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내려 얘들아."



겨눠진 새빨간 아이 레이저가 눈밭 위를 베어내듯 스윽, 그리고 새까만 남자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은발.



"너, 뭐야?“



자, 어떻게 하지. 이전에는 관리자라고 속여서 그림자 류드밀라...아 너무 길다. 쉐밀라로 퉁치자.

쉐밀라쟝이랑 싸우게 만들었지. 그 틈을 타서 함선으로 가서 알렉스를 따먹... 아니, 아무튼 그렇게 흘러 갔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거다.


하나는 함선의 조사.

이건 발레리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에 관해서 꼭 필요해.


상태를 봐서는 원본이었지. 어디서 떨어져 나갔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 안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 할 가능성이 있어.


그리고 하나는...



 ”수상한데요. 부전대장. 쏴버리죠.“ 



너.

도붕이 너 이 새끼. 아직은 루프한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겠지. 근데 예---전 부터 거슬렸어.

저 새끼를 먼저 배제하는 거다. 지금 저렇게 도플갱어 방패병인 것 마냥 흉내내고 있는데 곧 의식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분탕 칠 거야. 어디까지 내 기억, 지식을 흡수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함선의 암호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건 확실해. 어쩌면 내가 미쳐서 돌아다니느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가지고 있을 수는 있어. 하지만 저 자식에게서 정보를 얻어낸다는 건 곧, 잡아먹히겠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포기하고 루프하기 전에 없애야 해.


어라? 근데 이 새끼. 그러고보니 의식이 루프하기 전인데도 항상 나한테 적개심을 드러냈지?

몇 번은 아무 상관없는데 펑펑 쏴대질 않나...

도플갱어라서 그런가?



"그래서? 너 뭔데? 이상한걸... 냄새는 우리와 닮았지만 달라... 뭔가 그 이상의..."


우선 관리자인 척하는 건 안 된다.

그러면 도플갱어 류드밀라가 지금 도렉스쟝과 합류 했을 때 이야기가 어그러져.

원래 이야기대로 흘러 갈 수가 없게 되어버려.


이 이야기에 가장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는 사람.

나와도 문제 없는 사람.

그리고 확실하게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사람.




두근, 하고.

가슴 안 쪽이 울린다.

절대로, 눈앞의 도렉스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보는 탓에 흔들린...

저, 젖통 때문이 아니다. 저, 통명스러운 표정 때문이야!


노잼.




"아, 그렇지."



"...?"



"도대체 언제까지 시간을 끌 거냐?

 주인님께서는 더 이상은 못 참으시겠다던데?"



"...너..."



젖통 하나... 가 아니라, 가슴쪽 이야기를 하니 떠올랐다.

코핀 오브 타기리온. 타기리온의 사도. 이 이야기의 발단.

그래.





솔라키...




뭐더라 그 새끼 이름. 하, 니미스트라 닮은 년들 색놀이라 그런가 이름도 좆같애요.

아 니미스트라는 일부러 그런거야. 그치만 그 년 변피라 싸면서 분탕치면 개-좆같거든요.





"하루빨리 저 방주의 봉인을 풀고, 클리파 차원의 힘을 받기로 한 계약이잖아."



"..."



"후우, 그렇네. 사도님께서 수하를 보내실 때가 되긴 했지."



도렉스는 오른손을 허리에 짚더니 짝다리. 그 상태로 고개를 돌려 쳇 하고 혀를 찬다.

가볍게 흔들리는 끝이 붉은 은발은 깃털처럼 찰랑이며 그녀의 뺨을 때리고 있다.



"그 바보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아무래도 잘 넘긴 것 같은데.







.

.

.











.

.

.




"그래서? 그 사도의 수하께서는 무슨 뾰족한 방법이라도 있어?"



막사. 막사가 있네. 도렉스쟝에게 이끌려 도착한 도플갱어들의 주둔지.

분명히 도플갱어들은 먹고 자는 행위가 필요 없을텐데도 막사. 근처에 주둔한 전차와 각종 장비들.

뭐, 죄다 정보오염 되어 있었지만. 흑화타락 모네카쟝 개꼴리네 씨발.


이것도 '흉내'의 일종인가.



철컹, 하고 내려앉는 블레이드. 도렉스쟝은 그대로 안으로 걸어간 뒤에 대장석으로 보이는 곳의 팔걸이에 걸터 앉는다.

유려한 곡선이 팔걸이에 눌려 더더욱 S의 하부 곡선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와 씨발 저 똥탱...



"큼큼, 없다면 굳이 보내실 일도 없겠지."


