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머지 경우의 수를 빼면..."


"오, 멋있다. 경우의 수가 뭐야? 개멋있는데?"


"뭐라는거야 병신이..."



부끄러워서 욕을 한다. 그 때랑 달라진 것은 없다.

경우의 수를 배제한다. 그 때랑 다른 건 있다.


최악의 수를 배제하면 된다.

경우의 수는 어디까지나 경우의 수. 최고와 최악 사이의 아직 모르는 하나.


하지만 언제나 맞닥뜨리는 것들은 최악의 수.

당황해서 그 이상의 최악이 없다고 생각 했던 밑바닥까지 그대로 쳐박는다.





인간의 관계와 인간의 비합리성은 계산과 명제로 이루어질 수 없다.

논리로 어떻게든 할 수 없다는 걸 몰랐어.

틀린 건 틀린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다. 라고 생각했었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아~

조금은 알지도 모른다.

그래, 아...

아하하....








아~ 알렉스 젖통 쥐고 아득바득 질싸하고 싶다~

- 20






-구관리국 메이즈 전대원 Val-8 에서 귀하에게로 인증 완료.  생체유지 장치 기동. 주변 침식파 저해를 위해 침식 방호능력…







발레리부터 빌린(?) 수트를 입고서, 서서히 몸을 데우고 있는 그 따스함에 잠기면서도 생각을 계속한다.

도플갱어, 그림자 류드밀라, 그리고 도플갱어 군단.


본래라면 함선 안에서 같이 동결 되어있어야 했던 발레리.

그런 발레리가 항상 내 루프기점 발 아래.


간단하다. 마치 처음부터 '이게 답인데 왜 몰라?' 하고 메롱 하듯이.

하지만, 방법과 실현 시키는 계획은 조금 다르니까.



우선은... 상황 파악이다.




"그 새끼가 문젠데..."




도플갱어. 나의 도플갱어. 아, 이름 기네. 그냥 도붕이로 하자.

도붕이 그 자식은 명백하게 나에게 악의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 없게 죽었던 것들 중에 태반은 도붕이의 분탕이다. 그 자식이 말하기를 나를 흡수할 때 마다, 자기도 루프의 시간이 짧아 진다고 했었나?



-이제 이틀 정도려나? 여기에 곧바로 기억이 꽂히거든...



이틀, 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더 짧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고보니.


나,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던가?

서둘러서 헬멧 안의 시야보조 관련 계기를 확인한다. 온도니 뭐니 이해 못 할 수치들이 오르락내리락.

시간이 없어? 뭔 개소리야. 닌텐도 DS에도 달려 있던 게 시곈데.


구관리국의 뭐시기 하이테크 수트 아냐 이거?



"...아 있다."



2022 / 09

         08

         10

         09




좌르르르륵, 수치가 계속해서 뒤바뀌고 있다.

년도가... 2022년.




"관리실패가 일어났을 때로 고정 되어있잖아."



망가졌다...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이 생긴 게 틀림 없다. 자주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동기화가 되다 만 컴퓨터라던가, 인터넷에 설정으로 돌아가는 스마트폰이라던가, 혹은 보드의 이상이라던가. 이걸로 판단 할 순 없겠구만. 이틀이라... 애매하다. 이 눈보라 속에서 시간을 가늠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시간 관련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을 거야.


이미 시간조차 잊어버린 그림자 류드밀라와, 도플갱어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도 대수롭지 않아 보였지.

그저 눈 앞의 전투에 신경이 팔려있었어.





"어쩔 수 없구만..."



판단 할 수 있는 전제가, 명제가 너무 적으면 뭐 어쩌겠어.

주관식 수학 문제랑 똑같다. 대충 쌓아진 도형들. 나머지는 그려가면서 확인 해보는 수 밖에.



그러니까, 미안...하다...

류드밀라. 이건 그런 걸 위한 거니까. 조금만 참아주라.

어차피 크게 다치지도 않는다는 거 나도 알거든.



.

.

.




-제 1파. 적의 회피를 감지. 궤도수정 후 2파. 포격엔지의 과부화를 확인.


-본 기체로 고속 접근하는 열원 감지.


-제 3파. 수동 조작 트리거를 사용 가능합니다.





후우, 이젠 떨리지도 않는구만.

그 왜. 리듬게임도 하다보면 피지컬이 아니라 외우는 거라잖아?

그리고 이런 말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괜히 별 거 아닌 걸로 다른 루트로 빠지면 곤란 하니까.




”하늘에서 칼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없니?!!!?!! 유두말랑!!!!“




직격. 보라빛 무언가가 부풀어 오른 풍선껌처럼 펑하고 터지고, 고열의 에너지가 만들어 낸 빛줄기가 꺼진다.

커핑, 하고 전차의 차체가 크게 흔들린다. 시스템 아나운스는 뭐시기저시기 하면서, 못 움직일 이유를 대고 있다.

과열 된 포격 시스템 일부를 강제 사출했다나 뭐래나. 어차피 이 정도 하면 됐으니까 아무래도 좋다.


수동 조작 콕핏에서 내린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언덕 위에서 나를 의아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도렉스쟝과 도플갱어들.



시간 제한은 아마 하루하고 반 정도.

도붕이 자식이 깨어나기 전에 필요한 정보를 캐내야 한다.

만약에, 잘 풀린다면 어떻게든...


이번에 내가 발레리를 대체해서 이야기를 원래대로 돌려 놓아야지.



나는 오른손을 들어 크게 흔들고,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도렉스쟝.

허리를 숙인 채 중심을 잡으며 내려오는 도렉스쟝의 커다란 흔들림에 내 눈알도 흔들리면서

수트 내부에 영상기록 기능이 없는지 찾았지만, 큼큼.


찾기만 했다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