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야순이 야간 편의점 하다...]


불독처럼 볼살이 늘어진 여자가 편의점 의자에 앉아 술을 먹고 있는 사진이 업로드되어있다.

테이블 위에는 녹색 소주병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반쯤 먹다 남긴 라면 사발에는 담배꽁초가 박혀 있었다.


뒤룩뒤룩 허벅지에 살이 찐 그 여자는 다리를 꼬고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아래에는…. 글쓴이의 글이 적혀 있다.


[아지매 지금 몇 시간째 의자에 앉아서 술만 먹고 있다;; 이거 실화냐;;; 너무 너무 힘들다 레즈들아;;;


먹고 살기 힘들다 이거야;;; 아니 편의점 안에서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이 어딨냐;;; 이거 뭐 걸리면 나도 과태료 먹을 각이냐;;? 너무너무 힘들다 이거야;;;]


[레즈야 저런 아지매가 진짜 진국이다; 나라면 그냥 합석해서 같이 소주 병나발로 조져따 이거야, ㄹㅇ 덩치 보니까 삼대 600 치는 ㄹㅇ 상여자인것 같은데 뭐라 하면 우리 레즈...  척추가 반으로 접혀져 죽을 수 있다 이거야]


ㄴ[ㅇㄱㄹㅇ 저런 아지매가 요즘 급식 잼년이들과는 다르게 ㄹㅇ 상여자임, 노가다 뛰는 아지매들이 보통 밥 처먹고 세멘만 존나 날라서 힘 봊나 셈 ㅋㅋㅋㅋㅋㅋ]


ㄴㄴ[레즈야, 요즘 곰빵같은건 잘 안한다;;; 그런건 기계가 다 함]


ㄴㄴㄴ[네 다음 잡부]


[수아레즈야;;; 그냥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짭새를 불러라 이거야;; 저거 누가 찌르면 너도 과태료 문다;; 우리 레즈 괜히 푼돈 벌려고 하다가 경찰서에서 눈물 젖은 앙망문 쓰지 말고 그냥 아주 빠르게 경찰에 신고해라 이거야]


ㄴ[...여보세요? 거기 경찰이죠? 취객 한 명 신고되겠습니까?]


ㄴㄴ[예, 거 안될거 뭐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어딨습니까?]


ㄴㄴㄴ[네, 편의점입니다. 최대한 빨리 오십쇼]


ㄴㄴㄴㄴ[어디 편의점?]


ㄴㄴㄴㄴㄴ[TS그룹 지하3층 입니다]


ㄴㄴㄴㄴㄴㄴ[그.. 저기...거기에 왜 편의점이 있습니까? 허허 거짓말 하지 마십쇼]


ㄴㄴㄴㄴㄴㄴㄴ[아니 진짭니다. 어쨋뜬 빨리 오십쇼]


ㄴㄴㄴㄴㄴㄴㄴㄴ[예, 대신에 지금 바로 경찰을 부르면 민원 찌르지 마십쇼, 가고 나서 또 뭐 벌집 치워달라, 동네 힘센 사람 좀 어떻게 해달라 시키지 마세요~ 그럼 지금 출발 합니다, 아주 빠르게. 하-]


ㄴㄴㄴㄴㄴㄴㄴㄴㄴ[들린다 들려, 누가 내 머리 속에 브금을 틀었냐 이거야]



재밌네, 여기 사람들


수백 개가 달린 댓글을 모조리 읽어 봤는데, 그냥 자기 일이 아니라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었다. 뭐... 그런 식으로 남을 놀려먹는 게 재밌긴 해.


음... 댓글 수가 많이 달린 추천 글들을 읽어보다, 바로 조금 전에 새로 고침이 된 글이 있어 그 글을 읽어 보았다.


[인천 갑종도 공원서 신원 미상의 시체 발견]


업로드되어 있는 사진에는 뉴스가 캡처 되어 있었다.


인천 갑종도의 한 공원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6일 인천 중부 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5분에 신원 미상의 남성 시신이 발견되었고,


공원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던 A양이 이 11시경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A양은 이상한 냄새가 나서 공원 안쪽 깊숙한 곳으로 가보니 남성의 시신이 있었다는 말을 하였다.


경찰은 A씨의 신원과 사망 경위를 확인하고 했고, 피해자가 격렬한 저항의 흔적을 보였다는 점, 그리고 명치, 가슴, 허벅지에 타박상과 찰과상이 있다는 점을 보아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또, 지난 몇 주간 있었던 살인 사건과의 연관점이 있지는 않은지 조사 중이다.


