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2533509

2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2541510

3화 https://arca.live/b/bluearchive/42580864 


잠깐 시점과 시간을 바꿔서 게헨나 식당을 보자.


하루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앞에는 주리가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했다면서 이번에 요리한 송아지 T본 스테이크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비주얼이 그럴싸 하군요."

하루나는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요리가 튀어나올거라 예상했는데, 비주얼만은 자신이 인정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스테이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냄새도 의외로 괜찮았고.

적어도 저번에 봤던 지옥에서 올라온 동태찌개보다는 훨씬 볼만했다.

"안 본 사이에 정말로 노력하셨나 보군요. 하지만 비주얼과 냄새는 어디까지나 겉가지. 비주얼만 그럴듯한 식당은 이미 진절날 정도로 들러봤습니다. 어디 그럼.... 맛을 볼까요?"

하루나는 조심스럽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잘라냈다. 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어서 우아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맛봤다.

"신선한 송아지 고기를 레어로 구웠어요."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스테이크로군요."

하루나는 입을 우물거리더니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 다음에 하루나는 역겹다는 얼굴로 차마 고기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지 못하고 뱉어냈다.

"고기가 얼마나 신선한지 제 입안에서 음머 거리며 어미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로 신선하고 덜 익은 스테이크는 되살리는데 수의사도 필요 없어요!"

하루나는 분노한 얼굴로 잘라낸 스테이크 단면을 주리에게 보여줬다. 그 말대로 주리가 구워낸 송아지 스테이크는 겉면만 그럴싸했지, 내면은 전혀 익지 않아서 생고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 고기, 어느 업체에서 사온 겁니까? 도축을 얼마나 대충 했는지 핏물이 너무 많군요. 제가 흡혈귀도 아닌데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어라? 레어 스테이크는 이 정도가 딱 아닌가요? 거기에 육즙이 넘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레어 스테이크는 어디까지나 고기에 들어있는 미오글로빈이 변성되지 않아서 색깔이 변하지 않은 것 뿐이지, 과학적으론 확실하게 단백질이 변성되면서 익은 고기입니다! 그리고 핏물과 육즙은 엄연히 달라요! 세상에! 당신 조리사이면서 그런 기본적인 지식도 모르는 겁니까? 지금까지 후우카 밑에서 일하면서 뭘 배운 거지요?"


"후우카 선배 밑에서 많은 걸 배우긴 했지만... 선배의 레시피는 그대로 따라기엔 너무 삼삼한 맛이 나서요, 그래서 제가 더 맛있을 것 같은 방향으로 어레인지를 해봤어요."

"기본도 모르면 레시피는 건드리지 마세요!"

하루나는 화를 내면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리에게 빡쳐서 결국 우아함이고 뭐고 집어던진 다음에 고함을 질렀다.

하루나는 미식가로서의 인생, 그리고 성격이 급격하게 망가졌다. 그녀는 평소에 맛 없는 식당을 폭탄으로 날리는 이유가 맛 없는 음식을 대접하는 식당을 폭파시키는 일은 손을 닦은 뒤에 수도꼭지를 닫는 거와 같다고 비유해왔다.

지금 하루나가 매일 주리의 요리를 시식뒤 평가하는 일은 화장일에서 똥을 싼 뒤에 물을 내리지도 못하고, 손도 닦지 못하는 경험을 매일 되풀이 하는 거랑 다름이 없었다.

평소 우아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입은 슬금슬금 거칠어졌고, 얼굴만 보면 게헨나가 아니라 트리니티 출신으로 오인할 정도로 기품있던 용모가 분노로 충만해졌다.


하루나는 마음속으로 엘레강스를 되찾자고 외치면서 얼굴을 되돌렸다.  그녀는 스테이크를 옆으로 치우고서 다음 요리를 시식했다.

"....."

하루나는 주리가 만든 애플 파이를 한 입 먹더니 싸늘한 얼굴로 접시를 들고서 주리에게 남은 손으로 손짓했다.

"주리 씨, 이리 와보세요."

"설마 제 애플 파이에도 문제가 있는 건가요? 스테이크는 처음 해보는 거라 익숙하지 않았지만, 애플 파이는 집에서 자주 연습해본 요리라서 자신이 있었는데."

주리가 슬픈 얼굴로 하루나에게 다가가자, 하루나는 애플 파이를 주리 귓가에 대고서 중얼거렸다.

