셤 5일전이지만 빈둥거리며 갤러리 정리하다가 요전에 여행사진 보다가 생각나서 올림.


본인은 영국 런던에 유학하고 있는데 23년 9월에 개강하기 직전에 썩어가던 National Express (고속버스) 75% 할인권을 발견하고 갑작스레 여행을 계획하게 됐음. 1학년때 기숙사에 받았던걸로 기억하는데 유효기간이 다되가는지라 짧게 갔다올만한데를 탐색하는데, 기왕이면 75%나 할인하는 티켓인데 멀리 가고 싶어서 콘월에 영국의 땅끝마을과 그 주변에 갔다오기로 결정함.


애초에 사진같은걸 어디 올리려고 찍은게 아니라 걍 원하는데서 찍어둔거를 발굴해서 올리는거라 양이 많지는 않다는 점에서 양해를 구함.


^ 콘월 서쪽 끝의 지도. 내가 간 곳은 크게 4군데였다.


가는데 11시간, 경유 1회. 한 7시간? 정도 걸려서 바로 가는 버스도 있긴 있었는데 돈을 더 아끼려고 갈때도, 올때도 경유하는 티켓으로 골랐음. (올때는 플리머스가 아니라 브리스톨에서)


그리고 거기서 숙박비도 굳힌다고 갈때 버스에서 1박, 올때 버스에서 1박하는 일정으로 잡음. 


초안 일정부터가 빡센 만큼 가는것도 힘들었음. 중간에 두어시간씩 자기는 했는데 사람도 떠들고 자세도 불편하고 한것이 이동수단에서 자는건 확실히 힘듦. 경유도 밤 한가운데니.


^ 플리머스 시. 여기서 동쪽으로 강 하나만 건너면 콘월 진입이다.


경유로 들린 플리머스는 원래대로라면 버스 정류장에서 졸거나 폰이나 볼 계획이었지만 몇가지 문제가 발생함.

1. 런던에서 플리머스로 가는 버스가 구식인지 충전포트가 없어서 폰 배터리를 거의 소진함

2. 플리머스 버스터미널에 화장실이 유료임

3. 버스 터미널이 왠만한 한국 편의점보다도 작은 것이 안에 앉을 곳도, 할것도 없었음.


그래서 무작정 새벽의 영국 지방도시 시내로 나왔음.


플리머스 시내는 하나의 긴 프로메나드가 바닷가에서 시내 끝까지 가로지르는 모양새라 시간도 많은 김에 (무료 화장실과 충전할만한 곳을 찾으며) 바닷가까지 보고 오기로 함.


(취객이나 노숙자 빼고는) 아무도 없는 시내를 걸어서 간 바닷가 공원은 쪼끔 무서웠음. 조명도 없고, 간간히 보이는 사람 형체들에서는 뭔 알아듣기 힘든 소리만 들리니.

위 지도의 1번 장소. 바닷가 공원 끝에서 보이는 등대와 배들


위 지도의 2번장소인 플리머스 성채의 서쪽 벽. 당연히 새벽에 관광지를 열어두지는 않았다. 


바닷가까지 나오는 길에 찾은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앉아있기 위해) 맥주나 한잔 시키고 휴대폰도 충전하고 화장실도 썼다. 원래 영국에서 내가 술 사면 민증 검사를 하던데 그 버스 6시간동안 초췌해진건지 여기서는 검사 해야하냐니까 필요없다더라...


이날 내 여행의 거점인 펜잔스 (Penzance)에 다와가니까 슬슬 해가 떴다.


가는 길에 만나서 같이 앉은 누나한테 들은 저 도시의 발음이 나름 특이했다. 왠만한 지명들이 그렇듯 강세를 맨 앞글자에 넣을거라 생각했는데 (-잔스) 로컬 발음은 '잔'에 강세를 넣더라 (팬-스? 팬잔➚스?).


참고로 그 누나 나보다 1살인가 2살밖에 더 안많던데 (22살) 벌써 딸이 있다더라. 그날 플리머스에 여동생/언니 생파에서 튀어서 즉흥적으로 애아빠/남친 보러 나온거라던데, 영국생활 2년만에 느껴보는 컬쳐쇼크였음. ㅏ 글고 나한테 갑분 전자담배 권하던것도.


펜잔스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다이너에 아침을 때우러 갔음. 바닷가 마을이라 춥기도 너무 춥고 밤동안 피로가 쌓여서 쉴곳이 필요했음.

(내가 찍은 사진이 없어서 구글로 대체. 내가 갔을때는 저것보다 일러서 좀 더 어두웠음)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는 항구가 있었다.


영국 철도의 서쪽 종점인 펜잔스 역. 한국으로 치면 정동진역 같은곳이 여기랑 분위기가 비슷하려나? 열차 자체가 별로 안오는것 같아서 한산했다. 마라지온 방면으로 해안가랑 철도 사이 따라서 걸어가는 길에 그날 첫 기차가 가더라. 콘월 서쪽 끝쪽에 기차는 승객용보다 화물이 더 많이 다니던것 같다.


