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어, 나도 안다. 이건 욕설이다. 


근데, 회전목마처럼 흘러가는 삶 속에서 마주하는 필연적인 개좆같은 순간에 욕 안하는 새끼는 내 한 짝의 부랄을 걸고 맹세컨데 절대 없을 거다.


난 입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주 씨발스런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에 따라서 난 욕을 해도 된다. 반박은 안 받는다.


씨발. 좆같네. 내가 왜ㅡㅡ













만화로만 보던 여고생 키우기를 해야 하는 거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라는 인간은 돌아보면 꽤나 지루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남들처럼 어린이집을 다녔다. 소화기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건 어릴 때 누구나 하는 앙증맞은 찐빠 아닌가. 


남들처럼 초등학교를 다녔다. 강당에서 농구공으로 축구하다 창문을 깨뜨리거나 한 적은 없다. 


뭘 봐. 없다고.


남들처럼 중학교를 다녔다. 학생회 면접에서 퇴짜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좆같은 면접관새끼들.


남들처럼 고등학교를 다녔다. 삼각함수는 함수라면서 왜 그래프 말고 삼각형을 그리는 건지.


남들처럼 중간때 울고, 기말때 또 울고, 축제 때 사고나 쳐댔다. 2학년 축제 때 섹온비 기습라이브는 내 인생업적이다. 


어쨌든 그런 시절을 거쳤다. 아무렴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암.


그렇게 유딩부터 고딩을 지나, 남들처럼 막 민증을 떼게 된 내가 이제 여기 있게 되었다.


평범하게, 가끔 사고도 치지만은,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이제 여기 있게 되었다.


꼴에 공부는 열심히 해서, 이름 있는 대학에는 들어가게 된 내가 이제 여기 있게 되었다.


세월은 나를 벌써 20살씩이나 처먹게 만들었고, 이젠 온리팬즈도 팬박스도 합법인 신과 같은 성인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더이상 부모님께 용돈도 못 받고 급식도 공짜로 못 먹고 교통비도 쥰내 비싸지는 병신과 같은 성인이 되어버렸다.


분명 삶의 변화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어느샌가 사회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었다.


그래,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하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었을지언정, 미자일 때와는 달라졌을지언정, 난 결국 '평범' 이라는 수식어가 제일 잘 맞는 사람이라 자부했으니까.


대학 가서 놀고, 적당히 취업 준비하면 비싼 차는 못 사도 꽤 괜찮게 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누가 이런 말을 했다더라.


'BOI♂ 인생은 원래 니 Jot♂대로 되지 않는단다♂'


시발, 난 아닐 줄 알았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아 씨... 졸려 뒤지겠네..."


평소처럼 알람 슬라이드를 밀어서 시작하는 평범한 아침.


"아으... 시리야... 지금 몇시냐...?"


"현재 시각은 오전 8시 40분, 금일 캘린더에 표시된 일정 '전공1' 까지 20분 남았습니다."


"....씨발."



늦잠 자서 아침은 영양제로 때우고 개처럼 지하철로 뛰어가는 일상.



그리고 그건 어제와 같고 오늘도 다름이 없으며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었다.




"ㅡ얜 왜 맨날 없어? 일단 결석처리 한..."


벌컥!


"헥, 흐헼... 저... 출석... 이요...."


"...오늘도 아슬아슬하구만. 자리 가서 앉아. 다음은ㅡ"



끼이익, 풀썩!



"와, 흐헥, 이걸 사네....."


"저 병신새끼 또 늦잠 쳐잤네."


"또 또 밤새 야동 쳐봤지. 고추 헐겠다 병신아."


"좆까세요... 씨발...."


물론 짐승새끼들과의 덕담도 일상이다.


언제나와 같을, 평범한 일상.


"자,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드르렁."


아, 물론 강의는 언제나 재미없는 것도 일상이다.



어쨌든, 난 이렇게 지내고 저렇게 지내든간에 웃을 땐 웃을 수 있는 나름 축복을 받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시험 망하고 알바 할 때는 울고, 방학하고 월급 받을 땐 웃고. 이게 인생이지.



그리고 이런 평탄한 삶은 계속될 줄 알았다.



오늘 밤까지만 해도.









밤 늦은,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길.


"후, 씨발... 왜 아직도 월요일이지...?"


언제나와 같은 신세한탄은 아무도 없는 열차에서만 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특권과도 같다. 그야 사람 있는 곳에서 대놓고 육두문자를 싸지를 순 없으니까.


이번 역은, 하고 운을 떼면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벌써 집인가.


열차는 내 목적지에서 멈춰섰고, 나는 그것에 맞춰 내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언제나와 같은 LED 빛이 나를 감싼다. 밤에 빛나는 광원은 침묵의 시간인 밤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하고도 퇴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독특한 야경이 여기에 내 자취방을 잡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톡, 토독.



"아 씨, 비 오네..."


비 오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분위기 나니까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집에 있을 때만.


후딱 뛰어가야겠다 생각했던 그 순간, 내 시야 구석의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아니, 정확히는 딱 봐도 이지메당하는 누군가와 그를 둘러싼 누군가들, 이라고 해야 하나.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나는 저기 사이에 낄 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몸도, 키도 평범하기에 몸싸움은 더더욱이.


그나마 해볼 만한 것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 정도.


그냥 조용히 112 누르고 경찰아저씨들 불러서 신고자 확인만 하고 돌아가려 했다. 경찰분들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편의점에서 대충 뭐 사는 척 서성서리면 이상하게 보이진 않겠지.


그렇게 신고를 마친 후 조심스레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골목에서 들리는 점점 더 커져가는 목소리가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딱 봐도 상황이 뻔히 보이는, 그런 목소리.


아무리 경찰아찌들이 빨리 온들 최소 5분이다. 그 동안 저들이 무슨 해코지를 하려는지는 뭐, 눈에 선했다. 


어쩔 수 없다, 시간만 끌면 된다, 라고 되뇌이며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뭐 어떡해. 우리 엄마가 도와줄 거면 제대로 도와주라고 했는데.




ㅡㅡㅡㅡㅡㅡㅡ



예상대로였다. 왕따당하던 학생은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받고 있고, 왕따를 주도하는 무리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협박하는 그런 거. 


