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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곳곳에 스친 재개발의 바람이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깨지고 뜯어진 자국만 가득한 어느 교외.

 발을 들이는 사람이 없어 쓸쓸해보이는 동네지만 밤이 되면 폐건물로 위장한 해결사들의 작업실에서는 웬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불빛 하나 비추지 않는 공터에서는 보는 눈을 꺼리는 사람 몇이 모여 사과상자니 007가방이니 하는 온갖 수단으로 가려진 현금을 주고받는다.


 땅거미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공장으로 위장한 작업실 여기저기서 불이 켜지며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업실 중 한 곳, 불이 켜진 사무실에 한 여성이 철제 책상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여성인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 멀끔한 외모나 옷으로 볼 때 이런 곳에 올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무실 문이 삐걱거리며 정적을 깼다. 자기 직장에 드나들듯 익숙하게 옷을 걸어놓는 남성은 겉으로 봐도 이곳 주인 같았다.

 남자가 사무실에 미리 와 있던 여성을 돌아보았다.


"일찍 와있을 줄은 몰랐는데."


"전 당신이 안 올 줄 알았는데요."


"누구 손에 있든 돈은 돈이니까."


 그 말에 여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생겼다 사라졌다.

 남자도 어색하게 잠깐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바라본다.


"오랜만이네. 정희은."


"....네."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런데, 내가 너한테 다시는 안 만나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나?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진짜 청부 주듯이 접선을 잡아두고 그래?"


 그러자 정희은이 무릎에 올려두고 있어 책상으로 가려져 있던 서류가방 하나를 꺼내 올려놓는다.


 달칵 소리가 나며 서류가방이 열렸다.


"....왜냐면 진짜 청부니까요."


 남자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내 이마를 감싸고는 한숨을 쉬며,


"하아.. 너는 그렇게 안 클 줄 알았는데."


"무슨 청부를 할 줄 알고요?"


"아, 자꾸 그렇게 말장난치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가방 그거 집어넣어. 진짜 청부할 때 그런 식으로 안 해 요즘은."


 남자가 긴장 풀린 목소리를 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서, 무슨 청부인데? 들어나 보자."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정희은은 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


"이 사람, 알아보시겠어요?"


"...이 사람은 왜? 설마..?"


"네. 암살 청부예요."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가 모습과 다르게 당돌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야 해요. 총은 쓰지 말아주세요. 혹시 고문실도 빌릴 수 있나요? 제가 직접 할 수 있으면 더 좋아요. 아니면 남자들 몇 모아서 돌ㄹ--"


"잠깐, 잠깐! 네가 지금 무슨 소리하는지 알고 말하는 거야?"


 그녀의 요구를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눈앞의 여자는 겉으로 봐도 온갖 고생은 한 것 같은 모습이되 돈을 쏟아부어가며 사람 하나를 죽일 만한 원수를 질 일까지는 분명 없어 보였었다. 그저 흥신소 일 정도만 요구하겠거니 싶었으나 눈앞에 선 그녀의 요구는 너무도 강했던 것이다.

 남자가 되려 당황한 모습을 하자 오히려 자기가 답답한 듯 정희은이 일어선다.


"....제가 표현을 잘못했나요? 다시 말하죠, 확실하게."


 그리고 손을 책상으로 뻗어 사진을 손톱이 새햐얘지도록 꾹 누른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이 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달라구요."


 목소리가 심상찮았다. 해결사는 청부에 이유를 묻지 않으나 노련한 사람이라면 무슨 사연이 있어서인지 목소리나 표정으로 얼추 눈치를 채게 마련이다.

 저건 확실히 복수다. 남자는 여자에게 쌓인 감정이 극도의 복수심임을 느꼈다.


 그러나 감정에 앞선 청부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이 정도의 감정을 가진 청부라면 추가금을 받거나 손을 떼는 것이 상책이었다. 게다가 제거의 대상은….


"......."


 뭔가 생각을 하는 듯하던 남자의 손이 서류가방에 닿는다. 안에는 그가 예상한 대로 모두 신사임당이다.

 그러나 남자는 돈다발들을 꺼내 세어보고 다시 가방을 닫는다.


"이걸로는 부족한데."


"사기칠 생각 하지 마세요. 제가 시세도 안 알아보고 그냥 온 줄 알아요? 단순한 살해 청부가 이 이상 받을 리가 없어요."


"청부 대상이 동업자가 아니라면 그렇겠지."


".......동업자라구요?"


"같이 일하는 사이라고."


"헛소리 그만하세요. 돈 받고 일하는 해결사들끼리 같이 일하는 사이가 어딨어요?"


"아니, 사업가들이랑은 좀 느낌이 다르긴 한데--"


"그럼 뭔데요! 파트너라서 죽이기 싫다 이런 소리예요? 무슨 해결사가 그따위예요!!"


"야, 이거 봐. 나는 뭐 걔랑 좋아서 같이 일하는 줄 알아? 파트너고 자시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어? 걔도 해결사고 나도 해결사야. 같은 해결사끼리 죽이는 놈은 오래 못 가. 거기다 같이 일하는 해결사를 죽였다고 하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것 같아? 그리고 그런 소문 안 나게 처리하려면 비용도 만만찮게 들게 돼 있다고."


