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갤도서관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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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



곰은 아직도 자신의 품에서 훌쩍거리는 인간을 불러보았다.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밤새도록 울어버릴 것 같아서 품에서 놓아주지도 못하고 있었다.



“……”

“형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거야?”



곰은 인간을 달래주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려달라고 했다. 인간은 좋지 않은 가족 사정까지는 곰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침묵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형이 괜히 물어봤다.”



곰은 인간을 품에서 풀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12시 넘었다. 너도 자야지.”



곰은 인간은 여기서 자라고 하며 다른 방으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서려고 했는데, 인간이 곰의 손을 붙잡았다.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인간이었다.



“저… 그… 같이 있어 주시면…”

“갑자기 왜.”

“그… 그게…”

“같이 자달라는 거냐.”



인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 집안이 무너진 일을 겪고 난 뒤, 학교도 휴학하며 악착같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생했는데,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헛수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었다. 거의 1년 동안 휴학하면서 모아두었던 것들이 사라질 순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목적지를 잃어버리게 된 인간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묵묵히 침대에 누워있는 곰에 꼭 붙어있는 인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왜,”

“……”



인간은 머릿속에서 수천 번 수만 번도 고민했을 자신의 가족사의 얘기를 곰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 곰은 인간이 무슨 말을 하냐 싶어 놀랬지만, 천천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곰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인간의 입에서 직접 듣게 되니 마음 구석에 안타까운 감정도 생겨버렸다.



“죄송해요.”

“뭐가.”

“이런 얘기 해서…”

“죄송하긴 무슨.”



곰은 옆에 누운 인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내일 병원에 갈 거냐?”

“가야죠…”

“그래.”

“……”

“얼른 자라.”

“네…”



곰은 인간을 꼭 붙여놓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인간은 곰의 팔에 둘러싸여 붙어있어 답답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해져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디 병원이라고 했지?”

“그… 부산대학병원… 이라 했어요.”



조금 늦은 아침에 일어난 그들은 병원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병원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고, 둘은 방에서 나왔다.



“오늘… 체크아웃하셔야 하는 건…”

“뭔 체크아웃이야. 3박 4일로 예약했는데.”

“아…”



인간의 순진함에 곰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인간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갔다 와라.”

“네…”



주차장에 차를 대놓은 곰은 자기는 차에 있을 테니까 인간보고 다녀오라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인간은 차에서 내려 응급실 입구로 들어갔다. 인간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본 곰은 본인도 차에서 내려 천천히 따라갔다. 물론, 인간이 들어간 곳이랑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곰이었다.


응급센터 건물로 들어온 인간은 병원을 둘러보며 중환자실이 위치한 2층으로 올라갔다.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오니 익숙한 사람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수현아.”

“……”



인간은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연락도 없고…”

“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대화는 자주 오고 가지 않았다.



“아빠는… 어떻대요?”

“의사가… 뭐라 했었지…”



어머니는 휴대폰에 메모를 했었는지 진단명을 찾고 있었다.



“경막하…출혈… 이래.”

“……”



고등학교때 의예과를 준비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인간은, 어머니가 말한 진단명이 뭔지 알고 있었다.


‘경막하출혈’


머리에 대한 직접적인 충격으로 뇌와 경막 사이를 이어주는 혈관이 파열되어 급성 출혈이 발생하여 뇌와 경막 사이의 공간에 피가 고여 뇌를 압박하는 상태이다. 심각하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


다행인지 인간의 아버지는 출혈량이 적어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양호하다고 했다. 다만 회사의 부도 이후 건강 상태가 늘 좋진 않으셨기에 지켜 봐야된다고 했다.



“……”



중환자실이라 면회시간도 제한적이었고, 출입가능한 보호자도 한 명으로 제한하고 있었기에 인간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중환자실 입구랑, 시계를 반복해서 바라보던 중 그녀가 불렀다.



“오늘… 올라갈 거니?”

