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foreignpolicy.com/2016/10/23/turkeys-religious-nationalists-want-ottoman-borders-iraq-erdogan/


터키의 새 지도는 오스만 제국의 고토를 요구한다.




지난 몇 주간 모술 해방에서 터키의 역할을 둘러싸고 일어난 앙카라와 바그다드의 갈등은 터키의 고토회복운동을 촉발시켰다. 두 번에 걸처 터키 대통령 레제프 에르도안은 현대 터키의 국경을 만든 로잔 조약이 터키의 영토를 빼앗았다고 비판했다. 에르도안은 현재 소규모 터키군 기지가 있는 이라크 모술에 터키가 역사적 소유권이 있으며, 그 곳의 터키계 소수민족도 터키의 관심 안에 있음을 천명했다. 한편, 터키가 시리아의 쿠르드 군대를 폭격하고 에게 해 상공에서 그리스 전투기들과 꼬리잡기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터키의 친정부 미디어는 '새로이 개선된' 터키 국경을 나타내는 부정확하고 조잡한 지도를 내보냈다.




터키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라크 땅을 합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나, 이 지도와 수사법을 통해 현재 터키의 대내외적인 정책과 앙카라의 자기이미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도는 터키 정치의 오래된 요소인 터키 민족주의가 새로운 역사관과 약간의 종교를 섞어서 더 강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면, 이 민족주의에 이끌린 군사적 개입과 대결적인 언사는 터키의 안보와 지역적 평판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으로 터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 터키 지도는 대그리스주의나 대마케도니아주의, 대불가리아주의, 대아르메니아주의, 대아제르바이잔주의, 대시리아주의의 주창자들이 내세우는 지도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이 지도는 오스만 제국이나 무슬림 세계 전체, 터키계 지역 전체의 지도가 아니다. 그저 약간 더 커진 터키 지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 국경 뒤에 숨겨진 역사는 에르도안 버전의 민족주의가 가진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나타낸다. 이 지도들은 터키가 국민 협정을 통해 얻은 국경선을 보여준다. 에르도안이 최근에 이라크 총리에게 터키가 모술에 대해 가지는 관심에 대해 알아보려면 읽어보라고 권한 그 문서는 오스만 제국이 1차대전에서 패한 1920년에 오스만 제국이 지킬 수 있었던 영토를 나타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협정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 연합국과 정전을 맺은 1918년 10월에 오스만 군이 아직 차지하고 있던 지역들을 명시하고 있다. 터키의 남쪽 국경에서 이 선은 지금 시리아인 알레포 북쪽을 지나 현재 이라크인 키르쿠크까지 닿는다.




연합국이 오스만 제국의 땅을 1918년때보다 더 줄이려고 하자 재개된 싸움에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군대는 유럽 군대를 무찌르고 현재의 터키를 만들었다. 지난 세기동안 터키는 아타튀르크가 국민 협정을 통해 정해진 국경선을 로잔 조약의 국경선으로 대체해 국경을 현실화시켰다고 칭송해 왔다. 그 협정선은 과장된 영유권이었으며, 새 국경선은 신생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비현실적인 영토 야심에 빠지는 것을 막아 온 실용적인 경계선이기도 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불가리아, 헝가리 같은 나라들이 자기 원하는대로 국경선을 그으려다가 대재앙을 맞은 것과 비교해, 아타튀르크와 그 후계자들은 이 영토 야욕을 현명하게 거부했다.



에르도안은 반대로 모술과 에게해의 섬들을 로잔 조약에서 포기한 아타튀르크의 행동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배신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 여태껏 보여진 것과 달리 더 유능하거나 애국심이 투철한 지도자가 있었더라면 더 많은 땅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에르도안의 역사 해석은 미국에서 많은 화제가 되었던 그의 신오스만주의가 가진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10년 전만 해도 에르도안이 오스만과 관련된 것에 보여준 열렬한 옹호는 이슬람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유효했고, 심지어 일부 미국 정치비평가들은 터키가 미국의 역할에 도전하려고 한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 협정을 고토회복의 명분으로 들이대는 것은 터키의 이웃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며, 아랍 세계 전역에서도 다른 곳처럼 에르도안의 신오스만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에르도안이 국민협정 운운하는 것은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터키의 세속적 민족주의 역사관을 거부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재정의했는지 보여준다. 정부 홍보물은 7월 15일 쿠데타에 대한 저항을 묘사할 때, 터키 독립전쟁의 정신을 불러일으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에르도안은 오스만과 더불어 오스만이 있기 수 세기 전에 존재했던 셀주크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며, 심지어 아타튀르크의 1930년대 선전에서 처음 유명해진 이슬람 이전 투르크계 민족들인 돌궐족과 아바르족, 카라한 한국도 빠지지 않는다.




