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충주성이 함락됨. 이는 왜군이 곧 조령을 넘어 수도 한성까지 사흘이면 충분히 들이닥친다는 뜻이었음. 


결국 선조는 북쪽으로 파천, 즉 몽진하게 됨. 몽진 소식이 들리자 도성은 난리가 났고 선조는 왕실 종친들에게 ‘난 죽더라도 도성에서 죽겠다’며 안심시켰으나, 몇 시간 후에 한성을 떠남;;


선조는 불안하여 평양성도 버리고 떠났는데, 전략적 거점인 평양을 내주면서 명군이 도착한 후에도 임진왜란이 한참을 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음. 




국경도시 의주에서도 불안해하던 선조는 급기야 요동으로의 파천을 말하기 시작함. 


요동은 엄연히 외국이기 때문에, 이는 왕이 나라를 버리고 망명하는거나 다를 바가 없었으며 명군과 왜군이 판치는 한반도에 왕이 없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다시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컸음. 


신하들이 소복만 입고 뜻을 거두어달라며 탄원할 정도였는데 선조는 이를 무시하고 명나라에 파천의사를 전달함. 






명나라는 ‘요동에 오고 싶다면 관전보의 빈 관아에 식솔 100명만 데리고 오라’고 회신함. 


이는 조선에게 큰 충격이었음. 

관전보는 명나라가 통제 가능한 요동과 통제불가한 여진족 사이의 전방지대인 위험하고 버려진 땅이었음. 


그리고 빈 관아의 식솔 100명은 사실상 일개 고을 수령 정도 대우였음. 


즉 이는 사실상 거절 의사를 내비친 것임. 명나라는 ’아니 수도를 버리고 속전속결로 북쪽까지 올라와서 하다하다 왕이 외국으로 망명하겠다고? 이거 조선이 일본이랑 결탁하고 명나라를 치려는 거 아냐??‘ 고 의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