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베트남 공화국의 헌법이 발표되고 남베트남도 점점 제대로된 나라 꼴을 갖춰가기 시작함. 하지만 헌법은 대부분이 명문이었는데 이는 응오딘지엠이 권위적 인물이어서 그랬다는 해석이 있음. 이때문에 헌법이 발표된 직후 정치 민간,종교인 할것없이 대대적인 탄압,숙청이 이루어졌고 반공 정치인만 우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한해에만 최소 수만에서 수십만명이 정치범으로 수용소,캠프등으로 끌려감. 참고로 이때 처형된 사람중 한명에 레꽝빈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사람은 원래 친불 기득권 인사였지만 나중에 남베트남으로 전향함 민중 지지도 상당했던 인물이라 협력하면 이득이 꽤 있었을텐데 노빠꾸로 그냥 처형시켜버림. 이를 본 민중들은 경악했고 이때부터 남베트남 정권은 만중 지지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보면됨.

이로인하여 자유월맹 내부에선 프랑스 시절보다 혹독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남베트남 정권은 그 뿌리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바로 앞서 말한것과 극심한 부정부패였음 부패가 거의 국공내전기 국민당급이라.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남베트남에 한줄기 빛이 내려오는데 바로 미국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자진모리 장단으로 털리고 유럽에선 중유럽의 핵심인 베를린까지 빨갱이들이 들이닥치고 한국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자 인도차이나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중요도가 높아짐 그래서 그동안 지지부진 하던 남베트남 지지와 지원이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1년사이 3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지원이 옴. 하지만 위태로운 정권에서 미국의 지원은 응오딘지엠 정권이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 될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미국의 입김이 강해질것을 우려한 응오딘지엠이 도입한게 바로 가족정치임 50년전 영국이 썼던 식민지 통치방식을 부활시켜 정부는 억압적인 통치를 진행함. 한편 남베트남이 뿌리부터 썩어가는 상황에서 북베트남은 평화공세를 진행하는데 베트남 전역에서 존경받는 호치민이 있기때문에 총선 압승을 예상했기 때문임.
하지만 응오딘지엠은 협상을 엎어버렸고 오히려 더욱 잔혹적인 탄압을 자행함 이에 분노한 일부 남베트남인들이 결성한 반정부 단체가 바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임. 거기에 응오딘지엠 정권의 토지개혁 실패,공무원 부정부패등으로 세력은 빠르게 증가함. 그래서 세력이 어느정도 되자 게릴라전을 치를만큼 성장하게 되고 나중에 미군이 엄청나게 고전.

내부에서 사실상 봉기기까지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응오딘지엠은 정신을 못차렸고 오히려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자국의 양민들을 학살하고 백색테러를 일으키는등 더욱 미친짓을 저지름 이러한 테러로 죽은사람은 최소 7만명 이상 최대 30만명 이하. 길거리에서 공산주의자처럼 보이면 공안이 조사도 없이 암살도 서슴치 않았고 나중에는 수용소가 매어 터질 지경이었음. 이렇듯 막장 통치를 자행한 결과 미국까지 경악하며 이건좀 아니다라고 비판할정도 하지만 응오딘지엠은 마이웨이를 갔고 이후 백색테러는 군부에까지 퍼졌고 결국 마지막까지 응오딘지엠을 밀어준 군부는 쿠데타를 계획함.

내부 불안,개혁 실패,민심 악화,막장 통치등으로 남베트남은 껍대기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응오딘지엠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비판하고 나섰고 결국 미국의 신뢰도 잃어버림 거기에 베트민 게릴라들이 정글에서 활개치고 다녔지만 응오딘지엠은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음 이런 상황에서 1960년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이때는 아직 응오딘지엠에 충성하던 장교들이 있어서 저지됨. 하지만 3년이 지난뒤 남베트남은 막장중 막장 국가가 되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그러던중 1963년 11월 베트남 육군 소장 양문명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끝났음을 직감한 응오딘지엠의 동생은 그와 함께 항복하지만 안전한 곧으로 모시겠다며 장갑차 안으로 데리고 가다 안에서 끝내 총살됨 군부는 응오딘지엠이 총기를 탈취하려 해서 사살했다고 했지만 당시 손은 결박되어 있어서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짐.
이로써 남베트남은 북베트남하고 싸울수 있는 구실점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전세가 북베트남에 기울게됨.

그가 죽은뒤 남베트남 일대는 축제 분위기가 되지만 얼마뒤 응오딘지엠보다 더한 통치가 찾아오게 되고 응오딘지엠 사후 무질서한 사회 질서 정부채계의 붕괴등 더한 막장 상황이 되자 이후 남베트남과 해외에서 다시 재평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