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귀주의 여자 장군 ㅡ


설죽화는 이관(李寬)이라는 평민의 딸이다.  평안북도 귀주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이관은 제2차 거란전투 때 양규의 부대에서 전사하였다. 이때 그의 품속에서 시가 한 수 발견되었는데 ‘이 땅에 침략 무리 / 천만 번 쳐들어와도 / 고려의 자식들 / 미동도 하지 않는다네 / 후손들도 나같이 죽음을 무릅쓴 채 싸우리라 믿으며 / 나 긴 칼 치켜세우고 / 이 한 몸 바쳐 내달릴 뿐이네’라는 내용이었다. 

이 시는 우여곡절 끝에 그의 가족인 홍씨 부인과 딸 설죽화에게 전해졌다. 홍씨부인은 남편이 남긴 시를 보자 “네가 아들이었다면 아버지의 유언을 지킬 수 있으련만……!” 라며 절규하였다. 그 말을 들은 설죽화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리라.” 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설죽화는 무관집안의 딸로서 할아버지의 무예를 틈틈이 익힌 어머니에게 무예를 배우겠노라며 설득하였다. 홍씨부인은 딸 설죽화가 걱정되었지만 결국 그 뜻을 꺾지 못하였다. 이후 설죽화는 어머니 홍씨부인으로부터 무예를 익혀나가기 시작하여 점차 다부진 무사로 변하여 갔다. 설죽화는 자신의 무예 실력이 여느 장정 못지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남자로 변장하여 곧바로 강감찬의 부대로 찾아갔다.

당시 강감찬은 고려군의 상원수였는데 그의 부대에서는 설죽화가 어리고 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설죽화는 자신이 강감찬의 친척이라고 속였는데, 급기야 강감찬과 대면하게 되었다. 강감찬은 뜻밖의 일로 놀랐지만 “전쟁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싶습니다.” 라며 말하는 설죽화의 청이 간절하여 일단 무술시범부터 보기로 하였다. 그러자 설죽화는 뛰어난 창검술로 강감찬을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하늘을 가르며 번쩍이는 긴 검과 하나가 되어 능수능란하게 기술을 선보였다. 이후 설죽화는 강감찬의 부대에 있으면서 여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동료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다. 

드디어 1019년 1월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강감찬을 비롯한 고려군은 거란군의 퇴로를 막고 혈전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설죽화의 활약이 뛰어나니 거란군이 그녀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힘껏 몰아붙이며 방어했으나 계속된 공격에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다. 설죽화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몸은 점점 지쳐갔으나 그럴수록 머릿 속에는 용맹함과 질긴 의지만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화살이 몸에 촘촘히 박혀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태여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다. 

이후 강감찬과 장졸들은 설죽화가 남장한 소녀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으며, 그녀의 품 속에서 나온 아버지 이관의 시를 읽으면서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고려 말에 장기간 지속된 거란과의 전투에서 일반 백성들의 노력과 희생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