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셔서 기분 좋아서 쓴다.


 흔히 조선시대 경제를 생각하면 대부분 무역, 상공업따윈 내다버린 한반도 경제의 침체기로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은 가야에도 있던 금속화폐가 17세기가 되어서야 유통되었고 그 흔하디 흔한 시장조차 조선 후기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실 한반도의 국가들은 대부분 나름 경제력을 갖춘 국가였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중간에서 이득을 쏠쏠하게 봤었고 신라시대 유물 중에 중앙아시아 양식의 보검, 로마산 유기 그릇 등을 보면 무역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랬던 한반도가 왜 조선시대에 그 꼴이 났을까?


1. 14세기 동아시아의 경제상황


 먼저 조선 건국 당시의 동아시아 상황을 알아보자. 몽골족들은 무지막지한 전투력과 기동력으로 무식하게 영토를 확장했다. 칭기즈 칸 이전까지는 중앙아시아까지만 깔짝거리는게 전부였는데 몽골족들은 기병을 이끌고 러시아, 아라비아 반도, 동유럽까지 진출했다. 송나라 시절만 해도 아랍 상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양과 교류하는게 전부였지만 몽골제국의 등장으로 동서양이 직접적으로 교류하는게 가능해진 것이다. 당연히 무역이 활발해졌고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동서양의 돈을 전부 끌어모으게 된다. 


 문제는 동서양의 교역이 돈과 상품만을 유통시킨게 아니였다. 활발한 무역은 흑사병을 급속도로 전세계에 퍼날랐고 역사상 유례가 없는 펜데믹은 동서양의 무역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무역으로 먹고살던 원나라는 순식간에 경제가 파탄났고 내부의 권력다툼까지 심해져 순식간에 국력이 쇠하게 된다. 그리고 왜(일본)도 그 영향을 직격으로 맞아 경제가 파탄나고 해적질을 하기 시작했고 벽란도와 같은 고려의 무역도시도 이 때 몰락하게 된다. 이 꼴을 직접 체감한 조선의 건국세력인 신진사대부는 당연히 상업을 좋게 볼리가 없었다. 결국 조선을 세운 신진사대부는 상업을 포기하는 대신 당시의 내수 경제였던 농업에 올인하게 된다. 


2. 조선의 화폐


 그렇다고 조선의 조정이 상업에 아예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였다. 흔히 조선의 선비들이 "사대부가 어찌 천박한 상업에 손을 대는가! 에잉 ㅉㅉ!"같은 소리를 해서 조선의 경제가 부진했던 걸로 알지만 당시 관료와 임금들도 화폐의 장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폐가 유통될려면 기본적으로 1. 활발한 무역, 2. 화폐의 기준이 되는 귀금속의 유통이 전제가 되어야한다. 그런데 명나라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해금 정책을 펼쳐 무역을 엄격하게 제한했고 왜는 경제 침체의 타격에서 못 벗어나 지들끼리 쌈박질이나 하고 있었다.(남북조시대~전국시대) 그렇다고  한반도에 귀금속이 많이 나는 것도 아니였다. 동과 철은 무기 만드는데 쓰기 바쁘고 없는 광산을 짜내서 금,은을 생산하면 명나라가 삥뜯어 간다. 무역이 침체되고 화폐의 기준이 될 귀금속마저 없으니 당연히 양반들 뿐만 아니라 농민, 상인들도 화폐에 냉소적이게 되었다. 태종은 저화라는 지폐를 발행했고 세종은 조선통보라는 동전을 만들었지만 경제 인프라가 바닥이니 일반 백성에게 지폐는 종이쪼가리고 동전을 쓰느니 그걸 녹여 파는게 훨씬 이득이였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조선과 달리 명나라는 드럽게 넓은 땅덩어리와 인구로 시장규모를 회복하고 있었고 일본은 높은 은 생산량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와 교역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터지게 된다. 은을 화폐로 쓰는 명나라 군사와의 접촉으로 조선은 포기하고 있던 화폐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그래서 조선도 나름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만들었고, 대동법의 시행, 농업발달로 인한 잉여생산물 등과 맞물려 조금씩 화폐가 시장에 들어서게 된다.

거기에 정조 대까지만 해도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시정상인만 장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얘들은 다른 일반 백성이 장사를 못 하게 깽판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정조는 이런 특권을 페지했고 드디어 자유로운 상업활동이 가능해졌다. 청, 일본과의 교역이 다시 활발해지고 각 지역에 거상이 등장했으며 은행, 물류창고 역할을 하는 시설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등 나름 초기 자본주의가 등장하나 싶었지만... 

 정조가 죽고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나라가 개판이 난다...


3. 조선 경제의 한계


 허구헌날 농사만 지어서 먹고살던 조선 전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조선의 화폐 제도는 문제가 많았다. 상평통보는 2전 이상의 화폐가 없었다. 현대로 치면 현금 거래를 해야하는데 제일 가치가 큰 화폐가 5000원권인 꼴이다. 당연히 거래규모가 커지면 머리가 아파졌고 상평통보는 기존 물물거래의 보조책 정도로 그치게 된다.

 그래도 고액권의 필요성을 인지는 했는지 흥선대원군은 당백전을 발행한다. 그런데 이게 ㅈㄴ 미친 짓인게 현재 우리나라로 치면 뜬금없이 100만원권을 미친듯이 찍어내는거다.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씨게 오고 백성들만 죽어나갔다. 심지어 세금을 당백전으로 내는게 불가능해서 화폐 가치는 더욱 바닥을 친다...


결국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쇠약해진 조선은 주변 열강들한테 씹히고 뜯기면서 헬피엔딩을 맞이한다.


글 쓰다 보니까 술 다 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