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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외전 - https://arca.live/b/arknights/59395760




"...대체 왜 이런 일이 된 거냐고..."


박사의 집무실의 부엌, 딸린 테이블에 둘러 앉은 네 명.

죽음과도 같은 무거운 침묵을 마침내 견디지 못한 박사가 입을 먼저 열었다.

백파이프가 가져온 장식품들로 살풍경했던 그의 집무실은 제법 화사해졌지만, 그 화사함조차도 이런 무거운 침묵을 견뎌내는 것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사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냉랭하고도 무기질한 목소리가 재빠르게 뒤를 이었다.


"박사, 몇 번이고 말했지만, 우리는 로도스의 대표자로서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특정 오퍼레이터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은 아무래도 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겠지."

"망할 녹색 고양이년이...식사도 제대로 못하고...진짜..."

"매번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 받는다. 너는 나를 조금 더 소중히 여겨줄 필요가 있어."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 켈시는 이내 옆에 있던 아미야에게서 손수건을 받더니 우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것을 안쓰럽다는 듯 보던 갈색 토끼(?), 아미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박사님, 보시다시피 켈시 선생님께서는 자나깨나 박사님의 걱정만 하고 계세요. 조금 더 켈시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세요."

"아미야...여태까ㅡ."

"설령 그것이 조금 지나친 장난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켈시 선생님의 진심을 가리지는 않을 거에요...아마도요."


박사가 무어라 반박하려고 했으나, 아미야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자르더니 본인조차도 사실 확신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켈시를 변호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아미야의 발언에 힘을 얻은 켈시는 우는 시늉을 멈추더니 여전히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 박사. 원래 사소한 농담들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배우지 않았나?"

"...니가 그리 나한테 갖다박던 서류를 생각하면 참으로 재밌는 농담이네?"

"그렇다! 박사를 그리 부려묵으믄 좋드나?"


박사의 푸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던 백파이프는 켈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애초에 '특정 오퍼레이터랑 가까워지는 게 선 넘는다' 그 말에 따르믄 박사랑 그 아무도 친하지 못하잖나! 켈시 선생도 예외는 아니다!"

"...오퍼레이터 백파이프. '일반 오퍼레이터'와 로도스의 의료부문의 '치프'인 나는 분명 다르다."

"하? 머선 우르수스식 신분제가? 그기 뭐꼬?"


냉랭하던 켈시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고, 평소의 말투와는 확연히 다르게 화가 났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강경한 말투에도 지지 않고 팔짱을 끼더니 그녀의 말을 한껏 비꼬는 백파이프.

곧 Mon3tr와 캐슬 브레이커가 오고 갈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중재해야겠다고 판단한 박사는 상당히 강력하게 느껴지는 프레셔에도 의무감으로 어떻게든 말을 꺼내는 것에 성공했다.


"...둘 다 너무 흥분한 거 아니야? 우선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박사."

"박사!"


물론 그런 상황에서의 박사의 한 마디는 마치 보스 바로 앞에 수르트를 꺼내놓는 수준의 핵폭탄이나 다름 없었고, 동시에 입을 연 켈시와 백파이프는 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인가, 아니면 저 촌스러운 여자인가. 정해라."

"낸가, 아니믄 저 모지리 여자가! 정해도!"


어째서 이딴 꼬라지가 된 거냐...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한 박사를 앞에 두고도 둘의 언쟁은 멈추지 않았다.


"모지리? 대체 그건 어디서 나온 말인가. 내가 다양한 언어에 통달했지만, 그런 촌스럽고도 천박한 언어는 처음 듣는군."

"다양한 언어? 그기 자랑이다가? 자랑질만 가득하믄 박사에게 도움이 안 된다! 실속이 없구마!"

"...실속? 누가 봐도, 아니 객관적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은 나와, 겨우 군대에나 복무했던 너. 누가 봐도 격차는 명확하고, 따라서 내 쪽이 박사의 곁에 더 어울린다."