대화 내용도 그냥 뻔했다. 대충 억지로 뭐 사야한다, 어디 가야한다, 라면서 돈을 요구하고, 이런 것도 못해주냐부터 시작해서 주먹을 꽉 쥐어보이면서 본격적인 협박까지. 


물론 난 이런 뻔하디 뻔한 폭력 현장에서도 겁을 잔뜩 먹었지만. 드라마 주인공처럼 잘생기지도 키도 크지도 않아서 그런가, 자신감이 반토막나는 것 같았다.


그냥저냥 겨우 말 붙여서 말렸다. 너네 뭔데 이렇게 협박질이냐, 말로 하면 될 걸 주먹까지 보여가야겠느냐, 같은 말로 경찰아저씨들 올 때까지 시간이나 끌면서.


딱 5분 지나서, 신고받고 온 경찰분들이 그들을 해산시켰다. 뭐 지들이 뭘 할 수 있겠나. 나에겐 시민들의 영웅 경찰이 있다고.


그러고보니까 왕따 당하던 녀석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아까전부터 가만히 서 있는 상태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어본다. 그나저나 얘, 여자였나.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를 볼 수가 있어야지 원...


"저기, 괜찮냐?"


"..." 


반응이 없다. 그냥 시체인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 괜히 끼어든 거면 미안하고, 혹시 배고프니?"


"..."


이거, 그냥 냅두란 거겠지?


"하하, 내가 괜히 말 걸었나 보네. 경찰아저씨는 늘 곁에 있는 거 잊지 말고. 다음에도 이렇게 당하면 안 된다?"


그냥 그렇게 가려고 했다.



탁ㅡ



그러나 뒤에서 나를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침묵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약간 기대하면서 녀석의 말을 기다린다.



"...배고파요."





...허.




ㅡㅡㅡㅡㅡㅡㅡ


"진작 말하지."


"..."


돈가스 삼각김밥, 저거 내가 먹으려 했던 건데.


"맛있냐?"


"..."


...어지간히 맛있나 보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시간이 지금...새벽 1시. 썅, 내일 못 일어나겠네. 그냥 결석해야 하나. 솔직히 한 달 중에서 하루는 빼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녀석은 그새 컵라면에 삼각김밥 세트를 다 먹은 모양이다. 돈가스가 맛있긴 해.


"잘 먹었냐?"


"...고마워요."


고마운 건 아는구나. 


"오야. 너 얘기나 좀 들어보자. 밥값이라 생각하고.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약간에 침묵 후, 그 녀석이 입을 열었다.


".... 그냥 그런 거죠 뭐. 없어보이고, 만만한 애들 왕따시키는 거."


"뻔하네."


"뻔하죠."


대화 끝.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분위기 어떡하지. 최대한 뭐라도 야부리를 털어야 한다.


"혹시 집 머냐? 교통비라도..."


"...없는데요. 학교나 찜질방에서 대충 자요."


"...미안, 혹시 부모님께 연락이라도..."


"없어요. 둘 다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


씨발. 어떻게 고르는 말마다 이 지랄이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안해지잖아.


"... 유감이네. 의도한 건 아니었어."


"알고 있어요."


"혹시 몇 살이야?"


"...고 2요."


"힘든 시기네."


"아저씨는요?"


"임마, 아저씨는. 대학생이다. 3학년."


"그런가요."


....


또 침묵이다. 어색하다, 이 분위기. 숨막혀 죽겠다.


이럴 때는 또 치트키가 있지.


"나도 고 2를 겪어봤지. 힘들 텐데, 혹여 도와줄 게 있다면 말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거든."


바로 연락처 주고 튀기.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이지.


"사실, 내일도 수업이 있어서 말이야. 얼른 가서 자야 하거든. 나중에 연락할게. 그러면ㅡ"


그런 류의 말을 뒤로 하고서 그냥 나가려 했다. 


하지만, 아까 전처럼 녀석은 나를 붙잡았다.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그래서 연락처를 준 거잖냐. 필요하면 연락하라ㅡ"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저 좀 재워주세요."


...졸린가? 요새 잠을 통 못 자긴 했지.


"...하하. 내가 요즘 밤을 세워서 말이지. 다시 한 번 말해주라."


"저 좀, 재워달라고요."


...씨발.


ㅡㅡㅡㅡㅡㅡㅡ


내가 씨부레 지금 뭔 말을 들은 거지. 미자, 그것도 여자애를 같은 집에서 재우라고?


어떻게든 돌려보내야 한다. 난 스물 넷짜리 조루인생을 살고 싶진 않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탈출해야 한다. 


"...아하하하하하... 그게, 내가 청소를 하나도 안 해 둬서ㅡ"


"괜찮아요. 제가 하면 돼요."


"...아, 그리고 먹을 것도 없거든. 내가 요리를 못 해서ㅡ"


"식재료만 있으면 돼요. 어느 정도 할 줄은 아니까."


"...사실, 내가 대인공포증이 있어서ㅡ"


"그렇다는 사람이 문신 가득한 일진들 사이로 눈치없이 끼어드나요?"


...시발. 누가 좀 도와줘요. 


"아, 아무튼 안 된다고!"


"도와주신다면서요."


"아니, 그건 그런데ㅡ"


"그럼 도와줘요."


"아니, 근데 이게 사회 정서상ㅡ"


"제겐 갈 곳도, 절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없어서요."


"...아."


"조용히 있을게요. 어짜피 학교에도 저를 신경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이러는지도 모를 거에요."


"...."


"저도 가만히 눌러 산다는 건 아니에요. 요리랑, 청소랑, 그런 것들이라도 도와 드릴게요."



"...도와주세요."



....하.




ㅡㅡㅡㅡㅡㅡㅡ



밤하늘은 웬일로 도시답지 않게 별로 어렴풋 빛난다.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인가. 아무렴, 별이 더 낭만있으니까 난 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은근히 푸르게 빛나는 밤을 볼 때면 하나의 시가 떠오른다.


시의 내용에 맞춰서, 나는 그 밤하늘 사이를 거닐고 있는 별들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불러 본다.


별 하나는 추억을, 별 하나는 사랑을. 아아, 어머니, 어머니.


왜 어째서 당신의 말을 들었는데 이런 개좆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까.


