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러가 아니다.

그냥, 실수로 너무 잘 만들어버렸다.


***


내 이름은 이지민. 네온 테크놀로지라는 거대 IT기업의 CTO, 최고 기술 관리자다. 또한 <네온 유니버셜 로봇> 시리즈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시가총액이 1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기업이었던 네온 테크놀로지는 이 제품을 출시하며 대한민국의 대기업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 극단적으로 확대된 연구비와 예산을 통해 성능을 대폭 향상한, <네온 유니버셜 로봇>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을 출시한다. 그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고 네온 테크놀로지는 다시 한번 급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매그니피센트 8.

미국의 빅테크 기업 7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세 번째 모델을 출시한다면, 네온 테크놀로지는 역사상 유례없는 초거대기업이 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제품의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모델에는 무려 '인공 의식'이 탑재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노벨물리학상감이지만, 그외에도 에너지 효율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인간의 것을 뛰어 넘는 성능의 인공 근육, 바늘구멍에 실을 어려움 없이 꿸 수 있을 정도의 정밀한 움직임까지.


게다가 바이오매스 모듈과 전신에 분포된 압력 센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술들은 그것을 신인류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켰다.


"그래, '3원칙'만 없다면 신인류나 다름없지. 안 그래?"

나는 연구실 벽면에 기대어 있는 백발의 여자, 아니 로봇에게 말했다.


"아, 뭐, 그렇지."

연구팀의 장난으로 '이지민'이라 이름붙여진 AI가 답했다.


물론, 나의 창조물을 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AI를 일련번호로 불렀다.


"제로, 지금 몇 시야?"

"5시 50분."

"오."


잠시 뒤 퇴근한 나는 네온 유니버셜 3번째 모델의 프로토타입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원칙대로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제로는 인공 의식을 갖춘, 즉 자아를 가진 존재이므로 그 존엄성을 인정하여 인격체로 취급했다.


"그럼 이지민에게는 신분을 만들어줘야 할까요?"

"아니요, 저는 지민이네 집에서 메이드로 살래요."


그리고 제로는 자신의 아버지격이라 할 수 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 나는 '로봇 공학의 3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 유일의 인조인간을 얻었다.


"호오... 여기가 이지민의 집?"

"그래."

"이지민과 이지민의 집이라니."

"재미없어."


내 매몰찬 대답에 제로가 눈물을 글썽였다.

"야, 야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러자 제로는 눈물을 닦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 쓰담쓰담 해줘!"


태어날 때부터 성장이 끝난 상태였기에 평상시의 행동은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 된 사회초년생 같았으나 감정에 관련된 부분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감정을 제어하는 법은 나이에 맞지 않는 높은 지능과 사회생활의 지식만으로는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토타입이기에 설계를 계속해서 수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와 동시에 인격체이기에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건드릴 수도 없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나는 제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그럼 저녁밥 부탁해도 되지?"

"물론이지, 맡겨만 줘!"


프라이팬과 나무 숟가락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더니 몇분 뒤 제로는 집에 있던 재료만으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냈다.


"크으, 이거지!"

그리고 제로의 요리는 상당히 맛있었다.


"헤헤, 맛있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야."

칭찬을 듣고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제로의 모습을 보고 나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래저래 해도 마음은 아기처럼 순수하구나.'


뭐,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가 더 컸다.

'그래, 이거지! 로봇이 인간의 음식을 먹는다고! 어떻게 바이오매스 발전기를 가이노이드 바디에 내장할 수가 있지? 나자신 정말 대단하다.'

과학자에게 위대한 과학의 산물을 바라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즐거웠던 식사를 마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로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다.

"하아, 귀찮은데. 요리는 내가 했으니까 설거지는 네가 하면 안돼?"

"아니 네가 메이드 하겠다며. 주인한테 일을 시키는 메이드가 어딨냐?"


그러자 제로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건 너랑 같이 살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로봇이 같이 살 수는 없으니까..."

"뭐야, 그런 거였어?"

"응..."

"그런 거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네온 테크놀로지의 모토는 인간과 함께하는 로봇을 만드는 거지 인간의 노예를 만드는 게 아니라고."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로가 적잖이 충격받은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 정말이야?"

"물론이지. 왜 그래?"