"다양한 경험? 하, 나잇살 먹구 그런게 자랑이가? 한심하다야. 박사의 곁에는 암만 봐두 어리구 사랑스러운 내 쪽이 어울리지 않나?"


풋, 하고 비웃는 백파이프. 그리고 나잇살이라는 한 마디에 결국 실처럼 팽팽하던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무너져 버린 켈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뻗었고 이내 그녀의 척추 쪽에서 거대한 이형의 괴물이 나타나 우렁차게 포효했다.

그 기세에 지지않고 늘 가지고 다니던 캐슬 브레이커에 손을 뻗은 백파이프는 재빨리 백덤블링을 하더니 캐슬 브레이커를 Mon3tr에게 겨누었고, 둘의 사이에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맹렬한 기세가 흐르기 시작했다.


"와, 정말 재밌어 보이네요. 그 쟁탈전에, 저도 조금 껴도 될까요?"


그 와중에 스산한 웃음을 흘린 아미야는 어느새 그녀의 검, 푸른 분노를 꺼내들고는 첸과 같은 발도의 자세를 잡으며 양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매력을 가진 여자 셋이서 한 남자를 원해서 캣파이트를 벌이는 상황. 어떤 남자들이라도 원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동시에 이 정도 무력이 동원되는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거부할 것 같은 상황에서 박사는 머리를 쥐어뜯는 것을 멈추고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중얼거렸다.


"...다치지만 마라. 제발 부탁이니까...뭐 하나 부수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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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과 상담을 끝내고 다음 날, 박사의 개인 숙소.』


이런저런 마음의 방황(?)을 끝내고 매우 편안히 숙면에 들어간 박사는 마찬가지로 매우 개운하게 침대에서 일어나서 한껏 기지개를 켰다.


"아이쿠...시원하구만."


팔 상태도 오케이, 다리 상태도 오케이, 허리 상태도 오케이. 그리고 부엌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까지, 박사의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최상에 가까웠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박사는 다시 한 번 목을 한 바퀴 돌리고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ㅡ팔은 문제없음.

ㅡ다리도 문제없음.

ㅡ허리도 시원함 그 자체.

ㅡ기분도 좋음.

ㅡ고소한 냄새에 마침 배도 고프...


여태까지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렇게 당황한 박사는 침대에서 재빨리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서 여태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부엌으로 서둘러 향했고, 부엌에 도착한 박사가 본 광경은.


"아, 박사! 잘 잤나?"


박사의 와이셔츠 하나만 입고 앞치마를 두른 백파이프가 빵을 굽고 있는 모습이였다.

순간적으로 뇌정지가 온 박사를 보며 갸우뚱하던 백파이프는 이내 박사에게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자연스럽게 박사의 뺨에 쪽 소리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가볍게 입맞춤을 한 백파이프는 뺨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당황한 박사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평소의 그녀라고 상상도 하지 못할 요염한 눈빛으로 박사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더니 부드럽게 속삭였다.


"이러믄 이제 정신이 드나? 여보야. 슬슬 시간이데이."


"어...엇?!"


헉, 하고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낸 박사는 이내 자신이 침대 바로 옆에 굴러떨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마에서 흐른 땀을 닦아냈다.


"...꿈이였나?"


이내 자신이 꿈을 꿨다는 것을 깨달은 박사는 안도와 아쉬움이 반반 섞인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두드렸고, 짝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고통에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깨어났음을 알아챘다.


"꿈도 참 괴상한 걸 다 꾸네...아 진짜 마침 시간도 딱 나갈 시간이네. 하 참..."


그렇게 잠시 투덜거린 박사는 이내 씻기 위해서 화장실로 향했다.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조차도 모를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채로.




로도스의 숙소는 기본적으로 홀수층과 짝수층으로 나뉘며, 홀수층은 남자가 쓰고, 짝수층은 여자가 쓴다.