분명 시의 화자는 청춘이 다하지 않았고, 아무 걱정도 없이 별을 세지만 난 상황이 영 반대다. 


시간은... 새벽 2시. 응. 잠은 다 잤다.


애초 잠이 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체질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웬 예상치도 못한 여고생이라는 원자폭탄이 자기 방에 굴러들어왔는데 잠을 평소처럼 잘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저씨. 수건 좀..."


"스톱. 나오지 마. 거울 옆으로 밀어 봐. 안에 있을 거야."


아, 말도 하고 샤워도 할 줄 아는 폭탄이다.


결국 데려와버렸다. 씨발. 내 상황을 표현할 육두문자는 저 밤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겠지만, 이 '씨발' 이라는 문자는 그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표현력을 자랑하는 걸 실감한다. 


씨발.


어떡하지. 학교 선생이 갑자기 찾아오는 거 아닐까. 아니면 아까 경찰아저씨들이 추가로 확인할 게 있다면서 문 두들길 수도 있다. 


Dumb ways to die, 어릴 때 들었던 노래가 어렴풋 생각난다. 이게 내가 될 줄이야.


그렇게 망상의 늪에 빠져 있을 동안, 원자폭탄은 그새 샤워를 마쳤나 보다.


"...아저씨. 옷..."


"악! 얀끼야아아악!! 나오지 말고 가만있어! 가져다줄게!"


나, 어떡하지.


ㅡㅡㅡㅡㅡ


"옷 고르는 센스가 없으시네요."


대충 사이즈가 안 맞는 옷을 입고 나온 그 녀석이 말했다. 


여자경험 없는 나라고 한들 나름 생각해서 골랐는데. 


"모쏠이라 미안하네."


"대학생이면 연애는 한 번쯤 해보지 않나요..."


"나가."


"싫은데요."


썅, 밤 새워야하는 것도 서러운데 욕까지 얻어먹는다.


"근데, 아저씨는 안 자요?"


"이미 늦었다. 잠이 잘 안 오는 몸이라서."


"그런가요."


"얼른 자라. 고 2면 아직 키 큰다."


"아저씨는 잘 못 잤나 보네요. 키가..."


"당장 나가."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 서러워라. 원자폭탄이 밀봉도 제대로 안 되 있어서 자꾸 피폭 도트딜을 받는 것 같다.


"에휴, 그래. 지각하기 싫으면 빨리 자라."


"...어짜피 학교는 더 이상 갈 생각도 없는데."


"중졸할 건 아니잖냐. 검정고시 보게?"


"맞고 다니는 것보단 차라리 그게 낫죠. 지낼 곳이 없어서 억지로 다녔을 뿐."


"...그래."


"..."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괜히 또 슬퍼지게.


이번엔 그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에요?"


이름 얘기였나. 하긴, 계속 야, 너, 거리면서 부를 순 없는 노릇이니.


"휴론이라고 불러. 너는?"


"하루요."


"그래."


"...새삼스럽지만, 잘 부탁드려요."


"...그래. 후, 될 대로 되라지."


휴론 씨, 하고 그 녀석은 덧붙여 말했다.



ㅡㅡㅡㅡㅡㅡㅡ


결국 아침까지 눈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오늘 컨디션은 좆망 확정이다.


대충 먹고 학교를 가려 했는데 그 녀석, 아아, 하루도 어느샌가 일어난 모양이다.


"...벌써 가게요?"


"가서 커피라도 사 먹는게 낫거든."


"기다려요. 대충 있는 걸로 만들어 줄 테니까."


"..."


꼬맹이가 해 봤자 뭘 한다고, 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그녀가 만든 것은 토스트. 달걀에 식빵, 그리고 딸기잼의 단순한 조합이 이렇게 맛있을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솔직히 놀랐다. 자취 3년차인 내 요리 짬밥을 가볍게 압살하는 맛이였다.


...사실 요리라고 해도, 그냥 밀키트지만.


홀린 듯 먹다 보니, 어느새 토스트 3개가 증발해 있었다.


"...뭐 먹방 찍어요?"


"너 선택과목 화학 들었냐?"


"아뇨, 갑자기 왜요?"


"그게 아니라면 입 안에서 일어나는 토스트 각각의 내용물의 화학적 변화에 의한 맛의 완벽한 조화로움을 설명할 수가 없어."


"오버하기는..."



정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아침을 먹은 것 같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가방를 대충 싸서 나갈 준비를 끝낸다.


가방 지퍼를 닫으며 입을 열었다.


"나야 학교 간다 치고, 너는 그럼 뭐 할거냐?"


"신고할 건데요. 납치당했다고."


"..."


"...농담이에요. 아저씨 말대로 검정고시나 해야죠. 학교는... 지긋지긋해요."


"그래. 검정고시도 최대한 빨리 하는게 낫지."


"나름 공부는 잘 해서 준비할 것도 없지만요. 검정고시가 곧이라 치고 나서 수능도 바로 볼 수 있겠네요."


검정고시, 뭐 쉽긴 하다만야 뭔 놈의 고 2따리가 이렇게 자신만만하냐.


"다행이네. 먹고 싶은 거라도 있냐? 돌아오는 길에 사 올게."


"괜찮아요. 그것보단, 식재료나 좀 사요. 냉장고 꼴이 말이 아니더만."


"확인."


신발을 신고, 도어락 버튼을 누른다.


띠리릭, 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새삼스래 뭔가 느껴진다.


평소랑 같은 소리, 아마 지하철 타고, 출석하고, 돌아오는 것도 평소랑 같을 테다.


아마 이 도어락 소리가 그걸 내게 말하는 듯 했다.


아마도 그 녀석, 아니지, 하루가 갑자기 굴러들어왔다 한들, 세상 일은 어쩌면 그저 평소처럼, 일상대로 굴러갈 것처럼. 


내 희망사항인건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잡념은 그만 떨쳐내고, 이젠 내 할 일을 해야지.


"...인사도 안 해요?"


"...아 참. 요근래 혼자서만 지내서 말이지."


"연애를 하라니까요?"


"지금이라도 나갈래?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단다."


"싫어요."


울고 싶다. 아침부터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에휴... 다녀오마."


"네. 다녀오세요."


약간 웃는 소리가 들렸던 건은 기분 탓일까. 



