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의 모티브는 '제 2회 차원전쟁'에서 가져왔습니다.

※ 해당 소설에 등장하는 카드군은 기존의 공식 설정과 다른 2차 창작입니다.

※ 해당 모티브가 된 듀얼 로그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각색을 더했습니다. 



- 지난 화 -


차원 전쟁 - 1 -

차원 전쟁 - 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웨더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에요!"

갑자기?
방을 나선 에클레시아가 결심한 듯, 뒤돌아보며 말했다.

"설마 교주님의 말씀까지 무시할 줄은 몰랐어요. 은혜로운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그야 인솔자의 말만 들으니까. 하지만 에클레시아는 웨더를 버릇없는 남동생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정보를 주입받은 그녀에게는 웨더가 다르게 보이는 걸까?

"사실 어찌보면 당연해요. 수백 수천년을 묻혀 있다가 저희를 만났는데. 모든 게 낯설고 저한테 기댈 수 밖에 없겠죠."

"…기계니까 당연히…"

"아뇨!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알버스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에클레시아가 살짝 발끈했다.

"웨더와 한번 이어졌던 저는 알 수 있어요. 웨더는 그저 기계가 아니에요. 엄연히 생각도 하고 자기 주장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조금 버릇없고 말투가 이상해서 그렇지…잘 타이르고 가르치면 분명 누구하고도 친해질 수 있을 거에요."

그 시점부터는 이미 기계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알버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에클레시아만이 느끼고 있는, 웨더에 대한 동정심과 믿음.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기묘한 유대감이 있다.
만난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웨더와 에클레시아의 관계는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저희 편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는 게 좋으니까요."


알버스를 응시하던 에클레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버스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한 말은 무슨 뜻이지? '저희'가 누구를 말하는 거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알버스는 그녀의 속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겉모습은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지만 이래뵈도 그녀는 성녀다. 스스로 만인을 사랑할 것을 신에게 맹세했고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다. 그 모습은 오직 알버스의 앞에서만 드러난다. 

"알버스도 도와줄 거죠? 웨더를 가르치는 거요."

탐탁치 않았지만 알버스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기계를 가르친다라.

"…내 말도 듣는다면."

"웨더, 들었죠? 인솔자로서 부탁할게요. 알버스의 말도 들어주세요."

웨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지 즉답하는게 아니었나? 알버스가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에클레시아가 제지했다. 웨더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건가? 이렇게 조용히?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웨더가 말했다.

『 명에 따라 인솔자에게 가장 가까운 개체, 알버스에게 권한을 부여합니다. 단, 동시에 다른 명이 주어졌을 경우 최초 인솔자인 에클레시아의 명령을 우선시합니다. 』

그리고는 알버스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 안녕하십니까. 제 24호 화석발굴용전투비경체, 웨더링 솔저 입니다. 』






에클레시아는 웨더에게 4가지 규칙을 지시했다.

모르는 것을 보면 질문할 것.
파괴보다는 보호에 신경 쓸 것.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것.

옳다고 판단한 것은 인솔자의 지시 여부를 따지지 않고 실행할 것.

4번째 규칙은 너무 자율적인 거 아닌가? 하고 알버스가 반박했다.
혹시라도 웨더가 옳다고 판단한 것이 그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에클레시아는 웨더를 믿어달라고 말했다. 별다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제가 잘 교육 할게요! 웨더는 똑똑하니까 금방 제 말을 이해할 거에요."

웨더에게 이것저것 충고하는 그녀를 보면서 알버스는 생각했다.
에클레시아는 웨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웨더를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알버스가 회개할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 그러나 믿는다는 행위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녀를 지키는 것이 알버스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마음은 웨더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웨더는 정말로 드래그마에 적응해갔다.
어색하지만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고 어린 신도들의 쓸데없는 질문에도 성실히 답했다.
막시무스 교주도 간섭하지 않았고 고위 사제들도 웨더를 부정하지 않았다. (성녀가 언제나 곁에 있기 때문이겠지만)
알버스보다도 웨더가 더 드래그마에 확실히 녹아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버스도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웨더는 정말로 '공감'을 하고 있는 걸까?
에클레시아의 마음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어린 신도들을 목마 태워주고 엉망진창인 찬양가를 부르며
에클레시아의 지시없이 남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몸을 숙이는 것이
정말로 기계로'써' 가능한 일인가?

구석진 곳에서 생각에 빠져 있는 알버스에게 웨더가 다가왔다.

『 평소보다 심각한 알버스의 표정을 포착했습니다. 평소 생활 패턴을 분석했을 때, 수면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로 파악됩니다. 수면을 권장합니다. 』

충고까지 할 레벨로 발전했구나. 알버스가 언짢은 표정으로 웨더를 올려다보았다.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잠 좀 안 잔다고해서 피곤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 지치지 않는 생물은 없다고 에클레시아가 말했습니다. 알버스는 숨을 쉬고 자아를 가진 유기적 생명체 입니다. 』

"너는 안 지칠 거 아냐."