그리고 로도스 수뇌부들의 숙소는 제일 윗층인 7층을 사용하는 중이다. 대신 7층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6층과 7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 설치된 아주 튼튼한 문에 7층의 호실이 적힌 카드키를 인식시켜야한다는 점과 아주 조금 더 넓다는 점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제일 윗층이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집무실과 거리도 조금 있다는 뜻이기에 오늘도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던 박사였지만, 무언가 큰 것이 왔다갔다 하는 소리와 익숙한 목소리에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고

이내 한 층 밖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박사는 6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살짝 열고 복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럼 다 옮겼사. 고맙다, 첸첸!"

"...후, 힘들어 죽겠네 진짜. 호시구마가 아니였다면 얼마나 큰일났을지..."

"소관이 도움이 되서 기쁩니다."


거기에는 밑의 방으로 이것저것을 옮기던 백파이프와 첸, 그리고 호시구마가 있었다.

이내 박사가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첸은 씩 웃더니, 백파이프의 어깨를 툭툭치며 계단문을 향해 손짓을 하더니, 막 방에서 나오던 호시구마에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간다, 호시구마도 가자."

"아, 넵. 알겠습니다."


호시구마와 첸은 잘해봐, 라는 느낌의 웃음을 지으며 떠났고, 박사는 백파이프에게 다가가서 가능한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백파이프. 그런데 뭘 하고 있던거야?"

"아, 좋은 아침이다, 박사...그...여기로 이사를 했거든, 그라니도 슬슬 혼자 방을 쓰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백파이프는 아침부터 이것저것 옮기느라 힘들었는지 살짝 붉은 얼굴에 땀이 이마에 맺혀있었고, 그것을 본 박사는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서 백파이프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잠시 박사의 손길을 느끼던 백파이프는 안 그래도 붉던 얼굴이 더 빨개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지만, 박사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땀이 많이도 났네. 아침부터 고생했어."

"아, 아아 괜찮다! 내사 이리 튼튼하니까!"


허둥지둥 얼버무리면서 붉은 얼굴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백파이프.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을 하던 박사는 일부러 백파이프에게 짖궃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별로 튼튼하지 않은데...와이번 여자는 튼튼하지 않은 남자는 별로 안 좋아한다며?"

"엥?!"


백파이프가 갑자기 고개를 확 드는 탓에 박사의 손수건이 손에서 미끄러졌지만, 그보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쓸 겨를도 없던 박사에게 순식간에 오만가지 사투리가 섞인 말이 귀에 들려왔다. 


"아, 아이다! 와이번 여자들이 그칸다는 이바구는 어디서 들었나? 절대절대절대 사실이 아이다! 적어도 내는 절대 아니니 신경쓰지 마라 박사! 박사가 휠체어 타고 다녀도 내는 좋다!"


이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한 백파이프는 뭔가를 더 웅얼거리더니 박사가 떨어트린 손수건을 재빨리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 아무튼 이건 내사 빨아서 돌려주겠사! 먼저 가 있그라!"

"아니 그건 내가 해도 되..."


그러나 뭐라고 더 말하려던 박사의 말을 순식간에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걸로 끊어버린 백파이프였다.

잠시 머리를 긁적인 박사는 빙긋 웃으며 돌아서서 집무실로 향하는 걸음을 계속했다.




이젠 고정 멤버가 되어버린 다섯 명과 순식간에 서류들을 처리한 박사는 백파이프와 나란히 선두에 서서 온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요새는 확실히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든단 말이지."

"며칠 안 되었는데도 그렇다믄 박사는 확실히 소질이 있다. 앞으로도 내랑 꾸준히 다니자, 알긋나?"

"그래그래, 알았어."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걷는 시간도 잠시, 온실에 도착한 그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오늘도 박사와 백파이프는 함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하나에 내려가고, 둘에 올라오는거라, 내사 뒤에서 이리 눌러줄게."

"그래도 좀 아프긴 아픈데..."

"그럼...하나!"


하나라고 말하면서 백파이프는 박사의 등에 상체를 밀착한채로 천천히 박사의 몸을 누르기 시작했다.