ㅡㅡㅡㅡㅡㅡㅡㅡ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 오고."


"드디어 금딸할 생각이 들었구나! 이 형님은 너가 자랑스럽진 않다."


"닥쳐."


어제와 같은 일상. 짐승새끼들과의 덕담도 하고,




"자, 이랗게 해서 3월 1일부터 지금까지 시험범위 진도를 다 나갔다."


"...교수님?"


"왜 그러나?"


"처음부터요?"


"오늘 한 내용까지."


"...예?"


"데헷★"



씨발. 이런 일상은 필요없는데, 아무튼 일상대로 재미없는 수업도 듣고,


"내가 너 한번만 더 랭에서 야스오 꺼내면 니 얼굴에다 염산 갖다 부어버린다했지?"


"응 W로 막을거임~"


친구들하고 게임도 하고,



"씨부레... 왜 아직도 금요일이 아닌 거지..."


밤이 다 되어서 열차를 탄다.


아 참.


"...그냥 맛있어 보이는 거 사 가면 되려나."


일상이란 정의에 맞진 않지만, 오랜만에 하루의 요청으로 식재료도 사 봤다. 


요리하기 귀찮아서 집에서 나온 이후로 식재료도 안 사다 보니 뭘 사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냥 생선하고 고기로만 사 가도 괜찮겠지. 야채는 쿨하게 패스. 


'삑, 삑 ,삑, 띠리리-'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피곤해..."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요?"


"승급전이였거든. 그리고 먹을 것 좀 사오느라고."


"에휴... 그래도 제 말 기억은 해 주셨네요."


단순 대화를 하는 도중에 순간 놀랐다.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게 바로 일상의 소멸 아닌가.


지금 돌이켜 보니 생각보다, 아니, 전혀 변화가 없었다.


하루와의 대화도 어느샌가 자연스러웠다.


하루만에 친밀해진 걸까, 아니면 그냥 적응해버린 걸까.


알 게 뭐야. 좋은 게 좋은 거지.


"배는 안 고파요?"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지금 식재료 사와놓고 그런 생각을 해요?"


"나한테 그런 건 냉장고 장식품이라고."


"에휴..."


대충 마루에 아까 산 고기와 생선으로만 가득 찬 비닐봉지를 내려놓는다.


"...잠시만요."


"...? 왜."


"지금 뭐랑 뭐 사온 거에요?"


"고기하고 생선...만."


"......."


"뭐."


"아저씨."


"왜."


"....에휴."


"내가 편식이 심해서 말이지."


"됐어요. 전날 냉장고 상태 생각하면 딱히 놀랍진 않네요."



...어쩌면 얘도 내 자취방에 벌써 적응해버린 걸지도.



"너는 뭐 하고 있었냐?"


"책 사와서 공부나 했죠."


"올, 한번 구경해봐도 될까? 훈수나 좀 두게."


"맘대로요."


좋아, 나도 나름 이름있는 대학 출신이라고. 하나하나 어제 들은 말까지 다 복수해주마.


"...화이트라벨?"


"제가 공부 좀 한다고 얘기 안 했었나."


화이트라벨은 공부 좀 한다고 풀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푼 거 보니, 풀이도 깔끔하고 응용도 훌륭하다. 


와, 이 정도면 내가 훈수를 받아야 할 처진데.


"...진지하게 너가 나보다 공부 잘하는데?"


"당연하죠. 제가 누군데."


아오, 한 마디를 안 져.


"에휴, 그래 그래. 너 짱이다."


"칭찬 고마워요. 들어본 지도 너무 오래되서."


"...그런 말 마라 임마."


"너무 그러진 마요. 이젠 지난 일인데."


"...너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내가 대신 마음 아파할 자격도 없지, 뭐."


...어느 정도 그녀와 익숙해졌다 한들, 이런 무거운 대화는 앞으로도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이제 뭐 할거에요?"


"자야지. 오늘도 못 자면 나 열차에서 쓰러진다."


"뭐, 그러면 같이 자죠. 저도 자야 하니까."


...아무래도 확실히 졸린가 보다. 이상한 말이 들리네. 


"어... 내가 졸려서 잘 못 들었나 보다. 방금 뭐라고 했어?"


"같이 자자고요."


"......."


"왜요?"


"어... 내 집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데."


"아는데요."


"그럼 나는 어디에서 자야..."


"그러니까 그냥 같이 자자고요."


전언철회. 씨발, 아직 원자폭탄 반감기 안 지났나 보다.


"아냐, 그냥 내가 바닥에서 잘게."


"왜요. 이상한 짓 할 거 아니잖아요."


"아니, 근데 내가 안 그런다 해도 이미지가 좀 그렇지 않니?"


"괜찮아요. 그리고 잠 잘 못 든다면서요. 바닥에서 잘 순 있고요?"


"...아하하, 요즘 방바닥이 시원하고 좋아서 말이야. 엄청 편하거든."


"어제도 그렇고, 거짓말 참 못 하시네요."


"...아무튼 이번 건 진짜 안 된다고! 내 안의 윤리의식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니까?!"


"잠 못 자면 그 윤리의식을 유지하는 뇌가 반쪽짜리가 될 텐데요."


"그건 그렇지만ㅡ"


"괜히 생떼부리지 말고 올라와요. 괜찮으니까."



 ......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 물론 그 녀석도 함께.


씨발. 좆됐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해요?"


"말 걸지마. 지금 예민하니까."


"아, 모쏠이였지. 여자랑 같이 자는 건 처음인가?"


"야 임마, 넌 그런 말을ㅡ"


쉿ㅡ 소리와 함께 그녀가 검지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았다.


부드럽고도 서늘한 피부의 촉감에 놀라서, 나는 얼어버린 것마냥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후후... 이런 반응, 나쁘지 않네요."


뭐가 나쁘지 않아. 난 지금 일생일대 최고의 위기라고.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나마 이게 낫네.


"재미없기는."


"너만 재밌으면 다냐."


"물론이죠."


"에휴..."



......



"...물어볼 게 있는데요."


"이상한 거 아니지?"


"아니에요."


"뭔데."


"저, 굳이 데리고 오신 이유가 뭐에요?"


"너가 도와달라매."


"그런 거 말고요."


"이유가 있겠냐...... 그냥 안타까워서 그랬다."


