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간다.



지나간다.



시작하자.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 갈 때

운이 좋으면 이런 느낌의 과자 봉지가 안방에 하나씩 놓여 있곤 했지.


뭔가 슈퍼에서 사 먹던 것과는 색다른 느낌에 하나씩 까 먹다 보면



이런 느낌의 때깔 좋은 모나카를 한 입 베어물게 되는데


솔직히 썩 좋은 맛은 아니었어.

얇고, 별로 바삭하지도 않은 껍데기는 툭하면 입에 달라붙었고

안쪽은 팥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이것보단 차라리 양갱이 낫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뭐 아무튼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모나카는 일본의 화과자(和菓子)다.



서기 794~1192의 헤이안 시대는

일왕조정에 의한 중앙집권이 어느 정도 강화되었던 시기라

왕족과 귀족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연회 요리가 어느 정도 개발이 되는데




요리 기술 자체가 당시에는 미미한 수준이라

맛보다는 반죽으로 그럴싸하게 모양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고



나중에 불교의 영향으로 다도(茶道)가 보편 문화가 되면서



쓴 차에 곁들이기 좋은 달고 끈끈하면서

수양의 일환으로 디자인에 혼을 갈아넣은 화과자가 탄생했다고 여겨지지.


이 화과자의 단맛을 내는 성분은



곡식으로 만든 조청(물엿)과 팥이었고



반죽은 대개 떡처럼 찹쌀로 만들었어.



밀과 설탕이 들어가는 화과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둘 다 당시 일본에서 흔한 작물은 아니었고



거기다 일본인들이 한국인 못지않게

쌀에 환장하는 민족인 것도 한 몫 했지.


이런 흐름은 반대로 밀 없이는 못 사는

서양인들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바뀌게 돼.




16세기 중엽 일본에 도달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성경과 화승총 말고도 그들이 항해 도중 먹었던 쉽케이크도 전해줬지.


빵 드 로(pão de ló) 라고 하는데



현재도 영업중인 나가사키 문명당(분메이도, 文明堂)의 카스텔라가

그 명맥을 지금까지도 잇고 있지.


한 세기 후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나서는



긴자의 목촌옥(기무라야, 木村屋)에서 

화과자 전통의 팥소를 넣은 최초의 단팥빵을 선보이게 돼.

정작 유럽에서는 먹은 적 없는 팥빵을 본고장의 맛이라 홍보하는 게 좀 거시기하지만

뭐 그러려니 하자.




이외에도 팬케이크 사이에 팥소를 넣어 도라야키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걸 목격한 어떤 사람은 별난 생각을 하게 되지.



모나카는 틀에 넣어 구운 찹쌀전병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화과자인데



처음부터 틀에 반죽과 팥소를 함께 넣어 굽는다면

까다로운 화과자를 빠르게 양산할 수 있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게 이마가와야키(今川焼き)

또는 오반야키(大判焼き).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오방떡이라고 알려져 있는 

풀빵의 첫 번째 세대야.



밀가루풀과 속만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어 팔 수 있는 풀빵은

비용이 적은 대신 큰 위험도 존재했어.



말 그대로 쉽기 때문에

순식간에 경쟁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공급시장이 터져버릴 수가 있다고.



그래서 속재료를 다른 걸로 바꾸던가



아예 철판 위에서 요리처럼 만드는 등 

자기만의 강점과 차별점을 만들며 풀빵은 순식간에 종류를 불려나갔어.


그 중에서도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미(타이, たい)모양 틀에 구워낸 풀빵이 제법 인기를 끌었어.


그래 

도미 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이것 때문이다.


타이야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만

여기서 미호요 코리아가 반쪽짜리 로컬라이징을 했다는 걸 설명할 수 있거든.



아무튼 그렇게 이 붕어...아니 도미빵은 일본에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겨울의 풍물시로 자리 잡게 되는데



후일 미국의 원조로

남아도는 건 밀가루 뿐이던 전후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서 

이 특징은 더욱 강화가 돼.



타이야키 반죽에 그나마 들어가던 달걀도 빠지고



식용유로 만든 마가린과 쇼트닝.




이것들의 힘으로 원가를 무지막지하게 절감한 물고기빵은

이름도 도미에서 붕어로 갈아치우고

엄청난 물량을 앞세워 한국의 길거리 시장을 점령해 버리지.



대한민국 하천 어디에서나 잘 먹고 잘 사는 붕어처럼

아이들의 부담 없는 간식도, 

가난한 이의 일용할 끼니도 될 수 있으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도 사실 붕어빵이 아니었냐는 우스갯소리도

이 나라에선 먹힐 수가 있는 거겠지.


다만 



그 기적마저도 이젠 가난한 자들 곁에서 점점 떠나가고 있는 모양새니



그리 비싼 편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뭔가 속상해 발길을 돌리게 되는 요즘이지.



창 바깥은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방 안도, 심지어 인간의 속도 예외는 아니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옷깃도, 마음의 문도 꽁꽁 걸어 잠그게 되는 때지만


끝나지 않는 겨울은 없다.



누군가에겐 더럽게 춥고 긴 겨울이 되겠지만

그 긴 겨울나기를 버티고 나면

분명 어딘가 성장하는 것이 있으리라 기대해 보자.




요약하자.


1. 대략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 과자의 영향을 받아 풀빵(또는 야키모노)이 만들어짐

2. 이 중 도미 모양의 타이야키가 붕어빵, 원신 일몰 붕어빵의 모티브가 됨

3. 어제 오늘 챈질 안하고 뭐했냐고? 이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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