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갤도서관 채널

워낙 체격 차이가 압도적인 탓에 뿌리치려야 뿌리칠 수도 없었다. 얼떨결에 널찍한 등에 업혀 주차장까지 끌려간 끝에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족히 10년도 넘어 보이는 성환의 똥차가 보였다. 다른 조건은 다 제쳐두고 오직 크기와 탑승 인원만 바라고 마련한 듯한 봉고차였다.


그런데 막상 차에 몸을 실으려 하니, 앉을 자리가 없었다. 조수석은 물론이고 뒷좌석까지 온통 박스며, 짐으로 한가득 채워놓은 탓이었다. 


지민이 쭈뼛거리는 사이, 성환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조수석에 실어놓은 온갖 것들을 몽땅 뒤쪽으로 휙휙 내던졌다. 그러다 퀴퀴한 먼지와 털 내음이 풍기는 경찰 점퍼 하나를 찾아내자, 겉으로 보이는 개털만 툭툭 털어내 지민의 등짝에 대충 얹어주었다.


“춥지? 이거라도 덮고 있어 봐. 금방 히터 틀어줄라니까.”


“어? 이거 경찰 야잠이잖아요. 아저씨 진짜 경찰이 맞긴 맞았네요?”


“뭐야? 맞긴 맞아? 너 말하는 뽄새가 쫌 그렇다? 그럼 내가 진짜 경찰이지 가짜 경찰이겠냐?”


“그럼 혹시 권총이나 수갑 같은 것도 있어요?”


“미쳤냐? 그런 걸 지금 들고 다니게.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아,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짜식이 별 게 다 궁금하네. 어여 벨트 매, 바로 갈라니까.”


얼떨결에 벨트를 맨 직후, 성환 역시 운전석에 성큼 올라탔다. 그가 몸을 싣자마자 일순간 덜컹하며 엉덩이를 쳐올리는 묵직한 충격에, 지민은 토끼눈을 뜨며 기겁했다. 고작 두 사람이 탔을 뿐인데도 제법 넓던 운전석이 한순간에 가득 찼고, 차체가 한쪽으로 휙 기울어 브레이크를 풀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려갈 것만 같았다.


10인승 봉고차의 높은 천장도 성환의 체형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개 수인 특유의 산만한 덩치 때문에 머리를 살짝 앞으로 숙여야 제대로 운전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성환은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불편한 기색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기어를 넣고 주차장을 나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켜볼 만한 진기명기였다. 


곁에 앉은 지민이 넋을 놓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환은 주변을 두리번대며 다그치듯 물었다.


“야, 어디 모텔이야? 이름은 알지?”


“아, 그게…, 그냥 어플에서 방 있는 곳 찾다가 급하게 예약한 거라서, 이름이 기억이 안 나요.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알았을 텐데….”


“참나…. 그럼 길은 기억 나고?”


“그것도 좀…, 가물가물한데….”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만 듣고도 어지간히도 풀이 죽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기야, 걸친 옷 빼고는 몽땅 도둑맞은 것도 모자라 모텔 이름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한심한 상황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민중의 지팡이가 죄 없는 피해자를 닦달하는 것이야말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인지라, 성환은 곁눈질로 지민을 힐끔거리며 일부러 목청을 높여 기운차게 대꾸했다.


“에이, 괜찮어 인마! 내가 여기서 반평생을 살았는데 오늘 안에 찾기야 찾겄지. 일단 대~충 어느 쪽인지만 말해봐 봐. 오케이?”


“…네에.”


그 응원에 기운이라도 차린 것일까. 지민은 잔뜩 풀이 죽은 것치고는 제법 수월하게 길을 찾아냈다. 하지만 큰길을 지나 거미줄 같은 시가지를 맞닥뜨린 뒤에는 기억이 주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차에서 내려서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의 추위가 뼛속까지 시렸다. 그나마 성환이 걸쳐준 점퍼가 아니었더라면 꼼짝없이 눈사람 신세가 되었을 터였다. 지민은 점퍼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종종걸음으로 앞서갔다. 온몸을 꽁꽁 싸매긴 했지만 맨살이 드러난 두 손은 따가울 정도로 서늘했다.


아쉬운 마음에 주머니에라도 두 손을 찔러넣은 그때였다. 펑퍼짐한 허리둘레만큼이나 커다란 잠옷 주머니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북슬북슬한 감촉이 있었다. 


“으메, 차가운 거…! 뭔놈의 손이 냉장고 귤마냥 차갑냐? 아무리 털이 없어도 그렇지.”


지민의 고사리손을 꽉 움켜주니 채 자유자재로 조물거리는 그 따끈한 감촉이 금세 허벅다리에까지 닿았다. 성환의 딴에는 차갑게 식은 다리가 안타까워 순수한 선의로 주물러주는 것이었지만, 지민의 뺨은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 어딜 만져요! 마, 만지지 마요!”


“얼씨구…? 누가 보면 내가 변태라도 되는 줄 알겄어? 데워줄 때 가만히 있어 인마.”


“…….”


많이 민망하긴 해도 뿌리칠 정도는 또 아니었다. 털이 숭숭한 손답게 핫팩처럼 따끈하기도 했고 말이다. 지민은 고사리 같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커다란 손가락 마디에 제 손을 소심하게 찔러넣은 뒤, 천천히 걷다 말고 성환의 얼굴을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혼혈 개 수인답게 뭉툭하고 새카만 주둥이가 콧김에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어지간히도 몸에 열이 끓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지 싶었다. 