"내가 너처럼 힘든 일은 못 겪어 봤는데, 넌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잖냐."


"솔직히 위험한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긴 한데 말이야. 그래도 초면에 재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절박해 보였고, 너 공부하는 거 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 한 것 같진 않다고 생각이 들더라."


"...제가 정말로 신고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건 신고 당하고 나서 생각할 일이고. 내가 세상을 편하게 살아서 그런 건진 몰라도, 배신당할 걸 두려워하기보단 그냥 믿어보는 거야."


"...믿는다, 라."


"뭐, 그런 거지."


.....


"...아저씨."


"오야."


"만약,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 때문에 세상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한들, 아저씨는 그 사람을 다시 무언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철학 시간이냐? 내 전공은 아닌데."


"흠... 글쎄다. 난 심리상담사가 아니라서.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믿음'을 깨지 않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계속, 끊임없이 그 사람에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보여 준다면, 언젠가 그런 사람도 나 하나 쯤은 믿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가요."


"사실 그게 너 얘기인 건 알고 있다만, 그냥 난 그렇게 생각해. 굳이 너뿐만 아니더라도. 그리고 너가 날 신뢰하든 않든, 적어도 너가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내 나름대로 잘 해보려는 거지."


"뭐, 믿음직하지 못한 아저씨라서 미안하게 됐다."


"..."


살며시, 내 등에 나를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동시에, 내 등이 살짝 젖어가는 느낌도.


"......"


"...많이 힘들었냐.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힘들 때는 우는 게 제일이지."


"...힘들었거든요. 지금까지."


"그냥, 교통사고로 부모님 다 떠나보내고,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니까... 의지할 곳이 없더라고요."


"계속, 혼자 지내느라 힘들었어요."


"학교는 저 못 괴롭혀서 안달이었어요. 친구도 없고 부모까지 없는 놈이라고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괴롭히더라고요. 제 얼굴만 보고 도와주겠다던 어른이란 작자들은 의도가 뻔히 보였어요."


"그렇게 살아오다가 그저께 도움 받은 게 부모님 돌아가신 이후 처음 받아본 호의였어요."


"홀린 듯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도 이게 맞나, 싶었어요."


"그냥 어쩌다 한 번 받은 친절로 덜컥 사람을 믿어버린 것 같아서, 어쩌면 이 사람도 다른 어른들이랑 같은 부류가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그냥 아저씨의 순수한 모습을 보니까, 거짓말도 못 하면서 배려하려고 노력해주고, 농담도 받아주고, 제 말도 기억해 주고, 칭찬도 들어 보고, 그러니까, 그러니까ㅡ"


......이거 원.


다시 몸을 옆으로 돌린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아준다.


옷이 젖어가는 감각이 느껴진다.


등을 토닥이면서 나지막히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그리고, 수고했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볼게. 적어도 너한테만큼은."


...나 참. 자야하는데. 이러면 내일도 컨디션 작살이잖아.


ㅡㅡㅡㅡㅡㅡ



....


.....!...



짝!


"으겕ㅡ"


"좀 일어나요! 어떻게 제가 알람소리에 먼저 깰 때까지 잘 수가 있어요?"


"그렇다고 때릴 이유까진 없잖니..."


"그냥 때리고 싶어서 그랬어요."


"아오..."


등이 얼얼하다. 손이 은근 맵구나.


"밥 먹어요. 차려 뒀으니까."


"어... 고맙긴 한데, 안 힘드냐?"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에요."


"뭐... 그러시다면."


오늘 아침도 토스트다. 여전히 맛은 있었다.


왜 오늘도 토스트인 이유가 있냐 물었더니 어제 고기랑 생선만 사온 사람이 바라는 것도 많다고 혼났다. 


"뭔 애도 아니고, 사와야 하는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줘야해요?"


"응애."


"어휴..."



뭐, 그런 식으로 하루와 나의 일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음식물 쓰레기는 제때 버리라고 말했잖아요!”


“Tut mir leid, ich spreche kein Koreanisch.”


“Scheiße.”


“독일어도 할 줄 아는구나…”


“아저씨가 하는 걸 제가 못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래, 너 똑똑해서 좋겠다.”


“암요.”




……



“뭐 봐요?”


“…….”


"대답."


“아, 이건 말이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경건하고도 성스러운 남녀 간의 신체 행위를 보여주는 영상인데ㅡ”


“아니, 그거 말고.”


“애 앞에서 이런 걸 봐야 하겠어요?”


“죄송합니다.”


“...가슴만 큰 게 도대체 뭐가 좋다고...”


“…? 뭐라 했어?”


“됐어요, 멍청아.”


“따흐흑…”


…… 


"안 일어날 거에요?"


"......"


"깨 있는 거 다 알아요."


"......"


"...에휴...."


꾸우욱....


"...? 읍! 으으읍!!"


"지금 안 일어나면 엉덩이로 질식사를 시켜드리죠."


"으읍! 으브브븝!!"


"뭐해요. 깔려 죽고 싶어요?"


"뜨흐흡..."


ㅡㅡㅡㅡ


"진작 일어나지."


"후우... 야,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


"ㄴ,네...? ㅁ, 뭐, 뭐죠..."


"너 살 좀 빼야겠다. 얼굴 함몰되는 줄 알았ㅡ읍!! 으베벱!!"


"기대한 내가 바보지. 매를 벌어요 아주."


......



쏴아아아...


벌컥!


"아저씨, 아저씨 컴퓨터 비밀번호가ㅡ"


"와아아악!! 미친년아! 나 씻고 있는데!"


"알고 들어온 거에요."


"...뭐요?"


"바보...아무튼, 비밀번호가..."


"Sexmaster6974! 빨리 꺼져!!"


"뭔 비밀번호를 정해도 그딴 걸로..."


......


"아저씨, 저 어때요?"


"...얌마, 아무리 집에서 있는다지만 나도 있는데 그런 옷은..."


"에, 야한 거 생각해요?"


"아니, 난 가슴 큰 게 취향이라."


퍽!


"악! 왜 때려!"


"그럼 제 건 작다는 건가요?"


"아니, 주제가 왜 그렇게 되는데!"


"보여드릴까요?"


"악! 끼야아악!! 하지마!! 꺼져!"



.......


