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거울의 방 : 크레스니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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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둠 속에 가라앉은 자신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나?

떠올려라. 제일 날카롭게 벼려진 무기는 아직 꺼내지 않았다. 

 



 

 

거울의 방 : 크레스니크 프로젝트 (7)

― 메이즈 전대

 

 

 

 






 

 

방어선을 구축하라!

 

전대장님이 회복하실 수 있도록 방어에 전념해!

 

전대장님에게 손끝 하나도 댈 수 없다!






“언제쯤 불러주시나 기다렸습니다.




귓가에 어지럽게 도는 함성과 포성, 총성을 뚫고 데니스가 나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명령 불복종이란걸 안다며 멋쩍게 웃는 데니스.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음이 전대원 모두의 행동이 단 한 명의 독단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말없이 데니스를 향해 고개를 젓는 것으로 괜찮다는 대답을 대신 하는 것.

지금 나는⋯ 전대원들의 행동에 대해 책망할 자격이 없었다.




“설마, 고작 에스타크 21문으로 해결하려 하셨습니까. 무모해지셨군요.”

“최소 전력으로, 해결해 볼 생각이었지. 의도는 그랬다만, 어림도 없더군⋯⋯.”




무의식적으로 전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견고한 무형의 장벽을 세운다.

다행히 수십기의 에스타크가 발사한 플라즈마 입자포를 정통으로 맞은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은, 아직까진 반격의 기세가 없었다. 

그런데도, 방패를 든 대원들의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모두가 다치지 않게, 아주 견고하게 세웠다.




“전대장님!”




조금 전 쐐기를 막아주었던 미하일이 어느새 새 방패를 꺼내 들고 와 내 앞을 막아주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믿고 전대장님은 가능성을 찾아주십시오.”




미하일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지친 것도 잊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대체 어떻게 그런 무모한 제안을 한단 말인가!




“미하일! 지금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건 어쩌면 마에스트로 이상의 데모고르곤이다!”

“압니다. 교활한 수를 쓰는 마에스트로보다 강하고, 전대장님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위력을 가졌다는 것도, 모든 전대원들은 알고 있습니다.”




전대원들 대부분은 지금처럼 객기를 부린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와 동일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에게⋯ 그것도 나 없이 도전한다는 것.

그걸 용인한다면, 내가 전대원들을 사지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전대장님, 곧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이 회복할 겁니다.”




‘회복’

그 말을 듣고, 아직도 팔이 없는 오른쪽 어깨를 보았다.




“난⋯ 나는⋯⋯”



회복 속도를 늦춰보겠다고 쏟아지는 맹공격. 쏟아지는 붉은 눈보라.

포성과 초성이 끊이지 않는 이 순간.

거울이 깨지는 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지 않았고, 팔은 재생될 기미가 없으니⋯


나는⋯






“그건 ‘실패’하기 때문이다. 류드밀라.”











“실패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새어 나오는 유약함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아니, 뒤늦게.


전대장으로서 입에 담아선 안 될 말임을 자각했다.


정말⋯ 정말로⋯⋯.

모두의 앞에서 이런 나약한 말을 하다니⋯⋯.




“⋯⋯큼, 미안하군. 약한 소리를 했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건 관성인가, 혹은 미련인가?

어느 쪽인지 규정하지 못한 채, 두 발로 일어섰다.


일어나며 질끈 감은 두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귓가엔 왠지 모를 웃음소리가 스쳤다.


그 웃음에 어떤 의미가 있더라도 무어라 말할 자격이 없다 느꼈다. 하지만―




“하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대장님.”




의중을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데니스는, 전대원들은 대체 무엇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나는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데니스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저희 모두가, 전대장님께서 언제쯤 약한 소리를 하실지 기다렸습니다.”



약한 소리라.

나의 유약함을 논하려는가⋯⋯.




“내가⋯ 그저 약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나, 데니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 모두 전대장님이 무력만큼은 강한 분이라는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전대원들이 쓰고 있는 헬멧 안, 그들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말과 억양을 들어도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총성과 포성 속을 힘겹게 뚫고 물었다.


데니스가 쓴 헬멧에 비친 내 모습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죽고도 남았을⋯ 그런 처참하고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


⋯⋯.


그래. 맞아.

실패하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도 나의 나약함을 알고,

나의 미래가능성도 실패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내 가능성은⋯




“나는――”




다시 한번 유약한 숨이 뱉어지는 순간.




“부전대장이 언제쯤 전대장님께서 약한 소리를 할까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데니스가 그 숨을 가로막는다.




“⋯⋯알렉스가?”



















 

“으아아아아아―――――――!! 이 바퀴벌레 같은 놈드으으으을―――――――!!!!”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의 재생이 끝났는지, 무식하게 방출하는 염동력 탓에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데니스는 흔들리는 땅 위에서 내 왼팔을 붙잡는다. 나도 휘청이는 미하일을 무의식적으로 염동력을 이용해 붙잡았다.


