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나 자신 스스로를 죽였다.

이 덧없는 세상에 생로병사를 달고 나와 약 26년간을 살면서 겪었던 기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두리뭉실하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부분이 나에게 있어선 끔찍했던 일들 뿐이었지만 소소하게나마 좋았던 일들도 

슬펐던 일들도 평온했던 일들 모든 것들.


이런 한편의 기억들이 거의 끝나갈 쯔음에, 나는 생각했다. 


'이왕이면 아예 생물로서 안 태어난다면 좋겠지만...만약에...만약에 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밖에 없다면...'

'나도, 평범한 생활. 평범한 가족 끼리의 행복이란걸 느껴보고싶다.' 


그 생각을 끝으로, 내가 인식하던 온 세상이 암전됐다. 




*



초등학교 2학년 말 쯔음이었다. 전생에서의 어렴풋한 기억 및 자아에 눈 뜨게 된것은. 마치 썰물이 밀려오듯 급작스럽게 말이다.
어느정도 사고란걸 할 수 있게 된 나이라 그런걸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건, 지구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 세상에서 새 삶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전생의 나와 다를바 없이 종족 

자체는 겉보기에 지적생물인 인류, 호모 사피엔스라 봐도 무방했지만. 남자만 그렇지 여자도 똑같은게 아니었다.

이 세계는 인간(수컷) 몬무스(암컷) 으로 성이 분류되어, 종합적으로 인류로 불린다. 인간(수컷)은 기본적으로 지구의 인간 남자와

별 다를바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몬무스란 존재는 전생을 깨달은 나에게 있어서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체 몬무스란게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각지의 설화에서 등장하는 여성형 괴물들의 미형(美形)이라 말하면 설명이 될까. 

솔직히 이 세계에서 산지 꽤 됐는데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언가 딱 하나의 기준으로 정해놓고 판단하기엔, 몬무스란 단어는 너무나도 포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확실한건 단적으로 몬무스란 존재들은 이 세계에서 여성ㅡ암컷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그 부분 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그 외에도 지구와는 너무나 다른 부분이 많아서 하나하나 지적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같은 행성안에서도 마계,천계,판데모니움 기타등등

여러 수많은 신비한 지역들로 나뉜다는것과. 사소한거부터 해서는 지구와는 다르게 지표면의 비율에서 육지가 더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든가? 

쓸데없는 사족이지만 여기는 육지가 4할이고 바다가 6할이다.


암튼, 나에겐 천만다행으로서 현대 지구와도비슷한 부분이 꽤 많았다. 일단 뼈대는 현대문명을 기반으로 하고있었고. 어떻게 보면 몇몇 부분은 

지구보다 더더욱 발전한것 같기도 하다. 근대나 고대 중세 더 나아가서 선사시대로 떨어졌으면 어땠을까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싫은 부분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전생의 유럽속 몇몇 소국들이 떠오르는 자유민주주의를 골자로한 작디 작은 민주공화국이었다.


주변국중에는 입헌군주국도 있었고, 신정 국가도 있었고, 기타등등 여러가지 많았지만. 다행히 북한 같이 정신나간 미친 괴뢰 집단은 없어서 내심 안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나라란게 존재한다는건. 공교육 의무교육 같은것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나는 꼭 학교에 가야한다 이 말이다.

그래도, 전생과는 다르게 마음 편히 먹고 학교에 갈 수 있어서 이 점은 정말 좋았다. 전생은 초중고 가리지않고 하루하루 가는게 싫었기 때문에.

특출난 개성을 가진 꼬맹이들이 많아서 많이 지치기도 하고,. 내가 반쯤 보모가 된것 같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재밌었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라미아 모계인데. 라미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반신은 인간 형상이지만 하반신은 뱀의 몸체인 

그 여성형 괴물이랑 대충 비슷하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에도 나온 에키드나 같은게 있다. 

놀랍게도, 모티브가 된 뱀의 특성까지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는것같다. 


또, 이 세상은 대체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대충 지구의 흔한 인남이랑 비슷하면서

여자는 모계종족에 따라서 세부종족이 무조건 갈린다. 모계가 라미아면 딸도 무조건 라미아라 이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도 지구의 인간 남자랑 완전히 똑같다는건 아니다. 예를 들면 나는 혀를 내밈으로서 코로는 느끼지 못하는 냄새를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 시절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이건 라미아족 특유의 유전이라고 하니 의심의 여지가 없을것이다. 눈이 세로동공인 애도 있다던데 

아직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남자는 갑자기 꼬리가 쑥 튀어나오거나 날개가 달린다거나 하진 않지만, 사소한 부분은 모계 부계로 부터 유전되는듯하다. 


