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https://arca.live/b/yandere/9567979

2편:https://arca.live/b/yandere/9603297

3편:https://arca.live/b/yandere/9654561


대망의 마지막화

주의, 다소 잔인한 장면이 있을 수 있음

================================


싸늘하고 한적한 저택의 지하 감옥, 왠만해서 사용하지 않는 시설에 얀붕이는 내동댕이 쳐졌다.


"윽.....!"


갑작스러운 통증과 충격에 정신을 차리게 된 그는 눈앞에 있는 병사들에게 모멸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영주님이 그토록 잘해줬는데 감히 시해를 해? 이 가증스러운 패륜아 새끼!"


우스울 일, 방금 전까지 내뱉었던 말을 이제 자신이 들어야했던 얀붕이에게 있어서 말이다.


한편으로 억울한 일이겠지만 얀붕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딱 봐도 얀준이가 얀붕이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쓰게 했으리라.


여기서 억울하다고 외치며 진범은 따로 있다고 해도 그들은 믿어주지 않을 터,


오히려 더욱 매도할 것이 분명하였다.


독립하고나서 사회에서 살다보니 얀붕이의 눈치도 제법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침묵하는 얀붕이에게 수많은 모욕적인 말과 침을 내뱉은 병사들이 나가고,


조용해진 지하 감옥에서 얀붕이는 공허함을 느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디 오늘은 얀붕이의 기념적인 날이 되었어야 했는데 되려 충격적이고 증오스러운 사건을 겪었으며


무력한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으니 허무감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쭈인님......."


"라르구나."


라르는 어느 곳이든 모서리만 있다면 그녀만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모서리만 있으면 어디로든 나올 수 있다는 뜻, 얀붕이가 있는 쇠창살 안에도 각진 곳은 있었다.


"쭈인님 많이 아프셨쬬?"


라르는 얀붕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던 병사의 침을 닦아내 주었다.


라르의 근심 어린 표정에 얀붕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역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끝까지 약속을 지켜줘서 많이 나오고 싶었을 텐데."


얀붕이도 라르에 대해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전 거지들에게 협박 당하고 뺏긴 돈 주머니를 라르가 되찾아온 다음 날 얀붕이의 귀에도 끔찍한 살해 사건 소식이 들어왔고,


그 피해자들이 바로 본인을 협박했던 거지들 이였으니 라르가 한 짓이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얀붕이가 라르를 타이르지 못한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약한 자신에게 있었으니 라르는 그저 그를 위해 힘 써준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하나 라르의 살인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였으니 얀붕이는 그녀와 한가지 약속을 하였다.


'내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 앞에 나오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당연히 라르는 이에 의문을 품었지만 얀붕이의 간절한 부탁이기도 해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얀붕이가 얀준이에게 목숨 위협을 받고 있을 때도 그녀는 차오르는 분노를 곱씹으며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진심으로 얀준이가 얀붕이를 죽이고자 했으면 약속이 어떻게 되었을 지는 모르는 일이 되었으므로,


한도까지 인내하며 약속을 지켜준 라르를 얀붕이는 자랑스러워했다.


"쭈인님, 지금 바로 풀어 드릴게요!"


어느새 쇠창살 밖으로 이동한 라르는 감옥 자물쇠를 쥐며 악력 하나로 박살 내버리며 감옥 문이 열렸다.


하지만 얀붕이는 여전히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서 고개를 젓고만 있었다.


"쭈인님?"


"미안, 나는 도망칠 수 없어."


"어째서요? 도망치지 않으면 쭈인님이 위험해져욧!"


얀붕이는 자신의 오른쪽 발을 그녀에게 내밀며 보여주었다.


발 뒷꿈치에 검으로 도려낸 상처가 있었으니,


아마 그가 기절했을 때 얀준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힘줄을 잘라내버린 것이리라.


"걱정마세요 쭈인님! 제가 쭈인님을 업고 갈 고에요!"


"그래도 소용없어 라르, 나는 내 몸을 잘 알고 있어 여기서 도망친다고 한들 내 임종은 얼마 남지 않았어."


