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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어때, 잘그리지? 화가나 해볼까'

'니가 화가면 나는 밴드를 만들걸? 내가 전대에서 기타 제일 잘치잖아.'

'헛소리하지마, 만화그리는데 방해돼.'


그들에겐 꿈이 있었다.

꼭 닮은 얼굴이면서, 형형색색 제각각의 소망을 가진 그들이 있었다.


미래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넌 뭘 할거야?'

'그래, 넌 뭐 하고 싶다고 얘기한적 없지 않았나?'


하고싶은거라니.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전우들과 어깨를 맞추는게 목표였어. 나에겐, 그게 삶이였어.


'없어도 괜찮아! 시간은 많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 꼭 닮은 얼굴을, 그녀는 지금까지 기억한다.





"당신, 사실은 죽고싶지 않은거죠?"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다.

남자의 잔인한 말이 마음을 무너뜨리며.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피부에 맞부딪히며, 남자는 말했다.


"지금의 당신은 디자이어에 덤비면 죽습니다. 확실해요. 다 망가진 무기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몸으로는 불가능하겠죠."

"아냐,난..."

"그래서, 입으로는 죽고싶다면서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겁니다."


당신은 살고 싶으니까.

그렇게 덧붙이는 남자의 말이 끔찍하다.

끔찍하게도, 가슴에 와닿는 현실이 잔혹해, 그녀는 손을 놓고 말았다.


텅그렁, 금속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다.


"네, 그거면 됩니다. 싸우기 싫은 이를 전장에 세우는건 옳지 않죠."


바닥을 나뒹구는 검을 집어든 나유빈이 주저앉은 그녀를 지나치며 말했다.


"여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끼이이이이익-!

강렬한 마찰음이 그의 말을 끊어버린다. 앞으로 나서려던 나유빈의 앞을 가로막은건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의 험비 한 대.

거칠게 문을 열어재낀 운전석의 여자가 소리쳤다.


"빨리 타! 튀어야지 뭐하고 있어!"

"분명...이 분하고 같은 조였던 용병분이였죠?"

"그런 사사로운건 나중에 얘기하고...얘는 왜 이렇게 퍼졌어? 헛소리 할 시간에 걔 데리고 타! 이대로 함선까지 도망칠거니까!"


침식체들을 힐끗거리며 소리친 여자는 이내 기다리는 것도 조바심 난다는듯, 결국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뛰어왔다.


"아 씨발, 잘만 싸우던 년이 왜 이렇게 퍼진거야?"

"나는..."

"키는 크면서 몸은 왜이렇게 가벼워, 짜증나게."


뒷자석에 억지로 던져넣고는, 저딴 말이나 지껄이며 운전석에 올라탄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나유빈이 헛웃음 한번과 함께 험비에 올랐고, 그가 문을 닫기도 전에 액셀을 밟은 그녀가 소리쳤다.


"이대로 간다! 꽉 잡고 뒤나 봐줘!"

"...재주도 좋군요. 디자이어가 차량들부터 깨부쉈을텐데요."

"왠 개자식 하나가 혹시나 해서 숨겨뒀더라고. 가져왔지."

"그 사람은요?"

"머리가 없어져있던데."


그 말을 들은 나유빈은 입을 다물고 험비의 천장을 열어 사수석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죽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죽고싶지 않았어."


그래, 죽고 싶지 않았겠지.

그래서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지금까지 맛대가리 없는 보존식을 꼬박꼬박 챙겨먹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차에 몸을 싣고 있어.


관리국의 전사는 그 지옥같던 전장에서 전우들과 함께 죽었어야 했다.

전장을 방황하며 죽을 곳을 찾던 무명의 검사는 방금 그 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겁하게도 살아남았다.


(배신자)

(어째서 우릴 버리고 너만...)

(우리도, 우리도 너처럼...!)


"그만, 그만해. 제발...!"


이제 욕지거리를 내뱉지 못한다.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무엇인가'는 점점 구체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매일같이 거울에 비쳐있는 익숙한 모습.

