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하다보니 뇌절하게 되서 꽤 길다고 생각하고

일종의 불편함이나 찝찝함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햇살 속의 수견사





"달의 서?"

"그래. 그런 이름이었을 거야. 이제 기억나. 책의 생김새도 그렇고 잠들어버리는 저주도 그렇고."

그리폰 라이더의 말을 들은 용사는 다시 한 번 그 책을 보았다.
짙은 남색 바탕에 가는 갈고리가 그려진 아주 낡은 서적. 이름을 듣고 보면 밤하늘에 뜬 달의 형상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었다. 말 그대로 달의 서다.

그가 모두와 함께 유적에서 발견한 유물이었다.
드디어 예언의 단서를 발견한 줄 알고 너무 들떴던 걸지도 모른다.
고작 한 권의 낡은 책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만졌을 땐 아무 일도 없었잖아. 응?"

라이더의 위로에도 용사는 도저히 착잡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함정일 것이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분명 용사가 만졌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던 고서가 수견사에ㅔ닿았을 때는 빛을 내뿜었다.

그 이래로 수견사는 쭉 깨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마법도 저주에 관한 것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용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수견사를 안전한 마을까지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만약 이게 정말 달의 서라면 내가 그 쪽 분야에 능통한 분을 하나 알고 있거든."

그리폰 라이더가 말했다.

"정말이야? 그럼...."

뜻밖의 희소식에 침울했던 용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응. 당연히 지금 바로 출발할거야. 거처도 여기서 가까워. 그리폰이랑 다녀오면 순식간이야."

상황이 좋게 흘러가기 시작하고 용사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왠지 허탈한 기분도 있었다.

"라이더는 아는 게 정말 많네... 항상 침착하고."

"베테랑에게 의지하라고. 그럼, 다녀올게."

그 후 그리폰 라이더는 곧장 그 전문가를 데려오기 위해 떠났다.

그 다음부터 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잠든 수견사를 지키는 것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수견사는 매우 편안해 보였다.
평온한 얼굴로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잘 자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깨우려고 드는 것이 방해가 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게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용사는 감히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으음......"

수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핏 잠꼬대 같은 신음이었다.

용사는 벌떡 일어나 기다렸지만 그 다음은 없었다. 아주 작은 소리를 낸 이후 수견사는 고르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는 것만을 반복 했다.

혹시 어디가 불편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몸 곳곳을 살펴봐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용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띄는 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수견사가 너무 평소의 모습인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를테면 자는 동안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은 굉장히 찝찝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것.

수견사는 무릎을 넘는 긴 부츠를 신고 다녔다.
탐험을 할 땐 다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테지만 잘 때는 불편할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옷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었다. 특히 저 몸통에 채워져 있는 가죽 버클 같은 건 정말 불편해보였다.

벗겨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용사는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혹시 누가 그 생각을 들을 가능성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조마조마 두근거렸다.
그가 진정하는 데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진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벗긴다는 것에 어떤 이상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건 선의, 순전한 선의였다.

"그래도 좀 그러니까.... 부츠정도만 할까......?"

듣는 이도 없는 것을 용사는 허공에 대고 떠들었다.

결심한 그가 수견사의 부츠를 벗기기 위해 수견사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었을 때였다.

쿵, 하는 큰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육중한 것이 지면과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리폰 라이더가 착지하는 소리라는 걸 용사는 알고 있었다.
지레 놀란 그는 수견사에게서 잽싸게 떨어져 나갔다.

문이 열리고 라이더가 뛰어 들어온 것은 거의 그 직후였다.

"모시고 왔어!"

라이더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용사에게 물었다.

"뭐야. 그 구석에서 뭐해? 무슨 일 있었어?"

그제야 용사는 자신이 벽귀퉁이까지 도망쳤단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건 그렇고 그 능통하다는 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용사는 얼른 화두를 돌렸다.

"이제 올라오실 거야."

그리고 마침내 그가 올라왔을 때 용사는 저도 모르게 경계해버렸다.
전문가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니기에 앞서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험상궂은 인상의 수인이었다.

도마뱀? 용? 아직 이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용사로선 헷갈렸다.
그는 키는 작았지만 두꺼운 몸을 가졌고 날카로운 이빨과 손발톱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거대한 박쥐의 날개는 박쥐같았고 꼬리는 마치 전쟁무기 같았다.

이런 사람이 정말 수견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저기."

용사는 라이더에게 말했다.
많은 것을 내포한 한 마디였다.

"도사님이셔. 도사님, 제가 말했던 용사에요."