"쭈인님......."


"그렇다면 차라리 나의 고향이자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한 부모님이 있는 이곳에서 눈을 감고 싶거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이자 자식으로서의 도리라고 얀붕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싫어요.......!"


"내 마지막 부탁이야 라르, 부디 나를 버리고 떠나서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해."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쭈인님이 없으면 싫어요!!"


"라르........"


"사랑하는 쭈인님이 없는 곳은 저도 싫어요! 쭈인님이 없는 삶은 슬퍼요! 제발 저를 두고가지 말아줘요 쭈인님!"


"........"


"무슨 일이든 할께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께요! 그러니까 혼자 떠나라는 말은........"


"미안해, 라르."


얀붕이는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라르의 몸을 껴안아준다.


라르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자신의 요구 사항만 늘어놓았으니 그녀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라르, 지금이라도 어제 들려준 이야기의 결말을 들려줄까?"


"네......."


언제나처럼 자신의 다리 사이에 있는 공간에 들어온 라르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여는 얀붕이.


그의 감미롭고 평온한 목소리와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섞여가면서 라르의 마음에 울려 퍼진다.


사랑하는 주인님의 따스한 손길과 목소리,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까지,


라르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기에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어떤 시간이든 마지막은 찾아오는 법.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얀붕이의 한마디를 끝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렸고 동시에 라르는 어떠한 따스함도 받지 못했다.


"쭈인님.......?"


"괜...찮아......"


선천적인 지병으로 인해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며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얀붕이.


평소에 복용하던 약이나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이 없으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영지 안은 혼란의 도가니였고, 그가 복용하던 약은 모두 병사들에게 빼앗겨 압류당한 상태였다.


이를 알고 있었기에 얀붕이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확신하던 것이었다.


"라르, 너와 만나... 지금까...지... 행복......."


그러나 얀붕이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유언을 남기고자 했던 그의 입을 라르가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혀까지 침투한 라르의 기습적인 딥키스, 얀붕이는 없는 힘까지 쥐어짜내 밀어내려 했으나,


라르가 이를 허용치 않겠다는 듯이 얀붕이의 머리를 강하게 끌어 안으며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라르는 날카로운 이빨로 자신의 혀를 베어 물었으니,


그녀의 혀에서 흘러나온 피가 얀붕이의 혀를 통해 그의 식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


차갑게 식어가던 얀붕이의 몸은 라르의 피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강하게 반응하였고


특히나 모든 피가 거쳐가야만 하는 심장이 미칠듯이 뛰기 시작했다.


라르의 피가 사라져가던 얀붕이의 생명을 강제로 끄집어 올린 것이다.


이윽고 얼추 주입했다고 생각한 라르가 입을 떼자 그들의 혀와 혀 사이에 침과 피가 섞인 붉은 선 하나가 이어져 있었다.


"쭈인님......미안해요, 그치만 역시 저는 쭈인님이 없으면 안될 것 같아요♡"


"으윽, 라르?"


그대로 라르는 껴안고 있었던 얀붕이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지며 쇠창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쭈인님, 제가 쭈인님의 약을 챙겨 올게요!"


"잠...깐?! 라르! 기다려.......!"


얀붕이의 외침에도 라르는 멈춰서지 않고 곧바로 지하감옥 밖으로 튀쳐 나가버렸고


얀붕이도 뜨거워진 몸과 함께 한쪽 다리를 절뚝이면서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이토록 필사적이게 된 이유는 바로 본 소녀의 마지막 표정 때문이었으니,


어떠한 생기도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정색한 표정,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념이 엿볼 수 있었다.


"라르!"


======================================


라르가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는지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었다.


얀붕이의 약은 금화 주머니와 함께 빼앗겼으니 필시 얀준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터.


허나 문제는 라르가 모서리 속의 공간을 타고 간 게 아닌 직접 제 발로 걸어 갔다는 것이니 그녀에겐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


이는 다시 말해서 라르가 얀붕이를 모욕하고 침 뱉던 병사들도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지하 감옥에서 기어나온 얀붕이는 끔찍하게 죽어있는 병사들의 시체들이 목격할 수 있었다.