어째 정신없어 보이지만,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나도 내일을 향한 바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 바람은 생각보다 빨랐고, 어느새 그 바람은 달력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시발, 벌써 20대의 반 이상이 지나갔다.


"...넌 그나저나 어른 되서 처음 한다는게 나랑 술 마시는 거냐."


"뭐요."


"잘생긴 애들 많을 거 아니냐. 애들하고 좀 놀아라 임마."


"됐어요.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


"그러냐."


얘도 그러고보니 이제 성인인가.


고2때 수능 바로 보더니 붙었다. 심지어 나보다 좋은 곳이던데.


에휴, 지구온라인이 이래서 좆망겜이지.


"신년인데, 뭐 새로운 거 없어요?"


"시끄러운 거 싫다매."


"술 마시고 고성방가하면서 노는 게 싫은거죠."


"글쎄다... 새로운 거야 많지?"


"예를 들면?"


"이제 난 졸업하고, 너도 성인이니까. 너도 슬슬 여기서 나가도 괜찮지 않냐?"


"나도 나이 반오십 쳐먹고 연애도 못 해봤으니 시도라도 좀 해 보고, 대학원 가든 취업 준비를 하든 해야지."


"......"


"...?"


"그냥 여기서 있어도 괜찮지 않아요?"


"그래도 상관이야 없겠지만은, 굳이?"


"너도 너 할 거 있잖아. 난 못 해본 풋풋한 연애도 해 보고 그러는 게 좀 더 즐겁지 않겠냐."


"적어도 이런 아저씨한테 묶여 사는 것보단 네 자유의지대로 살아보는 게 너도 즐거울 거고."


"...그런가요."


"그러면 너는 뭐 어떡할건데."


"......"


"똑똑. 저기요."


"왜..."


"...?"


"왜, 왜... 도대체 왜요."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


"그저 책임감 때문에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버틴 건가요?"


"제가 그렇게도 민폐였나요?"


"전 아저씨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어서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같이 있어주면 안 될까요?"


"..."


"...그러냐."


에휴. 난 철학과 전공 아닌데. 


"하루 양, 내 말 잘 들어."


"의지할 게 없다는 건 힘든 일인 거 알아."


"난 그런 일을 겪어본 적도 없어서 감히 그 고통을 함부로 말할 순 없지."


"네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난 지금 너에게 있어서 유일한 버팀목일지도 몰라. 그런 사람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면 뭐라 동요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그게 관계의 단절은 아니잖니."


"난 나대로 너보단 6년은 더 살았어. 3/5 강산이 변할 만큼 살아왔지. 그리고 그 동안 내가 느낀 게 있어."


"사람은 사람대로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을, 순간의 이별은 절대적인 끝이 아니라고."


"난 아직도 고등학교 친구들하고 연락도 하고 놀기도 해. 대학교도 다르지만 말이지."


"그리고 대학생활 하면서도 새로운 만남이 가득했거든. 나 맨날 짐승놈들 몇 마리랑 게임하잖아."


"요컨대 삶에 큰 변화가 온들, 그게 반드시 이전의 일을 무로 되돌리진 않는단 말이야. 여전히 난 과거의 친구들과도 현재의 친구들과도 잘 놀고 있어."


"내가 말하는데, 분명 네겐 지금보다 더 극적이며 역동적인 일들이 일어날 거야. 거부하기엔 너무나 즐거워 보이고, 거부할 수도 없는 그런 일들."


"그런 일들을 맞이하면서 변화는 당연히 있을 거야."


"난 너가 그런 변화를 두려워해서 앞으로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진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비일상적인 삶을 살라는 뜻은 아니야. 물론 변화가 두려운 것도 정상이지. 그러니까, 변화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기보단 너 나름대로 즐겁게 사는 거면 되는 거야. 간단하게 생각해."


"......"


"너 내 연락처 지울 거 아니잖아, 그렇지?"


"만약 네가 정말 못 버티고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면, 그때 연락해."


"그때가 되면, 내가 기꺼이 한 명 정도는 기대게 해 줄 가로등이 되어 줄게."


"...아저씨."


"오야."


"약속 하나만 해 줘요."


"어떤 거."


"제가 아저씨 말대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멋있게 성장한다면, 그때 제 소원 하나 들어줘요."


"안 될 건 없지."


"녹음해요."


"어이고, 빡세네."


"...발뺌할 생각 마요."


"너나 안 까먹게 조심해라."


...


"...아저씨."


"오야."


"...사랑해요. 정말로."


"뭐래냐. 징그럽게."


퍽!


"악! 끼야아아악! 살려줘요! 얀끼야아아악!!"


ㅡㅡㅡㅡㅡㅡㅡ


뭐. 그렇게 됐다. 어찌됐든 하루는 나름대로 잘 독립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나는...


"조수. 나 커피 한 잔."


"아, 예!"


그렇다. 노예계약 체결했다.


씨발. 인터넷에서의 말들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래 뭐, 대학원생으로 지내고 있다. 내가 뭔 정신이었을까.


"아 맞다, 오늘 새 교수님 오시는 거 알지?"


"...예?"


"되게 젊으셔, 똑똑하고."


뭐야, 또 주인님이 느는 건가.


뭐, 알 바냐. 힘든 건 매한가지인데.


"그것보단 전 오늘 소개팅이 더 중요합니다."


"어이구, 얼굴 그렇게 생겨선 용케도 잡았네?"


"..."


"농담."


"..."


"....아,농담일세. 거."


"...에휴."


뭐, 언제나의 만담이다.


그렇게 오늘 할 일을 마무리하고, 예정 장소인 한 식당으로 간다.


"나 참, 갑자기 장소를 바꾸자면 어쩌자는 건지."


갑자기 약속 장소가 바뀐 것에 툴툴대면서 나는 지도에 표시된 대로 걸어갔다.








...뭔데.


딱 봐도 고급스런 이탈리안 식당이다. 분명 소개팅은 이런 장소에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막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술 마시면서, 떠 보고, 막 그런 거...아닌가?


뭐, 모르겠다. 생각이 있으니까 여기로 바꿨겠지.


그나저나 돈도 없는데 어떡하지. 여기는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수프만 해도 만 원이 넘을 것 같다. 가챠도 폭사했는데ㅡ


탁!


"...?"