라이더의 소개에 용사는 더 혼란에 빠졌다.
도사님이라, 아무리 봐도 마광전사랑 한 판 붙어도 안 이상할 것 같은 풍채였다.

"카하하학!"

용사가 선뜻 나서지 못했을 때 도사가 먼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용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게 악수를 건넨 것이었다는 것을 용사는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자네가 그 용사군."

뒤늦은 악수 후 도사가 말했다.

"음. 정말이야. 우리랑은 다른 기질이 느껴져. 달의 서를 만지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건 그 때문일지도. 그래서, 책은 어디에 있나?"

도사는 무거운 인상과는 달리 바쁜 사람처럼 행동했다. 말도 조금 빨랐고 지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 했다.

덩달아 용사도 잰걸음으로 두꺼운 넝마 더미를 가져왔다. 다른 이의 손에 직접 닿지 않도록, 달의 서는 그 안에 있었다.

그걸 도사가 덥석 가져가려 할 때 용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앗, 그건......."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게 둘러싼 것들을 풀어낸 후 도사는 그 불길하고 검푸른 책을 들어 그 요모조모를 살펴보았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흠..... 이건 달의 서가 분명하군."

"그래서요?"

마음이 급한 용사는 거의 다그치듯 물었다.

"그러면 걱정할 거 없어. 카하하하."

도사는 용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네?"

때 없이 태평한 소리에 용사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달의 서는 그렇게까지 위험한 물건이 아니야. 단, 부주의하게 다뤘다면 너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지."

"그, 그럼 언제 깨어나는데요?"

"음. 뭐.... 자고 싶을 만큼 자고 나서? 카하하핳!"

여태 걱정했던 용사가 민망할 만큼 도사는 쾌활하게 웃었다.

"책 때문에 세상모르게 뒤집어져 자고 있어도 내일 아침 정도엔 일어날 거다. 그 전까지는 그냥 자게 둬. 그러라고 있는 물건이니까."

그러니까 용사가 이해하기로 달의 서는 원래 잠들게 하는 물건이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힘은 그렇게 위험한 수준도 아니라는 것이다.
용사는 수면제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러길 바랐다.

"그래도 좀 볼까? 혹시 모르니까?"

도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 용사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직 남아있는 의구심이 분명 겉으로 내비쳤던 것이다.

도사의 검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저 수견사가 숨을 쉬는 주기를 살피고 안색을 살피고 달의 서와 닿았을 때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묻는 것이 전부였다.
추가적인 조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일을 마무리 짓고 도사는 금방 돌아갈 태세를 보였다.

"아무리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일어날 거야."

도사는 날개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용사가 말하자 도사는 또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카하하하. 뭘, 달의 서를 받았으니까 됐어. 이게 누구에게는 굉장히 비싸게 팔리는 물건이거든."

도사가 밖으로 나가고.

"다시 모셔다 드릴게요, 도사님."

라이더가 그 뒤를 따르려 했다.

"아아, 괜찮아. 느긋하게 장을 보고 싶어서. 집에는 내 발로 걸어서 가지. 그럼 언젠가 또 보세."

호의까지 뿌리친 도사는 정말 어디 산의 도사님처럼 훌쩍 떠났다.

용사는 기운이 쭉 빠졌다.
뭔가 한바탕 폭포가 쏟아지고 그게 흘러지나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몽땅 빠져나가버린 기분이었다.

정신없고 어수선했다.

그러나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던 건 수견사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거면 되었다.

"니야..... 어쨌든 큰일이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야."

마찬가지로 긴장이 풀린 라이더가 기지개를 켰다.

"라이더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큰일이었을 거야."

용사의 말에 라이더는 킬킬 웃어댔다.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으니 난 마을 밖으로 가볼게. 여긴 그리폰이 잘 만큼 큰 헛간도 없고 마광전사도 안 그런 거 같아보여도 외로움을 꽤 타니까, 야영을 같이 할 동료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제야 용사는 마광전사에 대해서도 떠올랐다.
보통은 마을 사람들이 마광전사를 무서워해서 마을 밖에서 다 같이 야영을 하곤 했는데 이번엔 수견사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럼 나도 도와...."

용사가 따라나서려고 하자 라이더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지. 용사는 여기 남아. 수견사를 혼자 둘 셈이야?"

용사는 반문할 수 없었다.
그리폰 라이더의 말이 맞았다.
자꾸 부산하게 행동하는 자신이 멋없게 느껴졌다.