"우읍......!"


생전 처음보는 잔인한 광경과 코를 스치는 역한 혈향이 그에게 구역질을 유발시켰고


얀붕이는 역류해 나오려던 위액을 참아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실시간으로 윗층에서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니 어떤 상황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력한 얀붕이를 대신해서 라르가 직접 피의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얀붕이는 그녀가 아름다운 것만 보고 배우며 자라길 원했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늦어버린 듯하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그녀가 자비조차 없는 사악한 괴물이 되지 않게끔 말려야만 했다.


"윽!"


한시라도 빨리 그녀가 있는 곳에 가야하는데 힘줄이 끊겨있는 그의 오른쪽 발과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몸이 말썽이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되어있는 병사들의 시체 사이에서 검 하나를 꺼내들며 지팡이처럼 사용해 나아갔다.


얀붕이에게 있어 애뜻한 추억이 많았던 저택,


하지만 이제 이곳은 도살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흩뿌려져 있는 피와 육신의 파편이 끊이질 않았다.


"라르......."


저택의 집무실 앞, 끊임 없는 학살의 현장이 이곳을 끝으로 끊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라르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였다는 뜻이었기에, 얀붕이는 지체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빼빼마른 백발의 소녀와 갑옷을 입은 육중한 체구의 남성이 대치 중이었다만


이미 소녀의 손에 남성의 뜯겨진 오른팔로 보이는 부위가 들려 있었으니 어느 쪽이 우세한 지는 뻔하게 보였다.


왕국의 장군이라고 하더라도 미지의 존재에게 있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라르!"


"쭈인님?"


"주인님이라고?!"


소녀의 모습을 한 비정상적인 괴물이 나타난 것만 해도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일 텐데


그 괴물의 주인이 평소 자신이 낙오자라고 놀리던 녀석이였다면?


"핫! 하하하하하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허탈감이 들이닥칠 것이다.


"정체 모를 괴물이여, 너는 저런 낙오자 녀석를 주인으로 둔 것이냐?"


"다물어!"


말 한마디에 담긴 라르의 살기는 얀준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였다.


"윽......괴물이여, 그런 덜떨어진 녀석보다도 뛰어난 개체인 나를 섬기는 게 행복할......."


라르의 진심 어린 살기에도 굴하지 않던 얀준은 뚫린 입이라고 못하는 말이 없었으니


소녀에 의해 그는 주둥이를 뜯기며 진짜로 뚫린 입이 되어 피를 쏟아내게 되었다.


"다물라고 했을 텐데? 나는 쭈인님과 함께 있는 게 지금이 행복해!"


"하하하하.....! 정작 네 주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만?"


아차 싶었던 라르가 뒤로 돌아보자 거기엔 경악에 찬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는 얀붕이가 있었다.


"쭈인...님?"


얀붕이는 상상으로만 해왔던 라르의 공격성을 직접 보게되며 일시적으로 놀란 것일 뿐,


그러나 그 잠깐이 라르에게 있어선 덧없는 충격으로 돌아왔게 되었다.


여태껏 주인님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교 부리면서도 뒤에서 잔인한 짓들을 하면서까지 그를 도와왔던 라르.


이번에도 자신의 피를 주입시켰으니 얀붕이가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이런 학살이자 복수극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피보다도 얀붕이의 정신력이 한층 더 강하다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으니


라르는 자신의 모든 걸 얀붕이에게 전부 들켜버렸다,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괴물스러운 면모를 말이다.


"쭈인님! 이건 그러니까, 제가 한 게........"


차마 사랑하는 주인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라르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뭐라 해봤자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며 얀붕이에게 기피 당하고 미움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었다. 


"괜찮아."


"쭈인님?"


"다 알고 있어, 라르는 나를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거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얀붕이는 그녀가 뒤에서 어떤 짓을 해왔는지 얼핏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


그렇기에 얀붕이는 그녀의 저질러온 일들을 같이 책임질 것이라고 벌써 마음 먹은 뒤였다.


