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吳廷琰
한글 독음 : 오정염
영어 이름 : Ngô Đình Diệm

(1901.1.03~1963.11.02)

1901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 꽝빈 성 후에시 출생. 예조판서 오정가의 셋째 아들로 출산
프랑스에 협력했던 사람이었지만 오정가의 목적은 베트남의 개혁이라 1907년 프랑스에 항의하며 사임 이 영향으로 오정가는 애국자로 존경을 받게되고 딘지엠도 아버지 명성으로 행정 학교를 졸업, 식민지 관료생활을 시작함.

이후 7년간 고위 관료 생활을 하다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 프랑스 공산주의 봉기를 진압하는등 이런저런 일을 했음. 1933년 이부상서 (인사권 총책임자) 임명 2달만에 프랑스가 베트남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항의의 뜻으로 사직 이후 관료 생활을 하지 않고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음.

1941년 일본제국이 인도차이나에 들어오고 딘지엠은 일본군과 협력해서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을 독립시키고자 했음 그러다 1943년 베트남 민족주의 정당을 통합하려다 식민당국에 걸려서 체포 될뻔했으나 일본의 도움으로 사이공으로 도피 이후 사이공에서 일본군의 도움을 받으며 협력관계를 유지하다 1945년 3월경 일본이 베트남에 베트남 제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자 이에 응오딘지엠은 내각을 구성해달라는 바오다이의 제안을 거절. 호치민의 공산주의 베트민 세력이 강해지자 응오딘지엠을 따르는 세력은 어느곳에도 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림 그래서 반제국주의,반공주의를 주장하는 제3 세력을 구축.

얼마뒤 베트민이 후에에서 사이공으로 이동하는 응오딘지엠을 억류,형을 처형시켜서 응오딘지엠의 제3 세력과 베트민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림 하지만 호치민은 반공 민족주자들과의 타협을 위해서는 호치민급으로 인기가 있던 응오딘지엠은 거의 필수였고 결국 얼마뒤 석방됨.

1945년 일본제국이 항복하고 8월 혁명으로 베트남 제국 정권이 붕괴되지만 바오다이는 1949년 엘리제 협약으로 베트남의 지도자로 복귀. 이에 빡친 응오딘지엠은 성명을 통해 친프랑스파,베트민,바오다이와 협력하지 않겠다고 함, 이에 베트민과 친프랑스파는 딘지엠 암살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가톨릭 주교였던 둘째 형의 도움으로 암살을 피함 그 시기 호치민 정부는 응오딘지엠과 협력하는 관계가 되고자 했지만 끝내 결렬됨. 이후 응오딘지엠은 외국을 찾아서 정치적 입지 확보를 꾀하지만 결과가 좋지는 않았고 미국 정치인들을 만나 지지확보를 얻어낸것 말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음.

그러던중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베트민한테 자진모리 장단을 털려서 대패 하자 비상이걸린 바오다이는 응오딘지엠을 수상으로 임명함. (그가 프랑스의 꼭두각시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있는데 프랑스의 베트남 영향력은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로 사라지고 있었음) 이후 제네바에서 회담이 열리고 베트남을 북위 17도선으로 분할 1956년 총선거 합의로 제네바 합의 끝남. 미국은 협약준수는 선언했지만 서명은 하지 않음.

이제 베트남국의 수상이 된 응오딘지엠은 국외에 있던탔에 명성에 비해 기반이 너무 적었음 게다가 군부는 여러 파벌로 나뉘어서 사실상 군벌이 되었고 총참모총장은 응오딘지엠을 제거하겠다고 대놓고 위협하는 상황이됨 거기에 민간이랑 정치에선 불교,친불 세력이 활개치고 있었고 자기들만의 군대까지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이렇듯 국내가 개판이던 상황에서 미국도 아직 간보고 있던 상황이라 외신에선 응오딘지엠 정권이 2년안에 무너질것이라 예측하기도 했음. 이러한 상황에서 응오딘지엠 정권의 첫번째 과제는 북베트남에서 넘어온 90만명의 반공 피난민 수용이었는데 당시 북베트남에선 기독교 탄압으로 천주교,기독교 신자들, 토지개혁으로 땅이 다 털린 지주들도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고 불교인도 상당수 탈북함.
CIA도 북베트남에서의 활동으로 탈북을 조장하고 있었고 북에서 넘어온 90만의 탈북인들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이들은 이후 응오딘지엠의 골수 지지층이됨. 자신감을 얻은 응오딘지엠은 정권 강화에 나섰고 자신들을 겨냥했던 군부와 종교주의 군벌들을 사이공 전투로 때려잡으며 권력을 잡아내는데도 성공함 이에 기세를 이어 국민투표를 통해 바오다이를 추방시고 군주제를 폐지시킴 응오딘지엠의 이러한 정책은 베트남 민중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고 안정적인 정권을 만드는데 성공.

이후 1955년 9월 프랑스를 통해 미국의 지원이 거치지 않을것으로 결정되자 1956년 1월 프랑스 연방에서 탈퇴 4월엔 프랑스를 통해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함. 그해 7월 헌법이 통과되고 10월에 베트남 공화국이 정식으로 출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