"그럼 내일 아침 다 같이 보자고. 그 때까지 엄마를 잘 지켜줘야 한다. 알았지?"

어린애를 다루는 듯한 라이더의 말투.
놀림거리가 된 용사는 그것만큼은 떨쳐내고 싶었다.

"그렇게 놀리지 말라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라이더는 킬킬 웃으며 나갔다.
거대한 날개가 퍼덕이고 그리폰이 하늘로 솟구쳐 날았다.
그리폰과 라이더가 별 일 없이 마을 밖으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 용사는 방 안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 수견사의 곁에 앉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엄마를 지키라니....."

용사는 스스로도 기가차서 웃음이 나왔다.
라이더는 가끔씩 그런 말로 그를 놀리곤 했다.
용사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할 것이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연고도 없이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용사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바로 수견사였다.
직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뒤로 그가 이쪽 세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수견사가 항상 뒤따라 다니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언어가 통하더라도 자신이 살던 곳과 다른 곳의 사람들이 행하는 인사법이나 분위기, 예의 같은 것은 도움이 필요했다.

아마 수견사가 없었다면 곤란할 지경을 넘어서 큰 싸움에 휘말렸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이렇게 놀림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용사가 신전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어 이후로는 신전에선 항상 수견사의 뒤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규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라니.

용사는 약간 불만이었다.
아무리 봐도 수견사는 제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다면 더 어려 보였지 엄마뻘은 절대로 아니다.

물론 용사는 수견사의 진짜 나이를 몰랐다.
그 부분에 대해선 수견사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강하게 묻지 말아 달라고 하니 그도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렇대도 엄마 자식은 싫었다.

그것과는 다른, 조금 더 동등한, 그런.

용사는 매일 수견사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참 예쁜 사람이다, 하고 말이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새파란 머리칼도 어색하지 않고 어울렸다.
말 그대로 물색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뻗은 귀 때문에 신비롭게 느꼈던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웃으며 대해주는 게 좋았다.

매체에서 흔히 다루는 뻔한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용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이 세계에 적응한 것도 이런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웬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수견사는 감은 눈의 속눈썹도 길고 참 가지런했다.

용사는 한참이나 수견사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으음..... 용사님......"

수견사가 웅얼거렸다.
다 알고 들으니 진짜 잠꼬대로밖에 안 들렸다.
고작 잠꼬대일 뿐인데 용사는 괜히 싱숭생숭 했다.

꿈이라도 꾸는 걸까.
그럼 꿈속의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으응.... 용사님..... 안 돼요......"

대체 꿈속의 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이어지는 잠꼬대에 용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진정하기로 했다.
별 것 아니다.
수견사가 그에게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별일은 아니었다.
거의 매일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렵게 소환된 '예언의 그'인 용사는 이래저래 통제되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항상 들어왔던 그  말이,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것만으로 매우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문득 용사는 깨달았다.
수견사는 불편해서 그런 것이다.
자는데 뭔가 계속 불편해서 그게 다른 형태로 꿈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미 전에도 다 예상한 바였다.

이를테면 갑갑한 부츠 같은 것.

용사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적어도 본인의 생각엔 그랬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부츠를 벗겨주자.
그 후엔 그렇게 결정했다.

용사는 침대 곁에 더 바짝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수견사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집어넣었다.

천천히 종아리와 무릎을 번갈아가며 잡고 발끝으로 당기자 수견사의 부츠는 조금씩 벗겨져 내려갔다.

조금씩, 조금씩, 행여나 자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아주 오랜 시간 끝에 부츠를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용사는 아주 큰일이라도 해낸 양 크게 한 숨 돌렸다.
이로써 수견사는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찰나, 그 다음 그의 눈에 띈 것은 스타킹이었다.

이왕 한 거 확실히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용사는 부츠뿐만 아니라 스타킹도 벗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원한 바람이 발에 통하면 분명 기분 좋게 잠들 것이다.

그리고 행동에 앞서 조금 두고 봤다.
쫀쫀하게 짤 짜인 스타킹이 감싼 다리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 형태가 왠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탄성에 조여진 허벅지가 몹시도 부드러워 보였다.

용사는 수견사의 안색을 살폈다.
평온해보였다. 오히려 부츠를 벗겨서 더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수견사의 허벅지에 손을 올린 것은 다소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매끌까끌한 스타킹의 촉감 위로도 부드러운 살을 알 수 있었다.

용사는 목이 탔다.
갑자기 목구멍이 푹 꺼져버린 것처럼 따끔거리기도 했다.