".......쭈인님은 이런 포악한 저를 받아들여 주시는 고에요?"


"당연하지, 나에게 있어 라르는 소중하니까."


"쭈인님......저는 역시 쭈인님이 있어서 제일로 행복해요!"


파란을 불러올 것만 같았던 작은 갈등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되며 둘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으나


제 3자의 입장으로선 이와 같은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괴물과 낙오자, 아주 끼리끼리 핥아주며 노는 모습이 가관이구나,"


찢어진 입으로 둘을 비웃던 얀준이는 높게 쌓여있는 나무 상자들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하하! 멍청한 놈, 너는 이 상자 안에 든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겠지."


"뭐?"


"대량의 화약이다, 원래 혁명에 사용할 물자였으나, 쓰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기엔 아깝군."


"화약......? 설마?!"


"내 비록 허무하게 죽게 되더라도 네놈들만큼은 같이 길동무로 데려가 주마!"


얀준이는 그의 근처에 놓여있던 등불을 들어 그대로 나무 상자를 향해 던졌다.


등불의 유리가 깨지며 안에 있는 불씨가 상자에 달라붙었고, 작은 불은 점차 여러 상자에 옮겨타며 커지기 시작했다.


"쭈인님!!"


상황을 파악하고 얀붕이에게 달려드는 라르, 그와 동시에 상자 안에 든 화약에 불이 닿게 되며 커다란 폭발을 낳았고.


대규모의 폭발은 살아남아 있었던 세 사람을 포함한 저택 전체를 뒤덮었다.


===============================


"으윽........"


폭발과 함께 무너져내린 저택의 잔해들에 묻혀 정신을 잃었던 얀붕이는 희박한 산소들로 인해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폭발에 휘말려 운좋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잔해물들에게 깔려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를 감싸 안으며 지켜주고 있는 커다란 기형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라르?"


"주인님......부탁이 있어요, 지금의 저를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는 얀붕이를 완전히 감쌀 수 없었던 라르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털 하나 없는 피부와 유연한 가시들, 여러 갈래로 찢어져 있는 입에 달린 수많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심하게 뒤틀려있는 몸통까지,


세월을 보내면서 크기 뿐만 아니라 흉측함까지 성장한 라르가 무너져내린 잔해들을 자신의 몸을 사용해 지탱하고 있었으니,


라르는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째서?"


"저 알고 있어요... 사람들의 눈에 저는 흉측한 괴물이라는 걸요, 저의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요."


"라르......."


"아까 전 주인님은 저의 전부를 이해주신다고 하셨지만 역시 저는 주인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을 찢어 죽이는 모습이나 지금 같이 혐오스러운 모습을 말이에요."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으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으니 얀붕이가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라르는 내가 어떤 주인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네?"


"못생긴 플라르를 버리는 못된 주인님? 아니면 못생기더라도 플라르를 따듯하게 사랑해주는 주인님?"


"그건.......!"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따, 따듯하게 사랑해주는 주인님이요......."


"옳지, 잘 말했어."


얀붕이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라르의 갈라져 있는 입 중 하나에 입맞춤을 해주었으며 입을 떼어냄과 동시에 베시시 웃고 있었다.


"나는 라르가 소녀의 모습이 아닌 다른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따스하게 안아주며 사랑해줄 거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말이야."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쭈인님♡"


"아하하핫! 간지러워!"


얀붕이의 진심 어린 고백에 기쁨을 주체 없었던 라르, 기다란 혀로 얀붕이의 뺨을 핥으며 어리광부리기 시작했다.


얀붕이도 누워있는 상태로 라르의 몸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서로서로 보듬어 주며 사랑해주고 있는 애틋한 모습, 그러나 이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라르가 물리적인 피해에서 얀붕이를 보호해주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이 있는 곳은 둘 밖에 없는 작은 공간.


장시간 약을 복용하지 않은 얀붕이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져 가며 어떻게든 희박한 공기들을 들이마시고자 했다.


