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갤도서관 채널

처음써보는 소설

===================================================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성당 내부를 아름답게 감쌌다. 불경하게도 뒤에서 작게 수근거리는 이들도, 신께서 오늘 이 날을 축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히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수습 성기사 코베릭은 앞으로."


교황이 작지만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교회의 인장이 새겨진 새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코베릭이 앞으로 나왔고 로브 안에 입은 갑옷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펴졌다.

코베릭이 무릎을 꿇자 짐승의 귀와 꼬리가 살짝 삐져나왔다. 수근거림이 심해지자 교황이 화려하게 장식된 셉터를 살짝 들었다 놓아 바닥을 가볍게 찍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근거림이 잦아들었다.


교황은 잠시 성호를 긋고는 의례대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순결과 헌신을 통해 주님께 스스로의 신앙심을 증명했다. 그대는 영원히 이 신앙심을 유지하며, 영원히 주님을 섬길 것을 맹세하겠는가?"

"맹세합니다." 코베릭의 맹세가 조용히 성당 안을 울렸다.


"그대는 주님께 영원을 맹세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 영원을 무엇으로서 채워나갈 것인가?"

"검과 방패로서 주님께 헌신하겠나이다."


"그대는 주님께 영원히 검과 방패가 될 것을 맹세했다. 그렇다면 주님의 검이 벨 것은 무엇이며, 방패로 지킬 것은 무엇인가 ?"

"저는 주님의 검으로서 이단과 악마를 벨 것이며, 주님의 방패로서 그 분의 어린 양을 보호하겠나이다."

교황은 코베릭이 세번째 맹세 마치자 셉터를 높이 들었고, 교황의 셉터에서는 밝은 빛이 뿜어져나와 코베릭을 축복했다.


"세 번의 맹세로서, 주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아래 그대, 코베릭을 정식 성기사로 임명하는 바이다. 그대는 오늘의 세 가지 맹세를 결코 잊어서는 안될지니..."


===================================================================


꿈을 꾸던 코베릭은 천천히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서서히 깨어났다. 뚜벅뚜벅거리는 소리의 메아리가 울리는 게 마치 동굴 안 같다고 생각했다. 동굴?... 여기가 어디지? 깜짝 놀란 코베릭은 벌떡 일어나 무의식 적으로 검을 찾았다. 그러나 허리춤에 있어야 할 검이 없었다.

다시 한번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검을 찾으려는데, 손목에 구속구가 채워져 쇠사슬을 따라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 손목 뿐 아니라 사지와 목에까지 구속구와 벽에 매달린 쇠사슬이 보였다. 심지어는 자신의 갑옷도 사라지고 지금 입고 있는 것은 갑옷 안에 입던 내의 뿐이었다.

우선은 쇠사슬을 힘껏 당겨보았으나 쇠사슬의 찰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쇠사슬에 시선을 옮기며 확인해보자 쇠사슬을 벽에 고정하는 핀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쇠사슬이 벽에 파묻힌 것 처럼. 쇠사슬 소리가 멈추자 발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고 코베릭은 귀를 쫑긋이며 발소리가 나는 방향을 노려보았지만, 이곳에는 코베릭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양초 말고는 한점의 빛도 없어 발소리의 주인은 인영이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발소리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왔고, 탁자 앞에 서고 나서야 겨우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코베릭이 임무를 위해 지나던 마을의 여관 주인, 스튜어트였다.


"일어나셨군요. 성기사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코베릭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뭐, 대충 예상하시는 대로입니다. 제가 이 마을에 숨은 흑마법사라는거죠." 스튜어트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 놈...!" 코베릭이 스튜어트에게 덤벼들려 했지만 찰그락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막 일어나셨는데도 기운이 넘치시는군요." 스튜어트는 발버둥 치는 코베릭을 비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쇠사슬이 벽속으로 빨려들어가며 코베릭을 벽쪽으로 끌어당겼고 이내, 코베릭은 곤충 표본처럼 동굴의 암벽에 고정되 한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수인을 성기사 임명했다는 이야기가 진짜일줄은 몰랐어요." 스튜어트는 코베릭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수인들이 전사로서 유명하긴 하지만..." 스튜어트는 손을 뻗어 코베릭의 가슴에 손을 댔다. 얇은 내의 너머로 코베릭의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성기사단에 그런 융퉁성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코베릭은 힘껏 노려보며 다시 으르렁거렸지만 스튜어트는 작게 웃을 뿐이었다. 그의 손길은 가슴을 타고 내려가 아랫배 부근에서 멈췄고 그곳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손을 떼고 물러섰다.


"날 어떻게 할 생각이지?" 코베릭이 묻자 스튜어트는 벽에 매달린 코베릭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글쎄요, 일단은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헛소리!" 코베릭이 크게 소리치자 스튜어트는 또 다시 기분 나쁘게 웃었다.

"뭐, 내일부터 천천히 설명드릴테니 일단은 좀 쉬시죠. 오늘은 그저 인사 정도나 하려고 온 것 뿐입니다."

스튜어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탁자 위의 꺼져가는 양초를 품안에 꺼낸 검은 양초로 바꿔 불을 붙였다. 점점 어두워져가던 동굴 안이 다시 밝아지며 양초에 깃들어있던 향기가 동굴 안에 낮게 퍼졌다.


양초를 갈아끼운 스튜어트가 손까락을 튕기자 사슬이 아까와 같이 느슨해졌고 코베릭은 간신히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내일은 먹을 걸 좀 가져올테니 부디 얌전히 계시길. 어차피 그 사슬은 제가 아니면 절대로 풀 수 없을테니까요" 스튜어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왔던 길로 돌아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동굴 안에는 구속당한 코베릭과 타오르는 검은 양초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