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전 작성자 본인이 유럽여행중 노트르담에 다녀온 경험과 사진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세느강을 지나는 다리 위에서 멀찍이 바라본 노트르담

2019년 1월 28일, 프랑스 체류의 마지막 날, 나는 엄마와 함께 파리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했다. 기차를 타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약 30분~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허용되었다. 



노트르담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노트르담의 파사드를 카메라에 담을수 있었다.먼저 셀카를 찍었다. 



내부 전경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들어온것은 촛불과 탁트인 홀이었다. 노트르담의 앞에서 신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중세인들의 열망을 느낄수 있었다면 노트르담의 안에서는 신의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중세인들의 고심이 느껴졌다. 웅장하되 위압적이지 않고 자연스레 경건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기둥부분은 나무의 그것과 같아보인다. 성당 내부의 전체적인 관람 동선은 노트르담 성당 내부를 한바퀴 돌아 노트르담 정면의 세개의 문중 나왔던 문의 대칭되는 문으로 나오게 되어있었다. 실제로 기도를 드리는 교인분들이 많아 성당 내부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노트르담 측면부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형형색색의 빛깔로 들어왔다. 예수님과 성경속 일화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엄마와 나는 중간에 관람을 멈추고 중앙홀의 의자에 앉아 예배를 보고 쉬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 성당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후 우리는 성당을 나가러 다시 관람을 시작했다. 성당의 측면부에는 다양한 성물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벨포르행 기차를 탔다. 노트르담은 그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전면의 파사드의 부조는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내부구조나 스테인드글라스등 흠잡을 곳이 없었다. 후에 보게되는 성 베드로 대성당과 비교했을때 노트르담은 훨씬 작은 규모과 건축비용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경건함을 자아내었다. 지금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대혁명 시기에는 시민들에 의해 훼손이 이루어지고 1840년대에 일부 복원된 것이라 한다. 이는 여말선초에 숭유억불과 함께 전국의 사찰이나 불상이 유생들에 의해 훼손된 것과 같은 성격인것 같다. 당시 프랑스의 성직자들이 기득권의 한 축으로서 부패해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