"라르, 좁긴하지만 너는 평소처럼 너만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지?"


"네."


"그러면 됐어, 이대로 네 공간으로 돌아가도 돼."


"하지만 그러면 쭈인님은!"


"나는 이제 괜찮아, 어차피 여기서 버티고 있어봤자 허약한 내 몸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해 ."


"쭈인님......."


"만에 하나가 구조가 오더라도 그땐 나는 이미 늦었을 테고 너의 존재를 그들에게 들키게될 거야, 그러니까 알겠지?"


"싫어요! 저는 끝까지 쭈인님과 함께 있고 시퍼요!"


"라르, 이번엔 고집부려도 별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그래도 쭈인님과 함께가 아니면 싫어욧! 쭈인님과 함께할 수 없다면, 차라리...차라리........."


말을 여러번 곱씹으며 측은해하던 라르는 무언가 결심한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는 쭈인님을 아프게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이젠!"


우드득! 우드득!


"크아윽?!"


라르는 자신의 촉수같은 혀와 날카로운 이빨들을 이용해 얀붕이의 왼팔을 물어뜯었다.


뼈까지 씹어 먹으면서 삼키는 라르는 눈물을 흘리면서 얀붕이의 살과 뼈를 먹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쭈인님! 그치만.... 그치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시써♡"


사랑하는 자의 맛을 알게된 괴물은 잔뜩 흥분한 채로 식사를 하고 있었고 얀붕이는 남아있는 팔로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참지말고 마음껏 먹으렴."


얀붕이는 자신을 포식한다는 라르의 행동을 받아들여 주었으니,


사랑하는 라르의 영양분이 될 수 있다면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마시써♡ 죄송해요 쭈인님♡ 마시써요♡ 마시써♡ 죄송해요♡ 마시써♡ 마시써♡ 죄송해요♡ 마시써♡ 죄송해요......."


작은 공간 속, 먹고 있는 괴물은 구슬프게 울고 있었으며 먹히고 있는 인간은 따스하게 웃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자 당사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행위,


둘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

후일담.




네온 사인들이 즐비한 대도시의 어느 골목길.


대도시임에도 사람이 한적한 이곳에 공간을 찢고 금발 태닝의 양아치가 나온다.


"성공한건가?"


두리번 거리던 금태양, 쓰레기통에 박혀 있었던 날짜 지난 달력을 꺼내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크흐~! 정말로 성공해 버렸잖아! 아하하핫!"


다시 달력을 쓰레기통에 대충 내던진 금태양은 이런저런 망상을 하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겨우 과거까지 왔으니 처녀일 때부터 따먹어 볼까나~"


남의 여자를 뺏으며 희열감을 느끼는 금태양은 이래보여도 시간 역행 마법까지 터특한 천재 마법사였다.


그런 그가 과거까지 온 목적은 단 하나, 뺏을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여성을 미리 빼앗기 위해서 왔다.


미래에서는 실패 뿐이었으나 과거라면 가능성이 보일 터, 그 일념 하나만으로 금기라고 여기는 시간 역행 마법까지 쓴 것이다.


그렇게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골목길을 벗어나려던 그 때, 등 뒤에서 그의 어깨를 잡는 자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과거를 바꾸면 안되는데?"


"으왁?!"


인기척도 없이 자신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놀라는 게 당연하다. 


금태양 또한 다를 바 없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까지 놀라고 말았으나


중세의 마법사들이나 입는 로브로 눈과 몸을 가린 정체불명의 사람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그런 사유로 과거에 오면 안돼, 다시 미래로 돌아가줘."


"씨발, 사람을 놀라게 해놓고선 사과 한마디 없냐? 그리고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야!"


화가 잔뜩 난 금태양은 곧장 정체모를 사람의 멱살을 잡으며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 결과, 정체모를 사람의 후드 모자가 벗겨지고 마는데.......


"히익?!"


남성의 얼굴을 보게된 금태양은 다시 한번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남성의 얼굴에 단 한 부위, 바로 한쪽 눈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채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눈은 명백히 사람의 것이 아닌 괴물의 것이었다.


