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내 일을 다 끝내고 윤 대리가 보내준 버그에 대한 반박 자료를 찾기 위해 야근을 하며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순간, 오른쪽 뺨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으아으! ...유상아 씨?"


놀란 나의 외마디 비명을 들은 유상아가 폭소를 터트리며 웃었다.


"아하하하! 독자 씨! 평소에 무덤덤한 얼굴만 보다가 놀라는거 보니까 너무 웃겨요! 푸핫..!"

"..."


뭐라 말이라도 해보려다 유상아의 웃는 모습을 보자, 그냥 말 없이 미소가 나왔다.


"...커피 고마워요."

"에이, 거의 첫 야근인데 그 정도야! 얼른 일 끝내고 같이 가요."

"...좀 늦게 끝날텐데요?"

"어차피 저도 오늘 부모님 여행가셔서 늦게 가도 괜찮아요!"

"...노골적이시네요."

"티났나요?"

"약간은요."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유상아가 찌뿌둥한지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폈다.


"저 그럼 탕비실에서 좀 자고 있을게요! 얼른 끝내고 깨우러 와요!"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가죠."


그 말을 들은 유상아가 내 볼에 살짝 뽀뽀를 해주고서는 탕비실로 뛰어갔다. 보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부끄러움에 탕비실에서 발을 구르고 있을걸 생각하니 입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명오가 갑자기 나타났다.


"잉? 독자 씨가 야근을 다 하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뜰라나."

"한명오 부장님이 여깄는것도 신기할 일인데요."

"아, 난 놓고 온게 있어서. 그럼 가볼게. 독자 씨도 얼른 일 마치고 들어가고."

"...네."


한명오가 왜 저렇게 친절한지 모르겠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


셔츠를 푸는듯한 감각에 유상아가 깨어났다.


"...으음... 독자 씨?"


그러나 그녀의 눈에 보이는건 김독자가 아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그리고 본능적인 느낌이 왔다. 지금 정신을 놓았다간 큰일난다고.


"뭐, 뭐에요! 당신 누구에요!"

"아, 유, 유상아 씨? 잠깐 오해는 마시고..!"

"...한 부장님? 오해는 무슨 오해에요! 이거 성범죄인건 알아요? 신고할 거... 읍..!"


 한명오가 유상아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봐...! 여기 우리만 있는게 아니라서..."


순간 한명오의 뇌리에 생각이 스쳐갔다.


'유상아는 왜 여기에 있던거지? 여기에 남아있던건 김독자 뿐인데..? 설마?'


그리고 그 생각은 이내 확신으로 변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표현해도 나한테는 오지도 않더니..! 고작 저 히키코모리 새끼야? 이런 미친!"

"꺄악! 살려줘요! 하지 마! 읍! 으읍! 읍!"

"이제 보니 별 것도 아닌 걸레였네, 유상아 씨! 저런 음침한 새끼한테나 대주고 다니고!"


한명오가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며 유상아의 바지를 벗겼다.


"그냥 나한테 탄탄한 회사생활 약속받고 나랑 한번 떡 친다고 생각 해. 유상아 씨도 회사 생활 잘 하고 싶잖아? 안 그.."


퍽!


"커억! 누구..!"

"...유상아 씨..!"


시끄러운 소리에 탕비실 문을 연 내게 한명오가 유상아를 강간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도 못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곁에 있는 사람이 없어서 몰랐다. 하지만 곁에 있던 사람이 아파하는건, 이렇게나 괴로운 일이었구나.


"정말... 당신이 제 정신입니까?"

"나, 날 때려? 당신이야말로 제 정신이야? 내가 김 팀장한테 말해서 독자 씨 인사고과...!"


퍽!


다시 한번 한명오의 명치에 내 주먹이 날아갔다.


"부끄러운줄 알아, 한명오."

"끄윽.. 김독자 이 미친...!"


그리고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리려던 순간, 유상아의 손이 내 팔목을 잡았다.


"독자 씨! 안돼요!"

"유상아 씨?"

"지, 지금 때리시면 독자 씨도 폭행죄로 잡혀들어가요...! 제가 신고할게요..! 그러니까 그만..."


유상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당황스러웠다.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건 유상아 자신일텐데 지금도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이. 


"그, 그래 독자 씨..! 그만 해! 내가 이 쯤에서 봐주고 김 팀장한테도 잘 말해줄게..!"

"야 이 미친..!"


한명오에게 주먹을 날리려던 순간, 결국 나는 주먹을 날리지 못했다. 유상아의 말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은 유상아의 말 때문이라고 하며 그 뒤에 숨어 내 추한 면을 숨긴 것이다. 내 자리를 보존하려는 욕구. 


그리고 결국 유상아는 나 때문에 한명오를 신고하지 못했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양해해줘... 감정을 잃어간 독자에게 감정을 심어주고 싶은데 분노라는 방법을 심을 방법이 아무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