"글쎄,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도움 될 것 같진 않은데."


"하하하, 그래. 보다시피, 나는 존재로써는 무력하다."



어디선가 본적 있는, 자주 나오는 겉멋 든 악역을 흉내낸다.

자주 있는 타입이잖아, 그런 놈들. 카사에는... 나유빈...은 비슷한 계열인데, 뭔가 어설프고.

시솝은... 그건 그냥 암컷이잖아. 

그래, 굳이 따지자면...




"어디까지나 존재로써는 말이지."



"그건 알아, 미쳐버린 침식증후군 환자 같은 상태인걸 너. 

 그보다 말투 바뀌지 않았어?"



쓰잘데없이 예리하긴...



"큼, 그러니까 그게 클리파 차원의 봉인을 뚫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이유라는거지."



"네가 말한 뾰족한 수를 가지고 말이야."



그런 거 없는데 시발. 아, 시발. 자꾸 말투가 왔다리갔다리하는데 이거 괜찮나?

도렉스쟝은 흐응, 하고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새빨간 동공을 따라도는 새하얀 선들에게 조명의 빛이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낸다.

그 움직임에 왼쪽 귀에 달려있던 새빨간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다.



"현재, 주인과 계약했던 존재는 이 봉인을 풀 열쇠를 꾀어내러 갔지?"


"용케 알고 있네."


"안됐구만... 그거 망한다."


"..."



줄어드는 입가. 천막 안에서도 들려오는 거세진 눈보라 때문은 아닐 것이다.

도렉스쟝의 눈가에서 빛이 사라진다. 날카롭게 변해, 조여드는 눈매에 사라지는 빛.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근거는?"


"아니 뭐, 너희들도 잘 알지 않아? '바보'라서 그렇지."


"실제로, 지난 20년간.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

 그 '바보'가 정면으로 '바퀴벌레'에게 승부를 거는 헛짓만 안 했으면이지만."


"어떤 의미로 그건 도플갱어를 넘어섰더라.

 원본을 흡수해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게 너희들의 본능이 아냐?

 목적을 우선시하지 않고, 그저 원본을 때려눕히려고 아득바득. 하하하..."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탑신병자 같은 거다. 게임에 이기는 것보다, 일단 라인전에서 저 씹새끼를 바른다.

어떻게든 춤을 추겠다라는 자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라인전을 개바른 뒤에 저 새끼를 탈주 시키겠다는 마인드.


그래, 그래서 저는 베인을 들었습니다. 제 의지로.



"...칫, 그래서? 방법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니까, 지금 다른 작전을 세워도 연계가 될 리는 없고.

 우선은 그 얄량한 작전에 맞춰주자고. 대신, 다른 준비를 했으면 하거든."


"다른...준비?"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렉스쟝을 완전히 구워삶으려면 이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도플갱어 류드밀라를 '바보'라고 불러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선이라면 분명히, 이제는 질렸을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승부수를 던진다.

넘어와라. 물어라.

앗, 기왕이면 내 자지도 같이 물어줄래? 이는 세우지말고.



"왜 모르는 척이야?

 너희들들... 아니, 니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잖아?"





다시끔, 도렉스쟝의 눈가가 커다랗게 변하더니 조명의 빛을 받는다. 들어오는 하이라이트, 금새 사라진다.

대신 입가가 싸늘하게 올라가며, 익숙한 그 표정. 그 자세. 오른손이 관자놀이에 겨눠지며, 입술 사이를 핥는 혀끝.

씨발, 꼴리게 만들고 있어. 저 매끄러운 입술. 마치 탕후루 같이 반짝이는 입술을 나도 핥고 싶다고 씨발!




"그럼, 사도의 수하께서는 나를 계약의 양도자로 봤다고 생각 해도 되는 거겠지?"






"하하..."




나는 걸음을 옮긴다. 막사 안으로 걸어 가, 본래라면 도플갱어 류드밀라가 앉을 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도렉스쟝에게 다가간다.

씨발,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무슨 사람이 이렇게 생겼냐. 살짝 여유롭게 늘어진 쌍꺼풀과 그 위의 눈썹. 그 간극이 자아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투명한 피부 위에서 스케이팅이라도 하는 것 같네.





"그거야, 하는 거 봐서지"



"하"



"그래, 차라리 그게 더 마음에 드네."




"그러면 이제 떠보는 건 그만하고 보여주라."





도렉스쟝을 내려다보고 있다.

절대로 위에서 젖통을 내려다보고 있진 않다.

숨을 쉴 때마다 후우우, 하고 줄어들었다가 커졌다가 하는 까만색 천 따위 안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