[봊찰 새끼들 일 봊나 안하네, 세상 봊나게 흉흉하노 이거야]


ㄴ[저번에 보니까 봊찰들 그냥 남경들이랑 덩킨도넛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었잖어, 봊찰 새끼들 일 봊나게 안함]


ㄴㄴ[이게 나라냐, 으메이징 헬조선]


ㄴㄴㄴ[이런거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중국처럼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CCTV를 도배해야 한다, 자꾸 감시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니까, 이런 강력범죄가 자꾸 발생하지 않냐]


ㄴㄴㄴㄴ[아니 거리에 CCTV를 깔면 다른 평범한 사람의 인권은 어떻게 지켜줄 거냐, 그리고 원래 저렇게 마구잡이로 사람 죽이는 놈들은 CCTV 같은 거 신경 안 쓴다]


ㄴㄴㄴㄴㄴ[아니 레즈야, 내가 말한번 범인의 검거율을 말한 거다. 내가 뭐 언제 범죄 예방을 위해서 CCTV를 깔아야 한다고 말했냐, 나는 사각지대를 통해서 중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음... 여기서는 남자가 강력범죄에 취약한 것 같다. 성폭행한 뒤에 바로 살인이라니, 뭐 당연히 정조역전의 세계라고 해서 범죄가 안 일어날 리는 없으니까.


게다가 댓글을 보니까, 최근 얼마 동안 이런 강력 범죄가 자주 일어난 것 같다. 범인 하나를 못 잡는 경찰에 대한 무능함을 비꼬는 댓글들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그런 댓글들을 보니,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큰 법이니까. 이렇게 홈리스로 돌아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각종 강력 범죄에 노출될 일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많으니까.


정조역전의 세계라고 해서 성폭행이나 강간 같은 것을 즐길 수는 없다. 아니 뭐 당연히 그런 중범죄를 하는 사람들이 멀쩡하게 생겼을 리는 없잖아.


아까 본 편의점에서 술을 먹고 담배를 피는 여자의 아래에 깔려서 정을 토해내는 건 아무리 나라도 싫다.


수면실에 걸려있는 LED 시계를 보니까 오후 5시다. 주머니에 뒤져서 지갑을 열어보니 택배를 해서 번 돈들이 있다.


대충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을 찜질복 주머니에 집어넣고, 수면실 바깥으로 나와, 정수기에 있는 물을 받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몸에 들어가니,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사실, 뭐 진지하게 생각하면 여기서 누워서 휴대전화나 보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당장에 집도 없고 절도 없는 상황인데.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었던 세계와는 다르게 여기에 있는 대기업들은 삼성이나 LG같은 그룹이 아니라 TS그룹같은 그룹으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지역명을 쓰고 있었다.


예를 들면 강남역은 서초역, 홍대 입구 거리는 청대 입구 거리 등등.. 뭐 그런 식으로 지명도 뒤바뀐 상태인데, 여기서 또 얼마나 더 많은 것이 변해있을지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찜질방에서 계속 먹고 잘 수는 없잖아.


바깥으로 뻥 뚫려있는 창문 아래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이 솟은 타워 펠리스, 그리고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개미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회사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 당연한 소리지만, 피곤에 찌들린 젊거나 반쯤 늙은 여자들의 숫자가 압도적이다. 


여기는 원래 원룸 단지였는데.


어쩌다 보니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상황, 뭐... 이사 온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고, 원래 방을 잡을 때 풀옵션인 방으로 들어가서 딱히 뭐 집이 없어졌다고 해서 크게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된거지? 만날 수는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 친구들은 전부 어떻게 되는거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이것저것 골치 아픈 문제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지금 본가에 내려간다고 해서 만날 수는 있을까?


근데 내가 알고 있는 주소에 찾아갔는데, 내가 자취 했던 집처럼 거기에 다른 건물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음... 


아. 생각해보니 주민등록증에 사는 집의 주소가 적혀있겠다.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펼쳐 안에 내용물을 확인했다. 주민등록증에는 대구 광역시 동구 신전동- 다행히 집 주소는 똑같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이 있다면 내 이름은 원래 강아름이었는데, 여기서는 한아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엄마가 한씨니까, 엄마 성을 물려 받은 거겠지.


야간 버스 타면 지금이 6시니 대충 집에 도착하면 10시 정도 되겠네. 간만에 집 밥 좀 먹을까? 차비는 뭐... 아니 10만원 있으면 밥도 먹고, 차도 타고, 커피도 마시고 다 할 수 있지 뭐.


그러고 보니 지폐에 있는 위인들도 전부 다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있네.


