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30~1945.4.12

미합중국의 정치인이자 제 32대 대통령, 유일하게 미국 대통령중 4선 성공. 미국에서 제일 오래 집권한 인물. 약칭은 FDR

1882년 1월 30일, 뉴욕 주 하이드파크에서 출생. FDR의 아버지는 지역 사회의 나름 유복한 지주이자 델러웨어 앤 허드슨 철도의 부사장이었고, 매우 유복하게 자랐는데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FDR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가정교육과 여행으로 견문을 쌓다가 14살 때 기숙학교에 입학함. 그후 하버드에 입학하여 3년간 사학을 전공했고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률을 공부한 후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뉴욕의 법률회사에 취직했다. 어려서부터 도련님처럼 혼자 자라서 그런지 친구는 별로 없었다고... 다만 본인은 공부만 파는 체질은 아니었고 운동과 밖에 돌아다니는 야외활동도 매우 좋아했었다고 한다. 1905년 3월 17일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이자 자기에겐 먼 친척뻘(13촌)인 엘리너 루스벨트와 결혼.

1920년 오하이오 주지사 제임스 M. 콕스와 러닝메이트로 민주당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는대 이때 무려 38세의 나이였음. 당시 민주당 윌슨 대통령이 주도하다 결실을 맺지 못한 국제연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등으로 제임스 콕스 후보가 공화당 워런 G. 하딩 후보에게 패하며 FDR도 함께 낙선.

게다가 본인 건강에도 큰 문제가 생기는데, 1921년 8월 캐나다 캄포벨로의 별장에서 쉬다가 찬물에 빠져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고, 이 때문에 반신불수가 되어 통증에 시달림. 이후 몇 년간 뼈를 깎는 재활훈련 끝에 완벽하진 않아도 부축없이 겨우 걸을 정도가 되자 사람들은 그의 의지에 찬사를 보냈고 이에 힘입어 다시 정계로 복귀.

어느 정도 병세가 회복되자 1924년 뉴욕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가했는데 이 때 버팀목에 의지하여 연단까지 스스로 올라가 군중들을 감동시켰고 뉴욕 주지사 앨프리드 스미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연설 진행함. 여기서 얻은 별명이 '뉴욕 주지사의 행복한 전사'였다고. 그 후 1928년 정계에 완전히 복귀하여 민주당의 뉴욕 주지사 후보가 되어 당선되었고 1930년에 큰 표 차이로 재선되었는데 이 때부터 혁신 정책을 진행 한것중 하나가 대공황 시대를 맞아 주(州) 차원의 구호 프로그램인 산업보험, 자연보호 관련 일자리 창출에 힘을 기울였음. 또한 화로에 앉아 라디오로 연설을 한 이른바 노변담화(Fireside chat)를 실시한 것도 바로 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도움이 필요했는데. 일반 대중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병세는 훨씬 심각했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감이 많았음. 훗날 대통령이 되어서도 하반신 치료를 계속 지속했으며 비공식 석상에서는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고

뉴욕 하이드 파크에서 애완견과 저택 관리자 손녀와 찍은 사진으로 FDR의 하반신이 찍힌 몇안되는사진.

1932년 1월 대통령직에 도전 하겠다고 선언했고 민주당의 지명을 받아 대공황의 원흉으로 지목받던 당시 현직 대통령 허버트 후버를 상대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

1933년 2월 즈음 취임을 앞두고 마이애미에서 암살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 범인은 시카고 마피아의 사주를 받은 주세페 장기라. 다만 장가라의 총알은 FDR에게서 빗겨가 그 옆에 있던 시카고 시장 앤턴 서맥의 가슴에 맞았고 결국 시장은 병원에서 사망.

여튼 1달뒤인 1933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했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김.

"So, first of all, let me assert my firm belief that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fear itself."
"우선, 제 확고한 신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을 펼치게 되었고 일단 은행의 파산을 막기 위해 은행을 휴업시켰고, 공공사업 확대와 실업자 구제, 복지 확충과 금융 개혁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뉴딜 정책을 추진시킴.예를 들어 테네시 계곡 개발공사(TVA)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공사 사업으로 일자리를 실업자들에게 제공하고, 당시 방임적인 기업정책을 수정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한 법인 와그너법의 제정과 오늘날 미국의 사회복지 체계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사회복지법 제정 등이 이때 이뤄짐. 또한, 1933년 증권법 및 1934년 증권거래법을 통해 증권 거래에 대한 규제의 틀을 잡았고 당시로써는 최대 규모이자 과감했던 이런 정책들이 시행된 후, 그의 집권기간 실업률은 줄고 국민소득은 올라가는 등 경제 상황이 빠르게 호전된다. 그리고 이러한 호경기에 힘입어 그는 1936년 대선에서 상대편 공화당 후보인 알프레드 랜든을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함.

