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어!”

 

적갈색 벽돌 무늬 벽지로 장식된 크루즈 2층의 카페 안에서 리브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포크 가득 떠먹었다.

 

카페 내부는 무드 등을 천장에 달아 이른 오후의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관상초를 벽에 비치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창틀엔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워 카페 바닥에 여러 기하학적인 무늬를 비추었는데 풍부한 색감이 카페의 인테리어와 퍽 잘 어울렸다.

 

에스테로사는 푹신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게.

 

흑백 무성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벽면의 스크린.

 

그리고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까지.

 

정말이지평화로운 오후의 한때다.

 

테이블에는 브라우니와 딸기 케이크마카롱과 초코 스콘부터 바삭한 식감의 쿠키 등 다양한 디저트가 가득 올라와 있었다.

 

부단장이 여기 있었다면 분명 살찐다고 한 소리 들었겠군.

 

남몰래 쓴웃음을 지으며 에스테로사는 자기 몫의 토피 넛 라떼를 한 모금 삼켰다.

 

~. 이렇게 달콤한 거 먹으면서 쉬고 있으니 정말 꿈만 같다.”

 

리브가 포크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평소라면 지금쯤 역사 강의를 듣고 있을 시간이던가.

 

기사도와 정의를 표방하는 조디악 나이츠이기에그들의 훈련은 전투기술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사로서 갖춰야 할 여러 교양예절이나 도덕 수업 등도 커리큘럼에 포함되어있다.

 

그러고 보니 리브 경은 교양 강의에 유독 약했던가.

 

비단 교양뿐 아니라 기사도 수업이라면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고들 하지만.

 

무슨 생각해단장?”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리브가 포크를 입에 물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스테로사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 주었다.

 

아무것도 아니네리브 경.”

 

저 천진난만한 표정과 행동을 보면 그녀에게서 투철한 정의감과 굳건한 신념 같은 걸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들 말할 것이다.

 

하지만 타산(打算없이 행동하는 천성이야말로 그녀의 장점이지.’

 

부단장도 참조금쯤은 걱정을 덜어도 좋을 텐데.

 

그래도 교육에 너무 나오지 않아선 모범이 되질 않으니다음엔 직접 권유해볼까.

 

만약 리브가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더라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갔을 터이지만.

 

리브 경은 단 걸 좋아하나 보군?”

 

벌써 식탁에 가득한 디저트 중 반 이상을 해치운 그녀를 보며 에스테로사가 웃었다.

 

리브가 다 먹은 접시를 포개두고 팔을 뻗어 마카롱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렇지만본부에서 지낼 땐 간식 같은 건 꿈도 못 꾸잖아식단도 다 정해져 있고.”

 

균형 잡힌 식사와 일정한 일과가 건강한 신체로 이어진다고들 하니까.”

 

부단장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그래그거 말이야!”

 

말 잘했다는 듯이 리브가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아니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한시도 빠짐없이 훈련에 강의만 듣냐고심지어 단 건 구경도 못하고!”

 

쌓인 게 많았나 본데.

 

나도 사람인데 좀동생들이랑 놀러도 다니고달달한 것도 먹고그럴 수 있는 거 아니야근데 부단장은 매번 나만 보면 리브 경!’ 그러면서 호통만 치고.”

 

미간을 찡그리며 피오네의 흉내를 내는 모습이 이미 여러 번 따라 해 봤는지 아주 자연스러웠기에에스테로사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동안 그간의 고충을 들어주며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두 남학생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태스크포스분들 맞죠기사단 활동하시는.”

 

그렇다만.”

 

지금은 제복도 입지 않았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리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스테로사와 남학생들을 번갈아 보았다.

 

말을 걸어온 남학생이 에스테로사의 대답에 면면이 화색을 띄웠다.

 

역시 맞죠저 팬이거든요!”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 샤레이드에서 제프티 바이오테크 본사를 습격한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팬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인터넷에서 누나들 사진 봤을 때 처음에는 그냥 기사 코스프레하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진짜 세고 멋있더라고요.”

 

낮 뜨거운 칭찬에 리브가 몸을 배배 꼬았다.

 

아하하아니 뭐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싸인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에스테로사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싸인 말인가그런 건 만들어두질 않아서.”

 

연예인도 아닌데 싸인이라니.

 

그럼 사진이라도 같이 한 번.”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린다.

 

이건 기사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인가아닌가.

 

에스테로사가 침음(沈吟)을 흘리며 머리를 짚고 고민하고 있자니 리브가 신이 나서 끼어들었다.

 

사진 정도 가지고 왜 그래단장그래같이 찍자.”

 

얼떨결에 떠밀려 학생들 사이에 서게 된 에스테로사가 셀카봉을 보며 미소를 띄웠다.

 

찍을게요하나.”

