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


이전 컨셉 글을 읽으면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거임

https://arca.live/b/genshin/33514850 - (스포)라이덴 쇼군은 어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나?

https://arca.live/b/genshin/44672684 -(스포)라이덴 쇼군은 어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나? (2)

https://arca.live/b/genshin/57322963 - (스포)불교 관점에서 보는 3장 제 2막

https://arca.live/b/genshin/65131036 - 스포) 수메르 3장 5막까지 등장한 불교 용어 해석

https://arca.live/b/genshin/66623384 - (스포) 스포) 원신(+소)에서 사용된 불교 관련 용어 풀이


3장 5막 스토리에 정리에 합쳐서 쓰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방랑자의 컨셉이 충실해서 글을 따로 분리해야만 했어

이것을 읽어보면 방랑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함


이번 방랑자도 불교에 영향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불교 종파 중 하나인 밀교 영향을 받은 점이 보였음

밀교 쪽은 잘 몰라서 놓치는 게 있겠지만, 아는 범위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음 컨셉도 좋고 잘 만든 캐릭터야



방랑자 ‧ 기나긴 방황 「천겁의 고난, 얻지 못한 깨달음」


천겁 - 불교에서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는 시간이 1겁이고, 천겁은 셀 수 없는 수를 뜻함 

400년 동안 갈망하고, 배신당하고, 분노하며 깨달지 못한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설명해 주지


이전에 올린 글을 참고하면 스카라무슈나 방랑자를 대승 불교에 등장한 관세음보살의 분신으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여기서는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감


창조주 에이는 관세음보살의 컨셉을 가지고 있고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1000개의 손 1000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다양한 곳에서 중생을 돕는다는 뜻이 있고 중생을 돕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음 

방랑자는 에이가 제작한 프로토타입이고 또 다른 분신인 라이덴 쇼군이 있으며, 스토리상 에이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에 관해서 언급되는 부분이 있음 

라이덴 쇼군 모티브 1편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거임 (https://arca.live/b/genshin/33514850)


신규 주간 보스로 탑승한 로봇의 이름이 칠엽 적조의 비밀주인데 여기서 비밀주는 비밀주보살, 금강수보살, 금강역사의 이명이고 

사용한 대사나 업적 등에서 불교 용어를 다수 사용했음

스카라무슈 주간 보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확인 가능함 (https://arca.live/b/genshin/65131036)


툴레이툴라의 기억


전용 무기 툴레이툴라의 기억은 불교에서 사용하던 종인 요령에서 모티브를 삼고 있음

종이기 때문에 툴레이툴라의 기억에서 종소리가 나는 것도 좋은 고증이야


불교에서 법회가 시작할 때나 신도 집 앞에서 공양받을 때 요령을 흔들었다고 함



죄업의 업보

죄업은 나쁜 마음을 지은 행동을 말하고 업보는 지은 업으로 인해서 받는 결과를 말함

죄업의 업보인가..는 대사는  "악행의 결과를 받는건가....."로 풀이 가능하지



귀의

부처, 불법, 승가에 의지하여 믿고 따른다는 뜻이 담긴 단어임

스토리 중에 나히다와 여행자를 정의로운 자들이라 지칭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해석하면

"나히다와 여행자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지는 않겠지만"으로 해석 가능하고 

앞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겠다는 암시이기도 하지 




세속, 속세


둘다 불교에서 일반인들이 사는 세상을 부르는 말임

이 단어의 느낌까지 유사하게 표현하려면 군대 안에서 부르는 "사회"의 느낌임

여기서 속세를 내려다본다는 행위는 원소 전투 스킬이 있어서 가능한데 원소 전투 스킬 사용 시 부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



대사처럼 공중 이동이 가능해서 속세를 내려다볼 수 있음

방랑자는 공중으로 이동하여 기동성이 매우 좋고 색다른 공중 전투가 가능하여 운영이 재미있음



법구 캐릭터라 피격 저항이 낮아서 공중 공격이 가능한 적에게는 보호막 없이 운영이 어려운 단점이 있음

기동성이 좋기 때문에 필드 탐사용으로 명함은 추천할 수 있고, 앞으로 필드에서 고정으로 사용할 거야



저 워프에서 여기까지 이동 가능한 기동성을 가지고 있음


"속세를 내려볼지니!"의 대사는 "높은 곳"에서 "지켜본다." 뜻이 담겨있는데

 

주간 보스 설명에서도 지켜보는 자라는 설명이 있고

요즘에도 사용되는 지켜본다는 의미를 가진 "관음"은 관세음보살의 줄인 말이고, 렌즈나 카메라 만드는 일본 회사 케논(카논)은 관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임


라이덴 쇼군 1편에서 이나즈마 높은 곳인 천수각을 설명했던 부분을 가져오면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지켜보는 보살"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산스크리트 원어의 어원으로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도자" 또는 "아래를 굽어살피시는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관세음보살의 어원 3개 모두가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이의 뜻을 가지고 있지


관세음보살에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컨셉과 지켜본다는 컨셉 두 가지 모두를 원소 전투 스킬과 대사에 부여했다고 생각함

게임에서도 공중에 떠서 전투가 가능한 점이 큰 차별점인데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자라는 컨셉을 이용해서 다른 캐릭터에서 볼 수 없는 공중 부양을 구현한 것으로 보이고 좋은 아이디어로 보여

방랑자가 뜬금없이 공중 전투 능력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컨셉을 잘 살린 캐릭터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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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등장하는 감정 "분노"






https://www.youtube.com/watch?v=ZahZn-2t-a8

스카라무슈 주간보스 전 가사 중


..... 근원이 되는 분노로 나아가며 싸워라! 나의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목소리 내었지만 떠나버리고 어둡고 고단한 길을 나아가네 비참한 버려진 자는 신에게 굽히지 않네 분노하며 (분노하네) 끝없이 (끝없이) 증오하는 신에게 분노하리 영원히!.....


