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


500년 전 과거로 가 천계 해방을 위한 바칼과의 전투.

처음에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황에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으며, 몇 차례 실패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욱 강해지기 위해 바칼을 토벌한 이후에도 수 차례 계속하여 시간을 돌려 바칼을 토벌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젠 전투의 즐거움 보단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옥 같은 건, 나는 시간을 이동하며 수 차례나 반복하여 이 전투를 반복하고 있으나 저 과거의 천계인들이나 용족들은 이 순간이 처음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그들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 행동 하나 하나가 외어져서 이제는 반응을 예측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수 차례 같은 영화를 봐서 대사를 외운 사람의 기분이 이렇겠지...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이처럼 거대한 계획은 아주 작은 변수로도 무너지기 마련이지.'

나는 바칼의 유언을 곱씹으며 이 지루한 굴레에서 뭐라도 변수가 생기길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수 차례 학습된 몸은 무의식적으로 전장을 휩쓸고 있던 차


거미줄을 타고 벽을 기는 소리와 함께 한 소녀가 등장했다.

 

"이번 먹이는 최상급이네~"


아홉꼬리 블로나, 사룡 스피라찌의 권역을 지키는 수문장인 용인.

죽은 동족이나 인간의 사체에서 정기를 흡수해서 힘을 강화하는 녀석이다.


이 몬스터는 좀 특이했다.

나는 여태껏 수 많은 적들과 싸웠고 그 적들은 하나같이 최후까지 발악하거나, 저주를 퍼 부으며 최후를 맞이했는데 

이 녀셕은 도망을 가질 않나, 죽기 싫다, 살려만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 인상 깊은 몬스터였다.



어쨋든 그건 그거고..

"권역 버프 끝나니까 빨리 비켜라 이기."


"꺄아악!"


나는 숙련된 솜씨로 순식간에 블로나를 제압한다.



"큭... 너...!"


"크윽... 이거 뭔가 이상하잖아...? 인간 주제에 왜 이렇게 강한거냐고..."

크게 당황한 그녀는 황급히 몸을 추스린다.


꼬리 몇 개를 잃고 도망가면서 그녀가 말한다.

"나 같은 것 보다 사룡님이 훨씬 강하니까 각오하라고! 죽은 네놈들의 시체를 내 꼬리의 양분으로 삼어...!"

 

추후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에 딱히 뒤 쫓지 않으며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특이한 녀석이란 말이지...)


전투에 대한 용족의 긍지 같은 것도 없는 거 같고.. 


도망간 그녀를 뒤로 한 체 나는 사룡과의 전투에 임한다.




수 분 후.


사룡을 손 쉽게 처치하고 밖에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있다.

분명 사룡에게 우리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영혼을 흡수하려 대기하고 있던 것이겠지.


"이건... 아니야..."


"어떻게 사룡님이... 으윽... 졌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수 차례 전투를 하면서도 감정이 마모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목숨을 구걸하는 그녀의 모습은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단순히 그 특이한 성격 하나로 나는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나는 살려 주도록하지."



"앗 정말..? 뭐든지 할테니..!"



기뻐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고개를 옆으로 한다.



"하지만 저 녀석이 너를 용서할까?"



"플끼얏호우~"


제너럴 플로. 블로나에게 전우를 잃은 그가 항상 블로나를 처치하는 것으로 역사가 진행된다.


팡!

"꺄아악..! .살려..줘..."


팡!

"난 이렇게... 죽기.. 싫.."


 

팡!

"꺄아악! 그만...!"


팡!


(시발 솔직히 잡은 건 내가 잡은 건데 왜 항상 죽이는 건 저놈 마음대로냐...)


뭔가 답답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가 총탄에 꿰뚫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다음 전장으로 몸을 옮긴다.


사룡도 해치웠으니 이번 바칼 토벌도 막바지다. 

금방 끝내고 또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겠지. 




수 분 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바칼까지 무척 손 쉽게 토벌했다.


'아주 작은 변수... 아주 작은 변수...'

나는 바칼의 유언을 계속하여 곱씹으며 전투가 끝난 전장을 멍하니 배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언가를 발견한다.

 

"으...윽..."

분명 죽었어야 할 터인 블로나가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으나 살아 있던 것이다.


'뭐야?! 살아있잖아? 어떻게 된 일이지...?'


수 차례 바칼을 잡았으나 여태껏 이런 적은 없었다.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에서 뭔가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바칼이 강조한 '아주 작은 변수'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녀는 분명 바칼이나 삼룡처럼 역사에 남은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이 전투를 경험 한 일부만 알고 있는 무척 작은 존재겠지. 

하지만 본래 진작 죽었어야 할 존재가 살아 남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한다. 자랑하던 꼬리는 다 뜯어진 체, 하나? 그 하나 마저 제대로 된 형태를 이루지 못 하고 있다.

