이 뭘 좋아하고 뭐에 약하고 어떤 페티쉬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부자인 그 소녀를 꼬신다면 이 세계에서 인생역전할 그림이 그려진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가 마나를 갖고 있는 건 이 세계에서 절대 플러스가 아니다.

죽기 싫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 그러고 싶어서 공무원 지원한건데 보X민국에선 씨발 그게 안됐다….

 

“씨발. 갑자기 생각하니깐 서럽네. ”

“뭐? 씨발?”

“엥?”

 

언제 들어왔는지 누추한 내 방을 열고 침대에 누워있는 날 멀뚱히 바라봤다.

괜히 해코지 당하기 싫었던 나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조아렸다.

 

“어,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로웬. 너 많이 변했구나.”

“예?”

“넌 욕설을 모르던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날 보면 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지 않았느냐? 이상하구나.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아.”

“…….”

 

백작가의 여식이 먼지만도 못한 하인에게 이리 관심을 주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이리아님을 보면 여전히 두렵습니다. 욕설은 이번에 배웠습니다. 자제하겠습니다. 이리아님.”

“흥. 다른 건 아니고 네게 물어볼 게 있어서 들렀다.”

“예. 말씀하십시오.”

“아까전에 말이야. 왜 혼자 다른 표정을 지었지?”

 

나는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날 쫓아오는 게 싫은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냐?”

 

나는 그제야 이리아가 날 바라봤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소녀의 꼬인 속마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허투루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반대로 말해야 한다.’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리아님에게 진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사실 저는 이리아님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뭣?”

 

이리아의 동공이 잠깐이나마 흔들렸다.

나는 이 소녀가 자신을 경멸하고 있을 것임을 눈을 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이리아는 철저한 신분주의자다. 거기다 몸도 못생긴 나한테 조금이라도 끌릴 건덕지도 없다.’

 

소녀의 입에서 고함이 나올 걸 대비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리아님. 당연히 저는 제 분수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리아님을 쫓아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

“불충한 마음을 갖고 있어 죄송합니다. 이리아님을 사모해 쫓아가고 싶어 했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이리아가 팔짱을 끼고 날 경멸에 찬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와 나는 신분이 다르다. 그 마음을 토로한 것만으로도 죄의 경중이 무겁다. 난 널 내쫓을 수 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지. 뭔가 그걸 바라는 느낌이 든다…. 응. 그럴 수 없지.”

 

예상대로다.

이 소녀의 꼬인 심성은 청개구리보다 더 심하다.

마음에 안드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리아는 몸을 홱 돌렸다.

 

“흥. 네놈이 이상해진 건 그때문이었나…. 못들은 걸로 하겠다. 내 괜한 호기심이었군.”

“예. 죄송합니다.”

 

‘잘 됐군. 쉽다 쉬워.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속이는 게 더 쉽군. 흐흐.’

 

그때였다.

 

[‘리메이크’가 시작됩니다! 작가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방향성이 조정됩니다.]

 

“엥?”

 

속으로만 생각하는 외침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리아의 발걸음이 툭, 하고 멈춰섰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리아는 아까보다 더 분노로 가득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감히 마나도, 기도 배울 수 없는 미천한 남자 주제에 고귀한 귀족을 마음에 담아두다니…!”

 

이리아가 내 멱살을 쥐었다.

 

“내 널 아카데미로 데려가 똑똑히 교육시켜주겠다. 안에 새겨진 성별과 피의 격차를…!”

 

‘시, 시발.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다음 날. 나는 이리아의 하인된 자격으로 아카데미로 떠났다.

1화가 시작되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