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유상아는 그 일을 당한 직후 회사에 2주간 휴가를 냈다. 그리고 나 역시 한명오가 김 팀장에게 잘 말해준다고 한 건 때문에 윤 대리의 업무를 할 필요가 사라졌다. 윤 대리는 나와 유상아의 연애를 한 부장에게 이르겠다고 소리를 쳤지만, 이미 한명오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눈치라 큰 상관은 없었다.


문제는 유상아였다.


"독자 씨..! 저 왔어요..!"

"아, 상아 씨. 밥은 드셨어요?"

"물론이죠!"


상처를 받을만도 한 일이었는데, 유상아는 상처를 감췄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를 건들수가 없었기에, 그저 유상아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독자 씨 내일 시간 돼요?"

"내일 될 거 같습니다. 왜 그러시죠?"

"전에 아빠 엄마 여행 갔다고 했잖아요."

"1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여행중이신가요?"

"네 아마 내일 돌아오실거에요!"

"음 그렇군요."

"그래서 혹시 저희 집에서 내일 자고 가시지 않을래요?"

"...네?"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부모님이 없는 집에 나를 초대한다니, 나로서는 좋았지만 유상아가 점점 적극적으로 바뀌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좋습니다."


.

.

.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안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독자 씨! 왔어요?"

"...네."


돌핀 팬츠와 헐렁한 티를 입은 유상아. 그리고 그 윗옷은 전에 내가 돌려받지 못했던 옷이었다.


"얼른 들어와요."


유상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따라 그녀의 방에 들어서자 아담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깔끔하네요."

"뭘요... 그것보다 독자 씨... 줄 게 있어요!"

"뭐죠?"


유상아가 귀여운 걸음으로 총총 걸어가 방 구석에 있는 상자를 꺼내왔다.


"여기.. <다 같이 레벨업>이라는 웹소설이 종이책으로 나왔길래.. 독자 씨가 좋아할까 싶어서..!"

"아,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오늘 2월 15일이에요. 비밀번호도 본인 생일로 해두고선.."


아, 그렇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까먹고 다녔던 생일. 나는 일주일, 월화수목금토일만 안다면 모든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책 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던 중, 갑자기 유상아가 내게 말을 꺼냈다.


"... 독자 씨! 너무 저 신경쓰지 마요. 그땐 놀랐지만 정말 괜찮아요! 앞으로 한명오 그 새끼 볼때 조금 껄끄럽긴 하겠지만..."


유상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항상."

"...네."


유상아가 얼굴을 붉혔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며 난 정말 행복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괴로웠던 시간들의 보상이 유상아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가만히 서로를 응시하면서 분위기가 점차 올라왔다. 그렇게 분위기가 올라와 터질듯한 느낌이 들 때 즈음, 내가 유상아의 머리를 잡고 키스했다. 


"으웁.. 독자 씨..!"


방 안에 키스 소리가 퍼졌다.


"...사랑해요, 유상아 씨. 정말로요."

"...나도 사랑해요."


그리고 분위기가 점점 올라가던 순간, 현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도, 독자 씨! 얼른 옷장에!"


그리고 내가 옷장에 들어가려고 일어서는 순간, 유상아의 방문이 열렸다.


"딸! 아빠 왔... 응?"


.

.

.


"몇살이라고?"

"28살입니다."

"우리 상아는 26살인데?"

"...2살 차이인데요."


나를 거실에 앉혀두시고 나에게 질문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유상아와 재밌다는듯 바라보는 유상아의 어머니가 보였다.


"...회사는 어디 다니나? 법원이나 병원?"

"...유상아 씨와 같은 회사입니다."

"...정규직인가? 아니면 인턴?"

"...아직까진 인턴이지만 아마 인사고과 통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무슨 일 하시나?"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교도소 가셨습니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계속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좀 농담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풀어주면 좋겠는데 자꾸 진지한 질문을 하니 분위기가 딱딱해져만 갔다.


"...모아놓은 돈은 있고? 집은 어디로 할 생각인가?"

"아, 아빠! 그런게 아니고 우리는 아직..!"

"쉿, 딸아 조용히 해봐. 재밌잖니."


솔직히 말려주길 바랬는데...


"...돈을 잘 안 쓰다 보니 1억 가까이 모였습니다. 집은 상의를 하던가 해서 구해야하지... 않을까요?"

"음... 그렇군."

"..."

"...우리 딸이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려는 건가?"


유상아를 힐끔 바라보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입을 막혀 버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유상아 씨는 제게 친구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려준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유상아 아버지의 표정이 흥미롭다는듯이 변했다.


"음.. 어째서지?"

"저는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이 없다는 까닭에 왕따를 당했었고, 직장을 다닐때도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겉돌았습니다."

"직장에서 겉돌건 예상했네. 장인한테도 말대꾸를 하는데.."

"...... 제가 혼자서 커피를 마실때나, 소설을 볼 때나, 일을 할 때나... 항상 유상아 씨가 제게 다가와줬습니다."


다시 유상아를 바라보자 유상아가 버둥대는걸 멈추고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유상아 씨가 있었기에 저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됐거든요. 그게 다입니다."

"...참 말이 짧구만 그래..."


그 말을 하는 유상아 아버지의 얼굴에 왠지 모르게 미소가 떴다.


"내 이름은 유지한일세. 앞으로 많이 보겠구만."

"...네, 유지한 씨."

"...이거 보면 볼수록 골때리는 새■일세... 정 없게 뭔 유지한 씨야..! 장인이라 불러!"

"네, 장인어른."


얼떨결에 결혼을 당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