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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화나 영화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토끼를 따라 들어간 앨리스와 같이.

폭풍을 타고 오즈랜드로 날아간 소녀와도 같이.

과거로 돌아가는 백투더퓨쳐와도 같이.


그녀는 이상한 시간의 틈새로 빠져버렸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당연하다는 듯한 서윤의 대답은 질문의 당사자에게 '당연하지 않음'을 더욱 더 인식하게끔 할 뿐이었다.


사실 그녀도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긴 했었다.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타고난 동물적인 감만큼은 탁월하였기에.


아침부터 일어난 우연을 가장한 반복적인 필연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리는 전무했다.




자신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유미나는 자신의 볼따구를 두 손가락으로 세게 잡아당겨 보았다.


"악'"


더럽게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나오고 볼이 부어올랐지만, 꿈에서 깰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서윤은 그런 이상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그녀를 어색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적당히 인위적인 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서윤이 떠나가고 남은 그 자리에서, 그녀는 앉은 의자를 빙빙 돌려가며 허공을 바라봤다.


보고서는 엿이나 잡수시라지. 

지금 이딴 것에 신경을 쓸만한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딱히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던 중 불현히 어제, 정확히는 또 다른 12월 24일에 겪었던 기억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한 일요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평소와 같은 평범한 하루였을 터에, 무언가 어색한 존재가 끼어들지 않았던가.




"구슬!"


그것을 떠올리자 그녀는 자리를 박차며 무심코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 반동으로 의자가 뒤로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고, 사무실에 남아있던 몇몇 직원들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제 무언가 어색한 점이 있었다면, 어제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필시 그것은 그 구슬일 것이다.


그 구슬에 무언가 있다고.

그녀는 확신을 가진 채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구슬을 찾으러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그녀는 복도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주시윤을 발견했다.


유미나는 순간 흠칫했다. 


그가 어제도 복도에 있긴 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복도에서 그를 만난 시간보다는 조금 이른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지라도 그와 다시 만난 것에 대해 내심 기쁨을 품기도 했다.


"안녕, 선배." 유미나는 말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미나양."그리고 주시윤이 대답했다.


그런데 뭐랄까. 그의 태도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인상이라고 해야할까 하는 부분에서 유미나는 다소 어정쩡한 어색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경직된 모습.

그는 뭔가 말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걸 주저하는 것처럼, 우물쭈물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미나는 의문에 차올라 그에게 질문했다.


"선배, 무슨 일 있어?"


"아,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그때 선배의 뒤에서 뽈뽈뽈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바퀴를 굴리며 이동하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기계가 보였다.


사장님이었다.


우선은 사건의 해결이 우선이라 생각한 그녀는, 말끝을 흐리는 주시윤을 뒤로 하고 사장을 쫓아갔다.


"선배, 미안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조금 이따가 들을게!"


떠나가는 그녀를 보며 그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사장님!"


한참을 달린 끝에 유미나는 멀리서 걸어가고 있던 사장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으익! 깜짝이야!"


그러나 그녀가 조금 갑작스럽게 움켜쥔 탓이었는지, 손을 잡힌 기계는 크게 놀란 듯 화들짝 튀어오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미나양 아닌가. 좋은 아침일세."


유미나는 복도에 걸린 시계를 힐끗 살펴보았다. 

시계는 11시 30분 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슬슬 좀 늦은 시간이 아닌가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장님! 그 사장님 책상 위에 있던 구슬 그거 도대체 뭐야?! 그거 만지고부터 자꾸 이상한 일만 일어난다고!"


그러나 앞에 서있던 로봇은 영문을 모르겠단 눈치를 지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구슬...? 무슨 구슬말인가?"


"그거 있잖아! 그...그... 크기는 내 얼굴만하고, 약간, 쫌 뭐랄까, 분홍색 좀 은은하게 나는 그런 거!"


"미안하네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이번 일과는 무관한 것일까? 


유미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려보자 사장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왜, 왜 그러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어있나?"


"...아니야. 그냥 쳐다봤어."


"그런가?"


사장님과 계속 이야기해봤자 무슨 더 큰 소득을 거둘 수는 없겠다 싶었던 그녀는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갑자기 잡아둬서 미안해, 사장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는 듯 인사를 건네고, 그녀는 뒤를 돌아 정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회사 안에서 방황하다 유미나는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항상 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탕비실을 방문했다.

실제로 항상 들리기도 했고.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눈에 한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미나양. 또 만났네요?"


남성은 유미나를 보고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어...어, 안녕, 선배?"


유미나는 그런 주시윤을 보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일부러 우연스러움을 가장한 듯한 그의 출현에, 유미나는 기쁜 마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생겨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선배가 뭔가 하고 싶든 말이라도 있는 걸까?'


그녀는 속으로 혼잣말을 되뇌이며 컵라면 용기가 줄지어 있는 찬장을 향해 걸어갔다.



늘 하던대로 컵라면을 빼내고 물을 끓인 뒤, 젓가락을 올려놓고 탕비실의 책상에 앉았다.


그러다보니 당연스럽게도 그녀는 주시윤과 마주보며 앉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주시윤은 얼굴을 손으로 받치며 조금은 기우뚱한 각도로 그녀를 응시했다.