몸은 움직이지 못 하고 얕은 숨만 내쉬고 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몸은 얼음처럼 싸늘하고 생기가 없군.

이대로 방치하면 분명 죽고 이 '아주 작은 변수'마저 사라지겠지...


나는 무언가를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다.






"그렇게 해서 저에게 이 용족을 가져왔다는 겁니까..?"

한 여성이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이리스 포츈싱어. 내가 수 차례 반복하여 바칼과 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존재이며, 

적어도 내가 아는 마법사 중 가장 뛰어난 마법사다.


"네 아이리스님. 아이리스 님이라면 이 용족을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옛날 비명굴 당시 사도 시로코에게 무참히 찢겨 죽은 케인 조차 부활시켜 다룬 아이리스님입니다.

비록 많이 다쳤다 할 지라도 살아있는 존재를 회복 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보는데..."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제 힘을 이런 사적인 존재를 살리기 위해 쓰기엔...

더군다나 이 자는 바칼의 수족이었던 존재. 과거 천계를 탄압한 존재며 본래 죽어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저로선 협조하기 어려울 것 같군요."


아무래도 단순히 부탁하는 자세로 나와서는 그녀를 설득하긴 힘들 것 같다.

태도를 바꿔야겠군.


"허 참 그래도 나름 오래 돕던 사이인데 이런 부탁 하나 못 들어 줍니까? 아이리스 님한테 실망이군요."


"네..?"


"그리고 뭐 천계를 탄압해서 본래 죽어야 마땅해..? 아이리스 님은 자신의 과거를 잊으신 것 아닙니까?

제국의 생체 실험을 뒤에서 도와줘서 재앙을 불러와...

언더풋에서 디레지에를 강령하는 의식을 해서 대질병으로 수 많은 흑요정을 죽여버려...

그러고 보니 그란플로리스에 산불 낸 것도 당신 아닙니까? 완전 대량 학살자 아니야?"




"읏... 우우...."


아이리스님이 당황한 게 눈에 보인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기회를 잡았을 때 계속 밀어 붙인다.


"하 내가 오즈마한테 당한 상처가 아직도 쑤시는데, 생각해 보니 오즈마도 당신이 개입했던 일 아니야?

황제만 꼬드기지 않았어도 이런 일 없었는데... 저 밑에는 위장자들이 아직도.."


"그만..."


"알겠으니 그만 하세요! 살려주면 될 것 아닙니까!"


역시 먹힐 줄 알았다.



"확인했습니다. 아이리스님."


그녀는 자신이 원한게 아니라는 둥 힐더 때문이라는 둥 투덜대면서 한숨을 내 쉰다.

조금 처량하지만 내가 말 한 것은 모두 사실인 걸?


"케인 같은 경우엔 본래 죽었던 존재지만... 이 용족은 아직 살아있는 존재.. 치료하는데는 좀 더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2일 정도 걸릴 것 같군요. 2일 이후에 다시 찾아주세요."


나는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돌아갔다.


이 '아주 작은 변수'가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2일 뒤가 기대되는군.




2일 뒤-



"저 왔습니다 아이리스님. 들어갈게요."


끼이익...



터벅...

터벅....


이게 무슨 소리지... 뭔가 질질 끌리는 듯한...


거기다 짙은 피 냄새...




"으그...윽..."

머리는 산발에 여기저기 피가 튀어 있으며 여성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몸을 질질 끌며 기어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커신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이리스님은 어떻게 된 거야?!"



"접니다 모험가님... 단지... 2일 동안 너무 과로해서...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그녀의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무척... 힘들었습니다."


"크흐흑... 아이리스님 죄송합니다...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그녀가 부탁을 들어 주지 않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긴 했으나, 살면서 저렇게 힘들어 하는 아이리스님의 모습을 본 적 없기에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 이런 일도 있는 것이겠죠... 다행이 치료는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


이후 아이리스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장기 파손이 심하고 특히나 뇌의 중추가 망가져 있어 어떻게 복구는 하였으나 심각한 기억 손상이 왔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 했다 살아났단 점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상태다.


기억 손상이 온 그녀가 혹여나 자신이 500년 전 용족의 생존자며, 바칼을 포함한 대부분 용족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뿔과 꼬리, 비늘 등 용족의 특성을 제거하는 시술을 했다...


눈에 띄는 외상 정도만 치료 한 수준이지, 내상이 심해 장기적 요양이 필요 할 것이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죽음에 가까운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 인지 극도의 공포감을 보여 안정 시키는데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회복이 끝나더라도 본래 알고 있던 존재는 아닐 것이다...


"잘 이해하셨는지요? 모험가님?"


"잘 알겠습니다. 아이리스님."


'본래 알고 있던 존재는 아닐 것이라...'  

그녀의 설명에 뭔가 아쉬움을 느꼈다. 나는 그 몬스터의 특이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데 말이지...



