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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기억하고 있다, 칼리오페."

"오, 그럼 눈 좀 감아줄 수 없을까?"


저승의 천장을 떠받친 채로 자신을 내려보는 거대한 암석으로 이뤄진 거인을 올려보면서 칼리는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길 바랐다.

물론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그게 될 거라 생각하는 거냐? 저승사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사자(死者)의 영혼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걸."


그래, 씨발.

저럴 줄 알았지.

칼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쉬었다.

생사의 법칙은 함부로 범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영역이었다.

특히나 그 영혼을 취급하는 저승사자일수록, 그 법칙을 잘 지켜야했다.

생과 사의 경계가 흐릿해지면 죽은 자가 되살아나고 산 자는 저승을 자유롭게 오가게 된다.

그러면 세상의 균형을 깨지고, 그것은 곧 양측 세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알아, 그래. 나도 안다고, 그 빌어먹을 놈의 규약. 그렇지만 그래, 예외를 하나 만들어둔다고 해도 욕을 먹는 건 나잖아?"

"이미 내 시야에 들어온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 널 눈감아 줬다간 플루토만이 아니라 시왕과 야마, 북망산의 대혼들도 날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제발, 아틀라스. 일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아."


칼리는 그렇게 사정했다.

애초에 근래 봤던 저승사자의 눈으로도, 부바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고, 각오도 했지만 그래도 막상 닥치니 역시 가급적이면 쉽게 처리하고 싶은 것이 칼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네가 그 영혼을 내려놓으면 끝날 일이야. 저승세계는 너 하나의 일탈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탄약고와 같은 곳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저승사자?"

"이 씨발,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애초에 난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게 아니야. 얜 지금 죽을 애도 아니었으니까 데리러 왔을 뿐이라고."

"그건 생명을 관장하는 다른 저승사자의 몫이다. 네가 얼만큼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난 그걸 눈감아 줄 수 없어."


저 빌어먹을 새끼, 칼리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저승사자들이 난입하면 칼리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때는 진짜 실직 당할 각오를 하고 데스사이즈로 피바람을 일으켜야 할지도 모른다.


"이 새꺄, 나한테 그 정도 권한은 있거든? 내가 뭐 영혼 수십개를 풀어버리겠대? 개 한 마리야, 개! 단 한 마리!"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거대하고 우악스러운 바위로 만들어진 팔이 떨어진다.

칼리는 연신 FUCK을 외치면서 데스사이즈를 들어올렸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랬다간 이곳의 영혼들이 저 융통성 없는 티탄의 손바닥에 다 눌려버릴 테지.

그리고 놈은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래서 난 티탄이 싫어, 칼리는 눈을 부릅 떴다.

살기를 담은 눈동자가 빨갛게 빛났다.

이윽고 칼리가 아틀라스의 팔과 격돌하려던 그 때였다.


"거기까지."


중간에 끼어든 중후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를 칼리는 안다.


"오, 퍼킹 쉣."


목소리가 난 방향을 보면, 검은 망토로 몸을 두르고 있는 장신의 백골이 있었다.

손을 멈춘 아틀라스가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왔군, 그림. 네 부하가 지금 허튼 짓을 하려고 해서 막으려던 차였는데."

"아, 그래. 또 너일줄 알았지."


칼리의 상사인 저승사자.

대낫을 들고 있는 전형적인 서양 구전의 모습을 한 그는 질렸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칼리는 긴장했다.

자신의 이승행을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던 상사와는 영혼을 담은 랩 배틀을 해서 칼리가 승부에서 이김으로서 마지못해 그걸 허락했다.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그 정도로 융통성도 없다.

원리원칙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로 저승에서는 칼리가 그 누구보다 거리낌 없이 부딪칠 수 있으면서도 이런 상황에선 꺼리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지상으로 나가겠다고 그 난리를 친 걸론 부족했던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그래요. 사적으로 일을 좀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큰일을 저지르려고 한 건 아니에요. 친구의 개가 운명이 아닌데도 죽었다구요. 그래서 그걸 데리러 온 것 뿐이에요."

"칼리, 항상 사고뭉치인 너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처구니가 없구나. 사적인 이유로 죽은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운명이 아니니까? 허튼 소리야. 운명의 세 여신이 모든 영혼의 운명을 정하지만 그건 지침일 뿐이다. 저승사자의 눈에 보이는 대상의 운명은 아무 일도 없었을 때를 기점으로 하고 있어. 그걸 네 멋대로 깨겠다고? 그러면 그 피치 못한 문제로 애완동물을 잃은 사람들은 뭐가 되나."


상사의 말은 정론이다.

하지만 칼리는 품에 안은 부바를 내려보고, 상실감에 풀이 죽어있는 아메와 그런 아메를 위해 분노하던 악셀, 역시 지금도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을 다른 동료들을 떠올리고 확고한 눈빛을 지었다.


"그럼 씨발 어디 해보자고요. 나도 내가 규칙을 어기고 있단 걸 압니다. 하지만 래퍼는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온 존재였어요."

"기어이 이 씹지랄을 하겠다고?"

"못할 건 뭔데요? 내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잊으셨나봐?"

"잊을리가, 칼리. 지금도 널 보내지 않겠다고 내가 이 늙은 몸으로 선글라스 낀 채 몸을 뒤틀었던 게 어제일 같고만."


칼리와 상사 사이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물리적이라기 보다는 기싸움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하지만 칼리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부바라도 빼내야한다.

그럼 뭐, 여기서 함 죽어보자고, 염병할.

그렇게 의지를 확고히 드러내는 칼리를 보던 상사는 한숨을 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칼리의 뒤로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지랄말고 그냥 나가."

"what?"

"얘기 못 들었냐?"


상사의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윽고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한 칼리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충동을 주체하지 못했다.

곧장, 칼리는 부바의 영혼을 껴안은 채 상사에게 달려들어 그의 등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끌어안았다.


"오, 세상에. 빌어먹을 할아버지, 지금 내가 존나 고마운 거 아시죠?"

"모른다. 아틀라스, 너도 아무것도 못 본거야. 본 놈이 있다면 나한테 보내라."


칼리의 시선을 피하고, 상사는 위를 올려보고 그렇게 말했다.

아틀라스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알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어쩌겠나, 이 구역 짱이 그렇게 하자는데.


"맘 바뀌기 전에 얼른 나가라, 칼리."

"그래요, 그게 편하겠죠. 다음에 선물 보낼게요."

"그럼 네 굿즈 초판 보내. 사인한 걸로."

"내가 씨발 천번이라도 써서 보낼게요!"


칼리는 상사의 해골에 거칠게 키스를 해주고 부바의 영혼을 끌어안은 채 바로 구멍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