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편 안 읽어도 이해는 다 가지만, 

전편 안 읽어보면 후반부 개연성에 의문을 가지게 될 수 있음

1. 리리스의 악몽 https://arca.live/b/lastorigin/9753634

2. 리제의 악몽 https://arca.live/b/lastorigin/9781860

3. 에밀리의 악몽 1 - https://arca.live/b/lastorigin/10612586

4. 에밀리의 악몽 2 - https://arca.live/b/lastorigin/11391835



소완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정성스럽게 만든 만두나 소면 따위가 어지럽게 섞여 음식물 쓰레기 위로 떨어진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삐죽 날이 서 있는 브라우니의 불평이 소완의 마음을 찔렀다. 


“에이~ 주방장님 음식, 해빔소보다 맛없지 말임다.. 저는 스팸이나 까먹으러 가겠슴다.“


처음 느껴보는 굴욕에 소완의 말문이 막혔다. 

브라우니는 그런 그녀를 한번 바라보다니, 큰소리로 쯧 혀를 차고는 종종걸음으로 식당을 나가버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소완은 얼굴을 찌푸리고 브라우니가 먹다 버린 만두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먼저 쫄깃한 만두피가 느껴졌다. 이빨로도 잘 찢기지 않는 쫄깃함에 입을 다물어 조심스럽게 만두피를 찢자 최고급 고기를 이용해 만든 , 고소하고 달콤한 육즙이 탁 터지며 입 안을 가득 적신다.

입을 우물거리며 육즙을 삼키자 잘 배합되어 너무 기름지지도, 퍽퍽하지도 않은 만두소가 입을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적절한 조화로 이루어낸 맛의 하모니, 그녀가 자랑하는 시그니처 디쉬다운 완벽한 맛이었다. 이전과 다를것 없는 맛에 소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소첩의 음식이 맛이 없다니, 그럴리가 없사옵니다." 


미각 모듈이 고장난건가, 감히 해물비빔소스같은 쓰레기와 자신의 음식을 비교하다니. 소완은 입안에 남은 만두를 꿀꺽 삼켰다. 목넘김까지도 완벽한 이것은 그녀의 요리임에 틀림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오르카 호 인원 전원에게 음식을 배급해 줘] 라는 사령관의 얼토당토 않은 부탁을 들어준 대가가 이런거라니. 


소완은 건방진 브라우니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중식도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생각은 브라우니의 뒤를 이어 들어온 지니야에 의해 중단되었다.


“아, 지니야 씨? 어쩐일로..”


종종 옥수수를 가지러 주방에 들락거리는 지니야는 주방의 인원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브라우니의 일도 있던지라, 답지 않게 반갑게 인사하려던 소완의 얼굴이 무참하게 구겨졌다.


지니야가 입안 가득 담긴 음식을 우물,우물 몇번 맛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그것을 모두 쓰레기통에 뱉어버렸기 때문이다.


“미안해요..너무 맛이 없어서..”


지니야는 소완의 얼굴을 살피고 우물쭈물 하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며 주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니야가 음식을 뱉다니, 멸망 이전에 “지나야도 먹을 수 없는 괴식 만들기 대회” 따위를 열었던 인간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유일무이한 사태에 소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탄생 이유는 주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지고의 쾌락을 선사하는 것,

그렇기에 그녀가 한 음식은 그녀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것을 전면으로 부정당한 소완은 천천히 지니야가 뱉은 음식물 위로 천천히 주저앉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차마 지니야가 뱉은 것을 입에 넣을수 없었던 소완은 천장을 뒤적여 어제 만두에 사용했던 조미료 들을 살폈다. 자신의 요리실력은 문제가 없었다. 뭔가 요리에 사용했던 재료가 잘못된 것이 틀림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소완은 떨리는 손으로 소금병을 열어 소금을 찍어 먹었다. 떫었다. 


뭐? 소완은 놀란 눈으로 다시 소금을 찍어 핥았다. 그녀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 떫은 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당황한 소완은 다급히 설탕병을 열었다. 하얀 설탕 알갱이들을 혀에 대기도 전에 혀가 오그라들 정도로 쓴 맛이 느껴진다.


우왁스럽게 옆에 놓인 식초병을 들어 마신다. 달콤하다.


“아아악!!”


소완은 조미료를 바닥에 내팽겨치며 주저앉았다. 아슬아슬하게 찬장 끝에 걸쳐있던 꿀단지가 깨어지며 매운 향이 훅 피어올랐다. 