허나, 누구보다 많은 이가 가지고 있던 익숙한 얼굴.


그 얼굴의 주인들이 온 몸에 붉은 칠을 하고 그녀의 팔다리를 잡고 있었다.


(저주해.)

(너를 저주해.)

(우리를 배신한, 비겁한 너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나는 거기서 죽어야 했어. 나만 살고 싶어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전장에서 살아남았을때? 현실세계로 돌아와, 홀로 남았다는걸 자각했을 때?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적'이라는 결함을 인지했을때?


모른다 . 어려운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죽고 싶을 뿐-


"인간은 원래 그래! 살려고 사는거지!"


그녀의 사고를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침식체들을 피하고, 걸리적 거리는 방해물 따위는 그대로 들이받으며 액셀을 밟는 운전석의 그녀였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모르겠고, 죽어야 했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고 보는게 사람이지! 살고 싶다는게 당연한거야."


그녀는 거칠게 핸들을 비틀며 말했다.


"징징거리지마! 내 동생도 그런 소리를 했다가 나한테 두들겨 맞았다고! 살고싶은게 당연해! 그게 잘못이라느니 그런 생각은 틀린거야!"

"네가, 네가 뭘 안다고...!"

"누군가가 죽으면 그 삶은 살아 남은 사람이 짊어 지는거야. 너는, 다른 이들까지 죽게 만들고 싶어?"

"...뭐?"


그 찰나.

그녀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몸을 잡아 당기던 무엇인가의 손이 사라졌다.


정적, 이였다.


"너에게 삶은 맡긴 이들을 기억해. 넌 그들 대신을 살아가는거야."


제멋대로, 엉망진창의 말이였다.

논리도 근거도 아무 것도 없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 무슨 허무맹랑한 입발린 소리라며 비웃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 만큼은.


"너 자신을 미워하지마. 자해하지마. 너는 틀리지 않았어!"

"그건..."

"네가 미워할건 이 좇같은 세상이야. 저주할거면 그쪽을 하라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가 뒤를 돌아본 순간이였다.


"디자이어 포격! 옵니다!"


상체를 차체 밖으로 내밀고 있던 나유빈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의 세상이 뒤집혔다.


아, 날고있나. 

차체가 공중에 떠오른채 회전하고 있다는걸 그녀가 알아챘을땐 이미 늦은 상황이였다.

잠깐의 부유감을 만끽할 새도 없이 추락의 충격이 온 몸을 헤집어 놓는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시야, 귓청이 떨어질것만 같은 소음.

영원같던 찰나가 끝나고, 어느새인가 차체 밖으로 튕겨져 나와있던 그녀가 온 몸이 부숴질 것 같은 고통에 눈을 떴다.


죽지 않았나...?


이래도 죽지 않는다. 카운터라서? 아니면 빌어먹을 생존본능때문에?

어째서, 나는 어째서?


이제 그만 죽고 싶-


'너에게 삶은 맡긴 이들을 기억해.'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잔인한 현실에서 처음으로 제 멋대로인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던 사람이.


차체로 눈을 돌린다.


거기에 있는건, 차량이였던 황토색 고철덩어리.

성한 유리가 없고, 문이나 뚜껑 따위도 마구잡이로 구겨져 제 형상을 잃은 채로.






붉은, 붉디 붉은 무엇인가가 틈새로 흘러나오는-








"정신차리세요, 당신이 보고있는걸 똑바로 인식하세요."


짜증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던진 시선의 끝에는 의식을 잃은 사람 하나를 안고있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 오른눈...꽤 귀찮은 물건이군요."

"그,그 사람은....?"

"차체가 처박히기 전에 빼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머리가 부딪혔는지 기절했는데...보아하니 당신 대신에 이 분을 구하는게 맞았던 모양이네요. 당신, 생각보다 고 등급의 카운터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는 그다지 흐트러지지도 않은 모습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 눈...'보여선 안될 것'이 보이는 모양이네요. 제가 아는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주의 사안...음, 꽤 멋있는데요?"


갑자기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나유빈을 무시하고, 그가 조심스레 내려놓은 이를 살핀다.

