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거울의 방 : 크레스니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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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도, 나약함도, 공포도 온전한 나의 것.

직시하고 기억해라.

 

나의 지독한 망집은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거울의 방 : 크레스니크 프로젝트 (8)

― 인간성의 근원

 

 

 

 






 

류드밀라.

 

너는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 손을 뻗은 이유는 무엇이며⋯




“⋯거울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뭐지? 대답해라.”




이 관 안에 짜인 거울의 방은 이면 세계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저 가능성이 무조건 나를 부른 것은 아니었을 테니. 어쩌면 그저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에게 물어온 거겠지.



하지만 저 질문엔 묘한 모순이 있다.

그래서 내가 되려 묻고 싶었다.




“넌 내가 실패할 거라 했었지. 나 또한 ‘가능성’이라는 전제하에, 네 손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날 가치 있게 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날 관찰하듯 눈을 맞춰오는 데모고르곤을 향해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거울을 깨더라도, 가능성으로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묻는 것이 의미가 있나?”

“⋯⋯.”

“네가 바라는 결과가 확실하지 않다면, 너는 다시 나에게 나타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처음 조우한 그때와 다르면서 같다.

나는 여전히 데모고르곤을 의심했고,

데모고르곤도, 날 직시하는 눈이 도끼눈으로 변한다.




“날 흡수할 생각이었다면⋯ 이미 처음 마주쳤던 순간에 할 수 있었다.”




이미 힘의 차이는 명확했고, 가능성이 가능성을 잡아먹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니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데모고르곤, 너는 그러지 않았지.”




분명히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에 설명 하나 없이 뜻 모를 행동을 했을 거라고, 이제는 확신한다.

단지 조급한 마음이 눈을 가려 직시할 수 없었을 뿐,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실패할 거라고 믿었던 라는 존재⋯⋯”




그때도 지금도 분명 데모고르곤의 의중은 지금도 같겠지.




류드밀라의 앞에 다시 나타난 이유를.”

“그게 질문에 대한 답인가?”

“아마 완전한 정답은 아니겠지. 답은⋯ 조금씩 완성해가면 된다.”




말없이 한참 동안 나를 지켜보던 데모고르곤은,

마치 결심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럼 완성해가는 그 답은?”

“내가 모든 류드밀라를 만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거울을 깰 수 있었던 이유, 찾고자 하는 길⋯⋯.




“전우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lqPpZ-enm2s?si=c2FyhiPmbYItNB7f









나의 대답을 끝으로 데모고르곤이 눈을 뜨자,

두 명의 류드밀라만 보이던 어두운 공간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갑자기 나타난 수십 개의 거울.

그 거울에 반사되는 빛이 눈 부셔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다.

조심스럽게 가린 손을 내리자, 데모고르곤은 여전히 날 보고 있었고.




“이 모습들은⋯”




우리를 둘러싼 거울들엔 모두 내가 담겨있었다.

그 모습들은 전부 틀림없는 ‘나’였고,

거울에 비친 모든 나는 제각기 다른 표정과 다른 공간에 있었지만⋯




“류드밀라.”




담담하게 나를 부르는 데모고르곤 만큼 고독했으며,

그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울 속에는 오직 류드밀라만이 남아 웃고, 울며, 절망하고, 미쳐있었다.




는, 류드밀라는 모두 실패했다. 류드밀라가 비치는 이 모든 거울 전부.”

“그래서, 내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나?”




데모고르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다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한 이유는 모두 끝이 안 보이는 관찰과 결과물의 학습이었을 것⋯




“나 또한 네 가능성이기 때문에?”


“이 거울의 방은 류드밀라가 만든 것. 거울에 비치는 모든 류드밀라는, 틀림없는 류드밀라다.”


“그럼 너에게 있어서 는, 류드밀라의 가능성은⋯ 무엇으로 보고 있지?”


“처음 마주했을 땐, 직접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만⋯ 이젠,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음⋯?”






전대장님⋯⋯ ⋯⋯에 갇혔⋯!





마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거울 공간에 울렸다.


한참을 지지직거리던 소음은 조금씩 가닥을 잡고 분명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전대장님을 믿고 방어에 집중한다!

 

타라스크 50문 조준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전대장님이 우릴 믿고 있어!

 

 

 

 

 

메이즈 전대가 무엇인지, 저놈에게 다시 보여주는 거다!

 


 

 





전투를 치르고 있는 전대원들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린다.

그 울림은 선명하게 계속 들려오지만, 공간에 갇힌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마치 찰나와 같게 느껴졌다.


그 목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데모고르곤은 오른손을 들더니 주먹을 쥐어 보인다.