그렇게 집권 2기에 들어섰지만 1년만인 1937년부터 뉴딜의 효력이 떨어졌는지 다시 불황이 찾아왔는데 대외에선 파시즘이 활개치며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음. 당시의 불경기에 대해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것, 또 고전학파 전문가들은 뉴딜 정책의 재정지출 효과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음. 다만 케인즈주의자들은 3년간의 호황이 지속되자 재정지출을 잠시 줄였더니 즉 뉴딜을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일어난 참사였다고 주장함. 실제 이 때의 경기 침체란 것도 상대적인 것으로 대공황 시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또 집권 1기와 달리 집권 2기는 의회와의 상대적 불화로 애초에 뉴딜이 제대로 작동할만한 법안을 많이 통과시키지도 못했다고

하여튼 그런 와중 1940년, 루스벨트는 조지 워싱턴 이래로 지켜져오던 3선 금지의 룰을 깨고 대통령 선거에 3번째로 출마함. 물론 이런 그의 행동은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반발이 있었음. 허나 전쟁의 여파가 미국에도 서서히 드리워지는 상황 속에서 미국인들은 그를 다시 지지했고 지난 선거보단 낮았지만 여전히 큰 표차로 공화당 후보인 웬델 윌키를 누르고 3선에 성공.

그리고 1년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FDR은 국민과 의회의 압도적인 지지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진행하고 연합국에 참전함. 직후 나치독일과 이탈리아 한테도 선전포고를 받으며 유럽전선
에도 참전.

이렇게 전쟁을 지휘하던중 1944년 공화당에선 토마스 E. 듀이가 대권에 도전하나 여기서도 승리하는 기염을 토함. 하지만 4선은 논란이 있었는데 전쟁 기간동안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는 격무에 시달려서 안그래도 안좋았던 건강이 더욱 안좋아졌고 출마당시 논리가 전쟁중에는 지도자를 바꿀수 없다였지만 당시에는 일본이랑 독일 둘다 패망 직전이라 논란이 많았음. 결국 루스벨트 사후 1951년 수정헌법 개정으로 3선 이상 중임을 무조건 금지함.

1945년 2월이 되어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영국의 윈스턴 처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전후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얄타 회담을 가지기도 했고, 국제연합의 창설모임을 4월 25일 가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의회에 제출함.

1945년 3월 말, 루스벨트는 휴식을 위해 웜스프링스의 별장에 있었는데 그리고 4월 12일 여기서 애견 팔라와 산책을 하고 벽난로 앞에서 자신의 안락의자에 앉아 비서와 농담을 하면서 테이블의 여러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었음. 이 모습을 옆에서 한 화가가 그리고 있었는데, 오후 1시 15분 뇌출혈로 루즈벨트는 갑자기 "뒷머리가 너무 아프군"이란 말을 남기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쓰러짐.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1945년 4월 12일 오후 3시 35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미 얄타 회담 당시 루스벨트를 찍은 영상들을 보면 이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걸 알 수 있는데 얼굴은 수척한 데다 악수도 몹시 힘들어하던 상태. 사망 하루 전 찍힌 마지막 사진인데, 상태가 매우 안 좋아보임이 한 눈에 보임

죽기 하루전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

그의 부고를 접한 처칠 총리는 눈물을 흘리며 당시 미국의 라디오 특파원으로 있던 에드워드 머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언젠가 이 세상과 역사는 당신네 대통령에게 큰 신세를 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스탈린도 그의 사망소식을 듣자 애써 무덤덤한 말투로 그는 위대한 지도였다고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었음.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양난을 극복하고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으로 올려놓은 인물. 현대 미국의 기반을 닦아놨고 당시나 현재나 미국인들이 조지 워싱턴,링컨과 함께 제일 존경하는 인물중 하나.

1시간동안 썼는데 보면 추천좀 한번씩 누르고 가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