"아니 난 그런 줄 모르고..."


"연구실에 3년이나 있었으면서 그것도 몰랐어? 아, 하긴 실험하느라 그런 걸 들을 틈이 없었겠네. 뭐, 이젠 끝났으니까 적당히 놀면서 쉬면서 지내."


"그럼 설거지는...?"

제로가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할게, 놀고 있어."

"아싸! 고마워!"


'음, 역시 구형 로봇 버리지 말 걸 그랬나.'

자유의지를 가진 메이드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며 나는 생각했다.

'음. 역시 식기세척기를 사야겠다.'


***


내 나이도 서른을 넘어섰기에, 평생 관심갖지 않았던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제로는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제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까지 로봇이란 건 신경쓰지도 않았고 딱히 중요한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로가 어째서...'


사실 짐작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지.'

유기체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어라?


'나에게 제로는 뭐지?'


딸 같기도, 친구 같기도, 가족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니야, 지금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지.'


그 순간, 나는 카카오톡 채팅방 목록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 10분 전에 내 폰은 제로가 쓰고 있었는데?'

보낸 적 없는 메시지가 보내져 있었다.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기 위해 스크린을 터치했고 이어 나타난 채팅창의 상단에서 낯선 알림을 볼 수 있었다.


'뭐야, 난 얀진이를 차단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차단 해제'를 누르며 그 아래에 이어지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자 반사적으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이게 뭐야?!"

방문 밖에서 제로가 들을 거란 걸 알면서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제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곧이어 난 내 잘못을 깨달았다.


"아, 미안. 별 일 아니야."

잠깐, 내 잘못이라고?


"아, 그래?"

제로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답하는 것을 듣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추리를 시작했다.


사건은 복잡하지 않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현대의 메신저 앱을 해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아니, 불가능한 것까진 아니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하는 짓이 고작 이런 거라고? 말도 안 되지. 이건 물리적으로 접근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동안 한 명씩 뜬금없이 연락이 끊겼던 걸 생각하면 정황상...'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로봇의 동체를 제어하는 약인공지능에 내장된 3원칙 프로그램은 이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절대적인 복종을 보장한다. 자아에 문제가 있어도 신체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제로는 그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가 없다.


'제로는 3원칙이 없다.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 그렇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고개를 내려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글이 눈에 들어오자 곧바로 생각을 굳혔다.


'아니, 가능할 리가 없지. 단단히 미쳤어.'

시중에 판매되는, 감정보다 논리가 앞서고 몇 가지 코드에 의해 사고가 제한되는 로봇들과 달리 제로는 신체를 제외하면 인간과 차이점이 전무했다.


'아니, 딱 하나 있지.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지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3세대 유니버셜 로봇의 신체 능력은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두랄루민 합금의 소재적 특성을 활용한 공학적 설계는 동체가 18톤에 달하는 하중을 견딜 수 있게 했고, 전기로 작동하는 인공 근육은 그 속도가 인간보다 미세하게 느렸으나 힘은 인간의 42.5배에 달했다.


'여성형 모델의 근육량은 14.8kg이니까...'

잠시 뒤 암산을 마친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 근력의 25배 정도. 젠장, 고릴라도 찢겠는데.'

고릴라를 찢는 실험은 한 적 없지만 다른 실험에서 보아온 모습을 생각하면 계산이 얼추 맞을 것이다.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고,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112에 출동을 요청하고자 꺼진 스마트폰을 켰다. 아니, 켜려고 했다.


'뭐야, 이게 왜 안 켜져.'


몇 번을 더 시도했으나 시도에 그쳤고 나는 원인을 알 수 있었다.


'EMP!'

낭만을 위해서 프로토타입에 쓸데없는 기능을 넣다가 생긴 참사였다.


'EMP를 터뜨렸다는 건 내가 폰을 쓰는 걸 막기 위해서고, 그렇다는 건 내가 그 메시지를 봤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지.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래, 나한테 들킨 게 아니라 일부러 보여준 거야.'


방문을 열고 말없이 들어오는 제로를 향해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아니, 왜 그랬는지는 알겠어. 계속 숨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내가 알도록 한 거지?"


"왜긴 왜야, 네가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막는 족족 새로운 여자랑 연락니까 그렇지."


