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는 제법 체감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신앙만큼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도 드물지.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새로이 대지에 씨를 뿌릴 무렵



또는 그 반대로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수확을 갈무리하는 무렵



식(食)이라는 가장 직설적인 주제를 앞에 두고

흩어졌던 인간의 마음은 아주 쉽게도 한 곳에 모이게 돼.





어떤 곳에선 우상과 축제를 꾸며

초월적 존재에게 내년의 풍작을 기원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고금과 귀천을 막론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는 빠지는 일이 없었으며



농악(農樂)을 울리면서 한 해의 고된 노동을 시작하기 전

굳어진 심신을 풀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 당연시되었지.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어.





가부키모노들이 음악과 연극으로 흥을 돋우고

달아오른 민중들의 열망을 무녀들이 곱게 갈무리해

신에게로 올려보내.


이런 형태의 제의를 한국의 농악(農樂)과 구별하여 

전악(田樂, 덴가쿠)이라고 불러.



떠들썩한 축제에는 먹을 것도 빠질 수 없지.

한국에 선농단에서 유래한 설렁탕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는 상술한 제의의 이름과 똑같은



덴가쿠(でんがく)라는 음식이 존재해.




줄과 장대를 타거나

혹은 고헤이를 받드는 무녀의 모습을 따왔다고 일컬어지는 이 음식은



요약하자면 그냥 꼬치구이다.


 담백한 채소 두부 따위에 양념 바르고 불에 구우면 끝.



전통 일식이라고 폼 잡는 요즘도 그냥 바르는 된장이나 다시의 차이밖에 없어.

많은 이들이 일식에 가지는 막연한 환상과는 달리

이르게는 에도 시대, 늦게는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일식의 조리법은 적잖이 간소하고 단출한 형태가 많았으니까.


뭐 아무튼


선농단에서 시작된 설렁탕이 국민음식이 된 것처럼

덴가쿠도 굳이 축제 때 뿐이 아니라 언제나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어.



본디 된장 양념을 바르며 불에 천천히 굽는 조리방식은




좀 더 간편하게 된장을 푼 국물에 끓이는 방식으로 변했고



나중에는 된장도 간장을 넣은 츠유다시로 바뀌었어.


덴가쿠라는 이름도 축약되어 앞쪽의 덴(田)만 남고

일본 접두어의 일종인 미화어 오()가 붙으면서



오 덴(お 田) .



오뎅(おでん)이 되었지.


이쯤 되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야.


'그거' 어디갔지?



이거.



한국에서 '어묵'이라고 부르는 이 식품 말이다.


일단 생선에서 먹기 힘든 가시를 제거하고 뭉쳐서 만드는 음식은

생선을 즐겨 먹는 나라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어.





뭐 하나하나 소개하는 건 제껴두고 일본 것만 보자고.



일본 초기의 어묵은 발라낸 생선살을 녹말과 함께 반죽해

막대를 싸듯이 붙이고 

생선구이처럼 불에 구웠어.



이 모습이 마치 물가에서 자라는 부들 이삭과 비슷했기에

부들(蒲, ガマ 가마) 모양의 꽂이(鉾, ぼこ 보코)라 하여

가마보코(蒲鉾, かまぼこ)라는 이름이 붙었지.


이 뼈없는 생선요리는 사람들이 점차 조리에 익숙해지면서



전통 방식으로 막대에 붙여 굽거나 찌는 형태와



판 위에 올려 쪄서 만드는 형태로 나뉘게 돼.



전자는 대나무 대롱 모양이라 해서 치쿠와 가마보코(竹輪蒲鉾, ちくわ かまぼこ)



후자는 판에 올린 이타 가마보코(板蒲鉾, はん かまぼこ)라고 불리게 되는데


축약 과정에서 전자는 뒤의 [가마보코]가 빠지고

후자는 어째서인지 [이타] 부분이 빠져 버리면서



대롱 모양의 어묵은 치쿠와,

납작한 모양의 어묵이 가마보코의 이름을 꿰차게 되어버린 거지.



이후 포르투갈 등의 영향으로 튀김 요리가 크게 유행을 타면서

가마보코도 튀겨서 만드는 방식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렇게 튀겨 만든 가마보코를 사츠마아게(薩摩揚げ) ,

혹은 그냥 튀김이라는 뜻의 덴뿌라(天ぷら)로 부르게 되지.



