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의 상하이>

1992년, 우리 부부는 은퇴하고,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나 정을 통했던 상하이의 홍챠오로 내려왔다. 1989년의 정치 풍파를 겪고 분위기가 얼어 붙었던 우리 중국은, 1993년 쟝쩌민 동지가 양샹쿤 동지의 뒤를 이어 집권한 후에도 개혁개방은 계속했고, 분위기도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바다 건너편 대만에서도 계엄이 해제되어, 여기 본토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탐친이 해금되었다 한다. 덕분에, 비록 홍콩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국공내전 말에 헤어졌던 큰누나 부부와도, 몇십년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 수 있었다.



<1997년 홍콩 회귀>

1997년에는 홍콩, 1999년에는 마카오도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고, 2001년에는 우리 중국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것도 볼 수 있었으며, 2002년 초에는 2008년 올림픽 개최권도 따내는 등 국운 또한 계속 상승가도에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좋아질 줄 알았다. 2002년 말까지는.



<2000년대 초의 상하이>

2002년 말 광동성 어느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괴질은 눈깜짝할 사이에 중국 전역은 물론, 몇몇 외국에도 퍼져나가 수많은 인민들 목숨을 앗아갔고, 우리 중국을 다시 한 번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도 정부 당국은 정보를 은폐하며 쉬쉬하기에 급급했고, 심지어 소문에 의하면 베이징에서 괴질 환자가 발생하자 쟝쩌민 동지는 가족을 거느리고 여기 상하이로 도망오는 추태를 보였다고 한다. 참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가 주석이라는 위치에 있으면,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서 괴질 진압을 진두지휘해야 할 것 아닌가? 외화내빈이다. 모든 것이 썩어 빠졌다. 그런데, 내 몸도 요사이 며칠 뭔가 이상하다. 여기 상하이에도 얼마 전 괴질 확진자가 나왔다더니, 설마, 콜록콜록...

쟝싱궈(蒋兴国,1931.8.8~2003.4.4). 쟝쑤성 푸커우(오늘날의 난징시 강북지역) 태생. 인민대학에서 정치사상을 전공하고 하얼빈, 광저우, 제남, 우한의 당간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문화대혁명기 이창의 초등학교 교사로 하방. 1978년 복권된 후에는 주로 중고등학교의 소년선봉대를 총괄하는 직위에 있었으며, 6.4천안문 사태 직후 재교육 캠프에 투입, 여러 차례의 사상 강연을 진행. 1992년 은퇴하였으며 2003년 4월 SARS 전염으로 타계.

갑작스러운 도서관 휴관 후 지연되었네요. 마지막 사스 관련 사진은 아직 찾는 중이고 천천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연재는 차례대로 新외성인의 시각, 홍콩인의 시각, 내성인의 시각 순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