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이화운 병장님, 이화운 병장님 아침 점호 나가야합니다.

 

, 몸살 기운 있다고 말해

 

나는 모포를 머리 끝까지 올리며 다시 웅크렸다. 당직이 인사장교니까 뭐 상관없겠지

예비군 동원막사에서 훔쳐온 따끈따끈한 A급 모포를 몸에 말고 자며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비 계속 내렸으면 좋겠네

 

? 오늘 비 온다고 했었나 잘만 하면 일과 없이 보낼 수 있겠네 개꿀

잠시만 비가 온다고?

순간 머릿속에 지나가는

 

, 훈련, 그리고 산사태……

소총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응시하던 소녀의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

 

허리를 세우니 시야에 들어온 건 철창과 어제 봤던 두 명의 수인이 머리만 내민 채 쳐다보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니 깜짝 놀라며 숨는 모습이었다. 키는 조금 작은 모습이었지만

문득 손에 보들보들한 느낌이 들어 아래를 보니 하얀 극세사 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멈추고 싶은데 너무 부드러워서 계속 만지작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니 벽 재질은 돌로 되어있어 울룩불룩했고 바닥은 나름 평탄화 했다지만 마찬가지로 단단한 돌로 깔려있다. 천장을 보니까 벽과 똑같이 울퉁불퉁하게 되어있어 마치 동굴 속 같았다.

 

 

식물섬유로 만들어진 깔개와 면 섬유로 만들어진 폭신한 베개, 그리고 하얀 이불이 전부였다.

같혀 본 적은 없지만 상상해본 감옥과 흡사했다. 간이 침대는 있을 줄 알았는데

 

짧은 평가를 마치고 나니 현실이 밀려왔다.

 

(진짜이세계로와버렸어…)

 

허탈했다. 말로만 듣던 이세계전이가 실제로 있을 줄이야. 하기사 이 넓디 넓은 우주에 우리 지구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의 새로운 문명 조우는 꿈에도 바라지 않았다.

 

다리를 구부려서 모으고 팔을 교차시킨 뒤 무릎 위에 올렸다. 머리를 그대로 숙이니 그나마 편안했다.

 

(나 현실에서 죽은건가..?)

 

산사태로 이미 죽은 게 아닐까? 내 시체는 이미 거둬졌고 영혼만 차원이동을 해버린 게 아닐까?

라고 판단하기에는 딸려온 장구류가 옥에 티였다.

 

아니면 신이 내 모습이 안쓰러워 개입한 것일지도..

본인은 하나님이나 예수, 부처의 지구상에 있는 신은 믿지 않지만 우주를 창조한 신은 믿고있었다. 빅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말에 과학적인 설명보다 그냥 신이 만들었다말을 하면 이상하게도 신빙성이 있다.  

 

(진짜로 죽은거라면 난..)

 

많이 봐줘서 몸만 왔다 쳐도 지구에서는 실종이다. 엄마 아빠는 일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나를 찾느라 사표까지 써가면서 돈은 돈대로 허비할 것이 선명했다. 부모님은 그럴 분이시니까

 

(누나도..마찬가지겠지)

 

겉으로는 차갑게 대하면서도 은근히 챙겨주던 누나도 일이 손에 잡힐리가 없다. 이럴 바에 차라리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 게 낫다. 슬픔은 폭풍처럼 밀려오겠지만 이 또한 시간이 약이라고 흐를수록 차차 나아지는 반면 실종 상태는 그게 다르다.

 

언제 돌아올지, 발견될지 모르는 아들, 동생을 기다리는 마음은 점차 피폐해져만 간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앞서 전자보다는 후유증과 치료가 오래간다.

 

..”

 

눈물이 절로난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서 가슴이 메어졌다. 답답해졌다.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 아빠 누나 나때문에 고생할 거 생각하니 내 자신이 미워졌다. 정신줄 놓고 엉엉 울고 싶은데 꼴에 남자라고 이빨 깨물면서 목소리 틀어막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크흡………..으윽!.....씨발…”

 

차라리 죽어버리면 되지 않을까..나 지금 현실에서 식물인간 상태이어서 죽으면 깨지 않을까?

맞아 맞다.


여기서 죽으면 나 현실에서 깨어난다.

원래 소설에서도 그렇지 않나? 무림에 떨어지고 그곳에서 세계 제일이 됬는데 죽고 보니까 나는 식물인간 상태였고 깨어났다는 설정

내 스스로가 합리화를 하니 편해졌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나름 감옥이라고 무기가 될만한 요소들은 전부 없앴다.

난 벽을 더듬으며 약한 부위의 돌을 찾아 힘껏 떼어냈다. 밖에 수인 두 명이 내가 뭐하고 있는지 아까와 똑같이 고개만 쑥 내밀어 보고 있었다.


자살하려고 하면 분명히 막으려 들겠지어느 소설처럼 누가 멍청하게 보여줄 것 같아?

뒤를 돌아 철창을 등진 채로 아까 떼어낸 날카로운 돌을 바라보았다. 숨이 절로 거칠어지면서 부들거리는 손으로 반대 손목 동맥에 가져다 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순식간에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지만 내 침에 옆에서 엎어진 채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부모님과 누나를 위해서 힘을 꽉 주었다.

아프다. 진짜 어차피 죽을 거지만 죽을 정도로 아프다.


칼에 베인 적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종이로 베인 느낌은 선명해서 그것이 계속 지속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맨들맨들한 피부에 핏방울이 나오더니 곧 주르륵 흐를 정도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킁킁아앗!”

 

등 뒤에서 수인 두 명이 꺅꺅대며 소란스러워졌다. 꼴에 수인이라고 코는 민감해서 냄새는 잘 맡는다 이건가?

 

기억상으로 손목을 그어서 제대로 죽으려면 동맥을 찾아서 끊어야 한다고 했다. 정신이 끊길 정도로 아팠지만 가족을 생각하면서 힘을 줬다.


조그만….!


시야가 흐려지고 어질어질해졌다. 귀 주위에 공명이 일면서 소리가 삐이- 소리와 함께 들리며 차단되었다.

 

순간 몸이 거칠게 허물어졌다.

누군가 돌조각을 든 손을 잡아 제지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이 목소리 처음 만났던 그 수인인가? 고개를 힘없이 돌렸다.

빨간 치마 옷이 보였다. 아까 꺅꺅 댔던 수인 두 명은 그 뒤에 숨어 있었다. 천천히 내 손목을 잡은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옅은 소녀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니미씨팔 진짜….…!”

 

참아왔던 눈물과 설움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씨발 병신 같은 세계는 내 죽으려는 것도 마음대로 못 죽게 놔두고 지랄…..!!!”

 

가뜩이나 어질어질 했던 정신머리가 그래고 뚝 끊겼다.


"앗...!"

 

이화운이 그대로 쓰려지는 걸 모미지가 허리를 숙이며 재빠르게 안았다.

돌조각을 들던 손에 힘이 풀리면서 무릎 위에 떨어졌다.

모미지는 잠시 그를 안은채로 가만히 있었다. 화운의 반대 손에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잔잔했던 혈향은 곧 감옥을 가득 매웠다.

 

선배님…!”

 

뒤에 있던 백랑텐구 두 명이 안절부절하며 모미지를 불렀다.

하얀 귀가 움찍하며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미지가 화운을 안은 채로 일어났다.

 

빨리 의료실로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