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를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무찌르는 더없는 위업을 세우고 화산으로 돌아가는 천우맹의 중진들.


"그럼 우리 이제부터 뭐 하는 겁니까?"

".......수련?"

"미쳤습니까?"


윤종이 머뭇거리며 답하자 조걸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애초에 청명이 새끼는 이걸 위해서 저흴 굴린 것 아닙니까. 좀 쉬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유이설이 툭 던지듯 물었다.


"뭐, 이번엔 진짜 잘했으니까 딱 각 잡고 일 년? 아, 아니 한 달? .....칠 주야?"

"......."
"....하루.....?"


윤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청명이한테 길들여진 지 오래인 그들에게 수련을 안 하고 논다는 것은 '숨 안 쉬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볼까?'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때.


".....저건 뭐지?"

"예?"


백천이 앞을 가리켰다.


화산의 입구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사술?"

"마공도 아닌 것 같은데."

"흐음."


현종이 턱을 쓸었다.

흥미롭다는 듯한 그 표정을 보고 당군악이 물었다.


"맹주님, 혹시 저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던 현종이 말을 이었다.


"제 사조, 그러니까 제 선선대 장문인께서 이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화산의 입구에 아주 드물게 신비한 안개가 끼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과거의 자신과 만날 수 있다는군요."

"과거의 저와 만날 수 있다고요?"

"그렇다고 합니다. 비록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사조께서는 과거의 자신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화산을 지켜갈 용기를 얻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저도 들어가 보고 싶군요."

"화산의 문도가 아니어도 효력이 있을 것 같소?"


들뜬 당군악에게 맹소가 툭 농을 던지자, 현종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천우맹은 문파 간에 차별을 두지 아니하고, 화산의 선인들께서는 천하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종남도?"

"......."


순간 말문이 막힌 현종을 도와 현상이 지원사격을 했다.


"그래도 이송백 소도장 정도면 선인들께서도 허가하시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갑자기 시선이 쏠리자 이송백이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그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진금룡.

화종지회 때 현종 앞에서 했던 망언을 떠올린 몇몇이 살짝 떨떠름한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아무튼! 들어가 보십시다!"


그렇게 천우맹의 과거탐방이 시작되었다.




현종.


".....허어."


익숙한 통로.

그리고 익숙한 어두움.


어찌 잊겠는가?


급작스레 화산의 장문인이 되고, 어느 날 우연히 기관을 발견하여 이 통로를 발견한 뒤 느꼈던 희망을.

그리고 그 통로 끝에서 다시 만났던 절망을.


당시의 화산은 만년한철을 자를 힘도, 지킬 힘도 없었다.

결국 현종이 그곳에서 건진 것은 통로를 따라 이어진 야명주들.


그래도 그것이 있었기에 화산은 청명이 오기 전의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었다.


통로 끝까지 걸어가자 익숙하고도 낯선 등이 보였다.

힘없이 움츠러든 채 덜덜 떨리는 등.

자신의 것이었다.


'저런 모습을 이곳에서만 보인 것은 잘한 일이었군.'


때때로 자신의 고통을 사제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알겠다.

만약 화산의 제자들이 자신의 저런 모습을 보았더라면, 화산은 그날로 끝장이 났을 수도 있다.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니 어서 몇 마디라도 나눠야......'


멈칫.


통로 안으로 스며드는 작은 빛줄기를 발견한 현종이 고개를 살짝 위로 올렸다.


움찔.


그와 눈이 마주치고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익숙한 눈동자.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광경에 현종이 미소지었다.


'처음부터 너였구나.'


현종이 검지를 입술에 살짝 올렸다.


뭐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어린 청명이 잠시 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통로가 조금 더 어두워졌다.


저벅.저벅.


"누구요?"


인기척을 느낀 젊은 현종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크게 떠지는 눈, 떡 벌어지는 입.


"자자, 진정하시게."


현종은 젊은 자신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려 줬다.


하기야, 면경 속에서나 보던 얼굴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나, 나........?"

"그렇다네. 미래의 자네지.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게나."


현종이 흡족하게 웃었다.

잠시 망설이던 젊은 현종이 현종에게 물었다.


"훗날의 화산은......?"

"돌아왔네. 더없이 화려하게, 더없이 장대하게 돌아왔지. 어쩌면 백 년 전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


화산의 장문인이자, 천우맹의 맹주인 현종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


삽시간에 눈물이 고이는 젊은 현종의 눈.

너무도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젊은 현종의 어깨를, 현종이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잠시 후 격정을 다스린 젊은 현종이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안엔 뭐가 있습니까? 어떻게 여는지 저는 도무지......"

"잘 보게."


흐뭇한 미소를 지은 현종이 검을 뽑고 앞으로 나섰다.


이내 더없이 유려하게 전개되는 육합권, 죽엽수, 이십사수매화검법과 매화검결.

자하강기의 노을빛 기운과 붉디붉은 매화가 만발하는 광경은 젊은 현종의 심혼을 빼앗았다.


"지금 그건....?"

"이십사수매화검법, 그리고 매화검결. 원래대로라면 얼마 후에 돌아올 화산의 검법이지. 이 안에 그 비급이 들어 있을 걸세."

"아!"


잠시 후 덜컹, 소리를 내며 비고의 문이 열렸다.


"자, 들어가세."


현종은 이십사수매화검법 도해본을 본 뒤의 젊은 자신의 반응을 기대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

"........"

"없네?"


태을미리검, 육합검, 칠매검록, 대화산파화음현사업장부까지.


화산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충 갖춰져 있지만, 수많은 무공서적들이 있어야 할 서고는 텅 비어 있었다.


'이것도 청명이 놈인가?'


살짝 열이 뻗친 현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젊은 현종은 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양이었다.


"꺼.....꺼억........"

"등선하지 말게."


현종이 한숨을 쉬며 젊은 자신의 등에 손을 얹고 진기를 불어넣었다.


"남은 이야기는 처소에 가서 하고 싶은데, 매화차 한 잔 어떤가?"

"조, 좋습니다!"


이내 서책들을 소중하게 움켜쥔 젊은 현종이 부리나케 현종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둘 중 누구도 세 번째 책장 밑에 있는 금은보화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계속


Mamma mia2: Here we go again!의 마지막 파트 Super Trouper 파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창작임

다른 사람들 반응은 어떨지 댓글로 추측해보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