"이..이럴리 없사옵니다" 


소완은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흐른 조미료를 찍어 핥았다. 소금은 떫었다. 꿀은 매웠다. 식초는 여전히 달고, 설탕은 당연하다는 듯 씁쓰름했다. 미각 모듈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그때, 절망으로 쓰러진 소완 위로 음식물이 투두둑 흘러내린다. 소완이 반응할 사이도 없이 단정한 요리사 옷이 음식물로 더럽혀진다.


“이게 무슨 짓이옵니까.”


손으로 흐르는 덩어리를 닦아내며 고개를 들자 한입만 배어 문,혹은 건드리지도 않은 음식접시를 든 바이오로이드들이 보인다. 

소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줄지어 들어온 바이오로이드들이 차례차례 접시 위의 내용물을 소완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기, 이거 주방장님이 만든거지? 정말 미안하거든? 그런데 언니도 이런 음식은 먹기가 힘들거든?"


 "저..친구가 되려면 이런걸..먹어야 하는건가요..아무리 친구를 가지고 싶어도 이건.."


"죄송해요...보리도 이런 음식은 먹기가 싫다고 해서요.."


“죄송...합니다..맛이..너무...없어..서.:”


 "맛없어,최악이야."


  "....." 


그녀가 자랑했던 음식들이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그녀 위로 쏟아진다.


"이럴리..없.."


소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자신의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망연자실해있는 소완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정말 실망이다 소완, 내가 아닌 대원들에게 줄 음식이라고 이렇게 대충 만들다니.”


친숙한 목소리에 소완의 고개가 퍼뜩 들린다. 

그리고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그 얼굴 위로 그녀의 요리가 쏟아진다. 


"아.."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사령관이 성큼성큼 걸어 주방 밖을 빠져 나갔다.


“아니옵니다..아니옵니다…”


소완은 눈물을 흘리며 요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

주인에게 줄 음식이 아니었기에, 이전보다 서툴게 만든 감은 있었지만 그녀는 항상 모든 요리에 진심이었다.

야속하게도 바닥에 쌓인 수많은 음식들은 모두 그녀가 알던 맛 그대로였다. 


“소첩의 음식은..맛이 없지 않사옵니다..”


바닥에 놓인 어느 음식을 먹어도 그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완은 무언가를 지워내려는 양 끝없이 음식들을 욱여넣었다.


물도 없이 많은 음식을 먹은 탓인지 목이 점점 막혀온다.

하지만 소완은 멈추지 않고 입안에 요리를 쑤셔넣었다. 


"컥..!"


사람이던 바이오로이드던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쑤셔넣는 것은 확실히 몸에 해롭다. 

그것은 소완같은 고급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커..컥..”


 음식물로 기도가 막힌 소완의 눈이 뒤집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였다. 


“으..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소완은 기계적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

.

.



"아우우,,주방장님? 주방장님?"


소완은 무언가 자신을 흔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힘겹게 눈을 뜨자 새파란 머리카락의 물결이 눈앞에서 흔들거린다.


“주방장님, 땀을 그렇게 흘리시면서 주무시다니...괜찮으신거에요?”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소첩은 괜찮사옵니다." 


소완은 애써 대답하곤 멍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늘 보던 익숙한 주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했던 탓일까? 조리대 옆 의자에서 잠들어버리다니...소완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벌써 새벽 2시인데...주방장님이 안오셔서..”


소완은 우물쭈물하며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아우로라를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역시 방금의 일은 꿈이었던 것일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소완은 무언가를 결심한듯 늘 가지고 다니는 중식도를 쥐고 조리대 앞에 섰다.


“저..주방장님?”


당황한 아우로라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쌩뚱맞게도 요리를 시작하는 소완을 바라보았다. 

조미료들을 일일히 찍어먹어보기도 하고, 심지어 익히지 않은 날고기까지 먹어가며 요리를 하는 소완의 모습은 굉장히 불안정해 보였다.


“주방장님..괜찮으신건가요?’


“아우로라양,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첩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사옵니다.”


딱 잘라 말한 소완은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감자 전분 덩어리를 반죽해 얇고 쫀득한 만두피를 만들고, 그것에 신선한 배양육과 페어리들이 직접 기른 유기농 부추를 적절히 섞어 반죽한 만두소를 넣는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만두피를 접어 먹음직한 모양을 만든 소완은 그것을 찜기에 넣었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고소한 냄새가 온 주방에 퍼졌다.

그 냄새에 아우로라는 순수하게 소완의 요리실력에 감탄사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와..주방장님, 그런데 갑자기 요리는 왜…?”


소완은 비밀이라는듯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만두가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주방 밖으로 나섰다.


 "주방장님! 어딜 가시는 거에요?!" 


이상행동을 하는 소완이 걱정되기 시작한 아우로라가 종종 걸음으로 소완의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소완은 ‘괜찮사옵니다.’ 라는 한마디로 아우로라를 멈추고는 주방을 나가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소완의 발걸음이 거대한 철문 앞에서 멈추었다.

