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거울의 방 : 크레스니크 프로젝트




살이 에일 것처럼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한없이 차가운 눈꽃이 우아하게 춤을 추어도,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거울의 방 : 크레스니크 프로젝트 (1)

― 일말의 가능성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목구멍 안쪽에서 긁어 올라오는 통증.

그리고 텅! 하는 소음과 함께 시야가 하얗게 변한다.











“쿨럭⋯! 컥⋯! 헉⋯”

“아무것도 없다는 건, 일말의 가능성도 없단 것을 의미할지도 모를 일이지.”




관 안에 있다가 나오면 감각이 잠시 비틀린다.

일으킨 상체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손을 쥐었다 펴길 여러 번 반복하고, 비틀어진 감각을 간신히 되찾는다.


나도, ‘혹시’라는 마음이 날 붙잡고 놓질 않고 있는 건가.

관리자님의 말대로 관 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윽⋯ 벌써 232번째 시도입니다. 관리자님.”

“그래.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야. 아직도 미련이 남는군.”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바로 포기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관뚜껑을 232번이나 발로 차고, 괴로워하며 일어나는 걸 반복하는 게,

결국 나 또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뜻했다.


내 눈앞에서 홀로그램 화면을 노려보는 관리자님의 표정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검지를 까딱거리며 고뇌하는 모습을 바로보기 힘들었다.


이젠 그를 대신하여 결론을 짓고 선택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우리의 옆에 있는 테라브레인이 알렸다.




[ 클리포트 게임 개시 : 관측 결과 ]

[ 약 106시간 31분 후 개시됩니다. ]




“관리자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232번이나 시도했지만, 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관에서 존재하는지가 의문이었다.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것을 좇을 시간 따위 없었고, 있더라 하더라도 시곗바늘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어두었던 제안을 꺼낸다.

관리자님조차도 확신하지 못해 별수 없이 미뤄두었던 선택을.


침묵 속에서 다른 결심을 하고 나니, 나는 이제서야 관리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항상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를 머금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검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나는 다시 한번 확고한 대답을 내놓았다.




“마지막 선택으로 미루어두셨던 그 프로젝트, 하겠습니다.”




관리자님은 말없이 화면을 바꾸었다. 마치 이미 상정해놨다는 듯 당연하게 움직였다.

마치⋯ 나를 위해 어렵게 구한 조율을 위한 도구라며, 이 관을 가져왔을 때처럼⋯⋯.


항상 당연히 관리자님의 행동엔 뜻이 있을 거라 여겼기에, 나는 이번에도 안심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생각해둔 어떤 수라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니 마음을 짓누르는 돌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 프로젝트: 크레스니크_ ]




“안전장치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주게.”

“⋯⋯괜찮습니다.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음, 그런 뜻이 아니야. 좀 더 변수가 많은 영역이지.”




‘변수’


그 말에 또 다른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맞을지도 모르는 선택이었다.

232번이나 시도할 정도로 줄곧 바랐던 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야 하는 방법이었다.




“그 선택이 자네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줄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류드밀라, 그 이후는 나도 함부로 단언하기 어렵다네.”

“마에스트로⋯ 같은 경우를 우려하시는 겁니까.”

“잔류사념이 어떻게 비틀릴지는 인간의 두뇌로는 감히 따라갈 수 없지.”




결국 세계의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숨 쉬는 모든 생명체의 숨통을 끊거나⋯

⋯⋯.


관리자님의 한마디, 한마디마다 공기가 무겁게 몸과 마음을 짓눌렸다. 그런데도 선택을 굽힐 순 없었다.

성급한 결정이 후회를 부를지 모른다고, 작은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서 비집고 나와 싹을 틔워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했다.




“제 전우들의 고통을 덜고, 전우를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나타날 강한 적들을 상대하기엔, 아직도 유약하니까요.”




나의 대답에 관리자님은 자세를 고쳐잡고 물었다.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네.”

“전⋯”




나도 모르게 꽉 다물어버렸다. 동시에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는 걸 알면서도 표정을 거둘 수 없었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음에도⋯ 아니, 해야만 함에도, 내 본심을 물어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는, 관리자님과 수연이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될 것인지 장기적인 수를 읽으면서도,

구태여 묻는 이유가 너무 뻔한 사람이었다.


결국 스스로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알 텐데도.




“하겠습니다. 제가 ‘가능성’을 찾아보겠습니다.”

“알겠네. 결국 지금으로선⋯ 그 방법뿐이겠군.”




이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그렇게 하도록, 선택을 존중하신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겠죠.

관 안에 다시 누우며 그렇게 생각하니 은은한 안도감이 들었다. 벌써 관 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좁아진 시야 밖에서 보이는 관리자님의 얼굴엔 어두운 장막이 내려앉아 있었다.




“관리자님.”

“듣고 있네.”

“결국 제 선택이니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인간을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는다는 것.




“음? 그렇게 티가 많이 났는가?”

“죄송합니다, 관리자님. 표정이 매우 어두워 보이셔서 그만⋯⋯.”




관리자님의 그림자로 남은 뒤, 수없이 많은 조율 시도를 거치며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재차 내 의견을 물었던 이유도⋯ 그런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뿐인 것보다 행동이 더 나을 때도 있단 생각에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이걸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관리자님은 따라 웃지 않았다.

그 대신 홀로그램 화면을 끈 뒤, 관 안에 누워있는 나와 눈을 맞춰왔다.

이대로 그냥 쳐다봐도 되냐는 생각에 머리가 뜨거워질 때쯤⋯ 관리자님은 말문을 열었다.




“류드밀라,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잊지 말게.”

“관리자님의 조언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메이즈 전대의 전대장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겠지. 하지만 류드밀라. 자네의 단순 기억력에 대해 논하려는 게 아닐세.”




의아하게 쳐다보자, 관리자님은 나 대신 관의 뚜껑을 잡고 나의 뇌리에 분명하게 새겨넣었다.




“지키고 싶은 게 있을 땐 주저하지 말게. 때론⋯ 모든 걸 내던져야 지킬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말일세.”




눈보라가 쳤던 그 이면 세계에서 들었던 이야기.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말이었다.


이미 쉽지 않은 길 위를 걷는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관리자님의 조언을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관이 닫히던 순간이 되어서야 관리자님은 내가 알던 그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과거의 날보다 더 무거워진 그 말의 본질을⋯

제대로 실감하고 감당할 수 있는 지는 관계없이⋯⋯.











***












“찾는다면 어디가 좋을 것 같나?”




관리자는 테라브레인을 향해 뜻 모를 질문을 던졌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놓은 채 오로지 냉정한 계산으로 도출되는 결괏값을 기다렸다.




[ Quad. ]




“하하, 겨울도 아닌데 산타클로스 행세나 하게 생겼군.”




관리자는 반쯤 농담 섞인 말과 함께 관을 살짝 어루만지고는, 몸을 돌려 패닉룸 밖 어둠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2편





+)

우우 위선자 관남충

중간에 크게 실수한거있어서 수정하고 재업로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