하여, 나는 특유의 붉은 라미아인 어머니와 두 살 위인 라미아족의 아종이라는 시로헤비 누나를 두고 있다. 아버지는 나와 누나가 아기 시절 때 병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한다.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보려하면 어머니는 대답하기 꺼려하는거 같아, 깊게 물어보진 않았다. 사진을 보아하니 부모 둘 다 선남선녀인데 나만 평범한 인남캐인거 같아서 조금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전생에 비하면야.


어쨌거나, 하루하루 사는건지 죽은건지 몰랐던 무기력했던 전생과는 다르게. 나는 좋은 가족들을 만나 나름대로 행복한 일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 시간은 흘러흘러 오늘은 내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나는 꼬리를 배배꼰채로 아직도 잠들어있는 누나를 깨우기 위해 라미아족을 위한 특수 방열판의 전원을 껐다. 금방 반응이 온건지 온몸이 사르르 떨린게 보였다. 파충류의 특성을 어느정도 가진듯한 라미아족은 인간 보다도 더욱 바뀐 온도에 극도로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끄...으응..."


"누나, 나 오늘 졸업식이라 했잖아. 슬슬 일어나. 씻고 밥먹어야지."


"..지금 몇시인데...?"


"8시30분. 씻고 아침먹고 가면 딱 맞을걸. 일단 밥 부터 먹어. 뱀파이어들과 누나가 가장 좋아하는 선짓국이야.
오늘 허물 벗는 날도 아닌거 아니까. 빨리 튀어나와."


"흐응...10분만 더 이따가 깨워주지...머리만 금방 빗고 나갈게."


"그래, 빨리 나오라고 엄마랑 난 다 준비 마쳤으니까 누나만 준비하면 돼."

그렇게 말하곤, 방문을 열고 나가려하니, 누나가 라미아족 시로헤비류 특유의 새하얀 백발을 휘날린채 내 오른 손목을 붙잡았다.

"...아침 키스 아직 안했어..." 


"...누나,,, 나도 이제 중학생이고 누나도 곧 고등학교 올라갈텐데. 매일 이러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볼 까 걱정돼."

"...괜찮아, 단순한 가족끼리의 애정표현...아무도 뭐라 안해..."


나도 누나를 정말 세상에 둘 도 없이 '가족' 으로서 좋아하고. 누나도 그럴꺼라 믿지만, 

우리 시로헤비 누나는 조금 애정표현에 과하달까.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걱정이다.

애초에, 나는 전생에서 '가족애' 란 개념도 교과서를 통해 어렴풋이 지식만 깨달은 수준이었을 뿐더러

이 세계는 지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도덕이나 윤리도 어느정도 궤를 달리한 세계였기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워했지만
키스 까지는 친한 남매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거겠지. 라고 어느새 받아들였다.

이 세계에선 서구권과 같이 친애하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가볍게 뽀뽀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게 일상화 돼 있는게 보통 문화기도 하니 뭐.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집안도 누나 처럼 매일매일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은 혀를 섞어대며
애정표현을 하는건지는 또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남매가 화목한거라고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하고 있다. 특히나 라미아족은

특유의 가늘한 뱀 혀를 중요시 여긴다니하니, 관점을 바꿔서 보니까 그만큼 나를 신뢰하고 애정하는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다 좋아졌다.

츄릅...츄르릅...


나와 누나는 입을 맞댄채 수 초 간의 정적속에서 바라보며 서로의 혀를 섞었다. 누나는 한 껏 상기된 얼굴로 그제서야 만족했다는 듯이 

머리를 빗으러 돌아갔지만, 누나와 다르게, 나는 누나의 애꾸눈을 본채로 도저히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며 한창 머리를 빗고 있을 누나를 떠올렸다. 이윽고 또 한번 누나의 그 애꾸눈이 내 두 눈을 처참히 적셨다. 