이마쪽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다. 사지육신 전부 멀쩡하고 내장조각 같은걸 토해낸 기미도 없으니 다행-



"다행...이라고?"

"자아성찰중에 미안하지만 디자이어가 옵니다. 어쩌시겠어요?"


쿵쿵쿵, 대지를 진동하는 거체가 이쪽을 향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이대로라면 저 더럽게 무거운 발 아래에 깔려서 죽거나, 포격에 가루가 되어서 죽겠지. 그렇다면...


"...싸우겠어."

"네, 어차피 물러날 방법은 없으니까요. 차도 부숴졌고...구조대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는게 아니야."


그녀는 나유빈이 지금까지 손에 들고있던 자신의 직도를 빼앗아 들었다.

우우웅, 격한 충격속에서도 아직 제 기능을 잃지 않은 붉은 검신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내가 살기 위해선, 싸워야해."


논리도, 근거도 없는 제 멋대로의 허무맹랑한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생각할 필요 없이, 살아가는건 잘못 되지 않았어. 그 입발린 소리가 좋았다.


머리아픈 생각은 필요없다. 그건 애초에 그녀의 역할이 아니였음을, 그제서야 떠올렸다.


"살아서...하고싶은게 생겼으니까."

"하고싶은 것이요?"

"그래."

"그렇군요."


손에 들고있던 펄스리볼버를 없앤 나유빈이,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응원하죠, 여기서."

"그것 참 고마운 소리군."


자 몸상태를 파악하자.

끔찍하기 그지 없다.

온 몸은 삐걱거리고, 왼손은 손아귀에 제대로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뒤통수가 축축한 것이 머리통 어딘가가 깨져 피도 나는 모양이지.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 싸우는데 필요한 눈, 팔, 다리는 움직인다.

그거면 됐어. 그리고 그녀에겐 새로운 무기도 있었으니까.


디자이어가 포효한다.

아까와 같이.

포식자로서의 거만함을 드러내며 자신의 빈틈을 내보인다.


이번엔 달라, 애송아.

거리낌 없이 뛰었다.


강화 클론으로서 단련되고 만들어진 각력에 아직은 익숙치 않은 카운터 능력이 더해지니 마치 하늘을 나는 듯 했다.


제법떨어진 거리였음에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녀가 검병을 움켜쥔다.


재차 이어지는 포격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망설임이 사라진 그녀는 겨우 3종 '따위'의 공격에 맞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으니까.


"간파했다."


출검.

디자이어의 몸체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며 괴성을 토해냈다.


"날붙이를 다루는건 어릴적부터 익숙했어...네놈은 제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온거다."


디자이어의 발악성 포격을 가볍게 피해낸 그녀는 그대로 디자이어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금이 쩍쩍간, 검붉은 직도.

그 동안 훌륭하게 그녀의 파트너 역할을 해냈던, 유일한 과거의 연결점.


잠시나마 사감 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그것을 디자이어의 머리에 박아넣었다.


1미터정도 되는 길이라지만, 그것은 디자이어의 거체에 비하면 나뭇가시만도 못하겠지. 그렇기에 의미없는 행동이라고 생각될 법했지만-




『죽어라』



검을 박아넣은 그녀의 오른 눈에서 붉은 귀화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죽어라,죽어,죽어. 너는 여기서 죽어라.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 것도 이어가지 못하고, 그저 먼지 같은 삶으로서 죽어라.』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디자이어와 그녀의 주변에 검붉은 무엇인가가 피어난다.

망자의 영혼일까. 죽은자의 원념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카운터 능력의 발현일까.


피가 모자른 창백한 낯빛의 여자가, 피가 묻은 붉은 입술로 되뇌이고 있었다.


『죽어.』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죽어버려.







마침내 그녀의 손아귀에서 검이 부러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거체는 괴성을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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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에필로그.
진짜 글 ㅈ같이 못써서 부가 설명하자면, 

구관지수는 빡대가리라 어울리지도 않는 진지한 생각을 하느라 뒤지게 고생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