“네… 밤에 일하러 가야 하니까요.”

“……”

“……”



서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겠지만, 할 수 없었기에 어색한 시간만 흘러갔다.










곰은 인간이 들어갔던 방향과 다르게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응급실 건물로 돌아왔다. 응급실 1층 병상에는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간호사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곰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지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곰이 도착한 곳은 ‘수납처’. 대기 순번표를 뽑은 곰은 빈 의자에 앉아서 몇 분을 기다리다 안내판에 뜬 번호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서 모니터를 보던 직원은 갑자기 거대한 수인이 눈앞에 등장하자 깜짝 놀라 당황했지만, 심호흡을 한 뒤 차분히 응대했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중환자실 ***씨 수납하러 왔는데.”

“네?”



곰은 일부러 강압적인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결제해주쇼.”

“네?”

“그리고. 하나 얘기해 두는데.”



곰은 머리를 들이밀어 직원 앞에 가까이 오더니 눈을 매섭게 떠 째려보았다.



“***씨나 부인한테 내가 계산했다는 얘기 들려오면, 가만 안 둘 테니 입단속 잘하쇼.”



직원에게 반협박 말투로 날카로운 이빨까지 드러내 으르렁거리니 직원은 겁을 먹고 절대로 비밀로 하겠다고 답변했다. 옆에 있던 직원들도 그 광경을 보자 똑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직원은 현재 비용에서 더 나갈 수도 있다고 안내해주었지만, 곰은 쿨하게 그 비용에서 두 배나 결제하라고 지시했다. 곰의 행동에 직원은 쩔쩔매며 처리를 해주었고, 몇 개월이냐고 물어보는 직원에게 ‘일시불’이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위협한 건 미안합니다. 알아서 잘 지켜 주실 거라 믿습니다?”



계산이 끝나고 곰은 직원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사과했지만, 나가기 전 은근슬쩍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직원은 오히려 더 겁을 먹게 되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더니 곰은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직원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크게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밖으로 나온 곰은 차에 돌아왔다.



처음엔 인간의 아버지 병원비를 계산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로 언젠가 인간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곰의 목표는 단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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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앞에서 대화 없이 초조한 시간만 보내던 중 밖을 바라보니 해가 빨갛게 저물어 가는 것을 보았다. 벌써 6시인 것을 본 인간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저 멀리 앉아있는 어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앉아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끼자 고개를 들었다.



“가게?”

“네… 가볼게요.”

“조심히 올라가렴…”

“네…”



인간은 병원 밖으로 나왔고 휴대폰을 꺼내 들어 곰에게 전화를 걸었다. 꽤 오랫동안 연결음을 듣고 나서야 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미안하다. 자고 있었다.”

“저 나왔어요…”

“차에 있으니까 와라.”

“네…”



인간은 곧바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화를 받았던 곰은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인간이 도착하자마자 곧장 포옹부터 해버렸다.



“괜찮냐.”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또, 또 울려고 하지.”

“아니에요…”

“거짓말하고 있네.”



곰은 인간의 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차에 탄 그들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부터 기운이 별로 없던 인간은 곧장 침대 위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기분이 들었던 인간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지하에 헬스장이 있어서 몸이라도 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온 곰은 곯아떨어진 인간을 보곤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야. 일어나야지.”

“우으으……”



벌써 날은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곰은 어제 지하에 꽤 오랫동안 죽치고 돌아왔는데도 인간이 자고 있어 별수 없이 따로 잤고, 그 와중에 새벽에 또 일어나서 지하에 내려가 헬스까지 하고 올라왔다. 여전히 잠에 빠져있는 게으른 인간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던지 그를 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모습을 본 곰은 크게 한숨을 쉬고 난 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상!!!!”



곰이 방이 떠나갈 정도로 우렁차게 소리치자 인간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인간은 동공이 커진 채 심호흡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곰은 콧김을 흥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잘 거냐?”