‘이 아저씨 여름에는 엄청 고생하겠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성큼성큼 걷던 성환이 문득 곁을 돌아보았다. 괜히 찔린 지민이 어깨를 움츠린 것은 본체만체하며 뜬금없는 말을 툭 내뱉었다. 


“야, 넌 진짜 웬만하면 겨울에는 어디 쏘다니지 말어라. 얼어죽겄다, 죽겄어.”


“패딩 입으면 되는데요?”


“패딩은 무슨. 없으니까 하는 소리지.”


“…그러게요. 돈 모아서 딱 하나 산 건데, 하필 그것까지 털렸네요. 이 날씨에 사람 얼어 죽으면 어쩌려고.”


설마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 없었다. 별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성환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맞잡은 손으로 지민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더니, 그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아이, 괜찮어 인마. 금방 찾겄지. 생각해 봐라, 니 사건에 경찰이 직속으로 붙었는데 그거 하나 못 잡겠냐?”


“…정말요?”


“그래 인마. 넌 오늘 아주 임자 제대로 만난 거여.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이런 민원을 바로바로 처리해줘? 요새 그런 놈들 잘 없다?”


분명 별것도 아닌 응원이지만, 경찰한테서 들으니 마음이 한결 나았다. 오직 직감을 따라 쭈뼛쭈뼛 떼던 걸음도 조금 전보다는 활기를 띠었고, 얼굴에 띤 표정 역시 조금 전보다는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묵묵히 걷기를 한참, 두 사람은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뭔가를 발견한 지민이 호들갑을 떨어댄 탓이었다. 


“아저씨, 저기요! 저 빵집에서 쭉 가다가 왼쪽으로 꺾었어요!”


“응? 저기서 쭉 가다가, 왼쪽으로? 어디 보자…, 그럼 거시기, 둘 중 하나네. 피크 모텔이든가, 제이크라운 모텔이든가.”


“어, 맞아요! 제이크라운! 근데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짜식이 놀라긴. 민중의 지팡이가 그런 것도 모르면 나가 뒤져야지.”


위치도 아는 마당에 더 이상 지민이 앞설 필요는 없었다. 한껏 거들먹거린 성환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을 지나치려니, 붙잡은 손이 덜컥 하며 걸렸다. 


“으응?”


문득 곁을 돌아보니, 지민이 그 자리에 우뚝 버티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뭔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시선을 따라가 보니 웬 동네 빵집이었다. 어디서나 흔히 있을 법한 빵집인데도 유난히 빤히 들여다보는 그 모습에, 성환은 본능적으로 짚이는 데가 있었다.


“왜? 배고프냐?”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어, 나도 헛헛혀. 고기 먹었으면 밥이든 빵이든 탄수화물도 좀 넣어줘야지. 뭐 좋아하는데? 도나스? 고로케? 아님 사라다빵?”


하나같이 숨이 턱 막히는 라인업에, 지민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저씨 혹시 슈니발렌 알아요?”


“슈니발…, 뭐시기?”


“슈니발렌이요. 망치로 깨먹는 건데, 안에 초콜릿도 있고 또….”


“아~! 알지 그거. 커다란 호두 같은 과자, 맞지? 그거 겉대가리만 요란하고 맛대가리는 하나도 없드만.”


“네? 먹어보고 하는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그 뭐야, 꼭 센베에다가 초콜릿 발라먹는 맛이여.”


“세, 센베는 무슨! 설마요! 아저씨가 어디서 이상한 거 사다 먹은 거 아니에요?”


“얼씨구? 그거 백화점 지하에서 산 거야 인마. 하도 사달라고 난리부르스를 추길래.”


“…어…? 그럴 리가 없는데? 그거 진짜 맛있다고 했는데…?”


“뭐여? 너야말로 한 번도 못 먹어본 거여?”


“…오늘 먹으려고 사긴 했어요.”


“근데?”


“근데 그 새끼가 그것도 들고 가서…, 그냥 다음에 먹으려고요. 어차피 맛도 없다니까 뭐….”


“…이야. 패딩에, 지갑에, 핸드폰에, 더 털어갈 게 없어서 과자까지 털어가? 그것도 평생 한 번도 못 먹어본걸? 그 쳐죽일 놈의 새끼 진~짜 지독한 새끼네? 그 정도로 뻔뻔한 새끼면 얼굴 한 번은 봤을 수도 있겠는데?”


“…설마요.”


“아냐, 그 새끼 아마 전과가 있을걸? 잡기만 하면 이번엔 아주 그냥 묵사발을 내든가 해야지. 뭐해? 얼른 안 따라오고?”


팔을 휙 끌어당기는 방향이 골목길이 아니라 빵집이었다. 그걸 눈치챈 지민은 얼떨결에 따라 걸으면서도 확인부터 했다. 


“어, 어어? 어디 가요?”


“빵집 들러서 그거 사야지. 슈니발인가 뭔가 하는 거.”


“왜요…? 아저씨 그거 싫다면서요?”


“…하여간에 새파랗게 어린놈 아니랄까 봐. 이 나이 먹고 내가 먹고 싶은 거 먹는 줄 알어? 그냥 옆에서 남이 먹고 싶다는 거 맞춰주는 거지. 따라와, 얼른.”


영 속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일단 먹고 싶은 것을 사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민은 토끼 눈을 뜨고서도 허둥지둥 성환을 따라 빵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