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그늘의 밑자락, 울지 않은 너를 위해의 스포일러가 다수 내포 되어 있으니 스포일러 주의.
시간대는 대충 기억나는대로 잡았으니 이것 역시 주의.
설정 제멋대로 추가한 것도 있으니 대충 주의.
시점은 유미나가 코핀에 들어온 직후.
해당 브금과 함께 듣는걸 추천
6년.
312.857주.
2190일.
52,560시간.
수많은 사람을 보았다.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삶과, 수많은 추악함과, 그래도 존재하는 희망을 보았다.
그렇게 수많은 것을 보았는데 단 둘 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비록 자신의 메모리는 거기서 끝났지만 아직 그들의 심폐기능이 정지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리타는 인간치고는 강했고, 대시는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인간들보다 굳셌다.
그런 이들의 죽음을 증거도 없이 확신하는건 나약한 탄소 기반 생명체들이나 하는 짓이다. 퓨쳐 앳 워의 강 인공지능인 호라이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이 정도면 역 임금체불이란 단어도 성립하겠군요."
현실 세계의 종말이라도 보여주는 듯한 이면세계로 몇번씩이고 돌아오는 것도 그 이유다.
'그 날' 이후로 호라이즌의 일과는 정해져 있었다. 오전은 빈민가를 돌아다닌다. 그 다음 레이첼을 떼어놓은 뒤의 오후인 지금부터는 용병들을 통해 이면세계로 다이브 한 후, 다음날 자정이 되면 다른 차원 함선을 찾아 현실세계로 복귀한다.
지극히 간단하고 반복적인 6년째의 일상. 반복해야만 끝낼수 있는 일상이기에 몇번이고 다시 발을 들이는 것이다.
용병들이 이터니움을 채굴하고 침식체를 쓰러트릴 동안 호라이즌은 잃어버린 두 사람을 찾아 몇시간이고 헤매었다.
말라 비틀어진 덩굴이 억지로 붙들고 있는 빌딩의 옥상부터 지하까지 살피고, 유적이라 칭할만한 거대한 시설의 모든 층을 헤집거나, 지하에 숨겨진 망가진 연구실에서 무엇이라도 뒤적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상관 없다. 이면세계란 흔히 인간들이 망상하곤 하는 소설 속 평행세계 처럼 무수히 많이 존재했고, 그러니 비슷한 장소에 아무런 흔적도 없는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운이 나빴을 뿐이다. 단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다음에 다시, 아니라면 다른 곳을 다시 찾아보면 된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근처의 침식체들은 이미 마주칠때마다 쓰러트려왔기에 호라이즌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건.."
그렇게 얼마를 걸었는지, 허름하고 오래된 빌딩 근처에서 낡은 술병이 발에 채였다.
술병. 술. 리타가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습관처럼 들이키던 음료의 일종. 위스키. 리타가 애용하던 술의 종류. 브랜드까지 똑같은 그 술병이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침식파의 영향인지 잠시간의 사고회로가 끊겨버렸다.
"리타, 대시. 근처에 계시다면 대답하십시오. 호라이즌 입니다. 지금이라면 통보도 없이 회사에 복귀하지 않고 6년치 무급휴가를 남발한 점을 용서해드리겠습니다. 월급은 60% 삭감으로 그칠테니 어서 나오시죠. 대시, 리타. 이 근방에 있다는걸 알고..."
정신을 차린건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처음 술병을 건드린 위치에서 150km 가량은 떨어져 있었고, 손에는 아직도 먼지 쌓인 위스키 병이 들려있었다. 온 사방을 얼마나 뒤져댔는지 소체의 머리카락을 묶은 리본과 리타의 치마가 흙먼지로 덮여져 있었다.
하지만 리타와 대시는 없다. 두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 위스키 병인데, 6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분명 이 정도 먼지는 쌓일 수 있는데, 이번에도.
"40% 삭감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 오지마.. 오지마. 이 괴물아!!"
탑재되어 있지 않은 감정회로가 작동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때 쯤, 어디선가 나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약하고도 다급한, 고작 인간의 소리. 그냥 지나칠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조물에 가려져 침식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막아서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보였다.
이미 지치고 다쳐 서있는 것이 고작인 인간과, 벌벌 떨면서도 그를 지키겠다고 앞에 나서있는 인간. 어차피 저 상태여야 1종 침식체도 이기기 힘들 것이다. 둘 다 나약하고 겁 먹었으며 지쳤으니까.
ㅡ리타 언니, 방금 봤어요..? 저, 저 혼자서 침식체를 해치웠어요. 잘했죠.....? 대장님이 갑자기 침식체로 변해서.. 무서웠지만 언니를 지키려고 열심히 싸웠다고요. 저.... 잘한거 맞죠? 그런 거죠?
난민지구로 돌아가면 펌웨어 업데이트 부터 해야할 것이다. 이쯤되면 회로 오류가 아니라 인공지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걸테니까. 이번에도 사고보다 행동이 빨랐다. 근처의 철근을 뽑아 구조물 뒤의 침식체를 향해 던지고, 반대편에 있던 쇠파이프를 끊어 달려든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관통했음에도 폭발적인 속도와 위력으로 날아드는 철근을 받아치느라 생긴 틈 속으로 끼어들어 침식체가 들고 있는 거대한 무기를 쇠파이프로 내려쳐 잠시 저지했다. 침식체도 힘을 써보려는 듯 쇠파이프가 들썩거렸지만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고 있는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
"뒤에 있는 휴먼들, 제가 왔던 쪽으로 도망치십시오. 자정 즈음에 근처 공원으로 가면 차원 함선 하나가 도착할겁니다. 그걸 타고 돌아가십시오."
상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도움의 손길이란건 인지 했는지, 고개를 연신 숙인 인간은 자신의 동료를 부축하고 빠르게 도망쳤다.
쇠파이프의 비린내가 후각센서를 타고 느껴져온다. 이열치열, 불쾌한 비린내는 침식체의 비린내로 덮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쇠파이프를 든 손에 힘을 빼 침식체가 들어올리려는 힘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쇠파이프는 들어올려지지 않았고, 침식체의 무기도 가만히 멈춰있었다.
"신기한 일이군요. 방금 던진 철근은 쳐냈고, 아까 인간들을 몰아붙일 만큼 힘이 남아있는 침식체가 힘을 빼다니. 역시 탄소 기반 생명체와는 다른 우월함을 알아본 겁니까? 그렇다면 좀 더 심도 있, 는....."
고개를 들어 침식체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호라이즌 역시 움직임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다 헤진 옷자락, 창백한 피부, 망가진 얼굴, 흐릿한 눈동자, 변이된 팔.
하지만.
머리를 묶은 저 리본, 창백하고 망가졌지만 알아볼 수 있는 얼굴, 다 헤졌어도 달라지지는 않은 옷자락, 흐리멍텅해도 여전히 큰 눈동자.
그리고, 호라이즌 자신과 같이 이 현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
분명히 아니지만, 분명히 맞다. 사고회로 깊은 곳 어디선가 분명히, 호라이즌 자신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대, 시.....?"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번뜩 생각나서 일어나자 마자 홀린듯이 써봤음. 시점을 대충 잡긴 했는데 일단 펜릴 소대가 첫 다이브하기 직전, 호라이즌이 코핀과 접촉하기 전, 현재 메인 스토리에서 1년 정도 전 쯤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빠른 시일 내로 다음 편 써오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