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다.
여기까지 도달한 이상, 너희에겐 이 사건의 전말을 알 자격이 있다.
궁지에 몰린 배신자의 시간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는 이미 내 뒤에 있는 것을 위해 모든 힘을 소모했으니까.
그러나 듣겠다고 한다면, 이 노인의 유언이라 생각하고 듣도록.
그러면... 그래.
너희는 나나하라 가문연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사악한 흉신을 막기 위해 각지에서 모인 과거의 위대한 영웅들.
그러나 강대한 악귀 앞에 인간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고,
놈을 막기 위해 초대 당주가 자기 자신을 희생했다.
그리고 우리의 능력이 아직까지도 그녀에게 미치지 못해,
미래를 기약하며 초대의 의식을 반복하고 있다.
가문에 스며드는 독을 깨닫지 못한 채로.
대강 이런 형태지. 맞나?
틀렸다.
그것은 전부 잘못된 이야기다.
우리는... 오로치를 없앨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아직까지 저 가증스러운 뱀에게 당주들을 바치고 있는가?
...처음에는 지금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초대 당주의 희생으로 오로치는 봉인되었다.
물론 가문연합이 치른 대가 역시 엄청났어.
칼날의 산, 시체의 산, 인골의 산, 피의 바다.
시산혈하 위로 들리는, 헤아릴 수 없는 유족들의 끝없는 통곡.
그 날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광경을 직접 봤다면 감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못하지.
그러나, 그 때의 우리들은 지치고 쓰러질지언정, 의지가 있었다.
오로치를 멸하자.
비록 우리의 대에서는 불가능하나, 그것이 영원히는 아니다.
동시에 우리는 다른 한 가지 역시 알았다.
인간의 의지는 나약하여,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신권도 왕조도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
이 세상에 만세일계(萬世一系) 따위는 없다.
다음 대로 이어질수록 굳은 결의는 무뎌지고 사명은 희미해져,
결국은 얼굴도 모르는 초대의 의지는 잊혀지고,
당주의 의식은 그저 기계적인 관성으로 남겠지.
그리고 과분한 힘을 쥔 연합 간의 투쟁으로 그마저도 사라지는 날,
사흉신이라는 칭호조차 정보 통제를 위한 위장에 불과한 그것.
어느 남자는 신성 침식체라고 칭하는 그녀가 이 세계로 돌아온다.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의 손으로 끝내지 못하면 오로치는 돌아온다.
그렇기에, 당주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의 후손이 그 뱀의 목을 벨 수 있게,
다가올 그 날을 위해 각 가문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치자고.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가문연합의 모두가 맹세했다.
그 날 이후 어느 가문은 검을, 어느 가문은 창을, 어느 가문은 활을...
그래. 그건 너희 나유카 가문이다. 그리고 어느 가문은 황금을.
필사적으로 힘을 길렀다.
모든 것은 오직 그 뱀의 목을 베기 위해.
우리 손으로 자식들을 바치지 않는 세상을 위해.
그리고 그 칼을 우리의 자식들끼리 겨누지 않는 세상을 위해.
평화를 위해.
그러나, 살아남은 소수의 우리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상실한 채로...
그 절망 속에서, 악념에 괴로워하고 업보에 발버둥치면서도,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걷기 전부터 검을 쥔 이후...
구 관리국은, 관리자는, 우리를 지워버렸다.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우리의 결의, 신념, 의지, 사명, 모든 것이 사라졌다.
오로치가 봉인되어 뒤틀린 붉은 달이 멈춘 뒤로,
고작 반년도 되지 않아서───
관리자는 다시 일어선 나나하라를 숙청했다.
목숨마저 불사르는 우리의 결의란, 결국 그 남자에게는,
절제해야 할 "불필요한 위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알겠나?
오로치의 봉인? 사명? 역신? 희생?
그런 것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야.
한때 우리는 그 비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힘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각 대에서 오로치를 봉인할 수준의 힘만을 남긴 채 거세당해...
영원히 눈앞에 있는 대의 봉인에만 얽매이게 되었지.
확률적으로 볼 때 토벌보다는 봉인이 더 안전하다면서.
이제는 대답이 되나?
아집? 독선? 망념?
닥쳐라! 대답은 필요하지 않다!
이는 나의 통곡, 마지막 싸움에 임하는 나의,
나나하라의 마지막 생존자의 포효임을 알라!
2000년의 세월을 거쳐도 '그 초대'와 마찬가지로,
단 한 명의 당주조차 살리지 못했던, 무력한 우리의 사명───
당주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게 하지도 못했다!
가문의 의지로는, 나나하라의 힘으로는,
오로치 이외의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래, 맞다. 우리의 가문에는 앞날이 없다. 내일이 없어.
설령 가문 간의 투쟁이 없고, 뱀이 깨어나지 않더라도!
이 가문에는, 그 이상의 미래는 없다.
그저 그 뱀 하나를 막기 위해 살아왔을 뿐.
발전할, 변화할 힘이 없다.
외부에서 손만 대도 무너질 이 꼴사나운 모래성인 채로,
당주들을 바치며 세상이 멸망하는 날까지 썩어갈 것이다.
나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태양의 힘으로는 모자라며… 월광조차도 놈에게는 닿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비추는 별빛 뿐.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포기할 수는 없다! 절대로!
이 2000년, 유구한 세월, 노인 하바키와 떠나간 후손 사요의 힘은
저 오로치의 봉인을 억누르기 위해 남김없이 소모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드디어 홀로 일궈낸 준비가 모두 끝났다!
나를 포함한 연합의 모든 당주들의 목숨을 전부 사용해서라도!
태양을 떨어뜨려도 죽지 않는 뱀을 영원히 추방시킨다면...
......이제 세상에 내일을 불러올 수도 있으리라.
그래. 이 노인의 이야기는 끝났다.
너희가 이번 대의 당주를 구원하고자 한다면, 나를 죽여라!
나를 짓밟고 가라─── 반역자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