시리아와 이라크 모두에서 에르도안은 주변국의 터키계 소수인종들을 이용해서 오랜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패망이다. 투르크멘인들이 주축인 술탄 무라드 여단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PKK 모두와 싸워 온 앙카라의 군사 자산이다. 마찬가지로 모술 인근의 투르크멘 주민들 또한 이라크에 존재하는 앙카라의 자산이자 관심사이다. 터키 특수부대들은 2003년부터 터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북부 이라크의 PKK에 대응하고자 이라크 투르크멘 전선과 협력해 왔다.




지난 세기동안 북부 그리스와 키프로스의 터키계 소수인종들도 비슷한 역할을 해 왔다. 이들의 안녕은 그 자체만으로 터키 민족주의자들의 관심 대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아테네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협상수단이었던 것이다.(그리스도 마찬가지로 터키의 그리스계 소수인종들을 똑같이 사용했고, 양측 다 그에 따른 보복을 겪었다) 키프로스의 사례에서, 1974년에 있었던 터키군 침공은 섬의 터키계 거주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졌다. 에르도안은 로잔 조약에 대한 언급에 이어 '터키는 서부 트라키아와 키프로스, 크림을 포함한 어디에서든지 같은 동포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 그리스를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크림 타타르족을 보고 당분간은 발 뻗을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한 이후, 터키가 크림 타타르족의 상태에 대해 우려하기는 했지만 러시아와의 호전된 외교 관계가 결국 민족적 공통성을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터키의 외교 정책 주제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다. 수니 종파주의이다. 모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에르도안은 터키가 '투르크인 형제들'이나 '수니파 아랍 형제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세속주의자의 투르크 민족주의처럼 이 수니 종파주의는 국내적으로 호소력 있는 주제이며, 에르도안은 이것이 터키의 외교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에르도안의 새로운 종파주의는 시아파의 모술 점령이 가지는  위험성을 수니파 신도들에게 경고하는 것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정책의 영향력은 시리아에서 가장 잘 보여진다. 터키는 시리아에서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한다.(아사드 정권은 알레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던 시리아던 터키의 종파주의는 실용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비록 이란이 시리아에서 터키와 다른 편을 지원하고 있지만 앙카라는 이란과의 상호호혜적인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며, 필요하다면 아사드와 평화회담을 가질 의사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넓은 시선에서 볼 때, 시리아와 이라크에 미치는 터키의 개입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이 내전의 위기에 직면할 때, 그 기회를 틈타 터키가 고토회복을 노리는 것은 과거에도 있어 왔으며, 현재 중동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터키는 2차대전 직전의 위기를 틈타 프랑스 통제 하에 있던 하타이를 합병한 바 있고, 2차대전 이후 터키 언론은 신생 시리아의 알레포와 이탈리아에게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도데카네소스 열도에 군침을 흘렸다. 또한 앙카라는 키프로스가 영국 통제하에 있을 때는 그곳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키프로스의 독립 협상이 시작하자마자 터키가 키프로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리스가 키프로스를 합병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에야 터키는 현상 유지를 위해 키프로스를 침공했다. 이것에서 미루어 보아 현대 중동의 정치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터키가 지금 취하는 행동은 그리 놀랍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중동에서 터키가 취하는 정책은 PKK와의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갈등은 PKK가 시리아 북부에서 세력을 늘림에 따라 더 확대되었다. PKK는 터키와 주변 국가들의 관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1998년, 터키는 시리아가 이들의 지도자를 숨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시리아를 공격하기 직전까지 갔고, 결국 의도를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터키는 대 PKK 군사 작전을 위해 20년 가까이 모술 지역에 군사력을 유지해 왔다. 앙카라는 이러한 행동을 국가 안보와 자기 방어라고 해명해 왔으며, 터키 내부적으로도 대부분 수긍한다. 오늘날에도 이 자기 방어는 이라크에서 터키가 행하는 활동들에 대한 주요 명분이다. 에르도안은 이곳의 터키군 활동에 대해 '터키를 노리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예방 활동'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라크에서 PKK가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한, 이것은 국내외 모두에서 국경 너머로의 군사 활동에 대한 설득력 있는 명분이 될 것이다.




모술에서 터키가 행하는 활동에 대한 이런 민족적, 종교적, 역사적 이유에 더해 에르도안은 한 가지를 덧붙였다. 미국과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아무 연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지나치게 큰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에 따르면 터키는 이라크와 220마일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음에도, 이 지역에 연고도 없이 '들락날락거리기만 하는' 어떤 나라들은 터키가 이라크에 손 대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14년 전 미국은 사담이 오라고 해서 이라크로 왔던 건가?'



역사는 제처두더라도, 해외 개입을 행하는 유일한 근거는 그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임을 앙카라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술에 대한 터키의 계획이 정당한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