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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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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李承晩 | Syngman "Run" Rhee
출생
황해도 평산도호부 마산방 능안골
(現 황해남도 봉천군 성기리)
사망
1965년 7월 19일 (향년 90세)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카운티 호놀룰루 시
카이무키 구 마우타네리아 요양원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대통령묘소
본관
학력
배재학당 (졸업)
조지 워싱턴 대학교 (정치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역사학 /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
종교
신체
170cm, 60kg, O형
재임기간
초대 대통령
제2대 대통령
제3대 대통령

1. 개요2. 일생3. 평가
3.1. 긍정적인 평가3.2. 부정적인 평가
4. 여담5. 어록6. 대중매체에서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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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러분
여러분이 저 찍어놓고 왜 그러십니꽈아?


이야 독하다 독해ㅋㅋ 이래도 지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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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젊은 시절
노년의 모습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승만[2]
런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1-2대 대통령, 12-13대 주석이자 대한민국의 1-3대 대통령.

강화도 조약 바로 전 년에 태어나 1965년까지 무려 90년을 장수했던 대통령이기도 하며, 오래 살고 건국을 함께했던 독립운동가인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잼민이들한테는 "중공군이라고? 어림도 없지 암! 아아암!"으로 알려져 있다.

2. 일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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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3월 26일, 황해도에서 아버지 이경선[3]와 어머니 김말란[4] 사이에서 6대 독자로 태어났다.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의 16대손이지만 5대조부터 벼슬길이 막혀 몰락한 지 오래였다.

20대에 개화 사상을 접하고, 배재학당에 입학하게 되는데 뛰어난 말솜씨로 널리 알려지고 독립협회에도 합류하게 된다.

원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만 입학한 것이었지만 서재필 등의 사상가를 만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접하고, 계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행적은 해당 문서 참조.
"민주주의적 정부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그 위에 한 국가의 구조가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이념과 달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권리는 정부에 의한 그 어떤 침해의 가능성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서 "Japan inside out" 中

2.1. 이승만 정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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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진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를 모두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배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실행하고 옮겨야 한다. 남들이 흉보고 욕하는 것을 상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형식적으로 하는 체해서는 소용이 없다.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저서 "독립정신" 中

2.2. 3.15 부정선거4.19 혁명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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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이승만, 4.19 혁명 직후

3. 평가 [편집]

3.1. 긍정적인 평가 [편집]

대한민국의 기틀을 세웠다. 특히나 시장경제체제를 수립했고, 공산주의의 남하를 방어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것에 큰 공을 갖고 있다.

교육 제도에도 상당히 관심이 있었는데, 초등 교육 의무화와 함께 구시대적인 교육 제도를 개혁하기도 했다.

하야 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것도 상당한 공으로, 골수 친미라 볼 수는 없는 인물이지만 미국과 협력을 강화한 건 공이라 볼 수 있다.

농지법 등 자신의 사상과 반대되는 정책도 필요하다면 도입하는 융통성을 갖추고 있었고, 경제개발 초석 마련, 한국 원자력도 이승만의 공이다. 물론 문재앙이 판도라 보고 나서 전부 해체시키려 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의 상당한 강점이 독립운동가 출신이란 점인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맡기도 했다.[5]

21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 출마했었던 최재형이 이승만을 '가장 헌법 기치를 잘 지킨 대통령'이라며 호평을 하기도 했다.

3.2. 부정적인 평가 [편집]

부정선거와 반공, 반국가세력 탄압이라는 명목 아래 대규모 학살 등을 자행하며 독재를 하였다.

특히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 사법 살인은 21세기 현재까지도 비판받고 있으며, 정치 보복도 상당히 잦았다.

독립운동 활동도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데,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지만 박용만과의 대립, 이승만 탄핵과 임시정부 분열, 미국 교포 독립운동 지원금 장악 등으로 독립운동 행보에도 비판할 요소가 상당하다.

미국과 아예 협력하는 친미 성향 지도자라 보기도 애매한 것이, 원래 미국은 송진우와 장덕수를 한반도의 지도자로 내세우려 했지만 두 사람 다 암살당해서 차선책으로 미국에 주목받은 인물이 이승만이다.

양 세력 모두 차선책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협력한 거라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관계였고,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에게 사실상 손절당했다.

4. 여담 [편집]

이승만과 김구의 모습.
왼쪽이 이승만, 오른쪽이 김구다.
  • 이승만과 김구는 한때 상당히 친분이 있었고, 김구는 자주 이승만을 '우남이 형'이라 부르며 친분을 드러냈는데 신탁통치 문제로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하게 된다.
  • 현재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 최고령으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다만, 초선을 기준으로 하면 슨상님이 최고령.

5. 어록 [편집]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다. 인간은 콜레라와 같이 살 수 없다."
"민주주의적 정부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그 위에 한 국가의 구조가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이념과 달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권리는 정부에 의한 그 어떤 침해의 가능성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구별할 수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다."
"조금만 더 견디면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나라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전후 복구와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 때를 위해 대학 재학생들을 보존시켜야 한다.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선원들이 술에 취해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눈이 멀고 팔이 부러져서 배를 움직일수록 위태롭게 만들어 물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이 배의 선객들은 구조하는 일을 남에게 미뤄두고 무심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겠는가. 선객들은 남이 건져주기를 바라지 말고 선원들에게 버려두지도 말고 각자 자기 일로 생각하고 자기 힘을 다해야 한다. 우리 대한 삼천리 강산은 곧 2천만 생명을 싣고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 몰아치는 큰 바다를 외로이 나가는 배와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 물에 빠져가는 배 안에 앉아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한다."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6. 대중매체에서 [편집]

야인시대의 등장인물
이승만
배우
권성덕
"중공군이라고? 암! 중공군이라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암!!!!"

왠만하면 이승만 역은 주로 최불암이 맡는데,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 처음 맡은 뒤, 많은 사극 드라마 및 영화에서 이승만 역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배우 권성덕이 연기했다.

7. 관련 문서 [편집]

[1] 양녕대군파 16세손, 시조 40세손 承자 항렬.[2] 사실 이승만은 이 말을 한 적 없다. 6.25 전쟁 당시의 도주가 워낙 인상 깊게 남아서 이런 말을 했다고 알려졌던 것.[3] 李敬善, 1839년 ~ 1912년[4] 1840년 ~ 1916년[5] 원래는 총리였는데, 이승만이 대통령이란 직함을 쓰면서 점차 대통령으로 명칭이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