아마 나는, 누나가 나에게 어떤 짓을 한다 해도 결코 쓴소리를 하지 못할것이다. 어릴때의 사고로 잃어버린 누나의 한쪽 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내가 직접 찢어발기고 싶을정도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고현장 에서의 빠른 응급처치와 엠뷸런스 및
내 피를 즉석에서 바로 수혈 했기에. 누나는 온전히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왼쪽 눈을 잃어버렸기에. 시각을 비롯한 평형감각들이 온전치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은. 내 가슴 한켠에 뼈를 통채로 씹어 먹을정도의 

트라우마와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겪은 그 어떤일보다도 그 일 만큼 나를 괴롭히는일은 앞으로도 또 없으리라. 그 때, 내가 좀 만 더 빨리 사고현장에 도착했다면...

아니 더이상 생각하지말자.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전생에서 밥먹듯이 느꼈던 특유의 무력감과 우울함이 욱하고 토하듯이 올라올것만 같았다.

쏴아아ㅡ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 바로 라미아들 사이에서 한 때 고귀한 혈통의 상징이라 불렸다던, 특유의 자연색 진한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엄마가 찡그린 표정으로 배를 끙끙 부여잡은채 화장실 바깥으로 등장했다. 아무래도...어림짐작하기에 또 변비가 도진것 같았다.

"아니, 엄마 내가 그래서 식이섬유 들어간것 좀 먹으라 했잖아. 특히 만드라고라의 뿌리채가 

그렇게 변비에 효과에 좋다던데 대체 왜 안 먹는건데? 힘들게 구해왔것만...아오"  

"누구 아들인지 참,, 가리는거없이 다 잘 먹는건 좋은데...만드라고라의
뿌리채는 정말 아니야 아들아...차라리 변비가 낫지 그런걸 어떻게 먹니..."

"그건, 엄마가 배를 곯아 본적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보통의 뿌리 약재랑 뭐가 다른건지

모르겠어. 티비에서도 영양학적으로 완전 식품급이라 하잖아. 아무리 냄새가 별로라지만
다른 집 라미아 엄마들은 잘 먹는다는데 왜 우리집 엄마만 그래? 원래 좋은 약은 몸에 쓰다는 말 못들었어 엄마? " 


"얘는 참, 누가 보면 내가 널 굶긴줄 알겠다 야,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네 누나랑이나 같이 먹어... 엄만 진짜 괜찮으니까...
차라리 변비가 낫지. 만드라고라 특유의 풀 냄새가 장난아니게 토쏠려 엄만...그나저나, 너희 누난 깨어났니?"


"어, 방금 머리빗고 방안에서 어제 만들고 남은 선짓국 먹고 있을걸? 그리고, 우유 심부름 해오는길에 음식물 쓰레기랑 타는 쓰레기 다 미리 버리고 왔어. 종량제 봉투도 사왔구."


부비부비


그 말을 듣더니, 엄마는 그저 실실 웃으면서 갑작스럽게 볼을 부풀린채 내 볼에 즉시 비비적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아들~ 딸 키워봐야 다 소용없어~ 네 누나도 어릴땐 참 귀여웠었는데...사춘기가 왔는지 요즘 들어 너무 차가워~아들은 안 그럴꺼지 ^~^ ?"

"엄마...그 소리 누나 앞에서 좀 하지마. 진짜 싫어하니까...그리고, 혓바닥으로 그만 내 냄새 훑어 맡어..."


"엉엉~ 울 아들이 벌써 중학생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세월이 야속해 흐끄윽...흐끅..." 


내가 징그럽다며 비키라고 하니, 버둥버둥 못하게 엄마는 꼬리로 내 몸을 싸악 밀착시켰다. 라미아 특유의 이 꼬리로 몸 말아버리가 스킬에 내 몸은 아마 평생 익숙해질 수 없을것 같다.

나는 전방향 포위를 풀기를 포기한채 아침 뉴스나 보려고 티비나 틀었다.

'뭐, 중학생 이래봤자 '몬아일 초등학교' 에서 바로 5m 거리에 있는 '몬아일 중학교' 로 진학하는것

뿐이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도 아마 똑같을거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놈들도 다 똑같이 올라갈거고. 

그외에 미래 진로, 단적으로 입에 풀칠이라도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해야하는건 딱히 지구랑 다를 바가 없구나.'

나는 살짝 하품을 하며, 요즘 한창 인기있다는 일종의 츠쿠모가미인 카라카사 아나운서가 새파란 대나무 우산을 쓴채,
낭랑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일기예보를 조용히 경청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들이닥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그저 조용히... 








술먹고 써서 몬가 몬가 어색한 부분은 이해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