유미나는 그에게 눈길을 두지 못한 채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그렇게 3분이 지나고, 컵라면이 다 익자 유미나는 용기의 뚜껑을 까고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면을 치며 먹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바로 앞에서 쳐다보는 이성의 존재 때문에 그녀는 호로록 소리가 나는 정도로 수줍게 라면을 먹었다.




그러고 있으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던 주시윤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컵라면이 맛있으신가봐요. 자주 드시네요."


그녀는 라면을 입에 물고 대답했다.


"으, 응. 선배는 안 먹어?"


"전 별로 배가 안 고파서요."


유미나가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 유미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미나양, 혹시 뭔가 이상한 일 없으신가요? 예를 들어 하루가 반복된다던가하는..."


"우웁! 머...머아호(뭐라고)?!"


그 말을 하고 유미나는 가슴을 두드렸다. 너무 깜짝 놀란 탓에 사레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주시윤은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된 듯한 모습을 보이자 말을 이었다.


"반응을 보니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가 보네요."


"그...그게ㅡ"


그녀가 무언가를 우물쭈물거리자 주시윤이 말했다.


"뭔가 말씀하시길 꺼려하시는 듯하니, 제가 아는 것부터 말씀 드릴게요. 그럼 괜찮으시죠?"


"으...응."






주시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뱉어냈다.

어제를 기점으로 12월 24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모두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들과 일치했다는 것. 그것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한 동일한 시각에, 모든 일들이 정해져있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갔다는 것.

그리고 아마 이 모든일의 원인은, 자신들이 어제 건드렸던 구슬에 있다는 것까지.


주시윤은 반나절도 안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한 정보를 유미나에게 말해주었다.




유미나는 그 말을 듣고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벌써 그정도까지 알아낸 거야? 역시 선배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은 것 같네.."


"천만의 말씀이에요. 하하.


"그런데 그 일이 나한테도 일어났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유미나는 무언가가 마음의 걸린다는 얼굴을 지으며 그에게 질문했다.



"제가 기억하는 12월 24일과는 다르게 행동한 사람이 미나양뿐이었거든요. 그리고 약간 다급해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미나양한테도 뭔가 있겠구나~ 싶었던 거죠."



그 말을 듣고 유미나의 얼굴이 잠깐 달아올랐다.

자신의 어색함을 감지하고, 어제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일일이 그가 기억한다는 사실에 쑥쓰럼을 느꼈던 것이다.



연모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데서 오는 어수룩한 수줍음인 동시에,

자신이 창피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가 기억했던 것이 아닌가하며 망신살이 뻗치는 그녀였다.






그러나 주시윤은 그것을 딱히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유미나는 달아오른 홍조가 가라앉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선배는 뭔가 계획이라도 있어?"



"그렇게 거창한 건 없고요. 일단 오늘 하루 정돈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혹시 무언가의 우연이 겹쳤을지도 모를 일이고, 내일이 되면 모든 일이 말끔히 해결돼있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럼 선배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오늘까지는 쉬는 걸로. 만약에 내일도 똑같은 일이 계속 된다면, 그땐 정말 뭔가 조치를 취해보는 걸로. 괜찮으신가요?"


유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은 것 같아."


"네, 그럼 그렇게 하는걸로 하죠."




그러고 그는 갑자기 중요한 것이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그럼 저희끼리의 인사를 정하도록 할까요?"


"인사?"


갑자기 튀어나온 쓸데없는 소리에 유미나는 영문을 모르겠단 눈빛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확고했다.


"저희는 이 정신 나간 세상 속에서도 멀쩡하다는 걸 서로한테 알려줘야죠~. 괜찮은 인삿말 어디 없을까요?"


유미나는 무신경하게 말을 던졌다.


"그럼 뭐 날짜라도 묻는 건 어때?"


"날짜요?"주시윤이 궁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어찌됐든 지금이랑 똑같다면, 우리한테 내일이 단지 평범한 12월 24일은 아닐 테니까."


주시윤은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오~ 좋은 생각이신데요? 미나양도 때로는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내시는 군요?"


"뭐, 뭐래!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주시윤은 딱히 대꾸를 하지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고리를 잡고 문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그는 그녀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럼 잘 있으세요, 미나양. 내일은 12월 24일에 만나지 않길 바랄게요."


"그래, 잘가. 선배."


유미나는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도 조금 긴장하고 있던 것만 같은 느낌은 그저 그녀만의 착각이었을까.

홀로 남은 탕비실에서 그녀는 무의미한 추론에 빠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오늘도 조용히 기숙사의 방안에 들어왔다.


1인 1실을 장려하는 회사의 시스템 덕분에, 오늘도 그녀의 방은 허전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날씨가 쌀쌀했기에 이불을 힘껏 끌어올렸다.


설마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만약 그렇다면, 내일은 선배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그런 망상에 빠지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삐리리리리리리-





농축된 원액과도 같던 단잠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는 오늘도 그녀의 귀에서 굉음처럼 진동했다.


유미나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또 다시 잠깐의 스트레칭 시간을 가진 뒤, 휴대전화가 놓인 책상으로 다가가 휴대폰을 들었다.



오전 8시.


발신자 부사장님.


그녀는 강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 번째 12월 24일의 해가 다시금 밝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