전대원도, 나도,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걸 자각한다.

혹여나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을까, 바이저까지 올리고선 나에게 말했다.




“전대장님이라면 조급해질수록 혼자 해결하려고 하실 거라고, 부전대장이 말했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나와 데니스, 미하일의 양옆으로 이프리트가 앞서 나간다.

회복을 끝낸 데모고르곤을 향해 다시 쏟아지는 맹렬한 포격과 총격 속에서 미하일이 데니스의 말에 힘을 더한다.




“전대장님이 혼자서 고통스러워할 때, 저희가 나서서라도 전대장님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라 당부하고 가셨죠.”

“부전대장 뿐만 아니라 예고르랑 다른 녀석들도 재차 강조하더군요. 그리고, 전대원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너희들⋯⋯.”




이런 꼴에⋯⋯.

하는 말도, 하려는 말도,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 섞인 나약한 소리인데도.


전대원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희가 희생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대장님과 모두와 함께 싸우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맞습니다. 어이! 다들 내 말 맞으면 소리라도 질러보라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포성 소리도 한 수 접을 만큼의 커다란 함성.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의 악에 받친 목소리를 밀어내는, 전대원들의 의지가 쏟아졌다.



 

이번엔 저희가 전대장님을 구해드릴 차례입니다!

 

전대장님이 빠진 메이즈 전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쇼!

 



혹여나 내가 듣지 못할까,

저마다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말들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저희 메이즈 전대 모두를 믿고 싸우는 겁니다!







“⋯⋯!”




나는 이제 와서야 다시금 깨닫는다.








그때도 고민했었다.


내가 모든 힘을 쏟아부으면,

전대원들을⋯ 너희들을 해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었다.

조금 다르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실패한 나를 거울로 들여다보며,

나도 저 거울상처럼 실패한다면⋯⋯


아니, 더 두려웠던 것은.

결국 내가 아무도 지키지 못한 나약한 사람일까봐.


그 두려움 때문에, 정작 나아가야 하는 방법과 본질을 잊어버린 거야.



그때와는 다르게 성장했다고 여겼지만⋯⋯.

역시, 나는 여전히 얼간이인 채로 있었던 거지.




“⋯이래서야 그날과 다를 게 없군.”

“전대장님?”

“모두⋯ 고맙다.”




그때도 지금도, 더 먼 과거부터 유약한 나와 함께해준 전대원들도,

내 옆에 서서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다.


난 바보같이⋯ 이 자리에 있는 전대원들,

다른 임무로 자리를 비운 부전대장과 다른 전대원들의 각오와 믿음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 전대장으로써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건 이런 거다.



그러니 이 거울의 방에서 구르고 팔이 날아가고, 지쳐 나가 떨어지고,

종극엔 전대원의 손을 잡고 일어난 나는, 답을 찾아가야 한다.


모든 건, 내가 다 그러안고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야.




“이 머저리 새끼들이!!! 내가 당하고만 있을 것 같느냐아아아아―――――――!!!”




“지키고 싶은 게 있을 땐 주저하지 말게. 때론⋯ 모든 걸 내던져야 지킬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말일세.”




관리자님은, 이번에도 제 등을 떠밀어주시는군요.




“지반이 무너진다!”

“전대원! 몸에 힘을 빼도록!”

“전대장님의 염동력에 몸을 맡겨라!”




맞아. 어리석게도⋯ 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어.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은, 혼자 걸어온 것이 아니야.




“졸개 녀석들, 다 평범한 인간인 주제에 뭘 믿고 덤비는 거야? 네놈들 우두머리란 놈도 이젠 반쪽짜리일 뿐인데!”


“전대장님을 모욕하지 마라, 도플갱어!”




전대원과 기갑 병기 모두를 멀쩡한 땅 위로 옮기고 나서,




“너는―――!!!”




나는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과 걸어야 길을 바로잡는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


“허? 땅바닥을 기어다닐 땐 언제고 말이야. 물에 담가버리면 주둥이만 둥둥 뜨겠는걸?”


“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플갱어!”


“푸훕, 졸개들이랑 깡통들 좀 꺼내 들었다고 벌써 기고만장해졌네?!”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이 두 손을 들어 올리자, 무너진 지반에서 바윗덩어리들이 끌어올려진다.

저 수많은 바위가 가속을 받아 날아오면, 기갑병기는 무사해도 전대원들은 그렇지 못하겠지.




“헛된 희망도 거기까지다.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마!”


“네가 없는 것은! 내가 일어날 수 있는 이유⋯!”


“병정놀이는 끝이다! 바퀴벌레에에에―――――――――!!!”