원소 전투 대사도 "분노의 바람"이기에 이 캐릭터를 운영하는 중에 이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될 거야

다른 캐릭터보다 분노가 많이 언급되는 캐릭터임


관세음보살의 화신 컨셉을 가진 캐릭터가 분노를 언급한다면 불교의 밀교에서 표현되는 분노존이라는 부처, 보살님이 변신한 모습이 연상되는데

관세음보살도 분노존으로 변신한 모습인 "대흑천(마하칼라)"이 있기 때문임




일반적인 불상과 달리 분노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모습인데 분노존이라고 함

불교의 밀교와 관련이 있고, 분노존은 티벳이나 몽골 지역에서 유명함

관세음보살이 큰 자비를 갖춘 보살이지만 악한 중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분노존으로 변신함

분노존은 감정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음


분노존은 티벳 사자의 서에서 등장하는데 죽어서 분노존을 만나는데 두려워서 혼절하면 지은 업대로 끌려가서 원치 않은 곳에 윤회하게 되는데 

만약 분노의 모습을 보고 혼절하지 않고 저 분노의 원인이 중생을 구하기 위함을 자각하면 나쁜 곳에 윤회하지 않는다고 함

분노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중생을 사랑해서 분노하는 것이기에 우리 중생에게 이로운 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로 언급됨


초기 불교에서는 분노가 업을 만들고 그 업으로 인해서 다시 윤회를 하니 감정이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하나

후기 불교에는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분노가 필요할 때는 분노해서 중생을 구하라는 가르침이 있음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건 중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수단 중 하나로 여김

라이덴 쇼군 2편에서 언급했던 부분으로 기존에 가진 감정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방향성만 바꾸는 것이 후기 불교의 특징임


분노가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관세음보살의 분신이자 분노존 형태의 컨셉을 딴 것이 방랑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음


덤으로 주간 보스로 등장한 칠엽 적조의 비밀주의 모티브가 되는 비밀주보살의 분노존이 바즈라파니로 불리고 있음

바즈라파니의 뜻은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있는 보살"이라는 뜻인데 주간 보스 라이덴이 왼쪽 중간 손 든 벼락을 내리게 하는 법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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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임무 중간장 3막 


나히다는 룩카데바타가 만든 환생이고, 방랑자는 라이덴 에이의 의지를 이어받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

신에 의해서 창조된 비슷한 처지에 나히다와 방랑자 둘의 만남은 흥미로운 스토리였음




중간장 3막에서는 모든 업(카르마)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자신이 지은 업은 나를 찾아오기 때문에 선업을 지으면 선한 과보가 찾아오고 악업을 쌓으면 악한 과보가 찾아옴

방랑자로 환생을 해도 전생인 스카라무슈의 업이 남았기 때문에 여행자와 페이몬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함

전생(스카라무슈)에 지은 인과가 지금의 방랑자에게도 영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자신이 사라져도 업은 쫓아온다는 것을 스토리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함

불교에서는 자신이 한번 지은 업은 죽더라도 자신을 찾아온다고 가르침

자신의 업이 두렵고 무서울 수 있지만, 자신의 업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은 우주에서 가장 책임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임






서로 간에 대사가 너무 좋아서 따로 설명할 것도 없음

자신의 업을 짊어지겠다는 선택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임


심장이 없는 자가 신의 눈을 얻다.


신의 눈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갈망"이 필요하다고 함


순간, 방랑자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어디서 온 바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이하게 방향을 꺾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람 속에서 그리운 옛 내음이 느껴졌다. 쇠망치, 금속, 화로, 그리고 흙먼지…
머나먼 꿈, 떠나간 행복,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했다. '그'라는 존재에게도 이렇게나 단순한 삶이 있었다니.
순간, 방랑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엿보았다. 그것들은 전부 선명했고, 모두 진실된 자신이었다.
겁쟁이처럼 비겁했던, 낭패롭고 고통스럽고, 오만하면서도 가소로운… 그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로 연결됐다.
과거를 인정하는 건 실패를 인정하는 것. 그저 자신이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겁쟁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야만 그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그 가련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평화라는 아름다운 껍데기는 모두 헛것에 불과하단 걸. 진정한 자신은 줄곧 가슴 깊은 곳에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는 한, 몇 번이라도 같은 길에 오를 것이었다.
그가 번개처럼 움직였던 찰나, 눈 부신 빛이 칠엽 적조의 비밀주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의지와 선택이 신의 눈길을 끈 것이다.
「신의 눈」이 강림했다. 빛과 어둠 사이로, 그 빛나는 물건은 미소를 담은 눈처럼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강렬한 염원을 가진 네가, 심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