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 언니와 대화하던 남자는 어느샌가 술잔을 전부 비우고서 마치 환각인 듯, 유령인 듯 사라진 후였습니다. 사라지기 전, 나지막한 목소리로 쉬라고 말한 듯 들렸습니다.

손에는 밀크 쉐이크가 담긴 잔을 양손으로 붙잡고,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있는 언니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슬픈 감정도, 그러면서도 기쁜 감정, 아쉬운 감정 같은 이런저런 감정들이 섞인듯한 표정입니다.


"언니, 왜 그런 표정 짓고 있어요?"

"..."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는듯이 멍때리던 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이 쪽을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그냥, 이젠 이것저것 해주기도 힘들겠다. 싶어서 그래. 꼬맹이."

"결국, 이 공간에 있는 우린 둘 다 죽은거라고 봐도 되는거겠지.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을테니."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솔직하게 너를 대해줘도 좋았을 것 같다. 라고 약간 후회하고 있을 뿐이야."


분명, 언니의 입가는 미소짓고 있었지만, 그 올곧은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 본 안쪽에는 후회와 같은 어둠이 깊이 뿌리내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언니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습니다. 조금의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그 어둠이 걷힐 수 있도록.


"언니, 언니는 이미 저한테 많은 걸 해주셨잖아요. 그 빚더미에 앉은 제 가족도, 상처받았던 제 자신도, 결국 언니한테 도움받은 거에요."


언니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술잔을 쥐고 있던 다른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재차 힘이 빠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분명, 아직 자신의 죄책감이란 감정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이겠죠.


"제 인생의 비극은, 언니를 만났을 때부터 끝난거에요. 언니가 저를 구하러 와줬으니까, 언니가 구해줬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슬픈 감정은 떨쳐내고, 우리 둘이서 앞으로의 길을 생각해봐요. 분명, 즐거운 일들이 있을 거에요."

"앞으로도, 결국 이 공간엔 저희 둘 뿐이겠지만. 둘만 남았더래도 어때요. 이젠 아픈 일도, 슬픈 일도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이젠. 가족으로써 잘 부탁해요, 언니."


언니는 잡았던 제 손을 끌어당겼고, 팔을 안쪽으로 넣어 꽈악 끌어안았습니다.

그런 언니는, 어딘가 어리광쟁이처럼 보이기도 해서, 약간 웃었습니다.


"웃지마!.. 망할꼬맹이.. 너 때문에.. 너.. 으윽.."


"헤헤.."


꽉 끌어안은 언니의 볼을 타고, 어깨가 약간 젖어들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하여간, 솔직해진 언니는 감수성이 풍부한지, 잘 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언니를 끌어안고, 머리를 쓸어내려주며 다독여주었습니다.


"꼬맹이, 이젠 너도 솔직하게 행동해. 너도, 이 공간에서 나랑 같이 살면서 별 꼴 다 볼테니까, 숨기는 것 없이."

"그렇게 할게요, 언니. 약속해요."


자신있게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고, 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얕은 한숨을 쉬며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어주었습니다.


"약속한 거에요? 이제부터 좀 더 언니한테 끈질기게 달라붙을 거니까요."

"그러던지, 망할 꼬맹이."


언니는, 투덜대듯 말했지만서도, 그 표정은 이미 다른 모든 감정은 내비둔 채, 저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우리만의 세계에서, 각자 자신이 있을 곳에서 살아가는거에요. 언니.


--------------------



소설 써본 적 없음

문과 아님

살면서 유일하게 써보던 긴 글들은 보고서 아니면 자소서였음

폰으로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