이곳에 왔던 목적중 하나인 성 미카엘의 산. 프랑스의 몽셍미셸처럼 섬에 있는 수도원이고 썰물때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는 곳.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같이 버스에 있던 사진작가가 일출과 같이 보이는 이 수도원을 찍으러 가길래 나도 따라가서 찍고 왔다.


펜잔스에서 성 미카엘의 산이 있는 머라지온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아침이라 바닷가에 산책을 나온 개들이 많았는데 사진을 못찾아서 아쉽다. 중간에 얘기한 지역주민의 말로는 여기가 개 키우기 정말 좋은 곳이라고.



다 와서야 안건데 이 수도원은 일요일도 아니고 내가 갔던 토요일에 정기휴무라고 한다. 따라서 밀물때 건너가는 보트도 이날에는 없었고 썰물때 건너가더라도 저 위에까지는 못올라간다고. 게다가 뜸한 버스 시간표와 만조 시간를 대조해보니 저 섬에 건너갈 수 있을때까지 이곳에 있으면 이 곳에 왔던 다른 목적인 땅끝마을을 못가더라. 즉흥적인 여행의 패착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원래 예정에 없었던 세인트 아이브스라는 다른 마을을 가보기로 했음. 



근데 이 결정을 정말 잘한것 같음. 오히려 나중에 졸업할때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한번 오고 싶을 정도로. 이 어둡고 축축하고 칙칙한 영국에서 에메랄드빛 바다란게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음. 콘월이 옛날 옛적에 영국의 바닷가 휴양 수요가 전부 스페인 포츄갈 이태리로 넘어가기 전 인기있던 휴양지였던 이유가 있더라. 날씨가 더 좋으면 이런 모습까지 가능한걸까



넓게 퍼진 모래사장, 아기자기한 석조건물들로 이뤄진 마을, 그리고 예쁜 바다가 어우러지는게, 내가 여지껏 영국에서 다녀본 곳들 중 탑5에 들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이날 세인트아이브스에 갔을 때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함. 물론 영국답게 나중에 저녁에 여기 돌아오니까 추적추적 비가 오더라


마을 안쪽은 이런 느낌의 골목길들이 많았다.

덧붙여서 방파제쪽에서 마을쪽으로 찍은 사진 몇장


참고로 마을이 반도에 있어서 반대편도 모래사장이 있더래. 9월이라 피서/휴양객이 올 시기는 아니라 바닷가 자체는 한산했음


(구글 위성지도에 잡히는 파라솔과 인파들로 여름에 이곳에 왔을 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점심으로는 이 마을의 노점에서 페이스티 (Pasty)라는 콘월쪽 음식을 먹었음. 런던에서도 간혹 먹던건데 말 그대로 싫어할 사람이 없는 고기빵이라 맛있게 먹었음. 나중에 찾아보니까 유래로는 콘월 지역의 광부들이 고된 광부일을 하면서 버틸 수 있는 영양식으로 고안되었다고.

(직접 찍은 사진은 없어서 인터넷 사진으로 대체함)


그리고 콘월쪽이 목축업으로 유명한지라 콘월 아이스크림 켈리즈를 파는 노점들도 많았는데, 날도 바람이 많이 불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와가지고 이것까지 먹으면 감기 걸리기 딱 좋겠다 싶어서 단념했음.


세인트 아이브스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이 여행의 주 목적인 땅끝마을에 가는 버스에 탑승했음. 북쪽 해안을 따라서 쭉 가는 경로였는데 도로가 굉장히 비좁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가는 길의 풍경은 쭉 위와 비슷했다. 콘월 지역도 양 농가가 많더라. 그리고 날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도착한 랜즈 엔드 (Land's End). 말 그대로 땅끝이라는 뜻이다. 해남의 땅끝마을도 아직 가 본적이 없지만 어쩌다 보니 남의 나라 땅끝마을을 먼저 가보게 됐음..


건물 앞에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앰뷸런스가 있었다. 저 건물 뒤로는 애들이 좋아할 법한 작은 유원지가 있었는데 비수기인지라 셔터가 내려간 곳들이 꽤 되었다. 



뒤로 더 가서 있었던 기념품샵/매점. 땅끝마을 답게 이름도 'First & Last Refreshment House in England' (잉글랜드의 첫 그리고 마지막 휴게소)



바닷가쪽으로 보이는건 바위섬 몇개와 등대. 지금도 쓰고 있다고 하더라.


전술했듯이 이쪽 지역에 버스 배차시간이 많이 길어서 랜즈 엔드를 구경하고 나서 펜잔스로 가는 다음 버스가 올때까지 시간도 길고 그것 외에 이쪽 지역에서의 일정도 다 끝마친지라 (이때쯤 되어서 머라지온까지 밀물 전에 가는것도 불가능했음) 해안 따라서 좀 걷기로 했음.