이렇게 만든 어묵들은 당연하지만 갓 만들었을 때 먹는 게 최선이겠지만

한번에 대량으로 만드는 가공식품인 이상 식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래서 차갑고 딱딱하게 식어버린 어묵을 따뜻하게 만들 방법으로

오뎅에 넣어 함께 끓이는 방법이 선택된 거야.


자 그럼 다시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돌아오자.





조선 무렵에 숙편(熟片)또는 문주(紋珠)라고 하는 어묵 요리가 존재하긴 했지만

호화스런 재료에 손도 많이 가는 요리라 

수라상이나 대감집 잔칫상에서나 볼 수 있었기에

대중적으로 퍼지기는 많이 힘들었지.



후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그들에게 익숙한 가마보코를 만드는 공장을

지금의 부산 자갈치 시장 인근에 짓게 돼.



일본식 고급 요정(料亭)에 가마보코를 납품하던 공장들은

해방 이후 동광식품 등의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회사들이 차지하게 되지.


자갈치시장에서 팔리지 못하는 잡어들을 닥치는 대로 갈아넣고 튀겨낸 어묵들은

싸고 맛좋은 밥반찬에 요긴한 술안주로

어느 새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어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앞으로 조선이 독립되면 일본말뿐 아니라 

옷이던 음 식이던 일본 것은 모조리 못쓰게 된다는 소문이었다. 


"아니, 정말이여. 신문에까지 났다는듸. 저 가마보꼬는 참 일본 음식이 아니겟지? 조선 사람들도 잘만 먹으닝께."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여! 아니, 우리는 가마 보꼬가 없으면 밥을 먹는 같잖은듸."


"그것도 본데는 다 일본 음식이지." 


"아니, 그럴 리가 있을라고? 우리 조선 사람들도 만 가지 요리에 다 쓰고 있는듸. 잔치에 안 쓰나 제사에 안 쓰나?


- 김동리 소설 <해방> 중




거기다 얼마 후



6.25 전쟁으로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부산 어시장은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온갖 사람들의 먹거리를 책임지게 되고



고기를 잡아댈수록 무진장 찍어낼 수 있는 어묵의 위상도 천정부지로 치솟지.



토박이와 실향민 할것 없이 허기와 한기를 달래 주던 뜨끈한 오뎅(어묵)탕.




그 맛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때 그 자리에서 이어지고 있어.



일본에서는 따로따로 발전하던 오뎅과 어묵(가마보코)이 합쳐졌지만



한국에는 이미 완성된 어묵이 들어간 오뎅이 같이 들어왔기 때문에


오뎅(탕)에는 어묵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것이 되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오뎅'과 '어묵'이라는 단어가 엎치락뒤치락 함께 쓰이는 원인이 된 거지.



정리하자면

본래 오뎅이란 어묵과는 별 상관이 없이 농사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두부나 야채 따위를 굽거나 끓여 만드는 소박한 음식이었고

 


이나즈마에서 손꼽히는 곡창 지대인 콘다 마을에서 만들어진 이 요리도

 '어묵'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거야.



본래라면 번역명도 '콘다 오뎅'이 되어야겠지만



존재가치가 의심스러운 우리나라의 모 기관 덕분에

안 그래도 뒤섞여 있던 오뎅과 어묵의 관계가 대혼돈으로 빠져들었고

'오뎅'이라는 말을 드러내 놓고 쓰기가 상당히 힘들어져 버린 거지.


당장 원문인 중국어나 일본어 쪽 표기를 보더라도




분명히 오뎅이라 적혀




있...







님들 뭐한거임?



1. 오뎅은 텐카쿠에서 변형된, 어묵과는 별개의 음식

2. 한국은 오뎅과 어묵이 함께 전래되어서 뜻이 뒤섞여버림

3. 외 한국어만 콘다 '어묵'읾?



바람신의 잡채 편


달빛 파이 편


탕수어 편


몬드 감자전 편


일몰 열매 편


경단 우유 편


2021 결산 편


용수면 외 편


강자의 길(야채 볶음면) 편


생선 무조림 편


세계 평화 편


흥얼채 편


새우살 볶음 편


아루 비빔밥 편


풍요로운 한 해 편


타친과 오차즈케 편


멸치 편


코코넛 숯탄 전병 편


일몰 붕어빵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