"그럼 모습을 확인하러 가시죠. 지금 약을 먹고 깊게 잠들어 있답니다."


아이리스님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는 지독한 소독 약 냄새와 붕대, 거즈, 핏 자국 등 치료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로 곤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온 몸이 붕대 투성이에 흉터가 있으나,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고 있으며 혈색도 굉장히 안정적이다.

죽기 직전 상태에서 이 정도로 회복 시키다니... 참 대단하구나... 감탄했다.


"상태는 마음에 드십니까? 모험가님?"


"어우 기대 이상입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힘들었지만 보람 찬 작업이긴 했습니다... 모험가님 말 대로 저는 사람을 죽이기만 했을 뿐. 살리기 위해 이렇게 힘 써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

피곤한 기색을 띈 그녀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는 잠들기 전 치료를 맡겼던 사람이 밤 중 올 것이며, 다음 날 눈을 뜨면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돌봐 줄 사람이라 말 해 놨습니다.

앞으론 어찌 할 생각 이신가요?"


솔직히 블로나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하나 큰 자극에 금방 이라도 바스라질 낙엽 같이 느껴졌다.

"일단은 개인 함선인 필라시아호에 데려가 전문 시설로 요양 및 치료를 할 생각입니다. 그 이후엔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지요."


"그렇군요... 모험가님 뜻 대로 잘 이뤄지길."


나는 잠들어 있는 블로나를 양 손으로 조심히 들어 안는다.

무척 가벼운 무게를 통해 그녀의 연약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따뜻한 체온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이 실감이 된다.


아이리스님은 필요한 의약품을 챙긴 후 떠나보낼 마중을 준비했다.

"모험가님? 가시기 전에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답니다."


아이리스님은 애틋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블로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잠깐이라도 치료하는 동안 뭔가 정이 든 모양이다.


"지금의 그녀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너무나 순수한 존재... 어떤 존재로 거듭날지는 모험가 님의 손에 달렸다고 봅니다.

원래의 삶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겠죠. 

그녀의 새로운 삶은 그녀 스스로가 아닌 모험가 님의 뜻으로 만들어진 삶. 그 삶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셔야 합니다.

아무쪼록 따뜻한 애정으로 올바르게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군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 후 아이리스님은 웃음을 짓는다.

"뭐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하였던 저에게 두 번째 삶을 주신 모험가 님이니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만 휴식을 취해야겠군요. 앞으로 두 분의 삶에 축복을..."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아이리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날 밤


밤 동안 필라시아호는 꽤나 북적거렸다.

나는 리아 리히터에게 잠들어 있는 블로나를 보여주며 장기 입원 치료가 가능한 전문적 병실을 요구했고 

모험가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줘야 한다는 황제 에르제의 명에 따라 세븐 샤즈 전원이 밤늦게 긴급히 출근하여 병실을 만들어 줬다.


'이럴 때 보면 여기저기 인맥을 만들어 두기 참 잘했단 말이지.'

황제가 인맥이라... 스스로 내가 인생을 꽤 괜찮게 살았구나 자부심을 느꼈다.


꽤나 시끄러운 공사 상황에도 블로나는 아이리스님이 얼마나 쎈 수면제를 먹였는지 나에게 안겨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작업을 끝낸 미쉘은 잠들어 있는 블로나의 귀를 보며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구심을 품었으나 나는 대충 마계인으로 얼버무려 넘겼다.




다음 날


웨스트코스트의 날씨는 무척 맑았고 그 상공에 정박 중인 필라시아호 또한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


평소 몬스터나 주구장창 때려잡던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일이 생겼고,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두근대는 심정으로 병실 문 앞에 섰다.

"들어갈게."


"아.."


병실 안에는 햇볕을 받으며 침대 위로 앉아 있는 블로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리스님이 말한 사람이 바로..."


한 눈에 봐도 병약해 보이는 모습의 소녀가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이리스님이 말 한 '본래 알고 있던 존재가 아닐 것' 이란 말의 뜻을 바로 느낀다. 



"그래. 얘기는 들었겠지? 내가 보호자란다. 앞으로 함께 먹고 자며 보살펴줄 거야."


블로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한다.

"개구리 같이 생겼어..."


(...)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렴."


블로나는 아직 정신이 많이 혼란스럽고, 내 호의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지금부터 천천히 친해지도록 노력해야겠지.

"네에...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아저씨.."




이렇게 나와 블로나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이 시작이 바칼이 말 한 '아주 작은 변수'가 될까?



1화 끝!




후기


머리 속으로 스토리 구상하면서 AI짤을 뽑긴 했는데 참 쉽지 않노...

최대한 던파 기본 설정이랑 엮으면서도 유머있게 써보구 싶엇슴..

소설 첨 써보는데 너모 어려웠네용.. 그냥 재밌게만 봐 주셨스면 좋겟서요~


2화 나올지 안 나올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