그나마 용사가 제정신인 부분은 하던 것은 마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 생각만 하고 있던 걸지도.

부츠를 벗길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그것보단 쉽게 용사는 수견사의 스타킹을 허벅지부터 무릎 위, 다시 그 아래 순서대로 차근차근 당겨 벗겼다.

곧은 맨다리가 드러나는 건 금방이었다.

용사는 수견사의 발목을 매만졌다.
종아리에서부터 뻗어져 내려오는 곡선과 도드라진 복숭아뼈를 손가락으로 직접 느꼈다.

방금 전까지 덧씌워져있던 탓에 피부가 뜨거웠다.
혹시나 허벅지에도 손대봤더니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기운이 곧 가실 것이다.
그리고 보드라웠다.

용사의 머릿속은 그렇게 덧 씌워졌다.
보드랍다.
스타킹이 없는 맨 허벅지는 무척이나 보드라웠다.
피부도 매끈매끈해서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으응....."

수견사가 무언가 불편한 것처럼 신음했다.

용사는 놀라 손을 뗐지만 눈은 떼지 못 했다.
수견사의 안색을 살핀 건 너무나도 뒤늦은 대처였다.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수견사는 깨지 않았다.

용사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도사가 내일 아침에는 깰 것이다, 라고 한 말은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 수견사는 깨지 않는다는 것과 같았다.

그걸 새삼 다시 깨닫자 용사의 심장이 쿵쿵 요동쳤다.
갈증이 일었다.
고동소리가 목부터 귀 머리통에 직접 울렸다.

몹쓸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사는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조금만 더.

이미 용사의 눈은 가죽 벨트를 향해 있었다.
수견사의 몸통을 둘러 묶고 있는 그 끈 말이다.
대체 용도가 뭘까 고민해보기도 전에 용사의 손은 이미 그 버클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것들이 풀려날 때마다 수견사는 더 편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용사는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부풀고 꺼지는 것을 볼 때마다 마른침을 자꾸만 삼켰다.

언제나 몰래 눈길만 주었던 동경의 대상을 지금은 넋 놓고 보아도 되었다.

어떨까?

남자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런 호기심이 들었을 것이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 혹은 그보다도 더 순수한 갈망이 용사의 손을 멋대로 끌어당겼다.

용사는 수견사의  안색을 살피며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조심스럽게 움켜잡자 남성과는 전혀 다른 여체의 부드러움이 그의 손에 뭉개졌다.
젖가슴. 여자의 젖가슴이었다.

"으음......"

작은 신음이 들렸지만 잠꼬대에 지나지 않았다.

안전을 확인한 용사는 영광스런 고지에 오른 오른손을 조심스레 주물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곧 양손을 올려 만지작거렸다.

부드럽다.
말랑말랑 거려.
느낌 좋아.

그런 멍청한 생각들이 용사의 머리통 속에서 메아리쳤다.

수견사의 젖가슴이 너무나도 부드러워 위에 만져지는 옷감과 레이스 장식이 오히려 까슬까슬하게 느껴졌다.
그건 용사에게 있어 무척이나 거슬렸다.

용사는 한 번 더 수견사의 안색을 살폈다.
세상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수견사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이 죄책감 위에 덮어 씌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더한 배덕을 느꼈다.

원초적인 호기심이 그를 지배해가고 있었다.
단 한 꺼풀 아래에 실체가 있는 것이다.
이런 감질 나는 것이 아닌 진짜가.

옷 위가 아니라 직접 수견사와 닿고 싶었다.
하지만 용사는 망설여졌다.
그의 인식 속에 어떤 선이 있다면 지금 그것에 닿은 걸 수도 있었다.

이런 짓을 하고도 수견사와 마주보고, 웃고, 또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이대로 수견사의 모든 걸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 뒤섞였다.

"흐으응...... 용사님......"

팽팽하던 줄은 그 목소리로 끊어져버렸다.

수견사가, 수견사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야.
너무, 매력적이니까.
하필이면 그 때 날 불러서.......

용사의 머릿속은 이미 엉망이었다.
묘하게 손가락이 떨리는 탓에 단추를 풀어내는 것도 어려워했다.

하나하나 단추를 풀어 낼 때마다 기대가 되서 몸이 달았다.
그는 아예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수견사의 배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뒤엔 단추를 푸는 것이 한 결 쉬웠다.

