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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드 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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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드 바레
Maxamed Siyaad B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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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아드 바레 정부
2.1. 집권 이전2.2. 정치적 성향 및 행보
3. 소말리아 내전과 몰락4. 평가
4.1. 긍정적인 평가4.2. 부정적인 평가4.3. 총평

1. 개요 [편집]

소말리아를 21년간 지배한 소말리아의 군인 출신 독재자.

2. 시아드 바레 정부 [편집]

2.1. 집권 이전 [편집]

당시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내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던 국가 중 하나였는데, 자신들의 씨족만 중요시하는 씨족주의 때문에 종종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는 했다. 당시 소말리아군 장교였던 바레는 이 씨족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압디라시드 알리 샤르마르케 대통령을 암살하고 집권했다.

2.2. 정치적 성향 및 행보 [편집]

초반에는 아랍사회주의 성향을 보이며 소련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산업화 시켰고, 비록 철권 통치를 동원하긴 했지만 사회를 안정화 시켰다.

그러나 집권 중반기부터 '대소말리아주의'를 내세우며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을 소말리아에 편입시키기 위해 오가덴 전쟁을 발발시켰지만, 소련과 쿠바 등이 에티오피아를 지원했고, 그 결과 처참하게 깨지고 만다.

3. 소말리아 내전과 몰락 [편집]

오가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부터 정권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는데, 소련에게 거하게 통수 맞은 바레는 미국 응디에 달라붙었지만 정권의 몰락과 레임덕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급기야 1981년에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몰락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바레도 약간 맛이 갔는지 반정부 세력이 힘을 얻자 본인이 타파하겠다고 했던 씨족주의를 들고 와서 갈라치기를 시전했고,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부터 점차 바레 정권 시절 소외받았던 씨족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반정부 여론이 거세게 물붙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말리아 내에는 수많은 군벌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먼저 리비아의 지원을 받는 소말리구원민주전선이 등장했고,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등 소말리아 내부에도 반정부 군벌들이 쏙쏙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레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발악을 하며 저항했고, 급기야는 축구장 관중들이 정부에 야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축구장에서 대거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국제 사회의 지원도 뚝 끊겼고, 점차 소말리아가 분열하기 시작하며 바레 정권 말기에는 소말리아 정부의 행정력이 닿는 곳이 수도인 모가디슈 근방 말고는 없었을 정도였다.

결국 아이디드 세력이 모가디슈마저 함락하는데 성공하며 실각하고 말았고, 모가디슈를 탈출해 남쪽으로 피신했다.

이후 친바레 반군 세력을 모아 재집권을 시도했으나, 얼마 못가 진압 당했고, 이후 소말리아를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 평가 [편집]

4.1. 긍정적인 평가 [편집]

4.2. 부정적인 평가 [편집]

4.3. 총평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