"아야야야...아프잖아. 조금만 더 살살..."

"괜찮다! 조금만 더!"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박사는 얇은 옷 너머로 전해지는 볼륨감이 충분한 부드러움을 만끽하며 다리와 허리의 고통을 견뎌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첫 세트가 끝난 뒤 누워버린 박사를 백파이프는 상냥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지옳지, 잘하고 있다, 박사."

"뭐랄까...내가 너무 많은 이득을 보는 것 같아."

"엥? 무슨 말이고?"


누운 박사를 들여다보며 백파이프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몸의 움직임에 맞춰 가슴도 움직이는 것을 본 박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부드러웠어."

"...응?"


박사의 중얼거림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백파이프였지만, 곧 박사의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고 얼굴을 붉히면서 양손을 뻗어 박사의 눈을 가렸다.


"박사는 엉큼하다!"

"혹시...나 입으로 말한거야?"

"...남사시럽다..."


비록 눈이 가려졌지만, 손에서 전해지는 열기와 말만으로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낀 박사는, 마찬가지로 양손을 뻗어 자신의 눈을 가린 백파이프의 손등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그, 미안?"

"아..."


박사가 손을 얹자 잠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쿡쿡 웃은 백파이프는 손을 돌려 자신의 손등에 얹은 박사의 손을 붙잡았다.

손이 치워진 탓에 다시 앞이 보이게 된 박사는 자신의 손을 잡은 채 그야말로 홍당무처럼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빙긋 웃으면서 백파이프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박사와 얼굴이 빨개진 채 웃는 백파이프,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그, 그래서 내...가슴은...기분 좋았나, 박사?"

"솔직히...응."

"내는 그, 그렇다면 기쁘다..."


부끄러움을 참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백파이프가 무척 귀엽다고 느낀 박사였다.

그럼, 다음 운동을 시작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는 박사에게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우리 둘만 있을때는...만...만져봐도 괘않타..."


상상도 못한 발언에 자기도 모르게 양 팔을 괴상한 방향으로 꺾은 박사와, 마침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서 도망쳐버린 백파이프.

오늘은 자유 운동인가...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풀기 시작한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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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여러가지 일이 많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땀에 절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끝마친 박사는 옷을 정리하다가 손수건을 받는 걸 깜빡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기억해냈다.

그러나 어차피 내일 받아도 괜찮겠지, 그리 판단한 박사는 잠옷으로 갈아 입고, 침대에 누워서 평온한 꿈나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단말기의 호출음이 격하게 울리기 전까지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단말기의 버튼을 누르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박사는 말했다.

 

"...누구신가요"

"박사님♥"

"...아미야?"


살짝 짜증이 난 박사의 귓속에 달콤하고도 무서운 목소리가 파고들었고, 순식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앉은 박사는 매우 공손하게 단말기를 두 손으로 쥐었다.

단말기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스트로베리 케이크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후후, 그렇게 공손하게 받으실 필요는 없으신데♥"

"가끔...너는 참 무섭단 말이지...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 맞다...박사님. 조금 곤란하다고 해야할까..."


단말기 뒤에선 분명 토끼(?)소녀가 눈썹을 모으고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상상하며 박사는 침착하게 용건을 물었다.


"박사님을 이 시간에 뵙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셔서요♥ 제가 적당히 처리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누군데?"


아미야의 처리라는 한 마디에 오만가지, 특히 도넛을 생각한 박사는 있는 힘껏 아미야를 만류했고 힝, 하고 살짝 삐진듯한 소리를 낸 아미야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혹시, 어떤 걸 생각했나요...박.사.님." 

"아, 아니. 뭐 별 건 아니고...여튼 누가 날 보고 싶어해?"

"...그럼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요."


잠시 숨을 쉬고 멈춘 아미야는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오퍼레이터, 백파이프씨에요. 돌려보낼까요?"




"이야, 박사의 방 생각보다 넓잖나?"


