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기 챈 이용자들이 여자한테 사랑받은 적이 없는 찐따새끼들인건 알겠음'



'양보하고, 봉사하는 게 사랑이지 납치 감금 폭행 이딴 게 사랑? ㅋㅋㅋㅋ'



'강간당하고 싶다니 진짜 할 말이 없다 찐따새끼들끼리 대딸 잘 치시고 난 탈갤함 ㅅㄱ'



이게 내 마지막 기억이다.



[맨날 얀데레는 정신병이라며 분탕질치고 다니던 새끼가 너구나?]



시발.



[하지만 난 이해한다. 백 번 듣는 것보다는 한 번 보는 게 나은 법.]



"뭐?"



[미션 : 진짜 사랑을 찾아라!]


[이제부터 너는 스윗젠틀맨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마들과 싸우면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아이들을 케어하면 된다.]


[그 아이들이 너에게 보이는 행동이 정신병인지, 진짜 사랑인지 잘 판단해 봐라.]


[성공 시 : 보상 지급]


[실패 시 :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대충 뭐라는 건지 알겠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어그로 끌고다니는 내가 괘씸해서 이런 벌을 기획한 거겠지. 저 보상이라는 건 보나 마나 집으로 보내준다는 거겠고. 끔찍한 시간은...굳이 생각하지 말자.


하...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나한테 죄가 있다면 진실을 말한 죄, 괘씸죄, 기분상해죄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까라면 까야지. 힘이 있는 건 저쪽이니까.




*




"부탁해! 나도 너희들한테 힘을 보태게 해줘!"



당연히 일행은 나를 경계했다.


여전사 칼라. 검은 머리카락과 사나운 인상, 위협적인 체구, 하지만 예뻤다.


수녀 마가레타. 금발의 미녀. 순수하고 친절한 얼굴과는 다르게 좀처럼 마음을 터놓질 않는다.


정령사 시아. 가녀리고 유약한 인상이지만 성질머리가 아주 고약한 아이. 입 다물고 있으면 그냥 요정처럼 귀여운 소녀였을 것이다.


길 안내라도 해주겠다 명목으로 겨우겨우 사정해서 들어왔지만, 갈 길은 먼 것 같다...




*




처음엔 진짜 고생했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먼저 출발하고, 밥 가지고 차별하고, 내가 휘말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큰 공격을 남발하고 어우 정말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얘들은 정말 순수한 선의로 사람을 구했지만,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음식값이나 숙박비를 바가지 씌우거나, 나처럼 힘이 되고 싶다며 합류해놓고는 돈을 가지고 튀거나, 몸을 노리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돕겠다는 초심만큼은 잃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는 걸 보면 짠하기도 하다.


그래, 조금만 참자. 버티면 내 진심을 알아줄 거다. 난 정말로 너희를 도우려고 이러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 요리를 한 숟갈이라도 입에 대줬으면 좋겠다. 아무도 안 먹어서 식은 스튜는 눈물 섞인 짠맛이 난다.




*




이제는 조금 마음을 열어준 것 같다.


나랑 말 한마디 섞는 것도 싫어하던 칼라는 이제 서툴지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마가레타는 나한테 본인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다른 동료들처럼 내게 잔소리도 하는 걸 보니, 정말 동료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


시아는 처음에 아주 까칠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리광이 많은 성격인 걸 알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얼굴에 그늘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일행들은 내게 처음에 까칠하게 군 것을 사과했는데, 나는 너무 고마워서 모두를 껴안고 울어버렸다.




*




마음을 너무 열어버린 것 같다.


칼라는 가끔 내 텐트로 들어와 자고는 했다. 잠결에 텐트를 착각했다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기분 탓이 아니다. 마가레타는 내 속옷을 훔치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다는 핑계를 대면서.


시아 또한 화장실과 잘 때를 제외하곤 나한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다.


마을에 가서 생필품을 구매하느라 여자 점원과 대화한 적이 있었는데, 셋 모두 나를 여관방에 감금하다시피 해버렸다.




아...그래. 정신병인지 사랑인지 판단해 보라고 했었지.


겉은 멀쩡해서 잊고 있었지만 얘네들 속은 병들어 있었구나.


나를 아빠, 오빠, 혹은 선생쯤으로 여겨서 이렇게 달라붙는 거겠지.


아무리 봐도 사랑이 아니다. 이건 애정결핍? 의존? 뭐 그런 종류일 거다. 그쪽 지식이 없으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




마지막 싸움이었다.


상대는 이제껏 비슷한 놈도 본 적이 없는 강대한 악마였고, 우리는 모두 죽었을 거다.


악마가 한번 발을 휘둘렀을 때 칼라의 팔은 부러졌다.


시아가 모든 힘을 다해 날린 공격은 악마의 몸통만 조금 그을리는 것에 그쳤다.


마가레타의 치유는 아득히 강한 놈의 마기를 뚫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마가레타의 신성력이 갑자기 끓어넘치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마기를 걷어내고, 우리의 몸엔 활기가 넘쳤으며, 놈은 마치 전신이 불에 타고 있는 듯 연신 괴성만을 질러댔다.


시아의 얼음이 놈의 눈을 찌르고, 칼라가 웅크리고 있는 놈의 머리를 잘라내자 거짓말처럼 신성력이 모두 빠져나갔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젖기도 전에, 내 눈앞에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대답할 준비가 된 것 같구나.]


[이들 중에, 진짜 사랑을 골라라.]


[칼라, 그녀의 행동은 정말로 사랑인가?]


칼라는 부러진 팔로 어떻게든 방패를 들며 놈에게 나아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빨리 도망가라고. 나라도 살라고.


[마가레타, 그녀의 행동은 정말로 사랑인가?]


마가레타는 딱 한 번만큼은 버틸 수 있게끔, 내게 모든 축복을 쏟아부었다. 본인의 몫을 포기하면서.


[시아, 그녀의 행동은 정말로 사랑인가?]


시아는 놈의 시선이 자신한테 유도되게끔, 속이 뒤틀릴 정도로 무리해가며 공격을 쏟아부었다.


[사랑이다/정신병이다]


[사랑이다/정신병이다]


[사랑이다/정신병이다]




셋 모두, 나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했다. 본인의 목숨을 버릴 각오로. 


난 알 수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과격하고, 난폭하고, 무례했지만...


정말로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에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망설임 없이 셋 모두가 사랑이라고 선택했다.




[그게 네 선택인가?]



설령 내 선택이 오답이라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다.



[정답이다, 스윗한남!]


[너는 멋지게 내가 낸 시험을 통과했다.]



...!!! 아...그럼 이제...


정말로 집으로 갈 수 있는 건가? 드디어?


정든 동료들을 두고 떠나려니 아쉽지만, 그래도 입이 귀에 걸리는 건 막을 수 없다.


동료들은 모두 얼굴도 예쁘고, 이젠 돈도 많이 모았으니까 나 같은 건 금방 잊고 잘 살수 있을 거다.



[상으로 셋을 모두 주도록 하마! 수고 많았다!]



...어?


"야! 잠깐만! 집으로 보내주는 거 아니었어? 나는 부모님도 잘 계시고 친구도 있단 말이야! 야!!!"


그러나 내 말이 저놈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지 용건이 끝나니까 나와의 연결을 끊은 것 같다.


그리고 셋은 나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우리 마음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사랑했는데 배신이라니. 저도 용서할 수가 없네요."



"걱정 마. 아프게는 안 할게!"



그녀들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 셋의 표정에서 내 미래를 직감할 수 있었다.



하늘을 실컷 봐두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