"........비용..?"


"그래서 부족하다는 거야."


"........."


 정희은이 답답함을 넘어 아예 분한 눈빛을 한다.


"도대체… 도대체 얼마나 더 모아야 되는 건데요..!!"


"글쎄, 이 가방의 절반 정도만 더 채워오면--"


"이만큼 채워넣으려고 내가 무슨짓을 해왔는지 당신이 알아요!? 몸 파는 것만 빼고 다 해봤어! 돈 많이 준다는 데는 모조리 가서 죽을만큼 일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이 씨발년은 자기 마음대로 다 빼앗아가면서 나는 내 동생도 맘대로 못 되찾는다고..?"


 서러움에 섞인 목소리였다.


"나보고 어떡하라구요.. 네?! 은행이라도 털어야 돼요? 부자 금고라도 떼어올까요? 그래야 그년을 죽여주겠어요?"


"진정해봐, 응? 나도 알아, 사정 다 안다고, 근데 이쪽 바닥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남자가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최대한 정희은을 진정시켰다. 겨우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정희은이지만 전혀 납득한 표정은 아니다.


"아니, 그냥 돈 조금 더 드는 거라고 하면 나도 눈감고 해줄 수 있겠는데, 이건 비용이 뭐 한두 푼이어야지. 네 말대로 그런 짓이라도 안 하면… 아."


 순간 무언가가 남자의 머릿속을 스친다.


"....좋은 방법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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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오늘.


 정희은은 최면술사의 사무실에서 문짝에 귀를 딱 붙인 채로 최면술사가 약속한 대로 하고 있는지 엿듣고 있었다.


 정윤경이 아이를 최면시켜 자신을 진짜 친누나로 세뇌시키려 한다는 해결사의 연락에 눈이 뒤집힌 정희은은 한달음에 최면치료실로 달려갔고 미리 그 최면술사를 포섭해 두었었다.


 직접 찾아가 약속을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정윤경이 눈치채지는 않을까, 아니면 최면술사가 다시 정윤경에게 포섭되어 자신을 팔아넘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무실에 앉아있는 내내 속이 탔다.


 답답한 것은 또 있다. 아이를 직접 만난다 해도 정희은은 아이와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정유진이 있는 최면실에는 비밀 보호를 위해 방음 처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의 몸 어디에 도청기가 들어있을지 그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아이의 얼굴을 직접 만나보고 만져보는 것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까.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하고 답답함을 덮어보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얼굴을 못 본 건 말할 것도 없고 정유진과의 전화가 끊긴 것도 벌써 몇 달이 지난 이야기다. 아이를 직접 보는 것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당장 아이를 자기 품에 안으며 사랑한다고 수십 수백 번은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그 여자 밑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자신이 그 여자를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하다고...


'그 여자….'


 자기 눈이 충혈된 것도 모른 채 정희은이 사무실 안에서 최면술사가 최면실로 아이를 데리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드디어 최면실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최면술사의 목소리 옆으로 어린아이의 여린 목소리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아가.'


 더 들을 것도 없이 한마디로 그녀는 확신했다.


 그녀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정희은이 아무 의자에 앉아 최면술사가 계획대로 사무실 안에 들어와 신호 주기를 기다렸고 뒤이어 사무실 문이 열렸다.


"...왔어요?"


 최면술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안에 있긴 한데--"


 거기까지 듣자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정희은이 바로 의자에서 튕겨일어났다.


"아뇨, 지금 가시면 안되고!"


"막지 마."


 들어온 아이가 정유진이 맞는지 확인하기로 한 것을 잊고 나가려는 정희은을 최면술사가 막아서자 그녀가 충혈된 눈 그대로 자기를 붙잡은 최면술사를 노려본다.


"..안 비켜?"


"아니아니, 맞는지 아닌지 확인은 해야될 거 아녜요. 사진이요 사진, 네."


 뒤늦게 깨달았지만 더 기다릴 수가 없던 정희은이 품속에서 재빠르게 아이 사진을 꺼내 툭 올려놓는다.


".........네, 그 아이 맞아요."


 정말 듣고 싶던 대답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정희은이 더 기다리지 않고 문을 확 열어젖혔다.


"읏…."


 정희은이 나온 사무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작은 남자아이 하나가 손으로 빛을 가렸다.


 그녀가 걸어갔다.


 가녀린 아이의 체구, 또래들보다 작은 키, 그리고…



 점점 걸어가며 가까워지는 낯익은 얼굴….






"누…나…?"


 자신의 친동생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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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에피소드.


표지까지 만들어준게 너무 고마워서 열심히 쓰려고 했는데 하필 11~12월이 현생에 바쁠시기라 이리저리 미뤄지다가 시발 어떻게든 이편까지는 올려야지 싶어서 술빨고 마무리지어서 올림.


혹시 질문 같은 거 없어? 올려주면 모조리 답해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