딱 필요한 만큼만 풀어 낸 후 셔츠를 양옆으로 젖히자 용사가 바랐던 대로 수견사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용사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줄곧 좋아했던 여자의 가슴은 그가 이전 세계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봤던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었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용사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 누운 탓에 너르게 퍼졌지만 충분히 멍울져 그 크기를 알 수 있었고 끝의 젖꼭지는 색도 옅고 앙증맞았다.

가지고 싶었다.

용사는 수견사의 양 젖가슴을 꾸욱 움켜잡았다.
알 가슴은 옷 위로 만지는 것하고는 또 달랐다.
피부가 녹을 것처럼 달라붙었고 부드러운 살결이 손가락 사이에 감겼다.

"하아.... 하아.... 하아...."

용사는 거칠어진 숨을 스스로 어쩌질 못했다.
손가락을 가누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저가 만지면 만지는 대로 움켜쥐면 움켜쥐는 대로 모양을 바꾸는 여체의 중독성에서 해어 나오질 못했다.

"읏..... 으응......."

명백히 불편한 숨소리였다.
용사는 미련하고 거친 손짓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하지만 입이 말라 입천장과 혀가 달라붙는 것 같았다.

세어나오는 낮은 신음도 그의 충동을 자극했다.

하지만 섣부르게 행동했다가는 수견사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미 섣부른 게 아닐까 싶지만 이렇게 된 이상 용사도 들키는 것만큼은 한사코 피하고 싶었다.

수견사의 숨이 다시 고르게 될 무렵, 그는 천천히 다시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쓰다듬듯이 어루만지기도 하고 둥근 손바닥 안에 가두어 살살 흔들기도 했다.
그러면 부드러운 젖가슴이 벚꽃 잎을 띄워놓은 찻잔처럼 물결쳤다.

이윽고 용사는 만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그녀의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던 용사로서는 당연한 순서였다.

탐스럽게 멍울진 젖가슴, 그 위에 솟은 젖꼭지는 더더욱 맛있게만 보였다.

용사는 엉덩이를 빼고 납작 엎드려 수견사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코로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우유 같은 고소한 향기가 온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았다.

용사는 수견사의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젖가슴은 젤리처럼 그의 입 안에 빨려들어 갔다.

살짝 부푼 유륜을 혀로 누르고 그 위에서 살랑거렸다.
그 끝의 부드러운 돌기는 그가 혀를 놀릴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단단하게 변해갔다.

만약 누군가 그 꼴을 본다면 꼴사납다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그는 엄마 자식 사이냐고 놀림 받아도 상관없었다.
전부 상관없었다.

숨이 차 물러나면서도 맘껏 가지고 논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차이를 보고 재밌어했다.
그리고 금방 반대편 가슴에 달라붙어 응석부렸다.

"으음..... 흐응...... 하아....."

수견사의 숨이 짙어졌다.

용사는 일어나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혹여나 잠에서 깨지 않을까 우려하며, 아니 그건 깨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리고 자기 밑의 모습을 보았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견사의 흐트러진 모습, 셔츠를 풀러 해쳐 가슴을 드러낸 반 나신.

새하얀 피부에 울긋불긋한 열꽃이 피어 더 야하게 보였다.

용사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또 그 호기심이었다.
광기나 다름없는 호기심이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자리를 바꾸어 수견사의 발맡에 앉게 하였다.

이제부터 할 짓들을 생각하고만 있었을 뿐인데도 용사는 가슴이 텁텁해지고 숨이 막혔다.

그는 수견사의 치마를 집어 올렸다.
여체의 나머지 절반이 그 아래로 힐끗 보였다.
하지만 여자의 가장 은밀한 곳은 속옷으로 잘 가려져 보호 받고 있었다.

치마를 다시 덮어둔 용사는 그 안으로 깊이 팔을 집어넣었다.
허벅지를 스치듯 타고 올라간 손가락 끝에 얇은 천조각이 걸렸다.
그는 그걸 꼬집어 끌어내렸다.
수견사의 속옷은 그녀의 허벅지, 무릎, 발목을 미끄러져 내려와 끝내 발끝으로 통과되어 나갔다.

용사는 숭고한 의식처럼 조심스럽게 충분히 느긋하게 움직여 수견사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눈에 띄게 빼어난 골반과 도드라진 장골 그리고 그 아래에 비부가 무방비하게 보여졌다.
용사는 돌덩이처럼 굳어 그것을 보았다.
도톰한 두덩이가 맞물린 것을, 그 위에 맺힌 자그마한 공알을.
부근을 덮은 짙은 색의 음모에도 무척이나 끌렸다.