소완은 숙련된 웨이터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사령관실의 문을 두드렸다.


"응,누구지?"


 "소첩이옵니다.”


"..들어와."


전적이 있기에 긴장한 기색을 보이던 사령관은 소완이 만두접시를 들고 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차도 아니고 오밤중에 만두라니 , 소완답지 않은 쌩뚱맞음 이다.


“시장하실까 걱정이되어, 소첩이 야식을 준비해왔사옵니다.” 


소완은 정중하게 접시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문에 바싹 붙어있는 모양이 음식에 대한 평만 듣고 금방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새벽 2시에 야식.. 그것도 만두라니? 


“고마워 소완.”


얼떨떨했지만 소완이 방에 오래 남아 있으려는 기색이 없었기에 사령관은 짧은 감사인사를 하고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넣으려는 찰나.


[챙]


[철컥] 


블랙 맘바와 가위를 동시에 빼든 리제와 리리스가 각자 자신의 무기로 소완을 겨누었다. 


"이..해충! “


"음식에 무슨 짓을 한건 아니겠죠? 주인님, 위험하니 물러서 계세요."


 "..맛있는 냄새.." 


마지막으로 들린 나른한 목소리에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모를 ,교복 와이셔츠 차림의 에밀리가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그거..안먹을꺼야?”


당장이라도 접시를 엎을 기세였던 리리스와 리제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리리스와 리제는 저도 모르게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만두접시 앞으로 다가온 에밀리가 만두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었다. 


“냠..냠..냠..”


조용한 방안에는 에밀리가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꿀꺽, 만두를 삼킨 에밀리가 보일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맛있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법이 깨진듯 얼어있던 리리스와 리제가 비명을 지르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부터 있던건가요? 제가 우는 걸 전부 본건 아니겠죠!?”


“역시 울었네, 푸풋...한심한 해충같으니!”


“뭐야?”


본의 아니게 기미상궁역을 해버린 에밀리 덕에 살벌한 분위기는 어이없이 풀어져버렀다. 

하지만 조금만 더 두면 다시 리리스와 리제의 싸움이 일어날것 같아. 사령관은 손을 들어 둘의 말싸움을 중재시켰다. 


“에밀리는 너희가 오기 한참 전부터 내 침대 위에 잠들어 있었어.. 리제?리리스? 여긴 사령관 실이니까 조금만 진정해줄레?” 


악몽을 꾼 뒤로 에밀리가 다시 악몽을 꾸는 일은 없었지만, 그 후로 에밀리는 종종 사령관실에 와서 잠을 청하곤 했다. 에밀리가 있던 사령관실에 난입한 것은 리리스와 리제이니 어찌보면 불청객은 그 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리리스와 리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소첩의 음식이 맛이 좋다니, 다행이옵니다. 사령관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긴 하지만 에밀리님이 드셔주어도 그 또한 소첩의 기쁨이 되기에...”


사령관은 당황하며 소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소의 소완 이라면 ‘소첩이 만든 음식은 오로지 주인님만을 위한 것, 감히 겁도없이 주인의 쾌락을 위한 음식에 손을 대다니, 각오는 되었겠지요?’

따위의 말을 하며 한바탕 칼부림이 나는 것이 정상일텐데..?


"아..이거 사령관 꺼야? 미안.." 


“괜찮사옵니다. 기왕 여기 모두 모여계시니, 다들 조금씩 드셔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게다가 한술 더떠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리리스와 리제에게 음식을 권하기 까지 한다. 리리스와 리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완을 바라보는 가운데, 사령관은 무의식적으로 만두를 집어 그것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꿀꺽’


“와..역시 소완이야.”


사령관은 엄지를 척 들고는 정신없이 만두를 입에 넣었다. 소완의 요리는 언제나 최고 였지만 이번 요리는 이전의 요리와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엄청나게 맛이 좋았다. 


“앗..사령관,,나도..”


에밀리도 질세라 만두를 집어 입안에 넣고 볼이 터져라 우물거렸다. 리리스와 리제도 눈치를 보다 만두를 집어 입안에 슬쩍 집어넣었다. 


“!!”


분하지만 맛있었다! 리리스와 리제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두번째 만두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소완의 얼굴에는 무언가 확신한 듯 편안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만두는 많으니, 다들 천천히 드시옵소서.”


소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요리를 먹는 이들을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주인님 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이 자신의 요리를 즐기며 즐거워 하는 것 역시 지고의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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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밀리 먹어서 기분 좋기도 하고

토요일 가기전에 한편 더 쓰고 싶어서 호다닥 써서 올려요.