『 자체 스캔한 결과, 하구 왼쪽 다리에 결함이 생길 여지가 있습니다. 』

"뭐?"

『 오늘 49번의 목마를 태워 주었습니다. 앞으로 12건의 목마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

"……."


『 다들 재밌어 해줘서 좋았습니다. 』


방금한 대답은 단순히 '출력'이 아니라 '감상'인가? 
알버스는 물을 수가 없었다.


『 알버스도 목마 타고 싶습니까? 』

"…됐네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알버스가 자리를 떠났다.
웨더는 알버스의 표정이 누그러든 것을 보았다.

웨더는 만족했다.



-



2개월 후,
모두가 잠든 새벽, 정원에 앉아 있던 웨더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 령신의 성전이 있던 방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틈새가 발생. 홀이 아닙니다. 급격한 대기 변화가 관측 되었습니다. 틈새 사이로 다수의 개념체가 확인 되었습니다. 현재 드래그마 방향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웨더의 말을 듣는 이는 없었다. 웨더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돌풍이 불어왔다.
위기를 감지한 웨더는 에클레시아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내 멈춰섰다.

『 드래그마의 전력과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마력의 파장을 감지. 가용 가능한 전력을 모아… 정정합니다. 피신을 권장합니다. 』

웨더는 정확한 계산을 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변수를 제외하고 계산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그마는 대항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어느때보다도 촉박한 상황이었지만 주변은 너무나 고요했다. 웨더의 내면에서 수천 수만가지의 계산이 오갔다.

『 …가용 가능한 인원. 1체. 전투모드로 이행합니다. 』

웨더의 관절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구부정했던 자세가 펴지고 목에 박혀있는 꽃 모양 파편이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드래그마의 신도들과 아무리 많이 친해졌다고는 하나 자신에겐 드래그마의 병력을 소집할 권한이 없다.
소집한다고 해도 무의미한 희생을 부를 뿐이다. 이 희생 안에는 에클레시아와 알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 할 '가능성'을 지닌 것은 무엇인가?

웨더는 주변의 돌을 하나 주워 손톱으로 글씨를 새겼다.
그리고는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웨더는 돌풍이 불어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분과 철창 등으로 가로 막혀 있는 곳이지만 모두 무시한 채 그저 전진했다.
정보가 필요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조합해보면 드래그마의 생존 가능성이 오를지도 모른다.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웨더가 남긴 돌 파편 하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위험 감지. 원인 분석을 위해 자체 파견을 진행합니다 - 웨더 }









5분 후에 신원 불명의 대군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곳은 우연찮게도 웨더와 에클레시아가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
웨더는 새로운 계산식 세웠다.

병기로서의 기능에 적합한 주변 토양의 질과 묻혀있는 화석 및 무기질 분석,
내제된 '그 힘'을 개방했을 때 일어날 과부하,

그리고 자신이 기능 정지하지 않고 드래그마로 복귀할 확률.

웨더는 계산하면서 에클레시아와 알버스를 떠올렸다. 2개월 동안 웨더는 그들에 대한 다양한 계산을 했다. 어떤 대답을 좋아하는가. 어떻게 대해주는 것이 이로운가. 어떤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가. 결론을 내기까지 그리 긴 계산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끝까지 풀지 못한 것이 있다.

에클레시아는 어떻게 자신이 '사람'임을 눈치챘는가.

인솔자는 화석발굴용전투비경체의 정보와 권한 만을 인스톨 할 수 있다.
제작자의 의도만큼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지금의 웨더로서는 알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계산식을
웨더는 남겨두기로 했다.



대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녹빛 갑옷으로 중무장한 2분대 이상의 병사,
그 주변에는 훈련된 푸른 빛 야수들이 대형을 갖추고 있다.

그들 위로는 공중에 떠다니는 돔 형태의 가마가 하나,
그 양옆에는 하얀 갑옷을 입은 두 사람이 부유한 채로 실려오고 있었다.  

특이한 점으로는 야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눈을 가리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만 빼고.



웨더의 존재를 확인한 대군이 진군을 멈췄다.
정확히는 그 한 사람이 진군을 멈추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루비와 금빛 테두리가 인상적인 화려한 흑갑옷,
오른손에 들려있는 거대한 지팡이는 마치 초승달을 연상시켰다.

등 뒤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흑색의 광륜에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웨더는 반사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들의 대장이며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그가 웨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누가 감히
마도왕의 앞을 막아서는가?



대기가 울렁였다.
입을 열지도 않았음에도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의 병사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조아리지 않고선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직 웨더만이 마도왕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웨더는 확신했다.
그를 막기 위해 홀로 나선 것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웨더' 라고 합니다. 』





제 24호 화석발굴용전투비경체(化石發堀用戰鬪碑鏡體) 웨더링 솔저,
웨더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