“지… 지금 9시에요…”



휴대폰 화면으로 시간을 확인한 인간은 억울하단 듯이 얘기했다.



“어린 게 벌써 게을러 빠지면 어떡하냐?”



인간의 변명은 곰에게 통하지 않았다.



“얼른 나와서 밥 먹어라.”



인간은 곰을 뒤따라 나오게 되었다. 이미 곰이 룸서비스로 시켜놓았던 아침밥이 이미 차려져 있었고, 프로틴 음료를 마시고 있는 곰의 앞에 앉아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 생각이 없었는지 반이나 남겨버리게 되었다. 



“괜찮냐.”



곰은 인간이 걱정되었는지 젓가락을 놓은 그에게 물어보았다.



“네… 원래 아침을 안 먹고 다녔어서…”

“그러니까 비실비실하고 피곤한 거야.”

“……”

“형이 데리고 살아야 살이 좀 붙겠는데?”

“…네?”

“잘 먹고 다니라고.”



곰은 농담이라며 얘기하더니, 진심으로 받아들여 당황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먹은  것들을 치우고 난 뒤, 소파에 앉은 그들은 각자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곰이 인간을 불렀다.



“야.”

“네?”

“폰 그만 보고.”



곰은 인간을 자신의 옆에 바싹 붙여놓았다. 



“오늘은 가능하겠어?”

“…네?”

“임마. 우리가 여기 왜 왔겠냐.”

“아…”



곰은 부산에 놀러 온 목적을 상기시켜주었다. 그제서야 이해한 인간은 생각을 잠깐 하더니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곰이랑 팬즈 촬영을 위해 부산에 놀러 온 것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사고 소식을 접했기에 자신이 지금 이런 짓을 해도 되나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그러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한테 솔직하게 얘기하라 했지.”

“그게…”

“부모님일 때문이냐.”

“…네.”



속마음을 궤뚫어보는 곰에게 들켜버렸다.



“야.”



곰은 인간의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인간은 부릅뜨고 있는 곰의 표정을 보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너도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네…”

“너도 복학하고 싶고,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싶잖아. 알바는… 지금은 그만뒀다지만…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너의 전부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매달리지 말라고.”

“……”

“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모든 마음을 읽혀버린 인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젠장.”



곰은 인간에게 조언해주는 것이 민망한 일이라 생각했는지 시선을 피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눈동자를 돌려 옆을 봤는데, 얼굴이 빨개진 채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이 있었다.



곰은 천천히 몸을 들이밀어 인간에게 다가갔다. 곰이 다가오자 인간은 그대로 소파에 눕혀졌고, 곰이 덮치려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팔을 짚고 엎드려 인간을 내려다보는 곰, 누워서 곰을 올려다보는 인간.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한참을 눈을 바라보다가, 먼저 다가온 것은 곰이었다.



“읍…”



곰은 그대로 인간에게 입을 맞추었다. 어느 순간 움직이지 못하게 인간의 양팔을 붙잡은 채로 있었고, 인간은 전혀 저항하지 않은 채 곰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아…”



곰이 정신없이 입 안을 휘저어 숨이 찰 정도였는데도 인간은 눈을 감은 채로 계속 있었다. 그러다 인간도 혀를 움직여보았는데 곰이 움직이던 것을 잠시 멈췄으나 이내 좀 더 강하게 그를 탐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타액을 한참이나 교환하다 곰은 천천히 얼굴을 떼어냈다. 번지르르하게 바뀌어버린 인간의 입을 보며 곰은 인간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그리고 자신도 상의를 벗어버리더니 인간을 안아서 앉더니 끌어안은 채 그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인간도 역시 곰을 끌어안았다. 손에 전해져오는 곰의 단단한 신체를 느끼던 도중 갑자기 아랫배 쪽에서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고, 인간은 얼굴을 떼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벌써부터 묵직해져 있는 곰의 반바지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