"오랜만, 이네요."


"...하루?"


ㅡㅡㅡㅡㅡ


"아, 너가 그 새로 온다는 교수였다고?"


"뭐, 열심히 했죠."


"20대 교수가 가능한 거긴 했구나..."


"쉽죠. 저니까."


"대 하 루."


막 헤어질 때는 탈수 걸릴 것처럼 울더만, 정작 연락도 안 하더니. 


이젠 내가 교수'님' 이라고 존대해야 할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본 하루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크흠, 뭐. 절대로 그렇고 그런 시선으로 본 적이 없지만, 예전에도 아름다웠던 외모는 성장과 변화를 겪으면서 한 층 더 빛나는 모습으로 승화했다. 


어릴 때의 불안해 보였던 눈빛은 이제 여유로움으로 가득 찬 채 맑고도 쪽빛이 가득하다.


키도 약간 커진 거 같기도 하고, 뭣보다도...


음. 미드차이. 상습숭배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처음 술 마실 때는 쓰다고 얼굴 찌푸리며 먹었던 애송이가, 이제는 여유롭게 유리잔을 기울인다.


"잘 지냈어?


"뭐, 보시다시피. 아저씨는요?"


"노예 신세다. 대학원생은... 서비스 종료다."


"저처럼 바로 교수까지 따면 되는데."


"널 죽이겠다."


"쿡, 전 아저씨의 그런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완전 변태새끼네."


"뭐, 칭찬 고마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 잔, 두 잔, 기울일 때마다 서로의 기억이 교차한다.


지난 이야기를 서로 교환하고, 웃고, 떠든다.


예전엔 자주 못 봤던 환한 얼굴을 보여주는 걸 보니

나름대로 잘 지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켘, 가격이... 일, 십, 백, 천, 만, 십만..."


"뭐, 제가 살게요."


"얌마, 내가 자존심이 있지, 나보다 어린 애한테..."


"예전에 절약하던 습관을 보여주셨으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


아, 밥은 얻어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내 집으로 간다.


굳이 내 방으로 오겠다고 생떼를 부리던데, 그냥 어리광으로 생각하고 받아줬다.


그녀가 들고 온 가방을 내 방 안에 내려놓는다. 


...뭐가 저렇게 커.


"오랜만에 둘이 같이 있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휴론, 약속 기억해요?"


"뭐, 너가 녹음도 해 놨잖아. 용케 안 까먹었네."


"... 제 모습은 지금 어떤가요?"


아, 그때 그 약속.


뭐, 지금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지 않을까. 솔직히 20대 교수는 개쩌는 게 맞다.


"이건 치트키잖아.... 소원이 뭐냐? 난 신룡이 아니라 적당한 것만 들어준다."


"후후, 역시 그렇죠?"


소원이 뭘까. 궁금해하던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먼저 죄인의 심판을 시작해 볼까요?"


....네?


"...나 뭐 잘못했니?"


"아저씨. 지금부터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할 때마다 벌칙이 있을 거에요."


"...뭔데, 갑자기?"


그녀가 일어서서 창문을 닫는다.


"조수가... 말대꾸?"


아, 이거. 뭔지 모르겠지만 잘못하면 좆된다.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럼 첫 번째. 제 연애 횟수는 몇 번일까요?"


"...맞추면 되는 거야?"


"기회는 한 번."


흠, 솔직히, 예쁜데. 적어도 나보단 많이 했지 않을까.


다르게 말하면... 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했겠지.


씨발.


"...한 세 번?"


"땡~"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 문을 닫았다.


"한 번도 못 했다고요."


"의외네."


"뭐, 두 번째. 제겐 첫사랑이 있을까요?"


솔직히 저 얼굴이면, 대쉬하면 바로 먹히는 수준이다. 근데 연애를 못해봤다는 건, 달리 말해 없다는 거겠지. 


캬, 나 논리적이다.


"없어."


하루가 방 문을 잠근다.


탁! 하는 소리가 울린다.


"땡~"


"뭔데, 누군데?"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면서 내 말을 씹었다.


"세 번째. 저 자위 일주일에 몇 번 할 것 같아요?"


콜록, 사레가 들렸다.


씨발 뭐요?


"...얌마, 주제가 좀, 그렇지 않니?"


"말대꾸할래요?"


"...아뇨."


"착한 노예네요."


씨발. 내가 남 딸치는 횟수를 어떻게 맞추는데.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한낱 노예가 거역할 순 없다.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생각하면 손해다.


"5번."


"올."


뭐가 올이야. 맞춰도 이딴 것만 맞추니 기분이 묘하다.


"잘 찍었네요. 아니면 혹시 도촬ㅡ"


"아니야 이 미친년아."


"농담이죠."


"농담이, 참..."


"네 번째, 여친 냅두고 소개팅 나가는 건 바람일까요?"


이건 뭐, 당연한 소리 아닌가.


"당연히 바람 아니냐."


"아시는 분이 왜 그러셨을까?"


"...?"


"다섯 번째. 저 키 몇 센치 컸을까요?"


내가 키가 작다지만, 그래도 어렸을 땐 나보다 작았는데, 이젠 내가 약간 올려다봐야 할 수준이다.


많이 컸구나. 질투나게.


"한 15cm."


"뭐, 어느 정도 오차는 봐 드릴게요."


"여섯 번째. 제 수능 수학 점수랑 제 가슴둘레 중 어떤 게 더 클 것 같아요?"


....예?


질문이 갈수록 이상해지는데.


뭐 어떡해. 나는 최선을 다해 찍어야 한다.


쟤가 92점이었지. 그러면...


"너 수학 점수."


"...칫."


"너가 아무리 커 봤자지."


"...감점. 침대로 올라와요."


"죄송."


"저 운동도 했는데, 제가 직접 던져드려요?"


순순히 위로 올라간다. 이래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나 보다.


그녀도 같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뭔데. 분위기 이상하잖아."


"뭐 어때요. 둘 다 성인인데."


...그렇네?


"에휴, 그래. 어짜피 내 말 들을 것도 아니고."


"잘 아시네요."


그렇게, 질문 공세가 끝났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다.


"...아저씨."


"오야."


"사랑해요."


"..."


지금 얼굴이 뜨거운 건 아직까지 남은 취기 때문일까, 아니먼 다른 이유에서일까. 