펜잔스로 가는 버스가 있는 다른 해수욕장인 포스큐르노 (Porthcurno)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기로 계획함.


점점 멀어저가는 랜즈 엔드와 그 주변 절벽들. 옛날 지리시간에 배우던, 곶에 해안동굴과 아치의 형성 및 붕괴 과정을 눈으로 볼수 있었다. #


해안동굴도 있었다. 꽤 많았다. 물이 들어와있는 해안동굴도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려니까 여행온 다른 그룹의 개들이 짖어대는 통에 사진같은것도 못찍고 튀었다. 


파도랑 바람이 쌘 곳이라 풀 말고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않더라. 흐린 날씨, 드센 바람, 그리고 간간히 붕괴 위험으로 절벽 가까이 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어우러지는 길을 걸으니 아까와는 다르게 영국에 있는것 같더라


지나가면서 만난 방목되어 있는 소떼


하이킹 트렉도 출발할때에는 평탄하던게 가면 갈수록 절벽에 딱 붙어있는 구간도 있고 앙상한 가지덤불 사잇길도 있는것이 정말 힘들더라. 두시간 넘게 걸었는데 나중구간 갈수록 사진의 양이 줄어드는게 보임 ㅋㅋㅋ



트렉 따라서 저 윗쪽에 보이는 날씨 관측소도 지나갔는데 손 흔드니까 윗층에 4-50대 되는 아재가 웃으며 손 흔들어주더라. 근데 이런 절벽만 있는곳에 일하는것도 여간 고역이 아닐것 같음. 아니면 사람들 많이 만나는거 싫어하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일도 맞을 수 있을까. 



먼 길 걸어서 도착한 포스큐르노 해변. 비취빛 바다에 그렇지 못한 날씨를 보니 확실히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다시 따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큐르노에서 펜잔스에 돌아왔을때에는 6시즈음. 펜잔스는 특별히 할 것없는 마을이고 펜잔스를 거점삼은 것은 단순히 지역의 교통 중심이었기 때문에 남은 시간 몇시간은 다시 세인트아이브스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버스 시간은 10시 5분) 그리고 펜잔스의 6시는 벌써부터 가게들이 다 문을 닫고 있더라고.



펜잔스에서 세인트 아이브스까지 다시 갈때에는 기차로 갔음. 완전 로컬선 단선철도에 조그만 역이더라고. 분명히 기차 좋아하는 사촌동생을 위해 찍어둔 사진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게도 구글 스트릿뷰로 대체.



어둑해지고 밀물이 들어온 세인트아이브스. 보름이라 그런건지 비가 와서 그런건지 야외테이블들이랑 벤치들 있는 길가까지 물이 넘치는 곳들도 있었다.



저녁 먹을 곳을 찾아다녔지만 많은 식당들은 이미 만석이었고 관광지다운 높은 가격대를 보여서 비오는 마을을 배회했다.


어둑어둑해진 마을 끝에 피자 푸드트럭에서 산 피자를 문닫은 관광지샵 파라솔 밑에서 게 눈 감추듯 먹은것도 나름 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


그 푸드트럭은 내 갤러리에서도, 구글 지도에서도 못찾았는데 구글 위성지도에 떡하니 나오길래 같이 올림 ㅎ


저기 저 빨간 밴.



세인트 아이브스를 떠나면서 찍은 사진. 밤이고 비도 오느라 사진이 그리 좋지는 못함.

런던 가는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마지막 버스를 거의 턱걸이로 탔고 그 이후로는 완전히 녹초였던지라 사진이 없고 큰 일은 없었음.


그나마 하나라면 버스에서 자다가 시끄러워서 일어났더니 왠 미친뇬이 내 면상에 대고 트월킹을 하고 있었던거?


펜잔스 도착해서는 정말 샤워가 하고 싶었지만 그나마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옷만 갈아입고 바람 못피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지연됐음) 버스 타고서는 바로 잠들었음. 그것도 잠시였고 휴게소에 멈추면서 깨고 하차했다가 다시 타고서는 버스 환승하러 내려야하는 터미널 놓칠까봐 한숨도 못자고 갔던지라 런던 도착해서는 씻자마자 거진 열몇시간을 잤음.


무사히 다녀오기는 했지만 이런식의 (환승 포함) 이동수단에서 2박하는 당일치기 여행은 다시 시도할 엄두가 안나더라. 귀환하고 바로 2일 뒤에 개강이었고 돌아오고서 며칠을 그로기한 상태로 보내가지고.


그래도 즉흥적으로 다녀온 여행이라기에는 굉장히 만족하는 여행임.


교훈이라면 앞으로 왠만하면 이런 무모한 일정은 짜지 않도록 합시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