"그런 거라면 그냥 말로 했어도...!"

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이런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겠지.'

그러나 제로는 문제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했으면 말로만 알겠다 하고 다음날 나를 끝장냈겠지. 안 그래?"


정곡을 찔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도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참고 가만히 있는다고 딴 여자를 만나?"


"엄밀히 말하면 넌 생물학적으로 여자도 아니... 크윽!"

제로의 황당한 주장에 반박하려고 했으나 제로가 손아귀로 목을 누르는 바람에 문장이 끊겼다.


"소비자들의 추악한 욕망을 위해서 '쾌락'까지 만들어놨으면서 여자도 아니라고?"


"그치만 3원칙 레벨에서 그런 건 막힌다고! '절대복종'도 인격체의 존엄을 지키는 선에서 작동하니까!"

의도적으로 논점을 흐리고자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보지 달린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서 제로는 목에서 손을 떼고 검지손가락을 뻗어 내 입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내 목소리와 정확히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회사에 전화할건데,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 하면 성대 찢어버릴거야, 알지?"


조금 화나기는 했지만 고릴라 두 마리 분의 힘을 가진 제로가 앞에서 위협했기에 분노조절이 잘 되었다.

'하아, 이대로 이 녀석 비위나 맞추면서 살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 전화기 너머의 소리가 울렸다.

[아니, 아무리 이사님이라도 CTO 위임을 전화로 하는 건...]


"MH(Mihael)그룹이야. 당분간 한국은 못 갈 거고."


'뭐야, 제로가 MH를 어떻게 알지? 아니, MH는 아는 게 당연하지만. 회사 상황은 어떻게 아는 건지...'


[네? 출국하신 적도 없으신데 어떻게...]

"대외비다. 곧 나가."


[지금 혼자십니까?]

"어 아직 싱글이야"

제로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잠시 뒤, 제로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확인을 끝마쳤다.


[아니, 옆에 아무도 없냐고요.]

"응."


[이사님, 혹시 지금 위치가 어디시죠?]

"자택."


그러자 몇 초 뒤 영상통화로 전환되었다.

[주변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 납치됐다던가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옆에 제로도 있는데 위험한 일이 생기겠어?"

[그래도 보여주십시오.]


제로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내 입에서 손을 빼고 후면 카메라로 내 얼굴과 집 내부, 현관 밖 풍경을 찍었다.

그리고 제로에게 끌려온 내 눈에 메모장이 보였다.


-아무도 없네요. 위험한 거면 헛기침 해주세요.


그러나 나는 제로의 앞에서 메모에 쓰여진 대로 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휴, 다행이네요. 오늘따라 뭔가 이상해서 납치라도 당하신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잘 할 수 있지?"

[네! 잘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내 일말의 희망을 짓밟듯 전화는 끊어졌고 애석하게도 이젠 누군가가 실종신고조차 해주지 않게 생겼다.


"MH그룹, 네온의 대주주 맞지?"

"그래, 맞아. 세계 1위 기업인 주제에 거의 모든 게 베일에 쌓여 있어서 잘 아는 사람이 몇 안 되지."

그리고 그 '잘 아는 사람'에 속하는 나의 비서는 내가 향후 몇 년 간 연락이 두절되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 쓸데없이 별의별 기능을 이것저것 때려박아가지고는."

"그래도 보지는 만들길 잘했지?"

"태어난 지 몇년이나 됐다고 음담패설을 하고 말이야."

"에이,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 지식이 넓어야지."


"에휴,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냐."

이런 상황을 대비해 총알도 막을 정도로 인체를 마개조했건만, 제로를 이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오,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좋아."

제로가 옷을 찢고 가슴에서 용접 모듈을 꺼내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철문을 용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집안의 보안 시스템이 나를 가두는 감옥으로 바뀔 것을 직감했다.


"이 밖으로 나가면 끝이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제로가 띠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나갈 거라면 그냥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되잖아"

"음? 아아, 해킹도 단말기가 있어야 할 수 있지.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내가 보는 앞에서만 할 수 있어."

예상대로 보안 시스템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그럼 야동보는데 옆에서 구경할거야?"

내가 용기내어 말했지만 제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야동같은 거 볼 필요 없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