"기회를 줄게, 지금이라도 다시 미래로 돌아간다면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을거야"


"가까이 오지마!! 이 괴물!!"


공포에 지배되었어도 천재는 천재이라는 건지, 금태양은 다양한 마법을 구사해서 남성을 향해 날렸고 정확히 명중하게 된다.


"하...하하핫!! 뭐야 별 것도 아니였구만!" 


그러나 금태양의 미소는 그리 길게 유지하지 못했다 .


자신있게 구사한 그의 마법은 남성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하였고 오히려 입고있었던 로브에만 손상시켰다.


"안타깝네, 자비를 베풀려고 했는데 말이야."


손상된 로브에 의해 남성의 몸이 일부분 드러나게 되었다.


몸이 호리호리해서 허약해 보이는 남성, 그러나 그의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기괴했다.


다른 부위보다 더 말라있었던 두 부위는 눈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으니


금태양은 제자리에서 자지러지고 말았다.


"대체 너는........?!"


그도 잠시, 금태양의 신발과 바닥 사이에서 여러 갈래로 찢어져 있는 주둥이가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그의 신체를 집어 삼켰다.


곧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하나를 삼켜버린 입의 주인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가 3미터는 훌쩍 넘는 4족 보행의 흉측한 괴물, 시간의 모서리 속에서 살며 시간 여행자들을 잡아먹는 틴달로스의 사냥개였다.


어떤 사람이라도 정신이 나가게 만들 정도로 공포를 심는 괴물이 로브의 남성에게 다가가며 취한 행동은........


"쭈인님! 괜찮아요?!"


이러저리 방방 뛰며 남성에게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며 혀로 핥아준다는, 정말이지 괴물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괜찮아, 라르 덕분에 이제 튼튼해졌으니까."


"그래도 아픈 건 아프잖아요!"


"그렇긴 그렇지만, 옛날에 겪어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으우~ 역시 쭈인님에게 위해를 가하기 전에 죽여버리는 게......."


"라르, 이전에 나와 했던 약속 까먹은 건 아니지?"


"잘 기억하고 이써요! 어떤 사람이든 사연을 듣고 한 번의 자비를 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네, 장하다 장해~"


"에헤헤♡"


남성은 어느새 아름답게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면 볼일도 마쳤으니 이제 돌아가자."


"네♡"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둘 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모서리 속 공간, 남성과 여성이 그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우웁......!!"


"라르? 갑자기 왜 그래?"


"그게 아까 삼킨 인간이 너무 역하게 맛이 없었어서, 그런지......."


"그런가, 할 수 없네! 잠시 돌아다닐까?"


모서리 속의 공간에서 몸을 숨길 옷을 꺼내 입으며 여성의 손을 붙잡는 남성.


그대로 골목길을 빠져나와 번화가로 나간다.


"쭈인님? 어디가는 고에요?"


"데이트! 라르가 맛없는 걸 먹었으니 이번에는 맛있는 거 먹으러 돌아다니자."


"정말요?"


"정말로."


"에헤헤♡ 좋아요!"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어?"


"네! 요즘 신 맛이 땡기는 게 있쬬?"


".......으음?"


무한히 많은 시간들 속에서 단 한 개체밖에 없다는 틴달로스의 사냥개.


박해받으며 사랑받지 못했던 괴물은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며 개체수를 늘려갈 것이다.


그러니 시간 여행을 할 사람이 있다면 주의할 것.


-끝-


=================================


간만에 10000자 넘기고 말았네, 사실 쓰고 싶은 내용들은 더 많았는데 너무 길어질까봐 컷 했음.

짤린 내용은 그냥 이전에 내가 썼던 데몬 이야기와 뱀파이어 이야기랑 연관되는 내용이니까 그리 중요치 않음.

혹시나 이해가 안가는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써주면 정성을 다해 설명할테니 망설이지 말고 남겨주셈.


아무튼 그러면 다음에 괜찮은 소재가 있다면 들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