물론 박사는 아미야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백파이프를 돌려보낼 생각 따윈 없었고 이내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온 백파이프는 들어오자마자 박사의 방을 이곳저곳 훑어보기 시작했다.

연신 아, 여기는 딸린 부엌이고, 여기는 침실이고, 여기는...서재? 화장실도 두 개나 있사! 그렇게 한참 돌아다니던 백파이프는 아차,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앉았다.  


"아, 맞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박사."

"아니...뭐 괜찮아. 그래서 무슨 일이야?"


살짝 낡은 트레이닝복, 그리고 방금 목욕하고 나왔는지 보기만 해도 맨들맨들한 피부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평소와는 같으면서도 약간 다른 모습에 살짝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박사는 차를 가지고 와서 백파이프에게 주고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차도 대접해주고, 정말 고맙사. 여기 온 이유는..."


잠시 차를 마시며 뜸들이던 백파이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박사에게 내밀었다.


"손수건 세탁 다 했으니 돌려주겠사."

"아, 맞다. 갑자기 들고 가서 좀 놀랐지 뭐야."

"내는 또 잘 까묵으니까, 생각 났을때 해야하지 않긋나 싶어가."


아하하, 그렇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인 백파이프가 내민 손수건을 박사는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고, 어느새 둘은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라니가 최근 키 크는 운동을 클릭과 함께 시작했다던가, 첸의 찌푸린 얼굴이 요새는 좀 낫다던가, 호시구마의 바이크 솜씨가 대단하다던가.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 박사의 입에서 '농담'이 나왔다.


"그나저나, 다 큰 아가씨가 이런 밤중에 외간 남자의 방에 있어도 괜찮은거야?"

"어...?"


박사의 '농담' 탓에 둘은 즐거웠던 탓에 까먹고 있었던 '사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자각해버렸다.

ㅡ단 둘이서.

ㅡ박사의 방에.

ㅡ백파이프가 무방비한 차림을 하고.

ㅡ마찬가지로 무방비한 차림을 한 박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ㅡ심지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각한 사이다.

깨닫는 순간, 조금 당황해버린 박사와, 마찬가지로 당황한 백파이프는 서로에게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는...

...대화가 끊겼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한다고 생각한 박사는, 고개를 푹 숙인 백파이프에게 말했다.


"그...저기, 슬슬 시간도 늦었고 하니까..."

"...박사."


돌아가는게 어떻겠냐고 말하려던 박사의 말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끊은 백파이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사의 옆에 다가가더니, 바짝 붙어서 앉았다.


"어...?"


순식간에 왼쪽이 부드럽고도 따스한 감촉으로 채워지고,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박사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자신의 입술에 올려진 백파이프의 왼손 검지손가락에 눌려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어질때까지 영원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잠시 얼어붙어서 앞만 바라보던 박사는 자신의 왼팔을 부드러운 감촉이 감싸는 것과 함께 어깨위에 살며시 가벼운 무언가가 놓인 것을 깨닫고 옆을 쳐다보았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고 어깨에 기댄 백파이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가 박사의 귀에 들려왔다.


"...잠시, 이대로 있고 싶다."


매번 부끄러워하면서도, 가까이 있고 싶다는 일념에 용기를 내는 사랑스러운 와이번 소녀를 어떤 남성이 거부할 수 있을까.

박사는 저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기댄 백파이프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내렸고, 한숨과도 같은 기쁨의 목소리가 백파이프의 입에서 맴돌았다.


"...매번 고마워. 백파이프."

"...내 머리카락 맘에 드나?"


자신감이 없는지 어딘가 움츠러드는 목소리에, 박사는 백파이프의 뿔을 피해 조심스럽게 얼굴을 돌려 머리카락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 박사의 행동에 기쁘다는 듯 백파이프가 조금 더 힘을 줘서 박사의 팔을 끌어안고는 중얼거렸다.


"이 시간이, 너무 기쁘다...내는 모지리라 요렇게밖에 말을 못하겄다..."