 

그리고 배가 통째로 흔들리며 카페에 있던 모두가 바닥을 굴렀다.

 

 

 

으윽괜찮으십니까에리어스 경!”

 

한솔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옆에 작은 소녀가 갑판에 쓰러져 있었다.

 

아으한솔 경.”

 

급히 달려가 보니 무릎이 조금 까졌을 뿐 겉보기에 큰 상처는 없었다.

 

그래도 에리어스 경은 카운터치고 몸이 약한 편이니 눈에 띄지 않는 다른 부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한솔 경사람들이.”

 

갑판 여기저기에 다른 승객들이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쳤어요어서 도와드려야.”

 

자기 몸이 이런데도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건가.

 

우선 에리어스 경의 상처부터 치유하시죠제가 다른 분들의 상태를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나다른 이들을 살필 틈 따윈 없었다.

 

충돌의 여파로 조금 벌어진 두 배의 틈새를 넘어검은 강화복을 입은 괴한들이 크루즈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기관단총과 소총진압 방패 등으로 중무장한 사내들.

 

강화복 왼쪽 어깨 위에는 태풍을 형상화한 마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등에 여러 장비를 멘 사내가 바닥에 두꺼운 안테나를 세웠다.

 

전파 방해 장치 설치 완료외부로의 모든 통신을 봉쇄했습니다.

 

이윽고 검붉은 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해.”

 

사방에 울리는 총성.

 

갑판 위에 있던 보안요원들이 무전기로 증원을 요청하며 급히 테이저건과 삼단봉을 꺼내 들었지만실탄으로 무장한 괴한들을 상대로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갑판이 피로 물들고 곳곳에 시체가 쌓여간다.

 

한솔 경이게 대체?”

 

해적입니다에리어스 경엎드리세요!”

 

아직 살아있는 사람도 있어요어서 치료해야 하는데.”

 

지금은 에리어스 경의 안전이 우선입니다에리어스 경이 잘못되면 누가 저들을 치료해준단 말입니까!”

 

한솔이 필사적으로 에리어스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성이 음침한 목소리를 흘렸다.

 

모두얌전히 엎어져 있도록쓸데없이 저항하면 시체만 늘어날 뿐이다.”

 

아직도 갑판 여기저기서 간헐적인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단 생각에 한솔이 등에 메고 있던 죽도를 꺼내 들었다.

 

에리어스 경여기 그대로 계십시오절대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예전에 다수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단장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숫자의 우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네한솔 경그러자면 11을 유도할 수 있는 장소로 상대를 유인하거나.’

 

아니면 적의 사령탑을 단숨에 제압해 지휘를 마비시킨다!

 

한솔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죽도를 휘둘렀다.

 

하압!”

 

죽도 주위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흉흉한 바람 소리를 일궜다.

 

조금 전 지시를 내리던 사내가 손등으로 죽도를 쳐내고 주먹을 몇 차례 쥐었다 펴며 물었다.

 

뭐냐꼬맹이?”

 

한솔이 연이어 상대의 어깨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사내는 몸을 틀어 가볍게 공격을 피하더니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한솔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직후 한솔이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크윽!”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소음.

 

수십수백 개의 대포가 바로 옆에서 포탄을 쏘아내는 듯한 엄청난 폭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귀에서 걸쭉한 피가 흘러내린다.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애송아얌전히 있어라.”

 

안 돼저들을 막아야.’

 

한솔의 의식이 점차 흐려져 갔다.

 

 

 

아야야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암초에라도 부딪힌 건가?”

 

리브가 머리를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스테로사가 옆에 있던 학생들을 부축해주며 대답했다.

 

아니이건.”

 

곧바로 갑판을 뒤덮는 총소리.

 

카페 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습격이다리브 경따라오게!”

 

곧바로 허리춤의 버고 소드를 쥐고 에스테로사가 복도로 뛰어나갔다.

 

에엑잠깐만단장!”

 

리브가 한발 늦게 등에 걸어둔 봉을 꺼내며 뒤를 따랐다.

 

2층 복도에는 이미 괴한들이 진입해 곳곳에서 싸움이 한창이었다.

 

곧 2층에 있던 다른 기사단원들도 그녀들에게 합류했다.

 

단장님무사하십니까!”

 

시민들을 먼저 구조하도록저들은 우리가 맡겠다!”

 

카운터인 그들은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지만일반 단원들은 갑옷이 없다면 총화기 앞에 무력하다.

 

에스테로사는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눈앞의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괴한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여럿이 화망(火網)을 형성해 적의 접근을 막는 사격방식.

 

절대 평범한 해적이 아니다.

 

에스테로사는 버고 소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으로부터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사격이 통하지 않음을 확인한 사내들이 외쳤다.

 

카운터다그레네이드(grenade)!”