그는 수견사의 치마를 그대로 뒤집어 놓고 그녀의 종아리를 잡아 다리를 벌렸다.

자연히 그녀의 것도 살짝 벌어졌다.
혈색이 좀 더 진한 속살이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용사는 수견사의 다리를 더 벌리고 무릎을 구부리게 만들었다.
용사는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수견사의 다리 사이를 보았다.

눈이 핑 돌았다.
어지러웠다.
몸이 끓는 듯 더웠다.

용사는 그 열을 빼기 위해 그는 바지를 벗었다.
바지를 벗고 축축해진 속옷도 벗었다.

아프도록 발기해 멋대로 덜렁덜렁 거리는 것을 달고 수견사의 다리 사이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녀의 것을 관찰했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자신의 것과 그녀의 것을 상상 속에서 맞추어보기도 했다.

이윽고 그는 그녀의 사타구니에도 손을 댔다.
엄지를 이용해 사이를 벌리자 그녀의 잎새가 열렸다.
겹겹이 세워진 문처럼 하나하나 젖히자 작은 구멍이 보였다.
숨 쉬듯 벌름벌름 움직였고 수견사와는 전혀 다른, 수견사와 공생하고 있는 별개의 생물 같았다.

용사는 그 곳을 향해 얼굴을 묻었다.
그것마저도 가지고 싶었다.
짙은 살 내음이 풍겼다.
약간 좋지 않는 냄새도 났다.
하지만 그런 건 좁쌀만한 흠도 안 되었다.

"으으음....... 하아......"

그 안에서 숨을 내뱉자 수견사의 다리가 움찔 떨었다.

"음..... 용사님...... 그 길이 아니에요...... 이 쪽....."

왜일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용사는 하던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심장이 아팠다.
그저 잠꼬대일 뿐인데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것은 미칠 듯한 죄책감과 구토감이었다.
속이 메슥거려 입에서 단맛이 났다.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더더욱 발기해 아플 지경에 이르렀다.
용사는 물러나 바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꼴을 보았다.
늘 자신을 격려해주던, 기다려주던, 좋아해주던 수견사가 셔츠를 풀어 가슴을 내보이고 다리를 벌려 은밀한 곳을 보이는 꼴을.

용사는 홀리듯 스스로 쥐고 흔들었다.

"하아.... 아.... 수견사.... 으윽........"

형편없는 목소리를 내가며 열심이었다.

후회되었다.
좀 더.
좀 더 제대로 된 방식이었다면 원 없이 그녀를 안고 마음껏 주무르고 잠꼬대가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메스꺼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황홀했을 실제를 상상하며 더 빠르게 흔들었다.
젖가슴을 빨며 맡았던 살 내음을 떠올렸고, 다리 사이에서 맡았던 야릇한 냄새를 되새겼다.
눈앞의 풍경을 뇌에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부족했다.
결국 용사는 스스로 흔드는 것을 멈추었다.
아쉬웠다.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수견사의 배 위에 앉았다.

"미안.... 조금만 참아줘....."

들리지도 않을 사과를 하며, 용사는 수견사의 젖가슴 사이에 제 것을 비볐다. 질은 점토를 끌어 모으듯 젖가슴을 긁어모아 그 사이에 자신의 것을 끼웠다.
그리고 어색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포근하게 감싸이는 젖가슴에 파묻혀 허탈함을 대신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의 온기가 전해져 용사는 뜨거운 물에 온 몸을 푹 담근 것처럼 숨이 벅차올랐다.

"하아..... 수견사아......."

그는 금방 차오름을 느꼈다.
더 하고 싶어 참는 어리광 같은 건 금방 한계에 부딪쳤다.
머리와 달리 손은 그녀의 가슴을 더 모아 누르고 있었다.

"하아..... 읏, 아....!"

용사는 수견사의 젖가슴 사이에서 끝을 맞았다.
쭈르륵 쭈르륵 기세도 좋게 나온 씨는 갈 곳을 잃고 가슴골에 고였다.
기세 좋게 뻗어 쇠골에도 튀어나갔다.
그 뿐 아니라 용사는 일어나 직접 수견사의 얼굴을 향해서도 흔들었다.
아직 남은 후희의 것들은 그대로 그녀의 뺨과 입을 더럽혔다.

아찔한 쾌감에 절제도 잃고 제 것을 손에 묻혀가며 미끌미끌하게 문질렀다.

폭군 같았던 사정을 마친 후 용사는 창밖을 보았다.
하지만 눈앞이 어두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지금이 언제지.
내일 아침은 언제 오는 거지.
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