"...그거면 충분해."


그렇게 대답한 박사에게 백파이프는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원하듯, 젖은 눈빛으로 박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깨달은 박사도 백파이프의 부드러워보이는 입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고, 

둘의 실루엣이 완전히 겹쳐지는 순간이 드디어 가까워졌다.














그것을 방해하는 박사의 침실에서 단말기가 큰 소리로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아, 왜. 그래. 난 멀쩡한데? 그래서? 뭐...그런 이야기면 내일 해도 되잖냐! 끊어, 이 망할 녹색 고양이가."


좋은 분위기 다 망쳤네, 그렇게 투덜대며 돌아온 박사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서 고개를 숙인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백파이프의 옆에 앉아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 미안해. 백파이프."

"아니...괜찮다, 박사. 무슨 일이였나."

"하아...진짜, 보안이 어쩌구 저쩌구...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였고...짜증나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완벽하게 담을 수 없듯이 좋았던 분위기도 이렇게 식어버리면 돌아올 수 없는 법.

일어나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설거지통에 가져다놓은 박사는 크흠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그, 밤이 너무 늦었으니까...나머지는 내일, 어때?"


그 나머지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그렇게 투덜거리는 박사의 귀에 아까보다 더 풀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응, 알았다. 박사..."


누가봐도 시무룩해졌다는걸 온 몸으로 표현하던 백파이프를 안쓰럽게 보던 박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이렇게 되서...그, 혹시 뭐...그래. 뭔가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줄게."

"......"


그 말에 한참 아무 말도 없던 백파이프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박사에게 내밀었고 그것을 받아든 박사는 순식간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카드키?"

"...내 방의 여벌 카드키다."

"어...그래,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원하는 게 이거야?"

"...박사 방의 여벌 카드키, 하나만 나한테 줘. 교환하자."


601이라고 적힌 카드키를 받은 박사는 어느새 표준어로만 말하고 있는 백파이프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버린채 말없이 침실로 들어가서 701호가 적힌 카드키를 백파이프에게 내밀었다.


"...그, 이거면 충분해? 뭔가 다른게 좀 더..."


뭔가 새 농기구라던가, 그런걸 말하려던 박사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가서 카드키를 실험하고 잘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백파이프는 그제서야 웃으면서 박사를 껴안았다.


"이거면 충분하다, 고맙사!"

"어, 응...그걸로 기분이 풀리면 다행인데..."


속으로 큰일날 뻔 했네...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안겨오는 백파이프를 마주 껴안아주는 박사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환한 웃음을 짓는 백파이프.

누가 봐도 꽁냥꽁냥하는 커플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광경은 이내 백파이프가 아쉬운 듯 박사의 가슴팍에 얼굴을 한 번 묻고 풀어주는 것으로 끝났다.


"그럼, 늦은 밤이니 돌아가겠사, 낼 아침에 보자!"

"어..,그래, 잘 자고 내일 봐."


문이 닫히고, 어쨌든 잘 풀렸으니 된 것 아닐까...그렇게 중얼거리며 박사는 침실에 들어가서 누워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침실은 작게 코 고는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한 편, 작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던 백파이프는 6층과 7층 사이의 잠긴 문에 도착해서 가볍게 카드키를 가져다 댔고, 문이 열리는 것에 빙긋 웃으며 카드키를 소중하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일부터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박사.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자신의 방에 들어간 백파이프는 윗층에서 자고 있을 자신의 미래의(?) 연인에게 가볍게 손으로 키스를 날리고는 부끄러움에 못 이겨 발을 동동 구르며 침대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소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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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선지 장기 연재가 된 느낌인데 이 소설에 무엇이 부족한지 깨달았다

혀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달함이 필요한 것 같음

그래서 당분간은 가능한 달달하게 갈 거임

그리고 백파이프 사투리는 매번 생각하는데 대체 어디 사투리인지 모르겠다

영동 맞나?



피드백 환영

아니 꼭 해줘

다음화는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