 

가장 뒤에 선 자가 사격을 멈추고 품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졌다.

 

동시에 사내들이 빠르게 사방으로 산개하고 곧 폭발이 일었다.

 

다시 자세를 잡고 연기 한 가운데로 소총을 겨누는 괴한들.

 

리브가 곧장 달려와 그들 중 한 명의 복부를 철 추로 강타했다.

 

단장괜찮아?”

 

연기 속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난 괜찮으니 상대에게 집중하게!”

 

머리가 조금 헝클어진 에스테로사가 이내 뛰쳐 나와 검 면으로 다른 사내의 헬멧을 강타했다.

 

곧바로 다음 사람을 제압하려는 순간.

 

거기까지다아가씨들.”

 

등 뒤를 돌아보니 다른 사내들이 승객 몇을 붙잡고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무기를 버려라.”

 

단원들이 에스테로사를 바라보았다.

 

단장님!”

 

에스테로사가 제자리에 멈춰서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항복하면그들을 풀어주는 건가?”

 

당장은 어렵고우리가 안전해졌다는 확신이 들면 놓아주지.”

 

식은땀을 흘리며 리브가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어쩌지단장?”

 

잠시 침묵하던 에스테로사가 이내 버고 소드를 바닥에 내던졌다.

 

 

 

모든 구역 제압 완료했습니다해리스 전대장님.”

 

복면으로 입과 코를 덮은 남자가 제복을 입은 사내에게 다가와 말했다.

 

좋아난 화물칸으로 가지필립넌 여기 남아서 대원들을 통솔하도록.”

 

필립이라 불린 사내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지만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해리스가 필립을 돌아보더니 물었다.

 

아직도 이번 일이 마음에 안 드나?”

 

필립은 잠시 주저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민간인들을 습격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이들은 우리의 복수와는 아무 관련 없는무고한 이들이지 않습니까.”

 

무고해?”

 

해리스가 필립에게 다가와 두 눈을 쏘아보았다.

 

코가 닿을 듯 가까운 둘 사이의 거리.

 

서로의 숨결마저 느껴질 법한 거리에서필립은 해리스의 눈에서 타오르는 증오를 엿볼 수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저들이 무고하다고관리자가 우리의 형제들을 희생시켜 만든 평화 위에 도시를 짓고 살아가는 저들이?”

 

승산이 희박한 싸움임에도 피땀 흘려 싸운 형제들의 시체 위에 관리자가 세운 세상이다.

 

그리고 그들을 우롱한 관리자의 기술로 목숨을 부지하는 이들이다.

 

그 관리자의 개입이 없었다면 저들이 이토록 빠르게 기술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그리고 우리의 희생이 없었다면 관리자가 지금의 문명을 쌓아 올릴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겠나?”

 

우리의 피로 쌓아 올린 평온이며우리의 시체로 만든 성벽이다.

 

죽어간 모든 전우의 피로 만든 세계이니 그 세계를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복수의 대상이다.

 

알겠나무고한 시민 따윈 없어그 누구도.”

 

필립은 조용히 비통에 잠겨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해리스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토닥였다.

 

부 전대장자네의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하지만 다른 간부들 앞에서는 그런 발언은 자제하도록그럴수록 버려진 형제들에 대한 자네의 충성심만 의심받을 뿐이야.”

 

충성심이라.

 

세계를 지키겠다는 사명 아래 모였던 이들이 이젠 그 세계를 불태우려 들고 있는데.

 

존재의의조차 잃어버린 조직이 간판만 새로 달았다고 해서 다시 의미가 생긴다는 것인가.

 

복면을 쓰고 있어 다행이었다.

 

전대장이 내 자조(自嘲섞인 미소를 보지 못하니.

 

 

 

2층에 있던 승객 전원이 에스컬레이터 앞 공터에 모여 앉아있다.

 

그들을 둘러싼 대원들은 여전히 총을 들고 철저히 인질을 감시하고 있었다.

 

리브가 조용히 에스테로사에게 물었다.

 

우리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나리브 경그대로 싸웠다간 인질들이 위험했다.”

 

무기도 빼앗겼고기사단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 상태.

 

이대론 반격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당하게 생긴 판이다.

 

그렇다고 틈을 노리기도 어렵다.

 

선박을 습격한 이들은 얼뜨기가 아니었다.

 

지금 나눠 선 자리만 보아도 행여나 있을 반격에 대비해서 모두가 동시에 제압당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위치를 계산해두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인질들이 죽게 된다.

 

당장은 방법이 없네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우으그래도.”

 

그러자 옆에서 유심히 대화를 엿듣던 양복을 입은 30대 사내가 천천히 바닥을 기어와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자네들혹시 태스크포스인가?”

 

에스테로사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무슨 일이시죠?”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난 관리국 소속 요원이네날 좀 도와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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