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tv를 보니 시원하게 상체를 깐 여자와 맥주 광고가 나온다.


요즘 물오른 누구더라 어디 아이돌이라 했던 것 같은데 배우였나?

예쁘긴 더럽게 예쁘네 가슴도 크고

다리도 길쭉하고 시원시원하니 키도 180은 되겠지.


멍하니 tv를 보며 의미 없이 타자만 치다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덮는다.

너무 세게 닫았나 약간 쫄려서 전원을 다시 눌렀다.

잘 돌아가네 강제종료


이어지는 광고는 성숙한 남자가 온갖 치명적인 모션을 취하며 화장품 광고를 한다

확실히 잘생겼네. 일반인이 했으면 좀 역겨울 것 같은 중2병 동작도 소화해 낸다

여자에 비해선 작지만 내 키 정도는 되려나. 남자 중에선 꽤 큰 편이겠지


씨이바- 나도 저렇게 잘생긴 남자로 태어났으면 인방이나 하면서 돈이나 복사했을 거다.

하여간 남자나 살기 편한 세상이지.

난 염세주의자가 아니지만

오늘따라 의욕도 없고 몸에 힘이 없다.

딱히 별일은 없었는데 말이다.


카톡

친구년들에게서 톡이 왔다.

-협곡 ㄱ?

-

-ㄱㄱ

-마감 8시간 전

-1시까지 아니냐?

-레오레 할 시간 빼고

-ㅋㅋ미친년


헛소리를 하는 건 똑같은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대답할 가치가 없기에 알람이나 맞추고 잘 준비나 해야지

카톡

-수현아 넌 안 하냐?

오늘은 안 당긴다 그냥 자고 싶어..

-몸 안 좋아서 쉼

-ㅇㅋ


푹신한 침대에 누우니 수마에 빠지는 건 금방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알람이 울려 거칠게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

온갖 자세를 바꿔가며 다시 자려고 노력해봤지만

블라인드를 안 내리고 자서 그런가 너무 밝은 아침의 햇살에 잠이 싹 날아갔다.


그렇게 오만상을 찌푸리며 일어나서 거슬리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워...

?

누가 나 자는 동안에 커트라도 해주고 나갔나?

머리에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칼을 마구 헝클려보니 평소의 부스스하고 쓸데없이 길기만 한 머리카락과는 다르게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어깨까지도 내려오지 않은 짧은 머리칼이 만져졌다.


나는 머리카락 관리하는 걸 싫어한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평범한 여자라면 매월 미용실에서 비싼 돈 주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섬세함은 없는 것이 보통이다

머리 감을 때는 짧은 게 더 편하다고들 하지만 매월 미용실에 비싼 돈 주고 몇시간씩 관리받는 게 더 귀찮은 짓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침대에서 호다닥 일어나니 시선이 미묘하게 다르다


가구들이 커졌다. 아니 내가 작아졌나?


뭐야 이거.. ...?”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은 적당히 듣기 좋은 중저음의 남자목소리로 바뀌어있었다.


그래

남자목소리였다.


바로 현관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로 달려갔다.

...”

 




거울에 보이는 건 반곱슬에 짧은 흑발과 새까만 흑요석 같은 눈동자를 포함해서 작고 하얀 얼굴과 또 그 안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눈코입까지.. 한마디로 엄청 귀엽게 생긴 남자애였다.


키는 어림잡아 160도 안 되어 보였고 작고 앙증맞은 손발과 약간 겁에 질린듯한 얼굴이 보호 욕구와 가학 심을 부추겼다,


시발.. 이게 무슨 일이야.”

그냥저냥 적당히 튀어나와 있던 가슴은 평평하게 들어가 있고 

설마하고 팬티까지 내려보니

밑에는

밑에는.. 

대물은 아니지만 적당한 크기의 물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30분이나 더 지나고 나서였다.


일단 진정하고 생각해보자.”


가족? 난 지금 자취 중이다. 더군다나 부모님과 남동생은 나만 빼고 제주도에 여행 갔다.

내가 귀찮아서 안가겠다고 한 거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참에 친구 년들 덕 좀 보자.


예나 이년은 과제하고 있을 테고

강빈이? 얜 변태 새끼라 내가 위험하다.

솔이. 일단 우리 중엔 제일 정상인이다. 근데 성격상 믿어주기나 할까 모르겠다.

여울이.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애가 지금에 일어나있기나 할까?


봊같네.. 내가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았나.”

내 인생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는 남자?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남자라곤 아버지밖에 없다.


제발.. 제발 받아라..”

고심 끝에 여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30초가 3시간처럼 느껴졌다.

-여보세요.. ..


받았다! 갓여울! 그녀는 신이야!!


심호흡하고

나야.”

-...? 누구시죠?

이럴 줄 알았다. 인생에 남자와는 조금도 연관 없는 년한테 다짜고짜 남자 목소리로 전화하면 벌어질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현이 전화번호 맞는데.. 이새끼 설마 나보다 먼저..!!


전화를 끊었다.


어그로는 확실하게 끌어놨으니 연락이 올 거다


카톡

-야 정수현 방금 누구야

-할 말 있음. 진짜 급함ㅃㄹ오셈 ㅈㄴ빨리 튀어와

-?

-올 때 너 중학생 때 입었던 옷 버려야 한다던 거 그것도 좀 챙겨와 줘 급함.

-뭔 일인데 그래

-오면 다 설명해줌

-... 딱 기다려 별일 아니면 뒤진다


이렇게 수상한 문자를 보내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와주는 건 얘밖에 없을 거다.


카톡

-너 설마 어제 레오레도 접속 안 하더니 남자랑 잤냐?

뭐라는 거야.


무시하고 커진 옷을 어떻게든 입고 침대에 기대 한참 넋 놓고 있을 때였다


띵동


벨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 몸은 현관을 향해 뛰어나가고 있었다.

시발

한참은 커져 헐렁한 바지를 깜빡하고 뛰다 그대로 굴러 넘어졌다.

 




정수현 이새끼가 좀 이상하다.


전화를 받으니 남자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끊자마자 톡으로 중학생 때 입었던 옷을 가지고 와 달라질 않나

머리가 맛이 간 게 분명하다


당연히 옷은 안 가지고 왔다

이미 버린 게 한 달 전이니까


띵동

수현이의 방에 벨을 누르자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으으 하는 남자의 귀여운 신음이 들렸다.


진짜 뭐지..”


잠시 후에 문이 열림과 동시에 조그마한 남자애가 헐렁 한 옷을 걸치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수현이 범죄자 새끼!! 고딩이랑 잤..!읍읍!!”

내가 복도에서 소리 지르려 하자 남고생으로 보이는 애가 내 입을 막고 수현의 자취방으로 잡아끌었다.


!

현관문이 닫히고 정수현 이 한녀충과 섹스를 한 것으로 보이는 남고생(추정)이 입을 열었다

나다 이 씹새끼야!!”

그래 정수현 이년은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 어딨어

남고생(추정)이 당황해서 마구 손을 저었다.

내가 수현이라고 정수현. 그러니까 어디부터 설명해야..”

.

.

.

 

그니까 네가 수현이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렇게 되어있었다?”

여울이가 내 말을 믿은 건 내가 아는 사소한 과거부터 해서 나와 여울이 다른 년들의 흑역사까지 전부 불고 난 다음이었다.


그래서 옷은 어딨어.”

여울이 곤란한 듯 웃는다

.. 그거 말한 지 한 달 전이야 이미 다 버렸지..”

하아...”

답도 없는 상항에 한숨이 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