"진짜로, 사랑해요."


"아저씨가 좋았어요. 아무 의심 없이 절 의지하게 해 줘서 좋았어요. 항상 고마웠어요. 뭐라 해도 받아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달래주고, 받쳐주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이제 저 성인이잖아요."


"멋있게 자랐잖아요. 그러니까..."


"...받아주실 수 있나요?"


...


뭐라 대답해야 할까. 거절, 혹은 회유?


솔직히, 그녀라면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는 건 아주 쉬운 일일 테다. 그런데도 내게 왜 그렇게나 붙들려 있는가.


뭐, 이젠 그녀의 선택을 믿는다.


"...나 질투 심할 거야."


"평생 연애 못 해본 마법사라서, 나보다 더 잘난 남자한테 뺏길까 봐 노심초사하겠지."


"여자 맘 1도 모르고, 눈치도 없어."


"그리고 너는 그런데도 날 선택하려 하고 있지."


"후회 없어? 난 너한테 구속구가 될 지도 모르는데?"


......


지금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느리게, 혹은 빠르게? 어쩌면 멈춰버린 것 같기도. 


시간의 감각을 잊어버린 채로 얼마 후, 그녀가 말했다.


"...사실, 제가 질문을 열 개 준비했거든요."


"일곱 번째는, 제가 왜 운동했을까, 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옷을 벗는다.


"정답은, 휴론, 너, 당신이 도망 못가게 힘으로 눌러서 따먹으려고, 였어요."


"...잠시만."


"여덟 번째는 저 가방에 뭐가 들어있을까, 에요."


"뭐, 지금은 필요 없겠네요. 콘돔이에요."


"아냐, 씨발. 필요해."


"닥쳐요. 아홉 번째는, 왜 굳이 고생하면서 교수직을 따려고 했을까, 에요."


"정답은, 여기서 꼴리게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이라는 노예를 얻기 위해서고요."


"열 번째는, 사실 질문은 아니에요. 소원권 쓸게요. 노예한테 발언할 권리는 없겠죠? 제 것이 되세요."


"잠시만ㅡ"


"원래 저도 처음이라서 마일드하게 하려 했거든요, 근제 기껏 고생하면서 만나게 됐는데 소개팅이나 쳐 나가는 노예는 교육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씨발 뭐요? 제가 다른 남자 볼까봐 걱정된다고요? 씨발 내가 몇 년을 당신 하나 얻겠다고 연애도 안 하고 그랬는데 내가 흔들릴 것 같아요? 오히려 당신이 한눈 팔잖아요. 주인님 허락 없이 발정나서 딴 년들 만나러 가고. 오늘 약속 장소 바뀐 게 우연인 줄 아나봐요?"


"저, 몇 년 동안 되게 외로웠거든요."


한 꺼풀, 한 꺼풀, 그녀가 허물을 벗는다.


좆됐다. 내 순결이 죽음을 호소하고 있다.


"야, 야! 콘돔, 적어도 콘돔이라도 쓰고ㅡ"


"닥치라니까요. 지금 당신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사랑해' 랑 신음소리 빼고 없어요."


"내일 일어설 생각하지 마요. 허리 부서질 때까지 할 거니까, 이 씨발 존나 꼴리는 남창새끼야."


"..."


그래.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고작 나 만나려고 저렇게 열심히 노력한 아이를 매정하게 내치는 건 내 취미가 아니다.


"...그래. 나 같은 아저씨 사랑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 지금껏 눈치 못 채줘서 미안해."


그냥, 담담히 내 마음을 전한다.


아 참.


"그러니까... 좀만 상냥하게 해 줄래?"


구차하게 목숨도 구걸한다.


...


약간의 침묵.


그녀가 잠시 후 대답한다.


"...눈치 없는 건 잘 아네요. 그래도, 마음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상냥하게 해 달라고요?"


그녀가 웃으면서 요염하게 눈을 뜬다.


"꼴림죄로, 가중처벌입니다."


"...살려ㅈㅡ"



내 마지막 발악은 그녀의 입술로 거칠게 틀어막혔다.



"자, 처벌을..... 시작해볼까요?"



아마... 밤이 좀 길어질 듯 하다.




"살려주세요ㅡ"


"닥쳐요. 아직 열 번밖에 안 했잖아요?"


"얀끼야아아악!!"


"제가 허리 부서질 정도로 한다는 게 농담일 줄 알았어요?"


"뭐해요. 안 세우고."


ㅡㅡㅡㅡㅡ



"흑... 흐흑..."


"...미안해요."


"내... 내 순결이..."


"...저도 어제 심했던 건 알고 있으니까."


"응애..."


미라와 대화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걸 안 그녀는 일어서서 아침을 준비한다.


어김없이 토스트다. 그리고, 어김없이 맛있다.


"이것도 오랜만에 먹네."


"입에 잘 맞나요?"


"여전히 맛있어."


"고마워요."


서로 조용히, 식사를 마친다.


"...정말로, 굳이 나를 선택해도 괜찮은 거냐."


마지막으로,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걸 물어본다.


암만 봐도 그녀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니까. 맘만 먹으면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답변은...


"뭐, 복상사가 소원이라면 계속 그런 말 하세요."


"죄송."


"알면 됐어요."


살벌하게 대답받았다.


뭐, 그렇게 됐다.


"사랑에 이유가 필요할까요? 제가 좋으면 된 거지."


그렇네, 그러고 보니까.


"만약 내가 바람 피우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왜냐면, 아저씨도 저 사랑하잖아요."


"....맞네."


"뭐, 바람이 나기 전까진, 그냥 믿는 거죠. 아저씨가 가르쳐 준 대로."


그 말, 기억하고 있어 줬구나.


"뭐, 만약 아저씨가 그 기대를 배신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몇 발을 뽑을지 생각하자고요."


예시가 더럽지만, 그래도 멋있게 그 말을 이해해 줬구나. 


"이런, 바람피워야겠네."


"유언인가요?"


"응, 난 20년도 넘게 연애를 못 해서 애정결핍에 집착받는 걸 좋아하는 마조거든."


"참.... 휴론, 당신같은 변태새끼는 처음 봐요.
















...그리고 제 완벽한 이상형이네요."



그녀가, 아니, 하루가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