"주리 씨, 이 아삭아삭한 소리가 들리십니까?"

"무슨 소리가요?"

"바로 내부가 전혀 익지 않은 당신의 애플 파이에서 사과나무가 자라는 소리입니다."

하루나는 주리에게 그리 고했다. 주리는 눈을 감고 애플파이에 귀를 기울이더니, 밝은 얼굴로 눈을 떴다.

"소리가 정말로 들리네요?"

"...?"

하루나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애플파이에 귀를 귀울였다.

진짜로 애플파이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파이 안에 벌레라도 들어간 건 아니겠지요!?"

미식가인 하루나는 요리의 주적인 벌레를 떠올리자 황급히 접시를 치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리의 애플파이를 뚫고 나온 것은 벌레가 아니라 주리가 만든 애플파이에서 자란 사과나무 새싹이었다!

"진짜로 사과나무가 자라났어요!"

주리는 자신의 애플 파이에서 새싹이 자라나자 흥분했다. 하루나는 이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뒷걸음을 쳤다.

"음머어어어어!"

하루나는 주방에서 들린 뜬금없는 송아지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루나가 치운 송아지 스테이크에서 꿈틀거리면서 송아지의 얼굴이 자라났다. 잘린 고기 단면에 꿈틀거리면서 붉은 핏덩이가 송아지의 주둥아리 형상을 취하는, 자신이 도축당하기 전에 해어진 어미소를 찾아댔다.

하루나는 지옥의 송아지 스테이크와 애플 파이를 번갈아 가면서 보았다. 송아지 스테이크는 점점 자라는 걸 봐선 곧 네 다리로 걸어다닐것 같았고, 사과나무는 정상적인 나무가 아니라 어째 사람의 얼굴이 박힌 인면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잠시 뒤, 하루나와 주리는 지옥에서 돌아온 애플파이와 송아지 스테이크와의 전쟁을 벌였다.

게헨나의 주방은 진정한 의미로 지옥의 주방이 되었다.

"주방이 시끄럽군."

그리고 막 식당에 들어온 시로미 이오리가 주방을 보면서 그리 중얼거렸다.

"이봐, 식사는 아직이야? 난 배고프다고. 잠깐, 점심시간인데 다른 학생은 콧배기도 안 보이는 거지? 이봐 거기 너, 최근 급양부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이오리는 별 생각 없이 학원 식당에 들어왔다가 이상할 정도로 식당이 조용한 걸 알아차렸다. 부엌은 시끌벅적한데 정작 밥 먹으러 들어온 학생은 자기와 옆자리에서 음료수를 홀짝이는 학생 한 명뿐이었다.

"급양부? 별건 아니고 후우카가 급양부를 그만뒀어. 이제 주리가 주방장이고, 우리 미식연구회는 주리 보조야."

"후우카가 급양부를 그만뒀다고...? 그게 별 거 아니라고?"

이오리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왜 식당에 아무도 오지 않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배고파? 이거라도 마실래? 내가 직접 만든 민트초코 밀크 셰이크야."

"민트초코!?"

이오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건 묻지 않고서 상대방이 새로 꺼낸 민트초코 밀크 셰이크를 받아마셨다. 이오리는 민트초코라는 말이 나오면 눈이 돌아가는 민트초코 성애자였다.

"푸헉! 뭐야 이거! 어느 미친 놈이 민트초코 밀크 셰이크에 고수를 넣었어!"

이오리에게 고수 첨가 민트초코 밀크 셰이크를 건냈던 이즈미는 호의를 배풀었는데 적반하장으로 자신에게 화내는 이오리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음에 안 들어? 주리가 가르쳐준 레시피가 얼마나 맛있다고. 이 독특한 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로미가 불쌍해."

"이건 민트초코에 대한 모독이야! 너나 많이 처먹어라!"

이오리는 화를 내면서 자리를 떠났다. 이즈미는 이오리가 한입 먹고 남긴 고수향 첨가 민트초코 밀크 셰이크를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다들 이상하단 말이야~"

이즈미는 주방에서 도주하던 송아지 스테이크를 맨손으로 잡더니 그로테스크한 외형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뜯어먹었다.

"물론 후우카가 하는 음식은 맛있지만, 주리가 만들어 주는 음식도 엄청 맛있는데~ 왜 다들 이 맛을 이해하지 못할까? 음식이 살아 움직이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