파르르 떨려올 정도로 꽉 쥔 그 손엔 슬픔이 서렸다.




“지금, 이 순간⋯ 오로지 단 하나의 류드밀라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자, 단 하나의 류드밀라만이 네 유약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

“그것이 단 하나의 가능성⋯⋯."




나와 너,


우리, 


‘류드밀라’는 같이 답을 완성해간다.


모든 류드밀라가 느꼈을 절망과 슬픔, 그리고 광기에 대한 답을.




“그게 없다면, 전우들을 지킬 힘을 얻었음에도.”


“모든 걸 끌어안으려 한 류드밀라는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늦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강한 힘을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어도.”


“류드밀라에게 무차별적으로 파고든 침식의 근원이 전우의 명줄을 끊게 만든다.”




유약함을 가진 한⋯ 내가 모든 걸 지킬 수 없고, 찾아오는 모든 위협을 혼자 맞서 싸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결점을 스스로 마주 보며 인정하고, 그 유약함을 바로잡아줄 전대원이 있어서였다.




“강한 힘을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


“그 힘이 나 혼자,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힘은 아니니까.”


“기억해, 류드밀라.”


“지금 잃어버린 것은 오른팔이 아니라, 약점과 두려움을 직시하는 강인한 마음이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함께 싸워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것. 침식의 끝에서도 절대 잊지 마라.”











“그리고 내가 가진 유약함을, 희망으로 채워 줄 전우들과 함께해라.”

























함께 만든 답이 완성되어가는 순간,

공간에 가득 차 있던 거울이 일제히 산산조각이 난다.



장막이 부서지니 거울 조각은 녹아내리고, 기다렸다는 듯 찰랑이는 은빛 액체가 나와 데모고르곤을 향해 흘러오기 시작했다.



마치 수은 같은 액체가 출렁이며 흘러내리고,

매서운 파도처럼 오는데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어떤 가능성이자, 이 거울의 주인.”




데모고르곤이 쥐고 있던 오른손을 펴자,

그 손바닥 위에는 솔개가 있었다.


하얗게 침식되지도, 검게 그을리지도 않은⋯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그 모습으로.




“내가 보았던 모든 류드밀라는, 분명한 류드밀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액체가 데모고르곤의 몸을 타고 올라간다.

은빛 액체와 점점 하나가 되어 조금씩 잠겨가는 그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이 거울의 방은 가능성을 보여줄 뿐. 직접 실현해가는 것은 ‘류드밀라’다.”




데모고르곤의 몸을 타고 올라와 솔개까지 다다른 액체.

솔개는 그 액체를 타고, 나에게로 뻗어온다.


마치 데모고르곤과 나를 연결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뻗어오고,

그 끝에 있던 솔개는 팔이 없는 내 오른쪽 어깨에 닿는다.




“부탁한다, 류드밀라⋯⋯.”




그 은은한 미소는 결국 은빛 액체에 완전히 녹아 꺼져버린다.


나만이 홀로 남아, 녹아내려 흘러온 가능성의 파도를 받아들인다.




“⋯⋯알겠다.”




공간 가득한 은빛 액체가 모두 내 오른쪽 어깨에 모이는데 무겁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시리도록 차가운 감각이 마치 찾아 나간 답을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는 것만 같아서,

눈을 감고 가능성의 파도에 결의를 남긴다.




“내가 가진 유약함은 아마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단 한명의 류드밀라에게 맡기는 모든 가능성.

그 수십 개의 가능성을 가지고, 직접 ‘어떤 가능성’을 실현할지는 오직 다.




“하지만 반드시 뛰어넘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는 없어.”




터무니없이 많아 보였던 은빛 파도는 모두 나에게로 도달하고,

줄곧 재생되지 못한 오른팔의 모양으로 형상을 만들어간다.


은빛은 서서히 변화해 검고 붉게,

분명한 나의 오른팔로 나타난다.




“내가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내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나와 함께할 전우들이 있으니.”




헤지고, 찢어졌던 전투복도 은빛 액체가 타고 지나가자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감각이 모조리 사라지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나의 멈춰버린 워치도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안, 희미한 웃음을 남긴 데모고르곤처럼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어보았다.


그 행동 때문이었을까.

또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공간엔 금이 가고, 그 틈으로 눈송이가 조금씩 날아든다.




“찾은 답은 절대 잊지 않겠다. 그리고⋯”




은빛 액체도 거울 조각도 어둠도 모두 모습을 감췄다.

불어오는 강풍에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나의 유약함까지도 무기로 벼려내겠다.”








그것이 그림자인 내가 올바르게 걷는 방법.





이젠 내 두려움과 직면해야 할 시간.

완성한 답과 함께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불어오는 눈보라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