... 5만원짜리에 그려져 있는 걸 보니까 엄청 네임벨류가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신사임당은 아니고, 허난설현? 뭐 명성황후인가? 아니 민비는 내가 알기로는 위인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내가 모르는 여자 위인일 수도 있겠다. 나중에 위인전이라도 한번 읽어 봐야겠네...


아 뭐 어차피 집까지 가는 동안 할 거도 없는데 휴대전화나 계속 봐야겠다.


근데.. 음.. 이런 생각은 안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의 얼굴이 내가 알고 있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진짜, 최악의 가능성이긴 한데 충분히 매우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건물도 바뀌고 회사 이름도 변해버렸는데, 엄마 아빠도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버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래서 엄마, 아빠, 그리고 형을 거리에서 봐도 가족인지도 모르는 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등골이 싸늘하다.... 그런 지경까지 오면 한국말, 한글, 그리고 현대 문명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이세계로 온거나 마찬가지다.


손을 더듬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스크린을 건드려 통화 목록과 아무리 봐도 카카오톡의 기능을 대신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코코아톡이라는 어플을 확인해봤다.


... 전화 번호부나 그런건 바뀐 게 없네. 혹시나 해서 코코아톡의 엄마, 아빠의 프로필 사진을 보니 내가 알고 있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랑 똑같았다.


엄마가 등산을 좋아하네, 


동네 뒷산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은 우리 엄마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쓰고, 푸른색 등산복을 쫙 빼입은 엄마의 뒤로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이 아래에 쫙 깔려 있었다.


그거 말고도 낚시를 하고 나서 낚아 올린 어린애 팔뚝만한 물고기를 손으로 잡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농어랴~~~~~ 아름이 아빠 끓여줘야지.


아빠 프로필 사진을 보자.  또... 내일을 위하여 화이팅 ^,^~

프로필 사진은 해바라기, 민들레, 봉숭아 같은 꽃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사진 아래에는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그런 식의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엄마랑 아빠랑 바꼈네.. 형은 어떤가 확인 해볼까?


...아무것도 안 올렸네. 코멘트도 안달려있고. ... 뭐 형은 원래 이런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원래 세계에서도 기본 프사였던걸로 기억하니까, 생각해보니까 나도 아무것도 안올렸네.


이번에는 톡방을 확인해보자, 현수, 민재, 강우가 있는 방이 있고 현수, 민재가 있는 방이 있네, 그리고 민재, 강우는 있는데 현수가 없는 방도 있고 뭐 이렇냐 무슨 경우의 숫자야? 뭐 4명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조합을 한번 알아보세요? 뭐 그런거야??


그냥 톡방 한개만 있으면 되지 뭐 이렇게 톡방이 많냐;;;


많고 많은 단톡방 중 그 중 하나에 들어가보니, 

이거 어때??? 오늘 샀는데?? 민재가 흰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강우가 


헐!!!! 대박 예뻐!!!! 어디서 샀어???? 미쳤다!!! 천사가 강림한줄 ㄷㄷㄷㄷㄷㄷㄷㄷ 완존 존잘보스잖어 ㄷㄷㄷㄷㄷㄷ

정보 좀 줘.~~~~!!!~~~!!!!!!


뭐 그렇게 지리지는 않는데, 대충 뭐 그런 식의 내용이 많이 달려 있다.


톡방에 있는 코멘트를 훑어보니, 단답형의 답이 별로 없었다. 최소 10글자 이상이라고 해야하나....?

10글자 이상 글을 적지 않으면 손가락이라도 자르겠다고 뒤에서 칼을 겨누고 협박을 받는 사람들 같았다. 


박강우 이 새끼 남성 호르몬이 충분한데?


원래 세계에서는 과묵하고 얘가 좀 꼰대 같고 가부장적인 스타일이었는데, 이 세계에서는 완전 현모양처가 따로 없다.

옷, 음식, 그리고 뮤지컬을 좋아하구만…. 프사를 보니까 새하얀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는데…. 아주 시발 살인미소가 따로 없다.


개 조까치 생겼네 강우야 프사 내려라- 그렇게 톡방에 대고 말을 하고 싶지만... 어 음... 그런 식의 나쁜 말을 하면 안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뭐.. 그냥 그렇잖아. 시비 거는거도 아니고. 인간관계 파악은 이쯤 하면 충분하고 슬슬 고향으로 내려 갈까?


남탕으로 다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바깥에 나오니 시간은 벌써 6시 30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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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능배물 하지 말라는 소리가 많아서... 능배물 안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