집어던지는 척력을 이기지 못한 바윗덩어리들이 산탄총처럼 부서져 날아온다.

나도, 전대원들도 모두 피하지 않는다.


꼿꼿하게 서 있는 나의 이정표들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나의 거울상에게 왼손을 뻗는다.




“우리는 메이즈 전대다!”




쏟아지는 타라스크와 이프리트의 플라즈마 포격, 전열을 지키는 방패를 든 전대원들,

내 염동력에 닿는 바윗덩어리의 반발력.

그로 인해 미친 듯이 파르르 떨려오는 왼손을 온 힘을 다해 움켜쥐었다.


아무리 약해졌다 한들 지지 않을 이유는 명확하니까,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집념으로――




“크으윽――――――!!!”




그 움켜쥔 손을 당겼다가,

앞으로 내지르며,


도플갱어가 있는 방향으로, 최대 출력의 염동력을 방출했다.


⋯⋯.







흙먼지와 눈보라가 뒤섞이고,

돌조각이 굴러가는 소리만이 남은 정적 속에서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의 웃음소리가 공간에 수없이 메아리친다.







“흐⋯ 흐흐흐⋯ 아하하하하하! 멍청한 녀석! 하하하하하!”




맞아, 고작 돌조각들 좀 맞았다고, 데모고르곤이 풀썩 주저앉진 않겠지.

데모고르곤보다 한참 아래 그림자가 와도 그 정도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저 나를 빼닮은 머리를 날려도 끝나지 않을 싸움 속에서.


승리를, 재흡수를 위해 필요한 ‘가능성’을 찾기 위해 해야 할 것.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그때였다.




“⋯! 저건⋯?”




도플갱어의 뒤로, 공간이 깨진 것처럼 금이 간 것이 보였다.





“전대장님! 거울의 방이 깨집니다!”

“확인했다. 그렇다면⋯”




제일 처음에 조우한 그 가능성처럼 물리적 충격으로 거울의 방이 깨졌다.


나와 전대원들이 저 균열을 완전히 자각하자,

균열은 위로 점점 타고 올라가, 마치 어떤 돔이 깨지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 영역을 넓혀갔다.




“뭐?! 이럴 리 없어!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아직 네놈을 흡수하지도 못했는데!! 네가 무슨 수로!!”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의 다급한 외침과 거울 균열.

이건 분명한 반격의 신호탄이자,




“전대원! 적은 나를 본떠 만들어진 도플갱어 타입 데모고르곤!”




다시 한번 불확실한 가능성을 위해 싸울 시발점.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거울의 방은 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작은 거울 조각을 흩날린다. 




“내가 가능성을 찾아낼 때까지⋯”




눈보라에 섞인 거울 조각이 마치 눈처럼 천천히 떨어진다. 어떤 것이 눈인지 거울 조각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절대 잊을 수 없는, 도플갱어 군집과의 첫 전투에서 보았던 눈보라처럼.




“적에게 강철의 눈보라를 선사하도록!”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함성이 전장을 뒤덮는다.

그리고⋯




“크흐흐⋯ 그래! 어디 와봐! 네 병정놀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알려주지이이이――――!!!”




다시 한번 도플갱어 데모고르곤의 외침과 함께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정 좌표로 조준하라!”

“엄폐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




전대원들의 외침과 사각거리며 떨어지는 거울 조각들.


눈앞에 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별안간 거울 조각을 잡았다.










왜인지 이끌리듯 잡은, 그 거울 조각에는――















“넌⋯?!”




분명하게 보이는 그 모습이 나와 눈을 맞춰왔다.




“설마 거울의 방에⋯”




거울의 방이 금이 가면서 간섭하기 시작했나?


나는 무너지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쉴새 없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깨어진 하늘 속엔 넘실거리는 은빛 액체가 있었고,




“가능성?!”




그 넘실거리는 은빛 액체에는 분명히 기억하는 ‘실패한 가능성’, 데모고르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고민도 없었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당연한 것처럼 조금의 주저도 없이 깨진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실패하지 않을 거다―――!!”




각오와 함께,

깨진 은빛 연못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은빛 액체가 점점 더 강하게 일렁이고, 출렁인다.



 

“허어? 네 졸개들 두고 어딜 도망치는 거야!”


“도플갱어의 오른팔을 노려라!”


“전대장님을 붙잡지 못하도록 해!!”




나를 붙잡으려는 도플갱어의 염동력이 닿기도 전에,

은빛 액체가 먼저 나를 덮쳐왔다.


⋯⋯.







전대장님이 무언가에 갇혔다!

 

우리는 전대장님을 믿고 방어에 집중한다!

 

타라스크 50문 조준하라⋯!


⋯⋯














+)

풍둔 주둥아리의 술은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